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잔. 퍼펙트 서브. >
4.
‘이걸···’
어떻게 감상을 들려줘야 할까.
정확히 알 순 없어도 세 심사 위원은 서로의 머리에 같은 생각이 스침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색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달리 깊은 맛이 있었어요. 가니쉬 마무리도 좋았구요. 맛은, 제가 감히 뭐라 말을 할 수가 없겠네요.”
그런 생각을 뚫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이채현 편집장이다. 딱히 음료에 대한 지식이 다른 둘에 비해 뛰어나지 않은 그녀는 적당한 말로 자신의 감상을 갈무리했다.
색에서 느껴지기는 가볍고 달콤하기만 할 것 같은 코스모폴리탄이란 칵테일의 맛이 그녀에게는 전혀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마셨던 그 어떤 코스모폴리탄보다 진한고 무거운, 그리고 여운이 남는 맛이라.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탄산을 잘 다루셨네요. 솔 쿠바노란 칵테일이 생소하진 않으셨나요?”
“스승님께서 일본 출신이셔서 어깨너머로 배운 적이 있습니다. 쿠바의 태양이란 뜻의 칵테일이죠. 기원은 일본의 칵테일 콘테스트라고 알고 있습니다.”
“유례도 정확히 아시는군요. 좋네요···.”
백성민 바텐더 역시 별다른 말은 없고 한가지 사항만을 확인하고 넘어간다.
탄산이 그대로 살아 입안에서 터지던 그 느낌을 그는 지울 수가 없었다.
“흠. 다들 호평 일색이네요. 갓파더에 대해서 조금 물어봅시다. 이건, 유례가 어떻게 되죠?”
“정확한 유례가 전해지지 않는 칵테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요? 이름을 보면 영화 ‘대부’와도 연관이 있어 보이는데···.”
“여러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드릴 순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대부’란 영화에 나왔다는 설도 있죠. 하지만, 정확히 따져본 결과 현재는 그 영화에 이 갓파더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통설입니다. 조금은 건조한 이야기여도, 최대한 검증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좋네요. 환상을 파는 것도 좋지만 너무 허황된 이야기는 그렇죠.”
“맛으로 충분했길 바랍니다.”
“뭐, 물론입니다. 블랙 라벨 특유의 피트함을 잘 살리면서 아마레토의 견과류 향도 적절히 살아 있더군요. 잘 섞인 아마레토에서는 체리 향이 난다죠? 전 맡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광수 디렉터는 조금 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직접적이진 않고 우회적으로 들어오는 말은 이 역시 호평.
간단한 확인이 들어왔지만, 정환은 어렵지 않게 이를 받아낼 수 있었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마지막 잔을 시작하죠. 그게 나을 것 같네요.”
정환의 답을 전부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던 김광수 디렉터. 그는 다른 심사 위원의 얼굴을 스윽 보더니 얼른 다음 잔으로 넘어가려 한다.
길게 시간을 끌어봤자, 참가자에게 심사 위원들의 속내만 들킬 것 같았다.
“그러시죠.”
“좋아요.”
다른 이들이 동의하는 의미로 어느새 비워낸 잔을 앞으로 밀며 다음 주문을 준비한다.
이제는 저들의 기준을 알아낸 정환은 한층 긴장이 풀리는 모습이다.
“전, 맡길게요. 대신, 앞에 잔과 비슷한 잔으로 부탁해요.”
제일 먼저 주문을 걸어오는 건 언제나처럼 이채현 편집장이다. 그녀의 주문이 이번에는 조금 어렵게만 다가온다.
앞에 마신 잔을 토대로 적절한 한 잔을 내어달라는 것.
바에서는, 손님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주문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적당한 잔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다른 분들께서도 같은 주문이신가요?”
“전, 정해둔 주문이 있긴 합니다.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편하게 주문해 주세요.”
“에비에이션. 에비에이션으로 부탁합니다.”
과연 마지막 과제라는 걸까. 백성민 바텐더의 입에서 나오는 주문도 심상치 않다.
예상한 셰이킹 기법으로 만드는 에비에이션이라는 칵테일은 고도의 숙련도가 없이는 맛을 내기 힘든 칵테일이었다.
“에비에이션. 주문 확인했습니다.”
물론, 정환은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흠. 나도 주문을 해볼까요? 난···. 그래. 위스키 베이스로 퍼펙트 서브.”
!
“괜찮겠죠?”
이어지는 김광수 디렉터의 주문도 제법 어렵게 나온다.
퍼펙트 서브란 말을 여유롭게 뱉는 그의 입.
퍼펙트 서브란 기주만을 던져 준 상태에서 모든 취향을 바텐더가 손님에게 맞게 책임을 지며 내어 오는 것을 말한다.
체이서부터 안주를 제공하는 곳에는 안주, 그리고 잔이 한잔이 아니라면 잔의 순서까지.
고급 다이닝의 코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게 퍼펙트 서브였지만, 때로는 이렇게 아무런 단서 없이 칵테일 하나를 요구할 때도 쓰이는 단어가 바로 퍼펙트 서브였다.
앞서 색과 향을 전작과 비교하며 디테일한 요구를 했던 이채현 편집장과는 달리 김광수 디렉터는 기주만을 던져줬다.
정확히 그가 바라는 잔, 또 그가 기준을 둔 곳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헛방을 켤 수도 있는 게 퍼펙트 서브란 과제일 것이다.
“퍼펙트 서브. 네. 주문 확인했습니다. 위스키 기주로.”
바텐더는 손님에게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없다. 주문이 던져진 이상 받아야만 하는 게 바텐더의 숙명.
정환은 마지막 주문까지 받고야 말았다.
주문이 끝난 후 이어지는 건 언제나 같다. 바쁘게 움직이는 바텐더의 손.
정환은 이번에도 이채현 편집장의 잔을 먼저 만들어 갔다.
색과 외관에서 오는 강렬한 인상이 바로 그녀의 심사 기준이다. 그렇다면 적절히 만들어 갈 잔이 하나 스치는 정환.
아직 주문받아 만들어 본 적은 없는 잔을 정환은 여기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준비되는 건 간단한 재료들이다. 보드카와 캄파리, 그리고 샴페인 한 병이 테이블을 빛냈다.
정환은 샴페인을 제외한 재료를 셰이커에 넣고는 이를 섞기 시작했다.
- 챠카착! 챠카착! 챠카착!
적당한 흔들림이 멎자 이내 샴페인 글라스에 술이 담긴다. 캄파리의 색 덕에 그녀의 주문처럼 옅은 루비색이 묻은 잔.
그리고 잔의 나머지 부분을 정환은 샴페인으로 채워갔다.
잔은 언뜻, 완성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정환은 잔을 내밀지 않고 여전히 바텐더의 공간에 둔 채 칼과 오렌지를 꺼내온다.
껍질을 기다랗게 잘라낸 후 이쑤시개를 이용해 모양을 잡아가는 정환.
적당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 완성되자, 정환은 이를 잔에 올려두며 잔의 완성을 알린다.
가니쉬는 언제나 선택의 영역이지만, 이 잔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주문하신 잔, 나왔습니다.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이 잔은 먼저 드시길 권해드려도 괜찮을까요?”
“디렉터님. 괜찮나요?”
“흠. 뭐. 맛에 대해 언급만 하지 않는다면, 딱히 규정에 어긋나는 건 아닙니다.”
“그럼, 시키는 대로 해 봐야죠. 뭐든, 바텐더가 권할 때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잔이 정말 이쁘네요! 이건 무슨 모양을 낸 것 같아요! 색도 제가 딱 마셨던 전작과 같구요! 이건 이름이 뭔가요?”
“샴페인 플라밍고라는 칵테일입니다. 샴페인으로 만든 홍학이라는 뜻이죠.”
“와! 모양이 그래서···! 홍학처럼 보이네요!”
“맛도 괜찮을 겁니다.”
“그래도 그건 말 못 해요. 아시죠?”
“그럼요.”
이채현 편집장은 짙게 웃으며 확신을 주는 바텐더 앞에서 잔을 들어 올렸다.
샴페인의 기포는 따른 직후가 가장 강렬하고 또 공기와 만나며 맛이 변할 수 있기에 먼저 잔을 들 것을 권한 정환.
그의 권유처럼, 잔은 막 따른 샴페인의 진한 향이 가득해 세련됨을 뽐내고 있었다.
텁텁한 캄파리와 강렬한 보드카의 맛이 적당히 잡혀 있어 샴페인의 당도와 딱 어울릴 정도였다.
비터 앤 스위트. 맛 중 최상이라는 그 단어가 그녀의 머리를 스친다.
텁텁한 맛으로 혀를 민감하게 만들고 그 위를 당도로 쓸고 가며 최강의 쾌락을 준다는 그 맛이.
정확히 그녀의 입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물론, 이걸.
저 바텐더에게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그녀였지만 말이다.
정환은 눈을 계속해서 꿈틀거리며 잔을 쉬지 않고 들이켜는 그녀를 보며 안심하고 다음 잔을 서둘렀다.
이어질 잔은 백성민 바텐더의 에비에이션.
앞선 정환의 예상처럼 셰이킹으로 만드는 칵테일이 바로 에비에이션이었다.
허나, 에비에이션은 그런 셰이킹 칵테일 중에서도 제법 난도가 높은 축에 속했는데, 이건 다름 아닌 색 때문이었다.
진과 레몬주스, 그리고 마라스키노 리큐르. 마지막으로 크렘 드 바이올렛이라는 술을 넣어 셰이킹 하는 이 에비에이션은 ‘비행’이라는 이름처럼 하늘의 색을 형상한 칵테일이었다.
즉, 파란. 아니, 그보다는 조금 더 옅은 하늘색이 잔에 담겨야 하는 것.
그러나, 재료에서 보이듯 어디에도 하늘색을 낼 수 있는 재료는 없어 보였기에 더욱 어려운 잔이었다.
색을 내는 술이 재료 중에 하나 포함되어 있긴 했다. 바로, 크렘 드 바이올렛.
이름 그대로 보라색을 나타내는 이 술은 증류주에 보라색 꽃을 더한 술로 포도색처럼 진한 보라색이 특징이었다.
이걸 넣은 후 재료와 셰이킹을 통해 바텐더가 색을 풀어가야만 한다.
너무 적게 흔들어도 너무 많이 흔들어도 색은 하늘색이 아닌 다른 색을 띠게 될 터.
바텐더는 정확히 하늘색을 가질 수 있도록 손안에서 셰이커를 컨트롤 해야만 했다.
아마 예사롭지 않은 정환의 셰이킹 자세를 보지 않았다면 이런 과제를 내진 않았을 거라.
정환은 오히려 앞서 보여준 셰이킹 때문에 이런 과제가 나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타, 탓, 탁.
그래도 나온 주문을 물릴 수는 없다. 셰이커의 캡을 닫으며 이를 들어 올리는 정환.
정환은 머릿속으로 셰이커 안의 모습을 떠올리며 셰이킹을 시작했다.
- 챠카착! 챡! 챠카차차착! 착! 챠카착!
이전과는 다른 셰이킹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그림을 그리듯 섬세하게 움직이는 정환의 셰이킹.
정환은 눈을 감고는 머릿속에 그리던 이미지가 완성되자.
- 챠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셰이킹을 멈췄다. 앞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보던 백성민 바텐더는 멈추는 순간 눈을 찌푸리는 것이 정환의 박자를 전부 읽지 못한 느낌이다.
- 촤아아아아아악!
작은 잔으로 정환이 섞어낸 술이 떨어진다. 무슨 색일까. 주문한 사람도 만든 사람도 눈가에 힘을 주고 있던 그때.
!
하늘색. 선명한 하늘색을 품은 술이 잔에 담기기 시작했다. 조금은 하얀 기포가 섞인 모습이지만, 이건 누가 보아도 하늘색이 분명한 색이었다.
정환은 잔에 담긴 술을 마라스키노 체리로 갈무리해 백성민 바텐더에게로 밀어냈다.
“주문하신 에비에이션. 나왔습니다.”
“······.”
잔을 받고 무언가를 물어본다. 간단한 프로세스가 작동을 멈추며 손님은 시선을 잔에 고정했다.
그는 이 색이 나온 저 셰이킹을 전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상한 점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바텐더님도 먼저 드셔보시지 그러세요? 어차피 편집장님도 먼저 드셨으니.”
“글쎄요···.”
먼저 맛을 보라는 김광수 디렉터의 말에도 백성민 바텐더는 그저 허탈한 웃음을 지을 뿐이다.
이건.
마셔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잘 만든 잔이 분명했다.
“허, 참. 믿을 수가 없군···.”
나름 작게.
하지만, 들려도 좋다는 미필적 고의로.
백성민 바텐더는 속삭이는 말을 뱉으며 몸을 뒤로 기댔다. 조금은 힘이 빠진 모습이다.
“자. 이제 제 잔만 남았군요. 뭘 보여주시려나요?”
- 파아아악! 솨아아아!
마지막으로 나올 자신의 잔을 고대하는 김광수 디렉터. 그의 말이 전부 끝나기도 전에 청량한 굉음이 들리며 잔을 가늠하게 만든다.
이건, 탄산이 가득한 캔을 딸 때. 그때 나는 소리다.
- 부르르르르르.
기다란 잔에 얼음과 술이 이미 부어져 있다. 그리고 더해지는 건 그저 탄산수.
정환은 탄산수가 들어간 잔에 바 스푼을 넣어 얼음을 둥가둥가하며 올렸다가 내리길 반복했다.
잘게 자른 레몬 껍질 한 장이 잔에 담기자, 생각보다 이른 잔이 손님을 향한다.
“주문하신 잔. 나왔습니다.”
“······.”
이번에도 잔을 받은 손님이 말을 잃고 만다. 김광수 디렉터가 전했던 주문은 퍼펙트 서브.
이는 어렵기도 하지만, 바텐더에게 있어서는 잔뜩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도 있는 주문이기도 했다.
주문이 없어 못 만드는 복잡한 잔을 신이 나서 선보일 기회이지 않나.
허나, 나온 잔이 너무도 단순하다.
이건 비단 잔을 받은 김광수 디렉터만이 아닌 다른 이들도 공감하는 사항.
나온 잔은 다름 아닌.
“하이···볼?”
위스키 칵테일의 대명사, 하이볼이었다.
***
1. 샴페인 플라밍고(Champagne Flamingo.
(보드카 + 캄파리 + 샴페인 + 오렌지 트위스트)
- 홍학의 모습을 형상화한 칵테일, 샴페인 플라밍고입니다.
- 맛에 있어서는 비터 앤 스위트가 최고봉이라고 하죠. 정확히 그 맛을 위해 만든 칵테일이 이 샴페인 플라밍고 입니다.
- 모던 칵테일이지만 기원이 명확하지 않은 축에 속합니다.
- 통설은 라스베거스의 플라밍고 호텔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샴페인의 부티나는 이미지와 라스베거스. 그리고 플라밍고라는 이름이 만나 이런 작품이 되었네요:)
2. 에비에이션(Aviation).
(진 + 레몬 주스 + 마라스키노 리큐르 + 크렘 드 바이올렛)
- 1번 사진이 에비에이션 입니다. 2번은 크렘 드 바이올렛 입니다.
- 항공이라는 뜻의 칵테일로 푸른 하늘, 창천을 형상화한 칵테일 입니다.
- 기원이 많습니다. 확실히 말 할 수 있는 건 클래식 칵테일이며 오래된 녀석이라는 점입니다.
- 많은 바텐더와 스튜어디스의 사랑을 이루어 주었다는 그녀석입죠.
- 보락색을 띠어도 맛은 비슷한 경우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