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65화>
정신없이 달려가는 염동 대협 마혁진!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마혁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 과거에 남게 됐고 자신에게 칼로리바 포장지 쪽지를 전해 줬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 자신 옆에 있는 마혁진이 이 시대에 남을 일은 없었다.
수많은 나비 효과를 일으켰고 스노우볼을 굴려 미래는 이미 변했다.
그리고 특급 헌터는 절대 동료를 버리지 않는 법이니까!
카캬카카캌-
천문석은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순간 의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갑자기 웃어. 뭔가 수상한데…… 또 뭔 사고 쳤냐?”
어느새 널브러진 몸을 일으켜 앉은 마혁진의 의심스러운 얼굴.
“와! 이런 중상모략이라니! 넌 지금 내가 얼마나 고뇌하고 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할 거다!”
“고뇌? 네가 고뇌라고? 하아- 가는 데마다 사고 치면서 무슨 고뇌냐?”
“사고라니! 냉철한 이성과 완벽한 계획으로 움직이고 있거든!”
“냉철한 이성? 완벽한 계획? 그냥 어쩌다 보니 터진 사고라는데 내 전 재산을 건다.”
“전 재산? 너 거지잖아?!”
“말이! 새끼야,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
마혁진이 분통을 터트릴 때.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주위를 돌아봤다.
자재가 곳곳에 쌓인 화물칸 너머 교통정리 중인 병사들과 다리를 건너는 시민들이 보였다.
자신과 염동 대협의 모습은 높은 화물칸과 자재에 가려진 상태!
은밀한 대화를 하기에 딱이다!
천문석은 마음에 담아 뒀던 질문을 했다.
“너 아까 청담대교에서 한 말은 뭐야?”
“청담대교? 무슨 말?”
“청담대교 연결할 때 말했잖아? 거대괴수 어차피 한강 안 온다고, 오토바이가 유인하고 ‘뽀미’가 처리한다며? 뽀미가 거대괴수랑 싸웠었냐? 난 처음 듣는 이야긴데? 혹시 직접 본 거야?”
“아! 그거!”
마혁진은 알겠다는 듯 탄성을 터트리고 바로 말을 이었다.
“나도 직접 본건 아니고. 서울에 있던 1세대 헌터들 사이에 한동안 돌았던 소문이야. 원래 군 계획은 거대괴수를 어린이 대공원으로 유인하고 포격을 쏟아부어 잡을 생각이었는데…….”
“생각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포격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포격을 쏟아부었으면 별다른 피해 없이 잡았을 텐데…… 그냥 시간만 흐르면서 거대괴수는 한강으로 이동을 시작했고. 그때 갑자기 나타난 배달 오토바이가 거대괴수를 유인해서 달렸다.”
거대괴수가 어린이 공원에 있으니 지금과 상황은 비슷했다.
그런데 갑자기 배달 오토바이가 튀어나와 거대괴수를 유인했다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오토바이가 갈 곳은 한곳 뿐이잖아? 서쪽은 중랑천, 남쪽은 한강, 동쪽은 아차산으로 막혀 있으니. 오토바이는 북쪽으로 거대괴수를 유인했다. 그런데 서쪽 중랑천 너머는 서울 중심지고, 동쪽은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불암산, 수락산으로 줄줄이 막혀 있잖아? 결국, 오토바이는 거대괴수를 끌고 계속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천문석의 머릿속에 서울 동북부 지도가 그려지고 거대괴수의 이동 궤적이 쭉 그어졌다.
어린이 대공원에서 시작해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는 산을 끼고 북쪽으로 질주한다!
그 질주가 멈출 장소는 한곳 뿐이다.
서울 북부 전체를 거대한 뚜껑처럼 덮는.
“북한산 국립공원!”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배달 오토바이로 거대괴수를 북한산까지 끌고 달렸다는 거야?! 그게 가능해? 혹시 1세대 헌터?”
마혁진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특수 부대원, 자연 각성자, 그냥 쌀집 알바, 운동권, 체육대 대학생…… 말은 많이 나왔는데 누군지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뭐? 그 정도 근성이랑 실력이면 1세대 헌터들 사이에서도 이름을 날렸을 텐데? 아무도 정체를 몰랐다고?”
“거대괴수와 함께 북한산 국립공원에서 감쪽같이 사라졌거든.”
“……!”
번뜩이는 무언가 머릿속을 스치고.
마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북한산 국립 공원에서 거대괴수가 사라졌다면 누가 했을지는 뻔하잖아?”
천문석과 마혁진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같은 이름이 튀어나왔다.
“뽀미.”
“뽀미.”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
개, 고양이, 독수리, 부엉이, 기린, 코끼리, 고래, 사자, 너구리……!
전 세계 모든 나라에 수많은 각성 동물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다른 각성 동물과는 차원이 다른 각성 동물이 둘 있었다!
서해 용용이와 국민대 뽀미!
천문석은 직접 겪었기에 그 힘을 너무나 잘 알았다.
서해를 반으로 갈라놓은 바닷물 장벽!
수십 개의 용오름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살아 있는 것처럼 허공을 유영하는 수천의 바닷물 생명체를 만들어 냈다.
10만 톤급 항공모함을 반으로 뚝 잘라 한라산에 올려놓고.
남중국 푸젠성에선 수백 미터의 해일과 함께 전진하기까지 했다.
용용이는 항모전단도 피해 다니는 바다의 재앙이었다.
반면 뽀미는 국민대에 살던 삼색 새끼 고양이었다.
각성 동물이 된 후에도 뽀미는 예전과 똑같이 행동했다.
국민대, 북한산, 서울 곳곳에 나타나 데굴데굴 구르며 간식을 받아먹었다.
하는 행동은 평범한 새끼 고양이와 다를 게 없지만, 능력은 완전히 달랐다.
염동력, 공간이동, 텔레파시, 거대화…….
뽀미는 지금도 가진 능력이 새롭게 밝혀지는 규격 외 초능력 계통 각성 동물이다.
그런 뽀미의 영역에 거대괴수가 들어갔다면?!
누구라도 답을 알 수 있었다.
“뽀미가 거대괴수를 처치했구나!”
마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1세대 헌터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다. 뽀미가 거대괴수를 처리하고 초장거리 순간이동 날려 버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라고.”
“그럼 거대괴수는 걱정할 거 없네. 성수대교 연결하고 장철 헌터님 오면 바로 돌아가면 되겠다.”
천문석이 반색하는 순간.
마혁진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 이상해? 앞뒤가 딱딱 맞아떨어지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상황이…….”
이때 트럭 조수석에서 들려온 외침이 마혁진의 말을 끊었다.
“이 선생님 작업 전부 끝났습니다! 성수대교 북단에 사람이 너무 몰렸는데, 이대로 강남으로 넘어가 성수대교 남단에서 위로 올라가도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저희 정체는 비밀로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바로 출발한다! 공병대 차량에 탑승하고 선두 오토바이와 트럭이 빠져나갈 길을 연다!”
오토바이가 선두에서 피난민 사이로 길을 열고.
트럭은 그 뒤를 따라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전진하는 오토바이와 트럭 행렬을 향해 환호와 감사 인사가 끝없이 쏟아졌다.
다리가 끊어진 부분을 완전히 지나 영동대교 남쪽 출구가 가까워지자 외침이 변했다.
“다리를 연결한 공병대가 오고 있다!”
“초능력자가 같이 있을지도 모른다!”
피난민을 거슬러 달려오는 사람들!
카메라 셔터음이 쉴 새 없이 터지고 외침이 쏟아졌다.
“어느 분이 염동 대협이신가요?!”
“지휘관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진짜 초능력입니까?! 마술 같은 눈속임 아닌가요?!”
“혹시 제대로 된 검증을 받으실 생각 있으십니까?!”
……
“물러나세요! 아직 임무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성수대교로 바로 이동해야 합니다!”
“기자분들 뒤로 물린다!”
……
병사들이 몰려드는 기자들을 좌우로 밀어내고 길을 트기 시작했다.
초췌한 얼굴로 정신없이 걷는 피난민들.
열정마저 느껴지는 표정으로 달려드는 기자들.
피난민과 기자!
강북과 강남의 병사들!
한강 남쪽 강변에 몰려나온 시민들까지!
예전에는 한강을 넘지 않았기에 느끼지 못했던 차이!
게이트가 열린 강북과 강남의 차이가 확연히 보이고 느껴졌다!
“뭐가 이렇게 달라?”
천문석이 어이없어 하자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강 건너 불구경. 한강 남쪽은 안전할 거로 생각하는 거다. 그 불이 곧 옮겨붙을 것도 모르고 말이지…….”
어느새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마혁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지친 눈으로 주위를 돌아봤다.
‘뭐야, 이 녀석 아까도 그러더니 분위기 왜 이래?’
세기말 대한민국에 온 이후로 쉴 새 없이 사건이 터지고 굴렀다.
꽉 막힌 중랑천 제방 뚫기.
마침내 드러난 시청 공고문 도난 사건의 진범.
청담대교에 이어, 영동대교와 성수대교 연결하기.
자신이 아는 마혁진이라면 이렇게 쉽게 넘어갈 리 없었다.
마혁진은 삶에 지친 노인처럼 의욕을 잃은 것 같았다!
‘좋지 않다!’
이 순간 문득 기억나는 게 있었다.
지휘관의 외침에 끊어진 대화!
“너 방금 이상하단 말은 뭐야?”
“뭐?”
“뽀미, 거대괴수 이야기하면서 이상하다고 말했잖아?”
“아, 그거! 사실 중요한 건 아닌데…….”
“뭔데 그래? 말해 봐?”
마혁진은 자신 없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뽀미는 각성 동물이잖아?”
“그런데?”
“각성자, 각성 동물이 나타난 건 마력 폭풍이 터진 후잖아?”
“대부분 그렇지.”
“북한산 국립 공원에서 뽀미가 거대괴수를 처리하려면, 뽀미가 각성해야 하잖아?”
“당연한 말을 계속 반복…….”
무심코 대답하는 순간 무언가 뇌리를 스쳤다!
“……!”
맞물린 톱니가 어긋나듯 덜컥 이질감이 느껴질 때.
마혁진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력 폭풍 언제 터진 거지?”
“……!”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내용이 담긴 목소리가!
반사적으로 북쪽 하늘을 보는 순간.
타아아-
멀리서 들려오는 총성!
그리고 보였다!
어느새 구름이 사라진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오후 2시를 막 지나고 있는 시계가!
순간 절로 안도의 한숨을 나왔다.
마력 폭풍이 터지는 건 짙은 노을이 지는 늦은 저녁이다!
아직 한참이나 시간이 남아 있다!
1. 거대괴수가 배달 오토바이를 쫓아 북한산 국립공원에 도착했을 때.
2. 마력 폭풍이 터지고 국민대 뽀미가 각성 동물이 된다.
3. 그리고 거대괴수와 각성 동물 뽀미가 격돌한다.
어긋난 건 없다!
시간표를 짜둔 것처럼 1, 2, 3! 착착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새캬! 깜짝 놀랐잖아! 마력 폭풍, 아직 한참 멀었어!”
“마력 폭풍 증언은 사람마다 제각각인데, 너 직접 본 것처럼 말한다?”
“내가 원래 이런 감이 좋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힐끗 눈치를 봤다.
특별한 반응이 없는 마혁진.
‘염동 녀석. 촉이 점점 좋아지잖아?!’
마혁진은 정곡을 찔렀다.
자신은 EMP 마력 폭풍을 직접 겪었다.
1차 세기말 대한민국의 난장판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게이트가 열린 광화문 광장!
하늘에선 초대형 뱁새가 곡예비행으로 도망치고.
그 뒤를 황금빛 갑옷을 입은 다람쥐, 니케가 쫓았다.
지상의 게이트에선 마수와 몬스터, 거대괴수가 쏟아지고.
냉기 불꽃을 휘감은 서리 늑대가 그 모든 것을 꽁꽁 얼려 버렸다.
[00:04:44]
EMP 마력 폭풍 카운트다운 시계가 4분 44초가 남은 그때.
차원 좌표가 연결되고, 마력 회로가 활성화되어 2020년으로 돌아가는 문이 열렸다.
작은 실수로 20년 존버를 할지도 모르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그 순간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북한산 하늘에 떠오른 명멸하는 태양과 불타는 노을이 만나 EMP 마력 폭풍이 터진 건.
“2000년 1월 1일 늦은 저녁이다! 아직 시간 충분히 남았다!”
이때 트럭에 옆을 지나가던 병사의 대답이 돌아왔다.
“네? 1월 1일이요? 오늘 1월 2일인데요?”
“……네? 며칠이라고요?”
“오늘 1월 2일입니다!”
대답이 돌아오는 순간 머릿속에 번개가 내려쳤다.
1월 2일!
그렇다! 오늘은 1월 2일이다!
EMP 마력 폭풍이 터진 늦은 저녁은 1월 1일!
어제저녁이다!
천문석은 잠에서 깨어난 후 줄곧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자신도 모르게 돌아가는 시선!
타타탕-
한강 북쪽에선 총성이 울리고!
부르르릉-
발아래에선 엔진 진동이 느껴진다!
그리고 사방에서 보이는 모습들!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
“초능력자 사진은 못 찍었습니다!”
“아니! 누군지도 확인을 못 했다니까요!”
“여기 현장 지휘관이 완전 꼴통입니다! 전혀 협조가 안 돼요!”
“국장님이 정부에 이야기 좀 해 주세요!”
……
휴대폰 통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화약과 내연 기관, 전자기기가 모두 살아 있다!
북한산!
EMP 마력 폭풍이 터지는 북한산에 무언가 일이 생겼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거대괴수!
원래라면 북한산 국립공원에서 뽀미에게 당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대괴수!
마력 폭풍이 터지지 않는다면 거대괴수를 처리할 등급외 각성 동물 뽀미는 없다.
평범한 삼색 새끼 고양이가 있을 뿐이다!
‘지금은 끊어진 성수대교를 이을 때가 아니다!’
“염동! 우리 바로 움직여야 한다!”
천문석은 외침과 동시에 트럭 조수석으로 달려가 두들겼다.
“대령님 저희 급히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차량……!”
“오토바이가 더 빠를 겁니다! 트럭 세워라. 최 병장! 오토바이!”
이유도 묻지 않고 바로 트럭을 세우고, 길을 열던 오토바이를 부르는 이 대령.
“감사합니다! 대령님!”
천문석은 바로 뛰어내려 오토바이를 탔다.
부아앙-
오토바이가 180도 회전하는 순간 오토바이 뒤에 실리는 무게!
볼 것도 없이 마혁진이다!
“잠깐만! 염동이라고요?!”
“거기 염동 대협입니까?!”
“찍어! 빨리 사진 찍어!”
“인터뷰! 잠시만 인터뷰 좀……!”
기자들이 밀려오는 순간 오토바이는 단숨에 가속해 영동대교 북단을 향해 달렸다.
“야! 뭐야?! 지금 무슨 일……?!!”
“잠깐만!”
천문석은 마혁진의 말을 끊고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파파팟-
불꽃이 튀는 순간 머릿속에 동선이 그려지고 계획이 세워졌다.
-장철 헌터와 만나기로 약속한 청담대교!
-포병 사격을 위해 거대괴수를 유인한 어린이 대공원!
-EMP 마력 폭풍이 터지고 뽀미가 있을 장소, 북한산 국립공원!
청담대교, 어린이 대공원, 북한산 국립공원!
최선은 어린이 대공원에 포격을 쏟아부어 거대괴수를 끝장내는 것!
차선은 강철해머 장철과 염동 대협 마혁진 그리고 자신까지 셋이 거대괴수를 처리하는 것!
최후의 방법은 거대괴수를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유인하고 EMP 마력 폭풍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 거다!
“야, 앞에 사람!”
다급한 외침!
트럭 행렬이 끝나고 피난민이 가득한 다리가 나타났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오토바이를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쿠우웅, 부아아아앙-
오토바이는 영동대교 난간 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장철 헌터가 돌아올 청담대교!
거대괴수가 유인된 어린이 대공원!
EMP 마력 폭풍이 터졌어야 할 북한산 국립공원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