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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38화 (138/170)
  • 138.

    단우는 과거로 돌아왔음을 처음 실감한 순간이 떠올랐다.

    푸르고 맑은 하늘과 어떤 악취도 없는 거리가 보였다.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 어딘가에 차우원이 살아 있으리라 생각하니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뛰었다.

    동시에 두려웠다. 자신이 모든 걸 다시 한번 망가뜨릴 것 같아서.

    단우는 스스로를 믿지 않았다. 그가 간절히 원한 건 이루어진 적이 없었고 소중한 건 금방 그의 곁을 떠났다.

    차우원을 지키겠다고 다짐했으나, 알고 있던 일이 조금씩 어긋났다. 어느새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차우원에게 의지하는 건 이단우의 나쁜 버릇이었다. 차우원이 죽어서 이단우는 강제로 그럴 수 없게 되었는데, 다시 곁에 차우원이 있었다…….

    ‘닥쳐. 말하지 마.’

    그러나 그에게 과거로 돌아왔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스스로가 미친놈 같다는 걸 안다. 진짜 미친 소리를 해서 팀장 자격을 박탈당하고 정신과에 처박힐 수는 없었다.

    그런데 차우원이 믿는다고 말했다.

    ‘아니.’

    단우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차우원은 이단우를 믿은 적이 없다. 이단우가 빌어먹게 못 믿을 새끼였을 때도 그는 입으로는 이단우를 믿는다고 말했다. 그때 이단우는 침실에서 한 발자국만 나가도 차우원의 감시망에 걸렸다.

    차우원은 화내거나 소리 지르지 않는다. 미친놈한테 ‘개소리 닥치고 정신 좀 차려 봐.’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단우를 신뢰하지도 않았다.

    정말로 차우원이 이단우의 정신 나간 소리를 믿는다면, 그가 해야 할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널 죽였잖아.’

    이단우는 차우원을 다시 보면 몇 대라도 갈기리라고 생각했다. 그 개자식은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됐다.

    그러나 사실 화를 내야 할 쪽은 차우원이었다. 은혜도 모르는 이단우가 아니라. 이단우와 차우원의 목숨은 가치가 달랐는데 그는 이단우를 살렸다.

    이단우는 고마워해야 마땅했다. 차우원에게 목숨이 구해진 다른 사람들처럼 감격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차우원이 미워서 견딜 수 없었다.

    이단우는 차우원에게서 목숨을 빼앗았다. 그러면서 성검과 그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했던 명예까지 빼앗았는데 그의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이단우는 비어 있는 관을 장례 지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이단우에게 차치원이 찾아왔다.

    -저를 팀원으로 받아 주세요. 형을 찾아올 거예요.

    -당신이 성검의 주인이잖아요.

    차치원은 눈물이 말라붙은 얼굴로 말했다.

    그는 이단우를 증오로 불타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찌르겠다는 눈으로 쳐다보는데 어떤 멍청한 새끼가 널 팀으로 받냐.’

    단우는 생각했으나 그를 팀원으로 받았다.

    -당신처럼 유명한 분을 몰라볼 수 없죠.

    -차우원 헌터를 죽인 분이잖아요.

    -더 빨리 각성했어야 했는데. 더 빨리…….

    -제가 무슨 쓸모가 있어요?

    지쳐서 세상이나 자신 둘 중 하나는 끝장내고 싶어 하던 고청. 같은 말만 중얼거리던 권준홍을 방에서 끌어내고 기희윤을 팀에 집어넣었다.

    -가장 약한 단우가 짐이 돼서 팀원들이 다 죽은 거구나. 그래서 혼자가 됐네. 안됐다.

    -내가 그렇게 필요하다는데, 단우 곁에 있어 줘야지.

    그 팀은 오합지졸에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나 이단우가 어떤 놈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리더가 형을 죽였어요?

    그곳에선 잃을 게 없어서 편했는데, 이곳에는 차우원이 있었다. 차우원이 살아서 이단우 곁에 있었다.

    이단우는 그를 또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단우는 다시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됐는데, 그는 몇 번이나 잘못을 반복했다.

    그런데도 차우원은 떠나지 않았다.

    이단우가 저지른 가장 끔찍한 짓을 듣고도 사람 좋은 소리를 했다.

    이단우의 잘못이 아니라고.

    -난 감동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새끼 내 말 또 안 믿잖아.’

    적당히 상대하고 있다. 상태 안 좋은 놈한테 미친 소리 그만하라고 할 성격이 아니니까…….

    이제 이단우에게 남은 길은 차우원을 제대로 납득시키거나 아니면 차우원에게 붙잡혀 정신과에 끌려가는 것밖에 없었다.

    당연히 후자는 안 될 일이었기 때문에 단우는 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 모든 일을 이미 겪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을 그는 몇 개라도 알고 있다. 앉혀 놓고 몇 시간을 맞춰 보면 차우원은 납득할 터였다. 아니면 이단우를 묶어 놓거나…….

    그런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목이 꽉 막힌 듯하고 속이 뜨거웠다.

    ‘왜 이래.’

    이 눈물샘은 열고 닫는 기능이 없어서 걸핏하면 사람 속을 터지게 했다!

    신체 어디도 단우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건 이단우의 잘못이었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죽었다. 아니, 애초에 그따위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차우원이 이단우에게 말했다.

    “왜 또 울어.”

    이단우의 반응에 당황하면서.

    정신 나간 놈 보는 얼굴이 아니다. 차우원은 난처하고 걱정스러운 듯했다. 그 표정과 목소리가 단우를 대충 받아 주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단우는 자신의 머리가 헛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가 목멘 소리로 주장했다.

    “거짓말 아니야, 진짜야, 증명할 수 있어……. 의사 부르기만 해봐.”

    “안다니까. 울거나 협박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해.”

    차우원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그의 손이 단우의 어깨와 등을 쓸다가 머리통을 잡고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내가 언제 협박했어?’

    단우는 생각했으나 입이 눌려서 항의할 수 없었다.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차우원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그렇다고 너무 울진 말고. 지금도 몸이 뜨거운데…….”

    ‘그건 마력 회로 손상 때문이고…….’

    그 소리를 안 할 정신은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떻게 이러지?’

    이단우는 차우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청연에 갇힌 뒤에도 의문이었다. 그가 어떻게 이단우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는지.

    차우원은 단 한 번 말했을 뿐이다.

    -스승님이 왜 그곳에서 돌아가셨는지 알아.

    그마저도 사과하고 다시는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잘못했어. 난 아무것도 몰라. 잊어…….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됐어.

    그런 사람이라 이단우는 속절없이 빠졌다. 의지하게 됐다.

    -그럼 그때 내가 원한 게 널 지키는 거였겠지. …지금도 그러니까.

    ‘아니야.’

    차우원은 이단우를 좋아한다고 말한 게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 단우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모든 게 반복되도록 두진 않을 것이다…….

    그러면 차우원은 또다시 죽을 테니까.

    주박처럼 자신을 묶은 믿음을 이단우는 다시 무의식 아래로 밀어 넣었다.

    아니, 이번에 지켜질 쪽은 차우원이다.

    * * *

    쾅쾅쾅!

    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차우원 헌터, 정말 죄송하지만 잠시 나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원팀 팀장인 힐러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차우원이 몸을 반쯤 일으키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옆 구역에서 몬스터 웨이브를 정리하는 데 실패한 모양입니다. 일부가 이곳으로 향한다는 경고입니다!”

    그러면서 힐러가 벌컥 문을 열었다. 그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단우는 자신이 무슨 꼴로 깔려 있는지 깨달았다.

    “……!”

    “죄송합니다. 나가서 말씀 들을게요.”

    차우원이 몸으로 단우를 가리며 일어났다. 힐러는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

    “아니에요. 단우가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서요.”

    ‘뭐 하냐.’

    차우원이 멀쩡해 보이는 이단우를 챙겨서 분위기만 이상해지고 있지 않은가?

    단우는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옆 구역 방어선이 뚫렸다고요?”

    “아, 예! 그뿐 아니라…… 방어에 실패한 구역이 한두 곳이 아닌 듯합니다. ‘웨이브 정리 실패’ 경고만 해도 각기 다른 길드 세 곳에서 발송됐고……. 또 개별 경고가 아닌 전체 경고로 ‘방어 실패’, ‘구조 요청’ 신호를 보낸 곳만 열세 곳입니다!”

    “……!”

    인근 길드를 찍어 도움 요청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단우는 피가 빠르게 돌았다.

    ‘과거와 다르다.’

    이전에는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내몰리지 않았다. <최후의 던전>만 빠르게 열린 게 아니라 종말의 오염 역시 비교가 되지 않는 속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아, 망할……. 죄다 빨라진 게 맞잖아.’

    힐러가 다급하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도망칩시다.”

    “……?!”

    두 사람이 자신을 돌아봐서 단우는 의아해졌다.

    ‘팀 두 개로 지역 방어를 할 생각인가?’

    엘리트의 자신감이야 그가 알 바 아니다.

    “시민들 대피로부터 확보할까요. 지원팀이 앞장서 주시면 좋겠는데요.”

    “저희가 방어선을 무너뜨리면 이 일대는 연쇄적으로 부하가 걸릴 텐데요! 저희가 다른 전선을 무너뜨리는 꼴이 됩니다.”

    뭐 어쩌라는 건가?

    “그게 저희 잘못은 아니죠. 먼저 무너진 쪽 잘못이지. 그리고 여기 있으면 다 죽습니다.”

    “예?”

    힐러가 기겁했다.

    차우원이 차분하게 물었다.

    “가까운 전선이 무너졌다면 우리뿐만 아니라 주변 전선도 과부하가 걸리지. 그쪽에서 감당 못 하고 계속 우리 쪽으로 웨이브를 흘릴 거라는 뜻이야?”

    “그것도 그렇고. 전체 경고 떴다며. 열세 개의 전선이 무너졌다고. <최후의 던전> 열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 꼴인데, 다른 곳은 버티겠어? 더 무너지면 우리 발 못 빼. 여기 갇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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