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이단우는 자신이 어쩌고 있는지 확인했다.
차치원을 엉덩이로 깔아뭉갠 채 패고 있었다.
‘망할.’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 아닌가?
그는 일어나려 했으나 차우원이 다가오는 게 더 먼저였다. 차우원은 손을 뻗어 단우의 어깨를 잡아 바닥으로 내려 앉히더니,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대로 그는 동생의 팔을 뒤로 꺾어 바닥으로 눌렀다. 차치원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제압당했다.
“그러게, 치원아. 내 애인한테 뭐 하는 짓이야.”
“……!”
‘형이 화났다.’
차치원은 깨달았다. 형이 뒷조사를 싫어한다는 건, 형 주변을 조사한 걸 들켰을 때 형이 화를 냈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러지 말라는 의사를 표시하고 가족들과의 거리를 더 두었다는 뜻이었다.
차치원은 형이 화내는 모습은 본 적 없었다. 화내는 모습뿐만 아니라, 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만큼 형과는 거리가 있었다. 차치원과 같은 바닥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형은 완전했으니까.
그런 형의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형이 자신을 깔아뭉개고 있어서 차치원은 형의 숨이 거칠어진 것도 느껴졌다.
숨이 흐트러질 정도로 달려온 것이다.
‘내가 이단우 헌터를 해칠까 봐?’
둘 사이의 실력 차는, 이단우 헌터의 말대로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형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이단우 헌터의 얼굴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있을 리 없는데…….
물론 이단우 헌터는 지금 알지 못할 이유로 피를 흘리고 있기는 했다.
설마.
‘그래서?’
꺾인 팔이 아팠다. 차치원은 왜 자신이 비참하게 패배한 뒤에 형에게 제압까지 당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방금 그 이유를 깨달은 듯했다.
얼이 빠져서 차치원은 땅에 처박힌 고개를 억지로 비틀어 이단우를 돌아봤다.
‘형의 애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은 그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은 형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평정을 유지하지 못할 만큼.
그런데 갑자기 이단우가 스스로의 뺨을 후려쳤다.
“……!?”
차우원이 자꾸 헛소리를 해서 이단우는 정신이 산란했다.
‘그만해라.’
차우원의 말 한마디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이단우의 나쁜 버릇이었다.
차치원이 깜짝 놀라 단우를 쳐다봤다. ‘미친 사람인가?’라는 표정인데 그가 봐야 할 건 이단우가 아니었다.
‘네 팔 꺾은 놈이나 봐라.’
단우가 차우원에게 경고했다.
“걔 네가 치면 죽어.”
“단우야, 지금 맞고 있는 사람이 치원이는 아닌 것 같다.”
‘난 됐고…….’
“이렇게 쳐서 내가 죽겠어? 근데 네가 치면 걘 죽는다고.”
‘저 자식 무리했다.’
차치원은 튼튼했으나 민첩성이 좋은 헌터는 아니었다. 단우의 공격에 속도를 맞추느라 무리했을 것이다.
마력을 직접 운용해 신체를 강화하는 미친 짓은 이단우만 하는 짓이었으므로, 차치원이 스스로의 몸에 알아서 과부하를 걸었을 리는 없었다.
그 움직임은 성검의 작용이었다.
그냥 둬도 후유증이 닥칠 텐데, 한 대 쳐서 악화시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단우는 차우원에게 동생 혼절시키는 경험은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둘이 싸운 줄 알았는데. 내 동생이랑 친해졌어? 단우가 걱정을 다 해 주네.”
“누가 걱정한대? 기절시키지는 말라고. 들을 얘기 있으니까.”
‘차라리 잘됐다.’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이는 게 나은 법이었다.
성검의 위험성을 보여 주기에 이만한 증거가 또 있겠는가?
사무소는 난장판이었다. 이단우가 최대한 몸으로 막았으나 성검의 여파는 폭풍처럼 벽을 할퀴어 놨다.
차우원도 밖에서 마력의 충돌을 느꼈을 터였다. 그 공격은 살의를 담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종류였다.
그러나 이단우는 그렇다 치고 차치원이 누굴 죽이려 들 놈이 아니라는 건 형인 그가 더 잘 알 터였다.
차치원은 제 형을 죽인 놈도 끝내 못 찌른 놈이었으니까.
그런 놈이 검 하나 들었다고 눈이 뒤집혀 달려들었다.
“야, 검이 너한테 뭐래.”
피는 다 말랐는데 어지러웠다. 단우는 쪼그려 앉아 차치원의 턱을 잡아챘다.
“예?”
‘왜 못 알아듣냐.’
“너 살인마야?”
“네?”
“아무나 칼 들고 찔러 죽이고 싶어?”
“아, 아니요?”
“그러니까 뭐에 홀렸냐고. 검이 지껄이는 소리 들었을 거 아냐.”
“예? 검이 말을?”
차치원이 얼빠진 놈처럼 굴어서 단우는 답답해졌다. 이래서야 증인으로 쓸모가 없다.
‘아니, 환청이었나?’
성검의 마지막 주인은 이단우였다. 차치원이 단우를 찌르려 들기 전까지, 검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자신뿐이었다.
성검은 하루 종일 쓸모없는 소리를 지껄여 댔는데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게 자신밖에 없어서, 이단우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이게 정말로 들리는 소리인지. 아니면 이단우가 미쳐서 환청을 듣고 있는지…….
“저는 그냥, 이단우 헌터가 부러워서……. 이단우 헌터를 따라잡고 싶어서. 아니, 제가 이단우 헌터가 되고 싶어서…….”
차치원이 횡설수설했다.
‘이 새끼가 뭐라는 거지…….’
단우가 아무리 패도 흠집 하나 안 나는 몸을 타고난 놈이 헛소리하고 있다. 안 그래도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현기증까지 났다.
“죄, 죄송해요.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이단우 헌터가 자격 있는 분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뭐에 홀렸는지, 저는……. 어?!”
차치원은 벌떡 일어나려다가 잡힌 팔이 꺾여 바닥에 이마를 찍었다.
“저, 저게 뭐예요? 검을 잡으니까 갑자기……. 저게 뭐야, 형? 저주 아티팩트야?”
차치원도 머리가 나쁜 놈이 아니라 뭐가 문제인지 금방 알아챘다.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얗게 질리더니 그는 의식을 잃었다.
“치원아?”
차우원이 당황했다.
“안 죽었어.”
단우는 그를 안심시켰다.
“봤지. 저런 물건이라고. 네가 가져야 돼.”
‘네 동생 증언이다.’
이단우의 개소리에 허점은 많았으나, 가장 큰 허점은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성검이 그런 문제가 있는 아티팩트일 리 없다’고 나오면, 이단우는 설득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정보국이라도 다시 털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차치원은 신뢰도 높은 증인이어서 그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차우원이 납득했다.
“단우야, 네 말이 맞다. 위험한 물건이네.”
‘그래.’
단우는 안도했다. 그러나 차우원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이렇게 위험한 물건이면 정말 내가 가지면 안 될 것 같다.”
“아니, 네가 가져가야 이 사태가 안 난다고……!”
“치원이가 널 습격한 건 나 때문일 거야. 우리 집은 좀 엄격해서, 아들이 좋아하는 사람도 조사하고 참견하고 싶어 하거든.”
“……?”
차우원이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단우는 대답할 틈을 놓쳤다.
“치원이는 예전부터 날 이상하게 잘 따르기도 했고, 스승님이 네 칭찬도 많이 하셨으니까. 부러워할 만했어. 그런데 부러움이 강한 감정인가?”
“그게 성검이랑 무슨 상관이야?”
단우는 답답했다!
차우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조금만 더 들어 줘. 내가 성검을 가질 수 없는 이유를 얘기하려는 건데.”
“어. 해봐.”
단우는 팔짱을 꼈다. 뭐라 하든 반박할 생각이었다.
“성검은 사용자의 욕망에 반응한다며. 부러움이 하루 종일 사람을 괴롭히지는 않지 않나. 그런데도 위험했잖아. 내가 성검을 가지면 너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는데…….”
“……?”
이단우는 속이 다시 술렁거렸다.
‘아니지, 착각이야.’
생각하려 했으나 차우원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가 죄를 고백하듯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멀쩡한 지금도 기자들한테 네 친척이 한 일을 공유했잖아. 여기서 더 자제력을 잃으면 안 되지 않나.”
‘……?’
“무슨 일?”
“단우는 도움이 필요했는데, 유일한 친척들이 장례식에 늦게 찾아와서 삼십 분도 안 돼 돌아갔다. 그 시간 동안 단우한테 우리가 힘드니까 네가 해명 인터뷰 좀 해 달라고 요청했다. 단우가 망설이니까, 약속을 녹음해 가려고 하더라……. 단우 부모님이 남긴 유산을 전부 가져다 쓴 것도 꼭 갚겠다고 애원하면서.”
차우원이 침착하게 기억을 더듬었다.
단우는 귀를 의심했다.
“뭐?”
“팀원 보호는 팀장의 업무 아닌가. 단우가 맡겨 준 직책인데 열심히 수행해야지. ……저지를 때는 그런 변명을 생각했던 것 같은데, 역시 좀 아닌 것 같다. 이것도 별로 멀쩡한 짓은 아니지.”
단우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너 그걸 기자들한테 직접 말했어?”
차우원은 이미지가 좋았다. 그가 공격받으면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러나 상대가 민간인이고 차우원이 공격하는 상황이 되어 버려서야, 헌터인 데다 유명인인 그가 강자로 보이기 마련이었다. 머리도 좋은 놈이 제 살 깎아 먹는 짓을 했다고?
“아니, 변호사를 통해 상담하고 언론 대응 부탁했어.”
“잘했어.”
단우는 안도했으나 속이 메슥거렸다.
‘동정 맞잖아.’
하기야 차우원이 그 꼴을 보고 신경을 안 쓸 수 있겠는가?
“잘했다고?”
동생을 새 소파 위로 옮긴 차우원이 헛웃음을 지었다.
단우는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차우원의 미쳐 버린 도덕성?
‘고아에 상태 나쁜 팀원이 친척 문제에 걸린 것 같아서 도와줬는데, 그 방법이 교활했어서 지금 마음에 걸린다는 거 아니야.’
“언론 대응은 나도 하려고 했어.”
“아, 정말?”
“어. 난 유산 반환 소송 걸 거였는데. 네 방법이면 온건하기 짝이 없지.”
‘이런 걸 원한 게 아닌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실제로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다. 과장되고 왜곡된 내용이었고, 이모가 단우에게 유일하게 했던 가해는 오히려 알려지지 않았다.
단우는 정정 보도를 요청할 생각이었다. 이모가 원하는 대로.
물론 이모가 원한 건 단우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변명해 준 뒤 다른 일에는 입을 다무는 것이었겠으나…….
이모가 어머니의 가족도 아니라면, 부모님의 유산이 이모에게 가는 건 부당한 일이었다.
그에 비해 차우원은 법적 분쟁까지 가지도 않았다. 변호사를 앞세워서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고 겁만 주는 게 아닌가.
차우원이 사실이라고 보증한 만큼 이모네는 욕을 더 먹겠으나, 사람이 욕 좀 먹는다고 죽지는 않는다. 그렇게 욕먹던 이단우도 <최후의 던전>에 들어가기 전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문제 될 게 있나?’
아니, 없다.
고개를 끄덕인 단우가 물었다.
“또 문제 있어? 있으면 지금 말해라.”
“응. 단우야, 입 벌려 볼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