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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39화 (39/170)
  • 39.

    권준홍과 배지슬은 손님들의 안내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방’이라고 해도 배지슬의 침실을 포함해 드레스룸, 손님을 맞을 거실, 욕실, 화장실, 서재, 창고방까지 달린 곳이었다.

    권준홍은 배지슬의 옆방을 배정받았으나, 혹시 몰라서 밤에는 배지슬의 ‘거실’에서 잠들고 있었다.

    배지슬의 소꿉친구 권준홍은 그녀의 요청으로 배지슬의 본가에 머물고 있는 처지였다.

    그는 헌터계와는 관계없는 인물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배지슬의 정원사라, 어려서부터 ‘아가씨’인 배지슬과 만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을 뿐이다.

    배지슬은 부유한 아가씨라 어려서부터 보호를 받는 입장이었다. 그냥 부유하기만 했다면 상관없었을 텐데, 그녀의 집안이 헌터 명가라 원한을 사는 일이 많았다.

    그녀의 아버지, 권준홍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배청균은 <차문경 팀>의 일원이어서 그 자신도 대단한 유명인이었다.

    유명인과 유명인의 가족을 노리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카메라와 드론이 들어올 수 없게 담장을 높이 짓고, 스킬진을 설치하고, 사람의 접근을 막은 ‘저택’은 배지슬을 가둔 성이었다.

    권준홍은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 안에서 배지슬을 발견하고 친구가 될 수 있었으니까.

    “아빠가 <차우원 공격대>를 부른 건 틀림없이 다른 마음이 있어서야…….”

    배지슬이 턱을 짚으며 말했다. 권준홍도 그녀와 생각이 같았으나, 친구의 아버지를 나쁘게 말할 순 없었다.

    “요즘 명성 높은 공격대잖아. 아저씨가 충분히 부를 만하지. 이림 길드원이 내내 돌아다녀서 네 신경이 곤두서 있기도 하고, 그래도 네 또래라면 조금 더 마음 편할 거라 생각해서 그 팀을 이쪽에 배치해 주신 게 아닐까.”

    “아버지를 네가 변명해 줄 필요 없어. 속셈이 뻔하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야? 요즘이 무슨 18세기인 줄 아시는 거 아냐? 차우원 헌터 표정 봤어? 나 정말 부끄러워서 죽는 줄 알았어!”

    “차우원 헌터가 워낙 훌륭한 헌터기도 하고, 아저씨는 차문경 헌터와 친했으니까 너한테도 친분을 만들어 주고 싶으신 게 아닐까…….”

    “변명해 주지 말라니까!”

    권준홍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사실 나도 너희 아저씨가 너 결혼시키고 싶어 하시는 것 같더라.”

    “’아빠가 위험하단다.’라느니 뭐라느니 우는소리 하면서 나 부른 것도 작전 아니야? 애초에 ‘경고장’ 자체가 아빠 수작 아니야?!”

    “설마. 그렇게까지 하시진 않았겠지.”

    “우리 아빠라면 가능해.”

    “아닐 거야.”

    “넌 내가 아빠 돌아가셔도 울 거라고 말했잖아!”

    “울 거잖아…….”

    “아니야! 아빠도 엄마 장례식에서 안 울었는데 내가 왜 아빠 장례식에서 울겠어? 아빠한테 큰일이 나도 난 안 슬플 것 같아. 지금도 이렇게 화가 나는데 그때 가서 갑자기 눈물이 나올 리가 없어. 난 아빠 딸이 맞나 봐…….”

    자학을 시작하는 배지슬을 달래면서 권준홍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짜로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는 분명히 슬퍼할 거기 때문에, 권준홍은 배지슬의 반응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얼굴을 비롯해 성격까지 아저씨와 닮은 곳이 조금도 없었다. 발가락이나 닮았을까.

    그는 아저씨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배지슬은 온실 속 아가씨였다. 아저씨와 함께하는 것도 그녀에겐 스트레스였으나, 아저씨의 보호가 사라지면 그녀는 힘들어질 것이다.

    ‘이림 길드는 그렇다 치고…….’

    괜찮을까, <차우원 팀>.

    “표정이 왜 그래? 무슨 걱정 있어?”

    혼자 열을 내던 배지슬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차우원 팀>, 생각한 거랑 다르지 않아?”

    둘 다 <차우원 공격대>의 팬이긴 마찬가지라, 권준홍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권준홍은 ‘냉정한 속검사’ 이미지인 이단우의 팬이었고 배지슬은 ‘온화한 중검사’ 이미지인 차우원의 팬이긴 했지만…….

    ‘역시 속검이 멋있지. 레이피어로 찌르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권준홍은 고개를 저었다.

    “다들 엄청 친할 줄 알았는데. 거대 길드 영업도 다 걷어차고 친구들끼리 만든 팀이잖아. 전부 동갑이고. 진짜 멋있다, 다들 얼마나 친하면 그럴까 싶었는데, 아까 보니까 사이가 그렇게 좋은 거 같진 않아서. 경호하는 데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그의 말을 들은 배지슬의 눈이 커졌다. 그러곤 반문했다.

    “그걸 보고 싸웠다고 생각을 했단 말이야?”

    권준홍은 무슨 말인가 싶었다.

    “……싸웠잖아? 말싸움하면서 계속 의견이 안 맞던데.”

    “어떻게 그게 싸운 걸로 보일 수 있어?! 아, 세상에. 거기 팀원들 다 그랬구나! 아빠도 눈이 삔 게 아니라 못 알아챈 거였어?! 어쩜 좋아. 나 엄마를 닮았나 봐! 이렇게 눈치가 빠른 걸 보니…….”

    ‘아니, 그건 좀…….’

    권준홍은 그녀의 편이었으나 이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몇몇 고교 동창들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랬다. 그들은 배지슬을 굉장히 싫어했지만 정작 그녀는 그들의 존재조차 모르고 졸업했었다.

    배지슬의 학창 시절은 곁에서 보기에 굉장히 드라마 같았는데, 문제 인물이 수도 없이 출연해 그녀를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고요하고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추억했다. 그야말로 폭풍의 핵이 따로 없었다…….

    배지슬은 교정을 걷다가 창문에서 썩은 우유가 떨어지는데도 간발의 차로 피하고, ‘어떡해, 쟤 손이 미끄러졌나 봐.’ 같은 말이나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학교는 애들이 참 착했지. 전대 영웅의 딸이라고 날 그렇게 배척하지도 않고, 질투하는 애들도 없었고…….

    그 착각을 굳이 깰 필요가 있겠는가?

    “둘이 서로 좋아하잖아!”

    “……어?”

    하지만 이 헛소리에는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반응에 오히려 배지슬이 답답해했다.

    “그게 안 보였어? 네가 이단우 헌터를 자꾸 만져 대서 차우원 헌터의 기분이 나빠졌잖아! 이단우 헌터랑 단둘이 사라지려고 하지를 않나. 난 네가 두 사람 싸움 붙이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니까!”

    ‘아니 두 사람 서로 거의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리고 만진 쪽은 이단우 헌터였다! 권준홍이 결백하냐면 아주 그렇지는 않았지만…….

    권준홍은 여러 생각이 들었으나 역시 입 밖으로 내지 않기로 했다.

    배지슬이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싶다는데 그가 왜 방해하겠는가?

    “그, 그렇구나.”

    “그렇다니까! 잘 생각해 봐!”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그런 것 같아!”

    “역시 그렇지?! 우리 비밀로 해야 돼. 이단우 헌터도 내 비밀을 지켜 주기로 했는데, 우리가 떠들고 다니면 안 되잖아.”

    ‘우리가 이 소리를 떠들고 다니면 루머 유포 아닌가?’

    권준홍은 아마 명예 훼손으로 고소당할 건이라고 생각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디 가서 말 안 할게.”

    “좋아! 우리는 입이 무거우니까.”

    “맞아.”

    “내 생각에 이단우 헌터는 약간 무자각인 것 같아. 차우원 헌터만 자기감정에 충실한 상태가 아닌가…….”

    “으응…….”

    어쨌든 결론은 하나로 정해졌다.

    “그러니까 아빠가 약혼 같은 헛소리 못 꺼내게 우리가 잘 막아야 해.”

    “좋아. 나도 열심히 도울게.”

    권준홍이 다짐했다. 그가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무조건 배지슬의 편이었다.

    * * *

    이단우는 팀원들과 함께 저택을 안내받고 이림 측 경호팀장인 고청과도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는 고청은 피로해 보였는데, 이단우는 그가 FM답게 2교대를 내도록 지키고 있었으리라 확신했다.

    ‘시간 낭비에 체력 낭비다.’

    저런다고 기희윤이 기어들어 오는 걸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기희윤은 이걸 ‘스킬 사냥’이라고 불렀는데, 다른 말로는 ‘능력의 효율적인 재사용’이라고 했다.

    ‘효율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개새끼.’

    헌터가 빨리 은퇴하는 이유는 몸과 정신이 현역으로 버틸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던전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헌터가 몬스터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약물은 사람의 몸을 망친다.

    강건한 육체도 금방 금이 가고 언제든 깨질 듯한 상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 마흔이 넘도록 활동하고 있는 ‘스승님’이 존경받는 것이다.

    누구는 <최후의 던전>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기운이 남아도는 거라고 빈정거리기도 했으나, 그런 새끼들을 단우는 가만둔 적 없었다…….

    문제는 이 노쇠한 헌터의 스킬이었다.

    약해진 헌터의 몸은 더 이상 스킬의 운용을 감당할 수 없다.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스킬이 많은데, 늙어서 폐품이 된 헌터의 몸에 갇혀 있는 스킬은 무슨 죄겠어? 난 스킬이 제빛을 되찾고 다시 찬란하게 세상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거야, 단우야.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그렇게 화내면 더 부르고 싶어지잖아. 몸부터 마음까지 다 나한테 주기로 했으면서. 이름도 아까워하면 난 단우의 말에 담긴 진실성이 의심스러워져.

    -그때 마음대로 하고 지금은 부르지 말라고.

    -휴……. 단우는 정말 사람 애태우는 법을 안다.

    -개새끼야! 귓구멍 뚫어 줄까!

    -난 네가 냉정한 척하는 것보다 화낼 때가 좋더라. 오싹오싹해…….

    ‘변태 새끼.’

    -너도 곧 이렇게 될 테니까.

    기희윤이 ‘스킬 사냥’의 과정을 보여 줘서, 단우는 그게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알고 있었다.

    기희윤은 몰랐을 것이다. 그가 단우를 조롱하려고 보여 준 사냥 과정이 돌고 돌아 자신을 어떻게 엿 먹일지.

    기희윤은 존재 자체가 드문 정신계 헌터였다.

    그의 패시브 스킬은 <매혹>(S).

    그는 숭배자를 만들고 내부자를 자신의 편으로 돌렸다. 오셀로처럼 백을 흑으로 뒤집는 사람이었다.

    단우가 그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가 범죄자라거나 정신계 헌터이기 때문이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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