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넌 영웅이었어. 네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넌 모르잖아.”
그런데 단우가 부정했다.
‘화를 내네.’
‘미래의 차우원’이 정말 존재하는 사람이고 자신이 그를 모욕했다는 태도다.
차우원은 곤란해졌다. 단우가 ‘너’라고 지칭하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해도 자신처럼은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과거의 내가 정말 그랬어? 그랬을 리가 없는데.”
단우는 계속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차우원에겐 근거가 있었다.
“애초에 나는 지금 성검을 잡지도 못하잖아.”
“뭐가 잘못돼서 그래. 잘못된 게 뭔지도 알 것 같아.”
단우가 진지하게 말해서 차우원은 ‘아 진짜?’ 싶었다.
“그게 뭔데?”
“내가 널 잘못 교육시켰어. 사람의 가치 같은 소리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 네가 어리고 순진해서, 내가 개소리를 해도 다 수긍할 걸 알았어야 했어. 네가 내 말을 약간 잘못 받아들인 것 같은데……. 내가 다시 교정할 수 있어.”
‘……?’
차우원은 딱히 이단우의 개소리에 수긍한 기억은 없었다. 물론 단우는 이상한 소리를 잘했고 자신은 대개 ‘그럴까?’ 하고 동조하긴 했으나…….
‘딱히 단우 생각이 옳다고 믿어서 그런 건 아닌데.’
단우가 그렇게 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자신은 동조한 것이다.
둘은 완전히 다른 얘기 아닌가?
그 전에 정정해야 할 게 있어서 차우원은 단우 위로 올라탔다. 단우의 입술 아래 턱에 가볍게 입 맞추고 몸을 일으켰다.
“순진한 어린애가 이런 짓은 안 하지.”
“뭐…….”
단우의 눈이 커졌다. 그의 논리를 간단하게 논파하고 차우원은 말했다.
“내가 단우한테 잘못 배운 게 있기는 한데, 그게 단우가 말하는 것과는 다른 것 같다. 사람이 뭘 배우든 근본적으로 변하진 않지.”
단우에게 말하지 않았으나, 실은 차우원도 <성검>에 거부당했을 때는 놀랐다. 그의 시그니처 스킬 <검의 주인>은 모든 검의 사용 제한 조건을 무효화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차우원은 제한 조건이 ‘여성 검사’인 검도 사용 가능했다.
그러나 <성검>은 스킬 효과를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거나.’
어느 쪽이든 차우원이 <성검>을 잡지 못한 건 잘된 일이긴 했다. 그가 <성검>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미래는 정해졌을 테니까.
‘아.’
그래서인가?
“난 평생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려고 노력했거든. 단우를 안 만났다면 내 발로 <성검 쟁탈전>에 참가했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이겼다면, 성검의 주인은 됐을지도. ……살면서 뭘 원해 본 적이 없으니까. 성검의 시험을 통과했을지도 몰라.”
차우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떻게 해도 자신이 성검의 주인인 상황을 상상할 수 없었으나, 이 논리라면 납득이 됐다.
단우를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은 정말로 성검의 주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차우원은 성검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킬 인물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리고 성검을 가진 그의 앞에는 한 가지 길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차우원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외면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 경우 성검이 자신의 사용자에게 원하는 덕목은 사명감이 아니라는 게 된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차우원이 <성검>의 사용자가 돼서…….
그 이후에 단우를 만나서.
“그래서 내가 죽은 거잖아. 그때도 아마 다른 생각이나 하고 있었을걸. 근본적으로 아무 의욕도 없었을 테니까.”
차우원이 성검을 가졌다면, 일은 그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는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나 단우는 아닌 듯했다.
“아니야! 넌 안 그랬어.”
“그때 내가 왜 죽었는데?”
“나 때문에. 나를 살리려다가…….”
단우가 다시 숨을 헐떡여서 차우원은 그의 얼굴을 감쌌다.
“그럼 그때 내가 원한 게 널 지키는 거였겠지.”
<성검>은 주인의 염원을 들어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걸 알려 준 사람은 이단우였다.
“지금도 그러니까.”
“…….”
‘그랬나?’
차우원은 입을 다물었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은 단우를 위해 죽을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만일 미래의 자신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 사람도 자신과 같은 행동을 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단우의 뺨이 창백해졌다.
“아니야.”
“……?”
차우원은 뭐가 아니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단우의 눈에 이지가 돌아왔다. 그가 정색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번에 널 지키는 건 나지. 누가 누굴 지켜. 나보다 약한 주제에.”
눈이 형형해져서 명령하는 태도가 평소의 이단우였다. 내용도 마찬가지여서 차우원은 헛웃음이 나왔다.
“아, 그거 아직도 유효한 거야?”
“이기고 다시 우기든지.”
“하하. 내가 단우를 어떻게 이겨.”
짧게 웃고 차우원은 한숨을 쉬었다.
‘……진짜잖아.’
이단우는 착란에 빠져 이상한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이성을 되찾았다. 숨이 고르고 심박도 정상이었다. 그런데도 말의 내용이 변하지 않았다. 차우원은 아찔했다.
이단우가 제정신을 찾았으니 이제 자신만 찾으면 될 것 같은데…….
이게 현실에서 듣고 있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단우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목울대가 넘어가는 게, 얼굴을 감싼 손으로 느껴졌다.
단우의 손이 차우원의 옷자락을 다급하게 잡아당겼다. 그가 변명했다.
“나 미친 거 아니고, 망상하고 있는 것도 아니야. 방금 그 꼴 보이고 헛소리 같긴 한데, 다른 때는 안 이래. 알잖아. 안 좋은 걸 봐서 잠깐 이상해진 거야.”
“알아, 단우야.”
이단우가 다시금 불안해해서 차우원은 당황했다.
“내 말을 믿어?”
단우가 숨을 삼켰다.
‘왜 또 겁에 질렸지…….’
의아해하던 차우원은 깨달았다.
이단우가 겁에 질린 건 자신 때문이다. 자신이 그를 믿지 않을 것 같아서.
‘왜 그렇게 생각하지?’
차우원은 의문이었다. 그는 오히려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었다.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게 말이 되는 방향으로 자신이 끼워 맞추려 들어서.
‘단우가 이런 거짓말은 안 하지.’
그가 거짓말을 하는 건 득이 될 상황에서만이다.
차우원은 단우의 말을 들으며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단우의 말에 자신이 맞춰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에 논리적인 모순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 했던 것이다.
-나대지 마.
-곁에나 잘 붙어 있어.
-어떻게 걱정을 안 해!
개미굴에서 멱살을 잡던 이단우.
-나 너한테 가려고 했어. 내가 네 옆에 있어야 했는데…….
-날 왜 버렸어? 왜 보냈어? 나도 널 내보낼 수 있었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횡설수설하던 말들.
약에 취해 있던 이단우가 무슨 말을 했던가?
‘누구랑 착각하고 있는 거지.’
차우원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아니었던 것이다. 단우는 상대를 제대로 보고 있었다.
이단우는 처음부터 말했다. 팀 결성 직후부터 그의 기조는 한결같았다. 너희를 가장 소중히 하라고. 너 자신을 지키라고…….
‘한 번 잃어 봤으니까.’
다시 잃지 않게 해 달라고.
이단우는 차우원의 감시나 간섭에 이상할 정도로 수용적이었다. 다른 일엔 밀어내기 바쁜 이단우가, 왜 사생활에는 물러지는가?
‘이미 예전에 허락했던 일이기 때문에.’
“…….”
의아해하던 일이 하나로 맞춰졌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이상한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자신은 단우의 말이라면 뭐든 믿으려는 모양이었다. 그런 스스로를 다잡으려 애쓰고 있는데…….
‘망상일지도 모르고. 상담은 한번 받게 해야…….’
그런데 단우가 떨면서 매달렸다. ‘나를 믿어?’ 하고. 믿어 달라는 얼굴로.
차우원은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내가 네 말을 의심할 리 없잖아.”
단우의 눈이 커졌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차우원은 다시 한숨이 나왔다.
‘그래, 단우가 미래에서 왔구나…….’
어디 소설에서나 나올 생각을 하고 있자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차우원은 결정한 일을 번복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고민해 봤자 소용없는 일을 오래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단우를 믿을 것이다.
그러자 여러 질문이 생겼다.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부터 순전히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한 것까지.
차우원이 입을 열려는데 이단우가 먼저 물었다.
“그런데 왜 화를 안 내?”
“……?”
이단우는 아까보다 더 겁먹은 얼굴이었다.
차우원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내가 왜 화를 내?”
“내가 널 죽였잖아!”
‘……?’
차우원이 들은 건 자신이 단우를 지키다가 죽었다는 얘기뿐이었다. 그게 어떻게 꼬이면 ‘이단우가 차우원을 죽였다’가 되는지 모르겠는데…….
이게 이단우의 트라우마다.
차우원은 직감했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 지금까지 그게 아니라는 얘길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왜 화를 내, 단우야. 나를 위해 과거로 돌아왔다며.”
“…….”
“난 감동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한 정도가 아니라 슬슬 속이 근질거렸다.
‘어떡하지, 기쁜데.’
단우를 끌어안고 싶은데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차우원은 자신의 손을 묶어 놓느라 고생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
단우는 눈만 크게 뜨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