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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40화 (40/170)

40.

과거 단우와 기희윤의 첫 만남은 <최후의 던전> 1차 공략 실패 직후였다.

그전까지 단우는 기희윤 같은 인간과 엮일 일이 없었다. 단우가 복용하는 ‘마력 촉진제’가 기희윤 쪽에서 유통하는 물건이라는 걸 제외하면.

청연 길드 내부, 그것도 차우원의 방이라는 보호 공간 속에서 살던 단우가 기희윤 같은 놈과 만날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스승님도 차우원도 죽어서, 청연 길드는 전처럼 안전한 공간이 아니게 됐다.

보호 시스템은 구멍이 뚫렸고 외부 침입자를 제대로 막지도 못했다.

<최후의 던전>에서 성검을 가지고 나온 단우는, 그 검을 청연 길드 대문 안에 꽂아 놨다.

-뽑을 수 있으면 가져가. 주인이 되든 세상을 구하든 마음대로 해.

이단우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이 너무 시끄러웠다. 사람들이 그를 붙잡고 ‘어떻게 된 거냐’, ‘왜 네가 돌아왔느냐’고 묻는 소리 때문이 아니었다.

성검이 말을 걸었다.

자신을 가지고, 가장 원하는 일을 이루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성검은 주인의 소원을 들어주는 검이었다.

이단우가 원하는 건 죽음이었다.

‘머리를 날려 버릴까.’

잠들지도 못하고 몇 시간을 멍하니 구석에 앉아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단우의 검은 목표를 놓치지 않을 터였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움직이지도 않는 목표를 그가 놓칠 리 없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선 안 됐다. 차우원과 팀원들이 <최후의 던전> 안에 있었다.

단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 단우에게 팀원들의 장례식이 있을 거라고 알렸다.

‘누가 장례를 해.’

시신이 없는데.

단우는 화냈다. 그러나 그게 누구 책임인지 떠올랐고 다시 죽고 싶어졌다.

아무도 수습하지 못해 시신 없이 치르는 장례식에…….

‘가야 하는데.’

차우원의 방에서 단우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잠을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시체처럼 앉아 있었다.

단우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면 차우원이 알려 줬는데, 그는 죽었다.

단우에게 저 빌어먹을 성검을 안기고.

-여기서 나가.

그렇게 말하고 죽어 버렸다.

단우는 차우원을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가 그렇게 미웠던 적이 없었다.

‘걘 이미 죽었잖아.’

단우는 생각을 멈추고 싶었다. 그래서 벽에 계속 머리를 박고 있었는데 그걸 한참 뒤에 알았다.

쿵, 쿵, 쿵…….

비명 때문이었다.

‘뭐야.’

성검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단우에게 속삭이던 ‘나를 가지고, 원하는 바를 취해’라는 유혹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성검에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있었고, 단우는 그것을 막아야 했다.

성검의 새 주인이 정해지기 전까지 그 검의 주인은 차우원이었으니까.

단우는 달려 나갔고…….

달빛 아래 서 있던 기희윤을 봤다.

그는 청연의 모든 경계 스킬을 무력화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곳에 서 있었다. 어떤 외부인 차단 스킬도 그를 막지 않아서, 단우는 자신이 넋을 잃고 있는 사이 청연에 새로운 길드원이 들어왔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럴 리 없었다. 단우가 일 년이나 미쳐 있었을 리는 없었다.

“아, 이런……. 들켰네.”

기희윤이 말했다.

그는 성검 앞에 서 있었는데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그 ‘무언가’는 희끄무레했으며 조금 짧았고…….

너무 창백해서 사람의 손 같지 않았다.

그런데 기희윤이 들고 있던 건 사람의 손이 맞았다. 죽은 사람의 손을 절단해, 손목 아래만 든 채. 기희윤은 그것으로 성검의 손잡이를 쥐어 보려고 하고 있었다.

‘너 누구야’ 같은 질문은 단우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거 누구 손이야.”

단우는 검을 뽑았다. 듣기도 전에 누구의 것인지 직감했다. 역겹고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서 저 새끼를 죽여 버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성검이 새 주인을 받아들이려 하지를 않는다잖아. 지금 잘났다는 검사들은 한 번씩 와서 다 쥐어 본 것 같은데, 바닥에 본드를 붙였나 떨어지지도 않고 말이야.”

대답이 아니었다.

“그 손 누구 거냐고!”

“산 사람이 안 되면 죽은 사람밖에 답이 없잖아. 죽은 사람 중에 가장 뛰어난 검사가 누구야? 내가 <최후의 던전>에 들어가서 차우원 시체를 얻을 수도 없으니 당연히 청연 길마 손이지.”

기희윤이 들고 있던 건 스승님의 손이었다.

단우는 성검 옆에 왜 삽이 떨어져 있는지도 이해했다. 스승님은 청연 길드 안에 묻혔다…….

‘죽여 버린다.’

단우는 눈이 돌아 달려들었다.

그게 기희윤과의 첫 만남이었다.

* * *

“작전 회의에 나도 참여할래.”

단우는 차우원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모든 작전 회의에는 차우원을 내세웠으나, 이번에는 단우의 개입이 필요했다.

차우원은 ‘웬일로?’라고 묻지 않았다.

“그래.”

요새 사이가 별로였던 데다 아까 전 싸운 일도 떠올라서 단우는 변명했다.

“단서 없는 미해결 연쇄 사건이라 나도 같이 들어 두고 싶어서.”

“하하. 알았어.”

차우원이 흔쾌히 대답했지만 단우는 찜찜했다.

‘얘 요새 왜 내가 뭐만 하면 웃냐.’

“의욕이 생긴 것 같아서 좋다.”

차우원이 이유를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관대한 이유라 단우는 할 말이 없었다.

‘무슨 법칙인가.’

세상에 이렇게 성격 좋은 인간이 있는가 하면 인간 새끼가 아닌 놈들도 있는 것이다.

단우가 뭐 철학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든가 그런 소리도 있지 않은가?

기희윤을 생각하면 아직도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그 지독한 순간을 생각하면, <최후의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그 새끼의 목을 따도 어쩔 수 없을 지경이었다. 단우의 손은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 손을 벌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 기희윤을 죽이지 않고, 결국 <이단우 팀>에 받아들이기까지 한 게 미친 짓이었는지 아니면 그를 죽이는 게 미친 짓이었을지 단우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기희윤은 성검을 원했다. 성검의 주인이 되려면 성검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금방 깨달았다.

단우는 거부하고 있었으나 그때 성검의 주인은 이미 단우였다.

‘차우원이 내게 줬으니까.’

성검의 주인이, 그 손으로 직접 성검을 쥐여 주고 ‘나가’라고 명령했으니까…….

그 검의 주인의 단우였다.

<최후의 던전> 1차 공략 실패 이후 수많은 공략 시도가 있었다. 그 시도는 전부 실패했다.

단우는 <최후의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뛰어난 팀원이 필요했다.

기희윤은, 대단한 딜러였다…….

그때까지 살아 있던 딜러 중에 가장 뛰어난 헌터였을 것이다. 다른 능력 있고 사명감 있던 딜러들은 이미 던전 안에서 죽어 버린 뒤였으니까.

사명감 없는 호로새끼 기희윤에게 단우는 제안했다. 그의 팀에 들어오라고.

기희윤은 단우에게 원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였고…….

‘던전에서 내가 죽어 버렸으니 그 새끼는 제대로 엿 먹었지.’

<최후의 던전> 보상으로 단우가 과거로 돌아와 버렸으니, 아예 그 약속 자체가 없던 일이 되기는 했다.

‘기희윤 표정이 개같이 변하는 건 보고 죽었어야 했는데.’

그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었으나.

이제 곧 볼 수 있지 않겠는가?

* * *

현 이림 부길드장이자, 이번 사건의 경호팀장인 고청이 상석에 섰다.

“이미 들어서 아시겠지만, 범인에 대한 단서가 거의 없습니다. ‘피해자’만 열 명이 넘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문제는 이들이 말을 꺼내기 꺼린다는 점입니다.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조차 쉬쉬하는 마당이라 피해자를 특정할 방법도 없습니다. 저희 측에서 간신히 연락이 닿은 피해자는,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인데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특정 스킬일까요? 기억 조작과 관련된…….”

이림 길드의 길드원이 물었다.

“예. 그쪽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상대의 기억을 잃게 하고 행동 불능에 이르게 할 수 있다면, 웬만한 강도의 경계로는 침입을 막기 어려우리라 생각됩니다.”

“경고장은 도착했지만 언제 침입할지는 모를 일 아닙니까? 앞으로도 지금의 경계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이미 경호팀들은 전부 지쳐 있습니다. 체력 강한 헌터라 하더라도 2교대로 쉴 새 없이 이 넓은 저택을 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범인이 노리는 바도 그것이라 생각됩니다. 좀 더 안전한 경호를 위해 전 길드장님께 이림 길드 안이나, 혹은 다른 별장으로 위치를 옮기시는 게 어떤가 제안도 드려 봤습니다만.”

‘그 인간 자존심에 허락할 리가 없지.’

단우는 생각했다.

고청이 미간을 문질렀다. 전 길드장에게 차마 화는 낼 수 없고 답답한 모양이었다.

“그럼 범인은 두 가지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기억을 잃게 하는 스킬과, 남의 능력을 빼앗는 스킬…….”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흔적이 남지 않는 점, 범행이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점 등을 보아 다수의 소행은 아닌 듯합니다. 또 소문이 전혀 나지 않는 점, 연쇄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트러블이 없던 점을 보아 동일범이 혼자 진행하는 사건이라고 보아야 할 듯합니다.”

고청은 할 만한 추측을 했다.

단우는 기다렸으나 다들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손을 들었다.

‘왜 외부 침입자만 경계하냐.’

“내부에 공범이 있을 가능성은 없나요?”

‘너 누구냐’ 하는 시선들이 날아들었다. 단우는 주변은 무시하고 고청만 봤다. 고청은 ‘뭣도 모르는 애송이는 입 닥쳐라’ 할 인물이 아니어서 순순히 대답했다.

“몇몇 피해자를 보고 하는 추측이기는 하나…….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명망 있는 가문의 훌륭한 헌터였습니다. 믿을 만한 세력의 호위를 받고 있었고요. 들어온 지 1, 2년도 되지 않은 사람들은 애초에 곁에 두지 않는, 고위직에 있는 분들이 피해를 본 건이라 내부인의 협력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명문 길드 3년 차 이상은 무조건 믿을 만한 사람이냐?’

단우는 이 엘리트들의 보안 의식이 짜증스러웠으나 침착하게 말했다.

“범인도 바보가 아닌데 경고장을 보내면 피해자가 믿을 만한 경호 인력들을 불러 모으리란 사실을 알았을 텐데요. 경계하는 사람들이 평소의 수 배에서 수십 배로 늘어날 걸 알면서 경고장을 보낸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고청이 턱에서 손을 내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부 공범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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