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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09화 (109/170)
  • 109.

    거대한 힘을 막아 낸 순간 이단우는 실수를 깨달았다.

    ‘성검!’

    차우원 앞에서는 ‘잘못된 주인’ 운운했으나 이단우는 실제 성검이 사고 치는 꼴은 보지 못했다. 차우원이 죽은 뒤에도 성검의 주인은 정해져 있었고, 성검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한 명이 있었다. 성검의 시험을 통과한 헌터가.

    <최후의 던전>이 무너질 때 차치원이 들고 있던 것도 성검이었다.

    이단우는 웃음이 나왔다.

    ‘그때도 이런 표정이었나.’

    “날 죽이려고?”

    마지막 순간이 떠오르는데…….

    트라우마 따위를 떠올릴 틈도 없었다.

    <육영>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검날이 서로 부딪히고 미끄러지며 소름 끼치는 소음을 냈다. 상대의 힘이 너무 강해서, 날이 상하는 게 몸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끼릭, 까드득…….

    검날에서 불꽃이 튀었다.

    ‘힘겨루기는 안 된다.’

    멍청한 짓이다.

    차치원도 전대 영웅의 핏줄이었다. 타고난 마력통이 넓은 데다 지금은 성검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단우는 피할 수도 없었다. 뒤는 사무실이었으니까!

    팀 운영기록과 계약서가 파괴되는 꼴을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장소를 바꾸자.’

    단우는 이를 악물고 <육영>의 마력을 뽑았다. 체내의 회로로 마력을 돌렸다. 길을 따라 뜨거운 피가 내달리고 심장이 펌프질했다.

    끼리릭……!

    눈앞이 하얗게 질리는 통증을 참으며 이단우는 마력을 한 점에 끌어모았다. 검 끝에 모인 힘을 상대도 느낄 수 있도록.

    ‘대비해라.’

    이단우는 몸을 튕겨 냈다. 차치원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숨을 한번 들이쉰 다음 이제까지의 수비적인 태세를 공세로 뒤바꿨다.

    쾅, 쾅, 쾅, 쾅!

    마력 충돌의 여파로 온몸이 흔들렸다. 이단우는 두개골이 깨질 지경이었으나 보람이 있었다.

    공격을 막은 차치원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났다.

    타격을 입히진 못했으나 애초에 그걸 바란 게 아니다.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뀌었다.

    ‘문서 보호는 됐고.’

    이제 보호해야 할 건 이단우의 몸이다.

    “하앗!”

    방금의 공방으로 이단우가 빠르다는 걸 차치원도 느꼈다.

    ‘기세를 주면 밀린다.’

    판단한 차치원이 태세를 정비했다. 성검에 다시 아찔한 마력이 모여들었다. 방어를 강제하게 만들어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움직임이었다.

    과도하게 집중된 마력 탓에 주변 공기가 일그러진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저따위 걸 맞고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강울림이나 버틸까.

    그러나 이단우는 검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생각을 해, 단우야.

    ‘차우원도 이랬나?’

    -보이는 공격을 남한테 맞아 달라고 하려고? 그건 아니겠지. 네 힘으로는 상대한테 치명타를 입히지 못하면 의미가 없잖아.

    그때 이단우는 차우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공격을 무슨 수로 보는데?’

    이 괴물 같은 새끼가 눈 좋다고 사람 농락하는 건가 싶었다.

    모든 공격이 차우원의 몸을 스치지도 못하고 도중에 막혔다. 무슨 수를 써도 차우원에게 닿을 수 없다. 절망감에 손발이 꼬이고 당황한 머리는 더욱 굳었다.

    그런 과거의 이단우가 눈앞에 서 있는 듯했다.

    과거 차치원은, 검을 배웠으나 스승님의 제자는 아니었다.

    -검사는 더 필요 없어. 팀에 필요한 건 탱커다.

    단우가 그를 거절하려고 한 말에 즉시 검을 버린 뒤로는 방패만 사용해 왔다.

    이단우가 기억하는 팀원은 탱커 차치원이었다. 그 차치원이 검을 쓴 건 이단우를 죽이려고 작정했던 마지막 순간뿐이다.

    ‘그걸 검을 썼다고 해야 하나?’

    뭐 어쨌든…….

    이단우가 차치원의 검술을 본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차치원은 성실한 놈이었다. 순진한 놈이기도 했는데, 그런 놈들이 대개 그렇듯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경향이 있었다.

    다시 말해 스승님을 존경하는 실전 경험 적은 제자가 할 만한 실수는 다 하고 있었다.

    ‘검로가 다 보이잖아.’

    상단에서 하단으로 내려치는 검을, 이단우는 오히려 앞으로 나가 막았다.

    캉!

    모든 공격은 타격점이 있다. 속력에 힘이 실려 이단우가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그는 끊어 냈다.

    “……!”

    차치원의 무게 중심이 흐트러졌다. 그가 당황해서 자세를 추슬렀다. 이어지는 동작에 들어가려고 몸을 억지로 움직이고 있다.

    ‘왼쪽.’

    카가각!

    성검의 힘을 직접 받아 내지 않고 흘려보내는데도 단우는 온몸이 경련했다.

    애초에 이단우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그러나 단우는 검신을 비끌러뜨리며 차치원의 공격을 연신 중간에 끊어 냈다. 애초에 초근접전은 이단우의 특기였다.

    ‘이 새끼가 몰릴 때까지 버틴다.’

    단우는 입 안이 비렸다. 피가 역류하고 있었다. 성질이 다른 <육영>의 마력에 몸이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피를 삼켜 냈다. 코로 흐르지만 않으면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

    거부 반응을 하루 이틀 겪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과연 차치원은 알아채지 못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만 좀……!”

    차치원은 초조했다.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움직임이 모두 상대에게 읽히고 있는 듯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숨 막히는 공포와 초조감이 그의 판단력을 갉아먹었다. 그 와중에도 이단우는 거머리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스승님의 검은 중검이다. 타고난 마력량과 힘을 바탕으로 상대에게 수세를 강제하는 검술이었다. 상대로 하여금 ‘검을 막겠다’는 생각에 집중하게 만들어 계속 뒤로 물러나도록 하고, 자신은 자유롭게 공격을 이어 가 끝내 승기를 잡아채는 것이다.

    그리고 중검을 사용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간격을 만드는 것이었다. 검을 휘두르는 데 필요한 거리, 중검의 힘이 충분히 실릴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스승님의 가르침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그는 공격 한번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단우가 거리를 내주지 않아서.

    ‘격차’라는 단어가 떠올라 목을 조였다.

    ‘아니!’

    거리만 있다면!

    차치원은 순간 기세를 올렸다.

    스스로도 가능한 줄 몰랐던 힘이 어디선가 솟아올라, 그에게 가공할 마력을 제공했다.

    쾅!

    검로는 역시 중간에 가로막혔으나, 이단우는 폭발까지는 막지 못했다. 충돌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이 벽으로 밀려났다.

    끼이익……!

    이단우의 몸이 비틀거렸다. 차치원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맞아라!’

    다시 한번 검로를 펼치며 그는 이단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담대한 건 생각뿐이었다. 이미 너무 자주 가로막힌 몸은, 반사적으로 또 중간에 공격이 끊길 것을 대비하고 있었다.

    엉거주춤하게 반보 물러난 공간으로 이단우는 파고들었다. 손아귀가 꿰뚫리는 통증과 함께 손에 쥐고 있던 검이 날아갔다.

    챙그랑!

    절망스러운 소리가 귀를 울렸다.

    이단우의 다음 동작은 차치원의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직감했을 뿐이다.

    ‘죽는다!’

    뻑!

    ‘……?’

    몸이 허공을 날았다.

    쿠당탕!

    벽에 부딪혀 쓰러지면서도 차치원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단우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자신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맞은 건 자신인데 이단우가 왜 저 꼴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무릎을 꿇고 차치원을 깔고 앉았다. 그 상태로 팔을 치켜올렸다.

    뻐억!

    차치원은 머리가 흔들렸다. 시야가 검게 변했다가 천장이 보였다.

    ‘어?’

    이단우의 주먹질은, 그야 아프긴 했으나 헌터에게 대단한 타격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을 농락하다 쓰러뜨리더니 지금은 조롱이라도 하듯 손으로 쳐 대고 있다. 찰싹찰싹거리는 게 별로 아프지도 않아서 그는 비참해졌다.

    속에 응어리져 있던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와 눈으로 왈칵 쏟아졌다.

    “왜, 왜 나는 안 되는 거야…….”

    차치원이 울었다.

    그 꼴을 본 이단우는 이 새끼를 정말 죽여 버리고 싶었다!

    ‘씨발!’

    때린 자신은 피를 쏟아 내고 있는데 맞은 놈은 멀쩡한 게 이치에 맞나? 이놈 코에서도 피 터지는 꼴을 봐야 속이 풀리겠는데, 몸 하나는 더럽게 튼튼해서 자신의 손만 아팠다.

    “멍청한 새끼야, 네가 왜 진 것 같아?”

    ‘모욕하는 건가?’

    차치원은 눈을 깜빡였다. 흐린 시야를 맑게 해 이단우의 얼굴을 노려보고자 했다.

    그런데 이단우가 이를 갈았다.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녀? 약점을 공격하라고!”

    “무, 무슨 약점이 있었다고…….”

    “파워는 네가 더 센데 왜 잔기술을 받아 주고 있어? 힘겨루기로 몰고 갔어야 할 거 아니야! 검술로 붙으면 네가 내 털끝 하나라도 스칠 수 있을 것 같아?”

    있는 대로 성질을 내는 말투로 교육을 하고 있다. 차치원은 어안이 벙벙해서 우는 것도 잊었다.

    “……힘겨루기로 갔으면 제가 이길 수 있었어요?”

    이단우는 속이 터졌다.

    ‘이걸 말이라고 하냐?’

    당연한 소리를 입이 있다고 지껄인다. 성검 버프 받은 놈이 누구는 힘으로 압살을 못 하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너랑 나랑 수준 차이가 몇 갠데 지랄 말고.”

    아무래도 열받아서 이단우는 한 대 더 쳤다. 뺨에서 ‘뻑’ 소리가 나는데 차치원의 고개는 흔들리지도 않았다…….

    ‘뼈 대신 강철을 심었나.’

    이 새끼가 형이 좋아 죽겠다고 검을 따라 배우는 대신 얌전히 탱커 루트만 탔어도, <최후의 던전>에서 더 쓸 만했을 터였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멍하니 있던 차치원이 훌쩍였다.

    이단우는 그가 울든 말든 피를 볼 생각이었으나 손에서 힘이 빠졌다.

    ‘멍청한 놈이.’

    <최후의 던전>에서 이단우는 죽었다.

    그럼에도 그가 차치원에게 트라우마를 느끼지 않은 건 당연했다.

    마지막 순간 차치원은 단우를 찌르지 못했으니까.

    그를 팀에 넣으면서, 이단우는 자신이 어느 순간이고 뒤에서 칼 맞아 죽으리라 확신했다. 차우원을 죽인 건 이단우가 맞았으니까.

    그래도 차치원을 데려간 건 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건 거래였다. 이단우는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넘겼는데 차치원은 그걸 받아 가지도 않았다.

    ‘아까부터 찝찝하더라니…….’

    하필이면 차우원 때문에 기분 산란할 때 들어와서 사람 죄책감을 쑤시고 있다.

    차치원은 항상 타이밍이 나쁜 놈이었다. 이단우가 죽겠다고 설치다가 마음을 바꿔 먹었을 때 ‘팀에 넣어 주세요’ 같은 소리를 하며 찾아온 것부터 그랬다. 덕분에 안 들어가도 될 곳을 따라 들어와, 끝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 새끼가 목숨을 노렸는데도 용서할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역시 약점은 맞았는데…….

    ‘지금은 아니지.’

    이단우는 이제 이놈한테 죽어 줄 수 없었다.

    그는 차우원을 살려야 하니까.

    이단우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금은 과거가 아니다.

    ‘차우원이 살아 있잖아.’

    그런데 이 새끼가 왜 달려들었지?

    “너 왜 덤볐어?”

    “혀, 형 애인이시잖아요…….”

    “……?”

    이단우는 이놈이 뭐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정문이 뜯어지더니 차우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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