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63화 (96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63화>

‘힘을 내라 특급 헌터! 카캬카-.’

내심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문득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

‘잠깐?! 장민 대표님이 온다고?!’

웃을 때가 아니다!

오늘 광화문에서 일어난 난장판!

특급 헌터도 이 난장판에 끼어 있었다.

아니, 끼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난장판을 만드는데 한몫했다!

용역과 헌터 수천 명이 뒤엉켜 패싸움을 벌인 광화문 광장을 가로지르고.

재앙급 마수와 국가 헌병대, 헌터 부대, 각성 헌터가 추격전을 벌인 태성 빌딩에도 나타났으니까!

마력 오염이 발생하고 재금 연구소가 출동해 감쪽같이 모든 게 묻힌 상황이지만, 일어났던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민 대표에게는 오늘 일어난 사실을 전부 말해 줘야 했다.

장민 대표님은 특급 헌터의 엄마니까.

“…….”

이 순간 장민 대표의 분노한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일정이 엇갈리기에 직접 만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임시 보호자로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반드시 전해야 한다.

“대표님께 꼭 전해야 할 말이 있는데…….”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떼는 순간.

황 비서는 고개를 저으며 태블릿을 꺼냈다.

“괜찮습니다. 오늘 일어난 일. 대표님께선 이미 짐작하고 계십니다.”

“……네? 알고 계신다고요?”

“직접 들어 보시는 게 빠르겠네요.”

톡, 톡-

태블릿 잠금을 풀고 앱을 실행시키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연! 왜 내 천공탑 앞에서 먹는 거야?! 저기! 거실 가운데로 넓은 데로 가란 말이야! 여기는 좁잖아!]

[흐흐흣- 특급 헌터. 설마 너 겁먹은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특급 헌터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특급 헌터와 류세연의 목소리!

“……!”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모습!

천공탑 바로 앞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는 류세연과 파티마, 찢어진 골판지 상자를 붙잡고 항의하는 특급 헌터가 보였다!

“설마 이거?!”

황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미아 방지용 모듈’입니다. 저번 강릉 이상 던전 사건이 터지고 나서 VIP가 차고 있는 헌터용 시계를 개조해 장착했습니다. 전원이 꺼지거나, 긴급 신호에 응답이 없으면 원격으로 연결해 주위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건 말이 미아 방지용 모듈이지 도청기나 다름없는 물건이다.

황당했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조치였다.

특급 헌터는 해운대에서 헌터용 시계를 끄고 엄마를 피해 특급 쌩쌩이로 도망친 전적이 있었으니까!

특급 헌터는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처럼 엄마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이건 비밀 유지 부탁드립니다. 혹시 VIP가 충격을 받을 수도 있어서…….”

황 비서는 조심스레 말했다.

자신이 암묵적인 보호자이기 때문에 말해 준 것.

도망치려는 특급 헌터 vs 잡으려는 장강 유통 비서실.

치열한 싸움에서 장강 유통 비서실이 한발 앞서 나갔다.

천문석은 내심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걱정 마세요. 비밀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출발은 8시 30분에 하는 거로 하죠.”

“감사합니다. 인천 공항으로 출발할 차량은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혹시 더 도와드릴 일 있을까요?”

황 비서는 연신 고개를 숙이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지만. 지금 남중국 쪽에서 회사가 추진 중인 일이 하나 있어서, 남중국 쪽으로 가신다면 도움을 드릴 수 있는데…….”

장강 유통의 엄청난 인맥과 영향력을 생각하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의 본질은 ‘한경석 가출 사건’이다.

도움을 받는 순간 자세한 사정이 밝혀지고, 대인전 랭커 암살검 한경석의 명성에 금이 간다.

이번 일은 최소한의 인원만 아는 채로 최대한 조용하고 신속하게,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처리하는 게 최선이다!

“아뇨. 괜찮습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언제든 제 번호로 연락 주세요.”

천문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8시 30분까지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파티마와 장갑 SUV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출발하면 된다!

이때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네요. 출발하실 때쯤이면 대표님이 타신 전용기가 도착할 테니. 주위에 포위망을 만들고 어떻게든 30분만 붙들고 있으면 대표님이 오시겠네요. 하아아-.”

애증 어린 얼굴로 창문 너머 거실을 바라보며 한숨 쉬는 황 비서.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출발하는 시간 8시 30분.

장민 대표님의 도착 시각 8시 30분.

자신이 떠나고 장민 대표님이 올 때까지 특급 헌터를 마크해야 하는 시간이 황 비서에게는 너무나 길게 느껴질 거다.

“제가 조금 도와드릴까요? 기운을 좀 빼놓으면 수월할 것 같은데…….”

“정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황 비서가 반색해서 연신 고개를 숙일 때.

천문석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며 외쳤다.

“특급 헌터, 승부 어떠냐?”

“특급 헌터는 승부를 피하지 않는다!”

찢어진 골판지 상자를 든 채로 벌떡 뛰어나오며 외치는 특급 헌터!

앞으로 1시간!

특급 헌터의 모든 에너지를 태워 버릴 승부가 시작됐다!

그리고 이 순간, 천문석과 인과가 이어진 이들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사님. 최대한 빨리 인천 공항으로 가주세요!”

-김태희 대령은 자신의 키만 한 무장 상자 캐리어를 짐칸에 싣고, 인천 공항행 콜밴에 올라탔고.

“말도 안 돼! 이게 가능하다고?!”

“이 정도면 마도 엔진의 출력을 30%까지 끌어올릴 수 있겠어요!”

-김철수 발명가와 추이린 수석 연구원은 광화문 골목에서 발견한 빛의 나무가 그려진 벽과 바닥을 통째로 뜯어내 천공섬으로 옮기고 경악했으며.

“오빠랑 경석이가 잘할 텐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하아-.”

-장민 대표는 장철 헌터와 한경석에게 남일도의 던전 개척을 맡긴 후, 전용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천문석이 알게 되는 순간 모든 게 바뀔 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아득한 하늘의 인과는 사람의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는 법!

천문석은 쭉쭉 뻗어 나가는 인과는 까맣게 모른 채.

특급 헌터의 에너지를 날려 버릴 치열한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자신이 아닌 파티마를 앞세워서!

* * *

옥탑방 거실에선 탄성과 탄식이 교차했다.

“으아아-! 이겼어! 내가 이겼어!”

특급 헌터의 환호성이 터져 나올 때.

“어, 어어? 어어어?!”

바람검 파티마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홀짝, 젠가, 야바위, 구슬치기, 동전 앞뒤 맞추기……!

지난 한 시간 동안의 모든 승부에서 졌다!

‘아무리 내공을 사용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진다고?!’

파티마가 귀신에 홀린 듯한 얼굴로 환호하는 꼬맹이를 바라볼 때.

천문석은 눈을 번뜩이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의 경지가 오른다는 것은 단순히 내공과 외공의 수준이 오르고 무위가 강해지는 것만이 아니다.

무공의 시작은 호흡!

들숨과 날숨. 한 줌 호흡으로 하늘의 정기와 땅의 신령과 교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경지가 초절정에 이르게 되면 그 말과 행동에 천지 만물이 교감한다!

그 결과 운이 미친 듯이 강해진다!

즉, 지금 눈앞에 일어나는 상황은 그 자체로 말도 안 됐다!

연패 중인 ‘초절정 무인’, 파티마.

연승 중인 ‘동네 꼬맹이’, 특급 헌터.

그러나 이건 이미 자신이 기동 병참 도시에서 겪었던 일이다!

전생의 자신은 하늘의 정기와 땅의 신령과의 교감을 넘어!

하늘, 사람, 대지, 천지인(天地人)을 하나로 이어, 천기와 용맥에 고했다!

육신은 천강의 불길에 한 줌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으나, 그 사실은 존재의 본질에 새겨져 있다!

그런 자신이 특급 헌터와의 승부에서 졌다!

그것도 그냥 진 게 아니라 완벽한 패배!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연패했다!

아무리 내공을 쓰지 않았다고 해도 말도 안 되는 일!

그 의문이 파티마 알사우드의 연패를 보는 지금 풀렸다!

불패의 승부사!

특급 헌터의 비밀!

그건 바로 초절정 무인조차 감지하지 못한 ‘기이한 바람’이었다!

텔레비전 옆에 놓인 아수라 조각상에서 살금살금 불어오는 기이한 바람!

‘휘잉휘잉.’

그렇다!

특급 헌터의 불가능한 연승은 아수라 조각상에 깃든 특이한 신령, ‘휘잉휘잉’의 도움 때문이었다!

휘잉휘잉이 파티마와 특급 헌터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승부 조작을 하고 있던 거다!

특급 헌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기도박으로 벌이고 있었다!

깨달음의 순간 마지막 승부!

특급 헌터의 압착 딱지가 떨어져 내렸다!

쿠우우웅-

파티마의 딱지가 발딱 60도 각도로 일어서고.

“됐어! 안 넘어갔어! 내 차례…….”

파티마가 혼을 실을 외치는 순간, 핑그르- 한 바퀴 회전해서 뒤집히는 딱지!

마치 현실 물리 엔진이 고장 난 듯한 기괴한 움직임!

“……?!”

“와, 이게 어떻게 넘어가?!”

파티마가 말을 잇지 못하고.

류세연이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특급 헌터는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내가 이겼어! 알바! 이제 여기 누나가 내 소원 들어줘야 하는 거 맞지?!”

“혹시 반론 있냐?”

“…….”

파티마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특급 헌터 승리!”

천문석이 승리를 선언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바로 외쳤다.

“내 소원은 하늘 잇는 거야! 일곱 번 연속으로 이을 거야! 누나 얼른 이마 까!”

“하늘을 잇는다고?”

의아해하던 파티마는 이어지는 꼬맹이의 행동을 보고 그 의미를 알아챘다.

이야압, 얍얍-!

기합과 함께 양손으로 허공에 딱밤을 날리는 꼬맹이!

딱밤!

아이다운 생각이다!

파티마는 피식 웃으며 모자를 벗고 머리카락을 걷어 올렸다.

“좋아! 약속은 약속! 원하는 만큼 딱밤 날려라! 꼬맹이.”

“……!”

순간 번뜩이는 눈빛과 함께 맹렬하게 회전하는 양팔!

이야야아압-!

기합 소리가 커지고.

붕붕, 붕붕붕-

회전하는 팔이 점점 빨라졌다.

그리고 특급 헌터의 양손이 쏘아지는 순간.

“하늘을 잇는다!”

몸은 번쩍 하늘로 들리고 딱밤은 휭- 허공을 갈랐다!

특급 헌터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을 들어 올린 사람에게 외쳤다.

“알바! 승부는 신성한 거야! 특급 헌터 사전에 봐주는 건 없어!”

“야, 봐주라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소원이 생각나서 그래. 귀 좀.”

천문석은 특급 헌터의 귓가에 속삭였다.

[@ㅁ@!!]

충격으로 번쩍 뜨이는 눈.

특급 헌터는 바로 외쳤다!

“하늘 잇는 거 취소! 내 소원은 다른 거야!”

“뭔데 꼬맹이?”

파티마가 웃음을 삼키며 묻는 순간.

특급 헌터는 즉시 소원을 말했다.

“누나, 앞으로 지렁이 먹는 거 금지야! 절대! 절대로 지렁이 먹지 마!”

충격으로 커진 눈과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말한 소원.

‘지렁이 먹는 것 금지.’

이 순간 파티마는 너무나 유쾌해졌다.

이세계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서 느꼈던 이질감을 한 번에 날려 버릴 정도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것이 사막 왕국과 원 대륙과는 너무나 다른 게이트 너머의 세계, 한국.

그러나 너무나 다른 한국, 사막, 원 대륙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눈앞의 꼬맹이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

‘승부에서 이기고 외친 소원이 지렁이를 먹지 않는 거라고!’

파티마 알사우드.

무의 극을 찾아 게이트를 넘어온 무인은 이 순간 진심으로 즐거워졌다.

그래서 장난스럽게 반문했다.

“그럼. 개미는 먹어도 되는 거지?”

“당연히 개미도 안 되지!”

특급 헌터는 버럭 소리치고 다급히 말을 이었다!

“다른 것도 전부 다 안 돼! 매미, 풍뎅이, 사슴벌레, 하늘소, 잠자리, 여치, 소금쟁이…….”

손가락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숨이 차도록 곤충 이름을 외치는 꼬맹이.

그리고 그 뒤 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자신에게 승부를 명한 스승님 천문석.

스승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어째선지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소녀.

세 사람의 모습을 보는 순간, 파티마는 어째선지 자신이 최고의 선택을 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기에 손을 들어 말을 끊고 맹세했다.

“알았어. 곤충 안 먹을게.”

“아, 그렇지. 곤충이라고 말하면 되는구나…….”

꼬맹이가 고개를 끄덕일 때 파티마는 툭 던지듯이 말을 이었다.

“그럼 개구리는 먹어도 되는 거지?”

“…….”

멍한 얼굴로 자신과 스승님, 그 옆에 찰싹 달라붙은 소녀를 번갈아 보는 꼬맹이.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는 순간.

3, 2, 1. 폭발했다!

“으앗- 으아앗-! 알바! 이 누나 이상하다니까! 왜 자꾸 이상한 걸 먹으려고 하는데?! 고기! 한국 사람이면 고기를 먹으란 말이야! 맛있는 한우가 있는데! 왜 개구리를 먹으려고 해! 한우를 먹으란 말이야! 한우! 특히 등심이 맛있어. 앗! 잠깐……! 누나! 고등어! 고등어 좋아해?!”

“고등어? 물고기 좋아하는데?!”

다다다다닥-

특급 헌터는 번개같이 달려 파티마를 꼭 끌어안고 외쳤다.

“훌륭해! 아주아주 훌륭해! 누나는 합격이야! 환영해! 이제 앞으로 고등어 누나……!”

“파티마라고 불러 주렴.”

“파티마 누나! 우리 이제 친하게 지내는 거야!”

분통을 터트리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느새 영웅을 바라보듯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특급 헌터.

“……삼촌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천문석은 간단하게 설명했다.

“특급 헌터가 비교 우위, 무역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비교 우위?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특급 헌터한테는 고등어의 가치가 0에 수렴하거든. 그리고 이제 팔짱 낀 거 풀지?”

흠칫 놀라 슬그머니 팔짱을 푸는 세연.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옥상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옥상 창문에 나타난 황 비서가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다.

약속된 신호!

옥탑방 주위에 포위망이 완성됐고!

장민 대표님이 전용기에서 내려 옥탑방으로 출발했다!

지금 시간은 8시 20분!

이제 특급 헌터를 떼어 내고 인천 공항으로 출발할 때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