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66화>
부아아아앙-
천문석과 마혁진을 태운 오토바이가 난간 위를 질주했다.
그러나 이미 스노우볼은 구르고, 나비의 날갯짓은 태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천문석과 인과가 얽힌 사람들의 운명이 비틀리고 있었다!
* * *
수많은 피난민이 물결치듯 남쪽으로 밀려오는 청담대교.
장철 헌터는 물결을 거슬러 북쪽으로 움직이며 탄성을 터트렸다.
“이걸 염동, 그 녀석이 복구했다고……?!”
기존 다리 위에 놓인 H빔 골조와 그 위에 깔린 상판. 그리고 가장자리에 세워진 난간까지!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골조를 하나하나 이은 게 아니다.
수백 톤에 달하는 H빔 골조를 완성하고 단숨에 염동력으로 옮겨 순식간에 끊어진 다리를 복구했다.
마혁진은 수백 톤의 강철 골조를 거의 100미터 가까이 움직였다!
1세대 헌터로 수많은 각성자, 초능력자를 만났던 자신도 처음 보는 엄청난 물리력, 염동력이다!
미래에도 이와 비견될 염동력을 가진 각성자는 단 하나뿐이다.
등급외 초능력 각성 동물, 뽀미!
“이 정도 염동력이면 거의 뽀미 급인데. 이 녀석 어떻게 이렇게 강해진 거야? 이러다가 이태성도 쥐어박는 거 아냐?”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천문석!
마혁진에게 염동 대협이란 별호를 지어 주고 쉴 새 없이 구박하고, 정신없이 굴린 청년!
어째선지 천문석이 마혁진이 강해진 이유라는 감이 왔다.
처음 정신을 차리고 마혁진이 천문석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천하의 마혁진이 이세기란 가명을 쓴 천문석 앞에서 설설 기고 있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게이트 전쟁 당시 유통망 장악.
-서울 수복 작전 불참.
-사냥터 통제 사건.
……
마혁진은 그 자신의 업보로 1세대 헌터 사이에서 왕따가 됐지만, 그 실력만큼은 진짜다.
칠성파 보스 마혁진은 서울 수복 작전 전까진 한국 최강의 각성자로 불렸던 초능력 각성자다.
그런 마혁진을 헌터가 된 지 1년도 안 된 청년이 쥐어박고 굴린다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었다면 자신도 믿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 헌터가 천문석이라면?
지금도 기억에 선명했다.
서울 사태 때 아이를 구하기 위해 프라이팬과 중식도를 들고 랩터와 사투를 벌였던 청년!
그 아이가 특급 헌터.
그 청년이 천문석이다.
‘천문석이라면 가능하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보게 된다.
어느새 구름이 사라지고 쨍한 해가 떠오른 하늘.
“…….”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청년이 자신의 오랜 갈망을 이뤄 줄 사람이라는 것을!
생명보다 소중한 잃어버린 별.
천문석 덕분에 후회만 남아 있던 세기말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세린이를 만나고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추이린은 오래전 말했었다.
던전은 달을 비추는 일그러진 수면이고, 그 안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은 꺼지기 직전의 양자 거품일 뿐이라고.
그렇다 해도 괜찮다.
자신의 팔에 남은 따뜻한 온기와 솜털 같은 무게, 그 웃음과 신나는 목소리는 영원히 기억에 남겨질 테니까!
이토록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기에 장철은 확신했다.
천문석 덕분에 마혁진의 염동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좋은 거 있으면 나도 좀 주지.”
장철은 피식 웃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남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연결된 청담대교 너머로 보이는 것만 같았다.
병원에서 깨어난 아내의 환한 웃음.
엄마 품에 꼭 안겨 바둥거리던 세린이.
경계 어린 눈으로 자신을 보던 젊은 장철.
모든 이야기를 듣더니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웃어 준 어린 장민.
이제 2000년 젊은 장철의 가족을 뒤로하고.
2020년 자신의 가족을 향해 돌아갈 때였다.
장민, 특급 헌터!
두 사람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서울로 돌아가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특급 헌터, 조카의 두 눈이 깜짝 놀라 커지게 만들고!
언제나 자신만만한 장민, 동생의 얼굴을 경악으로 물들이는 것!
특급쌩쌩이 3호를 선물하는 거다!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에 장면이 재생됐다!
‘훌륭해! 이건 완전완전 훌륭한 특급 쌩쌩이야! 카카카카캌-’
‘장철! 얘한테 뭘 선물하는 거야?!’
특급 쌩쌩이를 타고 도망치는 조카.
그 뒤를 쫓으면 다급히 외치는 동생.
두 사람의 외침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
장철은 가슴속 미련, 원망, 회한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조카와 동생.
가족이 기다리고 있다!
장철은 과거를 등지고 미래를 향해 너무나 가벼워진 발을 내디뎠다.
쿵쿵, 쿵쿵쿵-
강철 상판을 울리는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곰 같은 덩치로 인파를 거슬러 빠르게 걷길 한 참.
으아아악-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돌아간 시선에 보였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 듯 엉망인 옷과 몸.
젊은 청년이 축 늘어진 사람을 들어 다리 가장자리로 옮기고 있었다.
마수와 몬스터가 쏟아진 서울에선 특별할 것도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청년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자석에 끌리듯 발이 멈추고 시선이 집중됐다.
“전에 봤었나? 왜 이렇게 낯익어?”
장철은 성큼 걸어가 말을 걸었다.
“옮기는 것 좀 도와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이제 거의 다 끝났습니다!”
으아악-
기합을 지르며 축 늘어진 사람을 들어 올려 다리 난간에 기대 놓는 청년.
난간에는 기절한 채 줄줄이 기대 앉혀진 20여 명의 사람이 있었다.
정장, 군복, 한국인, 외국인!
입은 옷과 인종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보였다.
패싸움이라도 벌인 듯 하나같이 엉망인 몸과 얼굴!
몇몇 사람은 팔다리가 덜렁거리고 기절한 채 앓는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저 외국인은 얼굴에 피 칠갑을 했네? 저 남자는 입에 저거…… 핏자국? 설마 사람을 문 거야?!’
수십 년 숙원을 이뤄서일까?
절로 호기심이 치솟고 발걸음이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이제 곧 자신은 떠난다.
장철은 피식 웃으며 천문석과 만나기로 한 청담대교 진입로를 향해 발을 뻗었다.
미래의 장철.
국정원 최 팀장.
과거의 청년 마혁진.
세 사람은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장철은 겉늙은 지금과 전혀 다른 청년 마혁진을 알아보지 못했고.
국정원 최 팀장은 아직 장철을 모르고 정신줄을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청년 마혁진도 아직 장철과 만나기 전이었다.
과거와 미래. 인연이 닿을 듯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있었다.
* * *
“와, 몸이 무슨! 곰이 움직이는 것 같네!”
청년 마혁진은 멀어지는 남자의 몸을 보며 감탄했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 최 팀장의 양팔 아래로 손을 넣어 끌어올렸다.
으아악-
악을 쓰며 최 팀장을 일으키고 질질 끌어 난간에 기대 앉히는 순간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끝났다!”
위잉위잉위잉-
이때 최 팀장의 품 안에서 진동이 울렸다.
휴대폰!
품 안에 손을 넣자 바로잡혀 나오는 휴대폰 화면에 전화를 건 사람의 이름이 떠 있었다.
[미친개 부장님]
위잉위잉위잉위이잉-
청년 마혁진은 한참 동안 휴대폰 화면과 줄줄이 기절한 사람들을 번갈아 봤다.
‘불길했다! 너무나 불길했다!’
이 전화를 받는 순간 무언가 굉장히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전원 기절한 상태, 아무리 살펴도 전화를 받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그냥 받지 말고 튈까?’
수없이 했던 생각을 다시 하는 순간 그래선 안 되는 이유 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하아아-
청년 마혁진은 깊은 한숨과 함께 휴대폰을 열었다.
“안녕…….”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고함이 터져 나왔다.
-최 팀장! 야, 이 새꺄! 왜 전화를 안 받아! 정보위 라인 네가 움직인다며!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어린이 대공원 개판 됐어! 외주 용역까지 끌어다가 간신히 버티고 있어! 포격 언제 시작하는데?! 여기 오래 못 버텨…….
휴대폰을 여는 순간 폭풍같이 쏟아지는 외침!
-……포격 어떻게 됐어?! 승인 났냐?!
청년 마혁진은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멍하니 외침을 듣고 있다가 말이 끊겼을 때 재빨리 끼어들었다.
“잠시만! 최 팀장님 지금 전화를 받을 수가…….”
-너 누구야? 최 팀장은 어떻게 알아?! 휴대폰은 어떻게 된 거야?! 어디서 나왔냐? 위? 오른쪽, 왼쪽? 설마, 바다 건너냐?!
“아니 그게 아니라 최 팀장님 싸우다가 기절…….”
-하!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최 팀장 그 녀석이 싸우다가 기절했다고?! 싸움으로는 져 본 적이 없는 놈인데! 너 이 새끼 빨리 정체 밝혀! 추적해서 걸리면 코로 설렁탕을…….
청년 마혁진은 다급히 외쳤다.
“최 팀장님! 제제, 제 뭐라는 외국인이랑 싸우다가 기절…….”
순간 경악한 외침이 돌아왔다.
-제임스 김! 최 팀장이 제임스랑 붙은 거냐?
“네, 넷! 제임스 김 맞습니다!”
-이 또라이 새끼! 작전 끝날 때까지 피하라니까! 혹시 제임스 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가 묻는 미친개 부장.
-죽었냐?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보다 빨리 여기로 사람 보내 주셔서 인수…….
-하아아- 식겁했네! 시바, 뭔 사고를! 에휴-
휴대폰 너머 여러 사람의 안도 한숨이 이어지다가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말해 봐!
“네! 시작은 제가 직장에서 잘리고 청담대교를 지나가다 우연히…….”
청년 마혁진은 일어난 일을 빠르게 설명했다.
긴 설명이 끝나자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탄식.
-하, 시바! 또 어디서 정보가 샌 거야?! 빌어먹을 젠장! 어쩐지 전화를 안 받더라니! 최 팀장이 없다 이거지! 젠장젠장젠장!
미친 듯이 분노를 쏟아 내는 목소리.
청년 마혁진이 이제라도 도망가야 하나 고심할 때 불쑥 질문이 날아왔다.
-너 지금 어디야?!
“청담대교 위…….”
-어린이 대공원으로 당장 최 팀장 데리고…… 아니지, 그냥 거기서 기다려! 바로 차 보낼 테니까! 절대 전화 끊지 마라! 반드시 내가 확인해 주는 차에 최 팀장이랑 직원들 태워서 같이 와야 한다!
“네? 잠깐만. 제가 왜?! 오시는 분한테 아니, 여기 경찰분에게 휴대폰 넘길게요! 경찰분에게…….”
-안 돼! 제임스 김이랑 엮였으면 어디서 정보가 샐지 모른다! 네가 직접 우리 직원에게 넘겨줘야 한다! 경찰에게는 절대 알리면 안 돼!
순간 기절한 척 훔쳐본 싸움이 떠올랐다.
국정원 최 팀장과 CIA 제임스의 처절한 싸움!
감이 왔다!
‘미친개 부장님’이라는 휴대폰 화면을 봤을 때 느꼈던 불길함!
잘못 엮여 들어가면 좆된다!
직장에서 짤린 게 불운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된다!
“전 그냥 평범한 시민입니다! 그냥 경찰에게 휴대폰 넘기겠습니다!”
다급히 외치고 멀리 보이는 경찰에게 달려가려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너 직장에서 잘렸다고 했지? 우리 회사에 특채해 줄게!
“네? 특채요?! 저 고졸……?!”
-내 권한으로 특채한다! 너 이제부터 공무원이다!
“……!”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 밀려왔다.
-처음은 9급이지만 걱정하지 마라! 승진이 제일 빠른 최 팀장 팀에 넣어 주겠다. 평균 2년이면 승진하고 성과급도 최고…….
줄줄이 이어지는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공무원!
내논 자식인 자신이 공무원이 된다고?!
그것도 그냥 공무원이 아닌 국정원 공무원이!!
“……!”
온라인 게임 작업장에서 잘린 건 불운이 아니었다!
그 덕분에 상상도 하지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공무원이라는 기회가!
‘염동 대협 마혁진 선생님! 감사합니다!!’
청년 마혁진은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때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은근한 목소리.
-어때 생각 있나?
“최선을 다해 최 팀장님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충성충성!”
청년 마혁진은 바로 대답했고 미래가 변했다.
1세대 헌터.
한국 최강의 염동력자.
부산을 지배하는 칠성파 보스.
이태성에게 찍힌 조폭 길드 길드장.
신동대문에서 재앙의 화신을 만난 사막의 도망자.
그리고 2004년 강제로 서울 수복 작전 참전 서약서에 도장을 찍은 칠성파 보스라는 분기점까지.
청년 마혁진의 모든 인과가 뒤틀리고 미래가 변할 대사건이 일어났다.
마혁진은 이제 깡패가 아니었다.
국정원 9급 공무원이었다!
“와, 뭐야! 이렇게 운이 좋다고?! 염동 대협님 감사합니다! 하하하-.”
청년 마혁진은 끓어오르는 기쁨에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득한 하늘의 인과는 누구도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법!
알 수 없는 이유로 마력 폭풍이 터지지 않고, 최 팀장이 기절해 거대 괴수에 대한 포격이 지연되는 지금.
한국 최강의 각성자로 불리게 될 마혁진은 국정원 직원.
그것도 서울 수복 작전에서 헌터 영입을 전담한 최 팀장의 부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