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38화 (38/170)

38.

“아는 분이야?”

“아니.”

“아닌데 단우가 손을 허락해?”

차우원이 웃으며 물었다. 이단우가 평소 결벽증처럼 굴었다는 투라 단우는 기가 막혔다.

“난 뭐 균이 있어서 누구랑 닿으면 죽어?”

“그런 뜻은 아니고, 단우가 사람 접근을 잘 허락하는 편은 아니지.”

“네가 나 끌어안고 있는 건 접근이 아니라 거리를 두는 거야?”

“내가 단우한테 아무나는 아니잖아.”

이단우는 차우원과 영원히라도 말싸움을 이어 갈 수 있었으나, 배지슬과 눈이 마주쳐서 참았다.

그녀를 보면 반사적으로,

-단우 씨, 리더……. 회의 끝나고 싸우세요.

하는 목소리가 떠올랐던 것이다.

과거 배지슬과 눈만 마주쳐도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는 건 물론 두 사람이 언제나 싸우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배지슬의 얼굴을 봐서 단우가 참으면, 또다시 차우원이 시비를 건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했지만…….

은퇴 길마가 배지슬의 어깨를 잡으며 다가왔다. 단우는 과거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우리 지슬이. 안 그래도 찾고 있었는데 여기 나와 있었구나. 손님 안내해 드리려고? 내 딸이지만 애가 참 바르고 착해. 지슬아, 기억하지? 너랑 자주 놀았던 우원이.”

“네……. 기억해요. 안녕하세요.”

배지슬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차우원도 마주 고개를 꾸벅거려서, 둘은 초면보다 못한 사이로 보였다.

‘뭐지?’

이단우는 차우원의 표정을 잘 읽는 편이었으나 그가 첫눈에 반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이 곤란한 어린애를 어떻게 하지’라는 표정으로 이단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둘이 언제 반하는 거지?’

은퇴 길마가 배지슬의 어깨를 쓸었다.

“하하. 얘가 이렇게 예의가 바르다니까. 우원이 너랑 동갑이잖아. 둘이 반말도 쓰고 예전에는 친근했는데. 오랜만에 보니까 낯설지? 문경이가 있었으면 둘이 정말 오누이처럼 지냈을 텐데 말이야. 내가 문경이랑 그런 얘기도 했거든. 둘이 자식 낳으면 서로 짝지어 주자고…….”

그가 개소리를 하는데 배지슬이 정색했다.

“아, 아빠!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차우원 헌터 보기도 민망하게. 소개시켜 주신다면서요. 전 아빠 호위해 주시는 분들 소개받는 줄 알고 나온 거예요. 서로 부끄럽게 만드실 거면 갈래요.”

“아, 아니 얘가…….”

“자꾸 반말로 어린애 대하듯 하시면 차우원 헌터한테도 예의가 아니잖아요. 공적인 자리에서는 공적인 책임이 있다고 저에게 가르치셨으면서요.”

“으, 으음, 그렇지. 차우원 헌터가 기분 나빴을 수도 있고. 엄연히 공격대의 대장인데. 내가 오랜만에 친구 아들을 봐서 너무 친근하게 대했나? 실례했어요.”

“아닙니다. 직접 환영해 주시고, 오랜만에 어머니 얘기 들어서 기뻤는데요. 바쁘실 텐데 저희가 시간을 빼앗는 건 아닌가 걱정은 됐지만요.”

차우원은 부드럽게 말하더니 배지슬을 향해 미소 지었다.

“저택 안내는 지슬이에게 받아도 될까요? 경호 대상의 따님이라 아가씨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저희가 친구니까요. 그렇게 부르기가 민망하네요.”

“아가씨라니! 내가 듣기도 민망하네! 지슬이, 호칭도 친근하고 얼마나 좋아. 마음껏 불러요. 그렇지, 지슬아?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이 빠져 줘야 서로 이야기도 통하겠지. 좋아요, 지슬이가 잘 안내를 해줄 거예요. 어, 둘이 좋은 시간 보내고!”

은퇴 길마가 반색했다.

“네, 네! 차우원 헌터한테 아가씨라니, 어떻게 그런 짓을…….”

배지슬이 적극 동의해서 그녀의 호칭은 이름이 되었다.

‘차우원 말고는 아가씨로 부르라는 거 아닌가?’

배지슬은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만 은퇴 길마의 뜻은 틀림없이 그럴 터였다. 소서정 정도가 제외일까.

그러나 단우가 당황한 건 차우원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대체로 온화하고 다정하긴 했으나 사람에게 곁을 내어 주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런데 배지슬에겐 먼저 손을 뻗고 있지 않은가?

단우는 몇 번 눈을 깜빡이고 손으로 비볐다. 종종 자신이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사실 이건 전부 꿈이고, 단우는 색다른 종류의 악몽을 꾸는 거라고.

눈을 세게 비벼서 손이 아팠다. 그 팔을 차우원이 잡았다.

“단우야.”

“눈에 뭐 들어갔어.”

단우는 변명했다.

그리고 차우원의 손에서 팔을 빼냈다.

‘이렇게 반해 갈 수도 있지…….’

경호 차원에서 만나서, 옛 추억을 되새기다가, ‘와, 우리 친했었지’ 하하호호 하고 서로 좋은 마음이 들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단우가 연애 경험이 있겠는가? 다시 생각하니, 누가 사랑을 하고 말고를 그가 알아볼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차우원처럼 표정을 잘 숨기는 놈의 애정 사정을 단우가 무슨 수로 알아챌까.

감시하고 있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뭐 하러 온 거야. 정신 차려. 일이나 해.’

이단우는 권준홍을 툭 쳤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이단우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때는 키가 비슷했네.’

과거 <이단우 팀>에서 이단우의 부축을 담당한 건 권준홍이었다. 그때 이단우의 몸은 종종 정상적인 기능을 못 했는데, 부축 따위를 하려 들 만큼 성격 좋고 이단우에게 악감정이 없는 사람은 권준홍뿐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권준홍은 키가 좀 더 컸다. 그래서 단우는 그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걷기가 불편했다.

“저 목이 말라서요. 물 좀 마시고 싶은데요.”

“네? 네!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여기서는 본저택 식당이 더 가깝긴 한데, 손님방과 가까운 식당은 이쪽…….”

권준홍이 허둥지둥 설명했다.

“편한 곳으로 안내해 주세요.”

이단우는 평범하게 말했다. 스스로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투와 표정이 드물게 다정했다.

‘얜 던전에서 빠져나왔겠지.’

<이단우 팀>에서 꼭 살아남아야 할 사람이 두 명 있다면, 하나는 차우원 동생이었고 다른 하나가 권준홍이었다.

‘착한 놈이니까.’

다른 말로는 호구라는 뜻이어서 단우는 이놈을 앞세워 저택 염탐이나 할 생각이었다.

혼자라도 진행할 생각이었으나 누가 붙어 있는 쪽이 의심을 덜 살 것이다. 애초에 경호팀으로 왔으니 저택을 돌아다녀도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팀도 떼어 두고 혼자 쏘다니고 있으면 아무래도 수상해 보이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부려 먹을 상대는 배지슬보다는 권준홍 쪽이 만만했다. 아무래도 배지슬은 같은 팀원 입장이었고, 권준홍은 팀장 위치에서 굴린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선가.’

새파랗게 어린 권준홍은 진짜 애같이 느껴졌다.

“대학은 다니기 어때요.”

“예? 아, 예. 적성에도 맞는 것 같고, 좋습니다.”

단우가 오랜만에 본 친척 어른처럼 물어봐서 권준홍은 당황했다.

‘이단우 헌터 나랑 동갑 아니었나?’

단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1차 공략이 성공했으면 권준홍은 계속 잘 살았을 텐데.’

그러나 배지슬은 죽어 버렸다. 권준홍은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렇게 어리숙하고 순진하기만 하던 때로.

이단우는 눈을 깜빡이며 걸었다.

‘그런 사람이 많았지.’

차우원의 동생도 그랬다.

그는 생각에 잠긴 채, 권준홍의 어깨를 낚아채고는 일행에게서 쭉 멀어졌다.

그 요상한 꼴이 다른 팀원들에게 안 보일 리가 없었다.

‘뭐야?’

‘새 팀원이야? 저거 영업이야?’

‘넌 또 무슨 소리야. 저 사람 비각성자잖아.’

소서정과 강울림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이단우가 처음 본 사람과 어깨동무를 할 리가 없는데 그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심지어 이단우는 십년지기와도 어깨동무를 자기 팔로는 안 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종종 이단우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차우원은 생각했다.

그는 배지슬을 따라가던 걸음을 멈추고 단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다.’

확실히 그랬다.

이단우가 의욕을 되찾으며 함께 살아났던 기분이 다시 가라앉았다.

차우원은 이런 상태에 익숙하지 않았다. 외부 요인에 의해 갑자기 상태가 변하는 일에.

그는 대체로 평온했다. 그에겐 큰 고민이 없었고, 대처할 수 없는 문제도 없었다. 무언가가 그를 가라앉히는 일은 드물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물었다.

“단우야, 어디 가?”

‘왜 이렇게 관심이 많냐. 배지슬이나 쳐다봐.’

단우는 미간을 좁혔다.

“물 마시러.”

“같이 가자. 왜 넓은 저택에서 자꾸 따로 행동해.”

‘……?’

“팀장님께서 경호에 필요한 정보 얻고 계시는데 제 사소한 생리 작용으로 방해하기가 그래서요.”

단우는 차우원이 왜 갑자기 방해인지 알 수 없었다. 스무 살의 차우원은 단우가 단독 행동을 하면 눈치껏 돕는 놈이었다.

‘적당히 해라.’

“단우야, 갑자기 존대하니까 더 이상하다.”

그런데 차우원은 멈추지 않았다.

“둘이 원래 알던 사이야?”

그가 단우와 권준홍을 번갈아 봤다.

‘권준홍을 아냐고?’

물론 알고 있었다. 단우는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멀쩡하게 행동했는데 왜 이런 질문을 받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또 이상한 행동을 했나?’

그제야 단우는 자신이 어쩌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는 권준홍에게 걸쳐 놓은 팔을 빼고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사촌 같아서.”

“아, 아니에요. 그러실 수도 있죠!”

권준홍이 고개를 꾸벅거렸다.

차우원은 여전히 이상한 표정이었다.

‘단우 네가 사촌과 그렇게 친근했던가?’라는 표정이었다.

‘알 게 뭐야.’

돌아보니 이곳에 <차우원 팀>이 전부 모여 있었다. 그런데도 단우는 속이 메슥거렸다. 배지슬과 차우원을 갑자기 쳐다보기 어려워졌고,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모르는 사람이라 물 마시는 곳 안내해 주기 거북하신가요.”

“아니요! 그럴 리가요.”

권준홍이 놀라서 부인했다.

“그러시다는데요. 다녀오겠습니다.”

“그래서 물어본 건 아니었고…….”

차우원이 쓴웃음을 지었다.

“단우 네가 낯선 사람 불편해하잖아. 잘 아는 분 같아서 물어봤어.”

‘모든 사람에게 거리를 두지 않나.’

사실 차우원은 이단우가 사람이라면 전부 불편해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이단우는 팀원들과 잘 지내고 있었지만 격의 없이 친구로 지내는 건 아니었다. 이단우가 잠들면 팀원들은 아무도 그를 건들 수 없었다. 그가 거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차우원도 담요 정도를 겨우 덮어 주었을 뿐이다. 이단우에겐 선이 있다.

‘……?’

단우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낯선 사람을 싫어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고 몇몇 사람은 아주 싫어했다.

또 몇 사람은 단우의 인생에서 너무 중요해서 괴로웠는데, 차우원은 단우가 아주 싫어하는 데다 단우에게 중요한 사람이기까지 해서 이중으로 괴로운 존재였다.

권준홍이 깜짝 놀랐다.

“헉, 이단우 헌터 낯가리시는군요! 몰랐어요. 제가 너무 접근했나 봐요! 그러고 보니 제 소개도 안 드렸네요.”

‘낯가리는 분이 어깨동무를?’이라고 말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예의와 상식을 갖춘 사람이었다.

“아! 이쪽은 권준홍이라고, 제 친구예요. 아버지 일로 제가 너무 걱정해서, 저 도와준다고 와준 친구예요.”

“이런 시기에 저택에 외부인을 들이기 쉽지 않았을 텐데. 두 분 많이 친하신가 보네요.”

차우원이 차분하게 말했다.

‘외부인을 들이면 안 되는 시기긴 하지……!’

순간 긴장했던 권준홍과 배지슬은 이어진 말에 안도해서 둘 사이를 줄줄 털어놨다.

“네! 소꿉친구예요. 아버지가 바쁘시고 집안에 아무도 없어서, 저택에서 저랑 놀아 주는 사람이 준홍이밖에 없었거든요.”

“네가 날 놀아 줬지. 혹시 경계하실까 봐 말씀드리지만, 저 신원 확실한 사람이에요. 저희 아버지가 아저씨 정원사셔서, 지슬이랑도 태어나서부터 알고 지냈고요. 경호하실 때는 지슬이 방에서 움직이지 않을게요. 애초에 그곳에서 계속 머무르려고 했어요.”

차우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 참 다정하시네요. 보기 좋아요. 그렇지, 단우야.”

“……?”

단우는 차우원이 뭐 어쩌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 그렇네.”

“지슬이 불안 가라앉혀 주려고 오신 분 떨어뜨려 놓지 말고, 다 같이 움직이자.”

‘지슬이?’

단우는 저 호칭이 갑자기 거슬렸다.

‘차우원은 원래 팀원들 이름으로 부르잖아.’

그는 이성적으로 생각했으나 곧 반론이 떠올랐다.

‘그런데 배지슬은 지금 <차우원 팀> 힐러가 아니잖아.’

단우는 자신이 미친 데다 양심도 없는 놈이라 자꾸 헛생각을 하는 건지 아니면 차우원이 이상한 놈인 건지 의문이었다.

보통 어린 시절 이성 친구를 다시 만났다고 바로 이름을 부르는 놈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 놈들은 이성 관계가 틀림없이 복잡할 터였다.

물론 차우원이 그럴 놈은 아니었지만.

“물 마시러 다녀오는데 무슨 놈의 사람이 그렇게 필요한데?”

“습격 경고까지 내려왔는데, 아무리 경호팀이라도 따로 다니는 건 위험하지.”

그 말도 그럴듯하긴 했다. 하지만 이단우는 차우원의 말이라면 일단 반발하고 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 습격 내가 당해?”

“혹시 모르잖아. 그냥 같이 다니면 좋겠다. 그럼 내가 안심이 될 것 같아. 둘만 보내는 게 난 기분이 좋지 않은데…….”

단우가 반박하려는데 배지슬이 입을 가렸다.

“어, 어머.”

“……?”

“아니에요. 계속하세요!”

“…….”

이단우와 차우원에게 계속 싸우라고 허락하는 배지슬이라니…….

열이 올랐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전의가 사라져서 이단우는 말했다.

“다 같이 물 마시러 갈까요.”

“네에…….”

배지슬은 어쩐지 아쉬워 보였다…….

‘뭐가?’

그들은 우르르 저택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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