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880화>
닥터 박!
박찬호 검사관!?
‘진짜 각성 검사관이라고!?’
황당해하는 시선이 쏟아지는 순간.
특급 헌터는 번쩍 명함을 꺼냈다.
“찾았어! 여기 검사 할아버지 명함이야! 바로 전화 걸게!”
“잠깐! 스피커폰 돌렸으니까! 이 보안 전화기로 걸면 된다! 스마트폰은 이 안에서 먹통이야.”
특급 헌터는 박찬호 검사관이 건네준 전화기 버튼을 호쾌하게 두들겼다.
띠리리, 딸각-
전화가 연결되는 순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찬호? 야 나 지금 바쁘니까……!
“잠…….”
“앗!”
박찬호 검사관과 특급 헌터 두 사람이 다급히 외치려 할 때 전화기 너머에서 한발 먼저 들려오는 목소리.
-……또 야채, 편식 이야기할 거면 끊어라!
“……!”
“……!?”
노인과 꼬맹이가 허를 찌르는 이야기에 멈칫하는 순간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아- 찬호야 철 좀 들어라.
딸깍-
전화는 끊겼고 사무실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하아-
박찬호 검사관은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당근 주스를 특급 헌터 앞으로 쓱- 밀었다.
“진실을 밝히는 건 힘들구나.”
“맞아. 진실을 밝히는 건 힘들어!”
특급 헌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찬가지로 당근 주스를 쓰으윽- 앞으로 밀었다.
“…….”
박찬호 검사관은 한참을 말없이 특급 헌터를 바라보다가 툭 내뱉었다.
“……너 진짜 이러기냐?”
“응! 친구랑 약속해서! 어쩔 수 없어!”
특급 헌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놓인 상자를 들어 책상 위에 올려놨다.
“내 친구가 의사 할아버지 엄청 걱정해! 그러니까! 꼭꼭 모두 다 마셔!”
특급 헌터는 당근 주스가 가득 담긴 상자를 내밀며 환하게 너무나 환하게 웃었다.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천문석은 문득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반사적으로 손으로 시선을 내리자 눈에 익은 팩에 담긴 포도 주스가 보였다.
어린이 음료!
키즈카페에 무한 공급되던 어린이 젤리와 같은 회사의 어린이 음료다!
“특급 헌터! 이 음료수! 키즈카페 어린이 젤리랑 같은 회사제품이지?”
“맞아! 내 친구네 아빠가 하는 공장에서 만드는 거야! 여기 의사 할아버지가 내 친구 할아버지야!”
꼬맹이가 내민 당근 주스를 보며 고뇌하는 표정으로 서 있는 박찬호 검사관!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순간 이 말도 안 되는 모습에 사정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특급 헌터의 입에서 그 사정이 튀어나왔다!
“의사 할아버지가 당근 주스 마실 때마다 어린이 젤리를 가져다줘! 당근 주스 안 마시면…….”
특급 헌터는 전화기를 번쩍 들고 말을 이었다.
“친구한테 전화하면 엉엉 울어! 완전 잘 울어! 중학생 언니랑 둘이서 하루 종일 운다니까!”
“…….”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봤다.
-박찬호 검사관이 당근 주스를 마신다.
-특급 헌터에게 어린이 젤리가 배달된다.
-어린이 젤리가 키즈카페 꼬맹이들에게 공급된다.
-키즈카페 비정규직 부점장이 허리가 끊어지도록 걸레질을 한다.
-특급 헌터는 다시 박찬호 검사관에게 당근 주스를 내민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한히 이어지는 연쇄!
키즈카페에 무한히 공급되던 어린이 젤리에는 이런 비밀이 있었던 것이다!
이 놀랍고 황당하며 어이없고 하찮은 인과라니!
하, 하하-
천문석이 허탈하게 웃는 순간.
박찬호 검사관은 힘없이 말했다.
“야, 그 어린이 젤리 내가 사줄게. 이제 그만…….”
특급 헌터는 깜짝 놀라 외쳤다.
“아, 아앗! 의사 할아버지! 깜박했어! 잠깐만 나 단풍놀이 가서 받아 온 거 줄게! 당근 주스랑 같이 먹어!”
“뭐? 야, 잠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낭이 열리고 후두둑 음식들이 책상 위로 쏟아졌다.
훈제 계략, 바나나 우유, 빵, 구운 옥수수, 오이……!
“야! 뭐가 이리 많아! 그만해! 그만 당근 주스 먹는다고! 먹어! 그만해 그만 쏟아!”
* * *
허무한 결론이 난 후 천문석은 대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특급 헌터가 매주 각성 검사하러 올 때마다 익숙한 일이거든요. 사실 선생님께서는 왜 안 오는지 궁금해하고 계셨어요.”
간호사는 웃으며 대답하는 순간.
박찬호 검사관이 버럭 소리쳤다.
“내가 언제!”
김 간호사는 미소를 띤 얼굴로 반문했다.
“진짜 말씀드릴까요?”
박찬호 검사관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며 헛기침을 하더니 자기소개를 했다.
“흠, 흠. 닥터 박. 박찬호다. 그런데 왜 온 거야? 혹시 심리 상담받으려고?”
뒤로 물러서 있던 황 비서가 재빨리 나섰다.
“그게 아니라 각성 검사 때문에 왔습니다!”
“각성 검사?”
박찬호 검사관의 의아해하는 시선이 류세연, 한경석, 천문석을 지날 때.
특급 헌터는 손을 번쩍 들었다.
“……또 너야? 너 오늘도 각성 검사받으려고?”
특급 헌터는 번쩍 든 손으로 옆에 선 류세연을 가리켰다.
“오늘은 내가 아니라. 아니지 나도 받을 거긴 한데! 세연 누나가 주인공이야! 세연 누나 마력 각성했어!”
“마력 각성자!”
박찬호 검사관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진짜로 마력 각성한 거야!? 기초 검사는 끝났고!? 잠깐! 나이가 너무 어린데? 각성몽은? 마력장은 느낀 거야!?”
특급 헌터는 자랑스레 앞으로 나서 대답했다.
“세연 누나 고3이야! 어젯밤에 각성몽 꿨어! 그런데 무슨 꿈인지 잊어버렸데! 하지만 세연 구구단 엄청 잘 외어! 머리 완전 좋다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마력 각성이야!”
“…….”
잠시 침묵하던 박찬호 검사관은 탄성과 함께 질문을 던졌다.
“오! 각성몽을 꿨는데 잊어버렸다고? 너처럼?”
“맞아! 그렇다니까!”
“와! 그러니까 네 말은 구구단을 엄청 잘 외우는 게 마력 각성자의 증거라는 거지?”
“맞아! 보여 줄게! 세연 칠팔에!?”
“오십육…….”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고 순식간에 귓불이 달아오른 류세연!
‘봤지?’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펴는 특급 헌터.
‘이건 무슨 상황이야?’라는 얼굴로 특급 헌터와 류세연을 보는 박찬호 검사관.
‘이게 아닌데…….’라는 얼굴로 멍하니 선 황 비서.
몸을 반쯤 돌리고 간신히 웃음을 삼키는 김 간호사와 한경석까지.
모두가 특급 헌터에게 말려들어간 상황.
천문석은 내심 탄식했다.
‘세연아. 그걸 하란다고 하니…….’
이때 특급 헌터는 비장하기까지 한 얼굴로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봤지? 세연 누나는 구구단 완전 잘 외우는 초천재 마력 각성자가 될 거야!”
터질 듯이 달아오른 얼굴을 푹 숙이는 류세연.
천문석은 지금 류세연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자신도 류세연처럼 자랑은 특급 헌터가 하고 부끄러움은 자신의 몫이었던 수많은 순간을 겪었으니까!
그래서 천문석은 세연의 어깨를 툭 가볍게 두들겼다.
“……삼촌?”
류세연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했다.
“구구단을 완전! 잘 외우는 초천재 마력 각성자…… 풉- 카캬캌-!”
그러나 위로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직접 겪을 때와 달리 옆에서 구경하는 건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재밌었으니까!
“카캬캌- 구구단캌 초천쟄! 마렼캌성잨카카카-.”
천문석은 미친 듯이 웃었고 이 웃음에 간신히 웃음을 삼키던 한경석과 김 간호사가 빵- 터졌다.
푸흐흐흐흫-
흐흐흐흐흡-
사무실 안을 웃음소리가 가득 채우는 순간.
특급 헌터는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당당히 외쳤다.
“봤지? 전부 다 웃잖아! 내 감이 맞다는 뜻이야! 분명 세연은 각성했어! 마력 각성자야!”
“네 감이 맞아서 웃는 거라고? 하, 하하-.”
박찬호 검사관은 허탈하게 웃다가 버럭 소리쳤다.
“야! 꼬맹이 네 감이 맞았으면 넌 각성만 10번 넘게 해야 했어! 그놈의 감이 왔다고 각성 검사받을 때마다! 계속 꽝꽝꽝꽝이었잖아! 아니 무슨 각성 검사를 일주일에 한 번씩 받아! 너 내 몸값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김 간호사 내 상담비가 얼마지!?”
“훕- 죄송합니다. 10분당 19만 원이십니다.”
“예약 얼마나 밀려 있지!?”
“네? 예약이요? 예약은 지금 이거 한 건…….”
‘아차! 각성 준비한다고 예약 안 받은 지 좀 됐지!’
박찬호 검사관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들었지!? 이제 그냥은 안 돼! 오늘도 각성 꽝이면, 이 당근 주스 전부 네가 먹는 거다! 딜!?”
“……!”
특급 헌터의 시선이 류세연에게 닿았다.
“누나를 믿어! 확실해! 난 각성했어!”
류세연이 달아오른 얼굴로 외치는 순간.
특급 헌터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리고 번쩍 퐁퐁검을 들어 움직였다.
류세연!
황 비서, 한경석, 자기 자신!
그리고 마지막으로 퐁퐁검이 천문석에서 멈추는 순간 외쳤다.
“난 알바를 믿어!”
“카캬…… 어, 잠깐! 세연이가 각성 검사를 받는데 날 왜 믿어!?”
알 수 없는 불길함에 재빨리 제지하려는 순간 이어지는 외침.
“특급 헌터와 특급 알바는 함께 재밌게 논 전우야! 전우는 하나야! 그러니까! 난 알바를 믿어!”
“아니, 그러니까 믿지 말라……!”
박찬호 검사관의 외침이 말을 끊어 버렸다.
“훌륭하다! 꼬맹이! 그렇지! 전우는 하나지! 이번엔 확실하냐!? 꼬맹이!”
“확실해! 느낌이 와! 난 알바를 믿어! 혹시 이 승부에서 진다고 해도! 후회는 없어! 나랑 알바! 우리는 당근 주스를 같이 먹을 거야!”
“야! 갑자기 난 왜! 잠깐만 무효……!”
갑자기 튄 불똥에 다급히 제지하는 순간 양팔에 실리는 무게감!
“경석아, 세연아?”
천문석의 양팔을 잡은 한경석과 류세연은 환하게 웃으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난 친구를 믿어!”
“난 삼촌을 믿어!”
“특급 헌터! 만약 승부에서 지면!”
.”삼촌이 당근 주스 다 마셔 줄 거야!”
.”……!”
황당함에 말문이 컥 막히는 순간.
박찬호 검사관은 주먹을 내밀며 외쳤다.
“좋아! 이번 승부 받아들이겠다! 딜?”
“딜!”
콩, 콩, 콩-
특급 헌터와 박찬호 검사관과 주먹이 세 번 부딪혔다.
그리고 박찬호 검사관은 외쳤다.
“좋아! 바로 각성 검사 시작한다! 김 간호사?”
“네! 선생님 각성 검사실 시간 빼뒀으니 지금 바로 가시면 됩니다!”
“이쪽이야! 모두 빨리빨리 따라와!”
특급 헌터는 당근 주스가 가득 담긴 상자를 번쩍 들고 사무실을 나서 복도를 다다닥- 달렸다.
“야! 뛰지 마!”
박찬호 검사관과 김 간호사가 바로 그 뒤를 따르고.
“가자 친구!”
“빨리빨리 가야지 삼촌!”
한경석과 류세연이 천문석의 팔짱을 낀 채로 연행하듯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얼굴의 황 비서가 문을 닫고 뒤를 따라갔다.
쿵-
* * *
특급 헌터를 선두로 각성 검사실로 가는 길.
박찬호 검사관은 문득 물었다.
“꼬맹이 너 저번 주는 왜 검사 받으러 안 왔냐?”
“나 알바랑 엄청 재밌게 놀았거든! 내가 잘 이야기해 줄게! 처음 시작은…….”
특급 헌터의 긴 이야기가 시작되려 한다!
“잠……!”
천문석이 소리쳐 말을 끊으려는 순간.
박찬호 검사관이 한발 먼저 소리쳤다!
“각성 검사!”
“응?”
“너 왜 매주 각성 검사받냐? 미성년자 각성 확률은 거의 없어. 혹시 몰랐냐?”
“당연히 알아! 하지만 특특급 헌터 되려면 어쩔 수 없어! 알바한테 들었는데 요새는 각성이 두 번째 수저 결정이래!”
천문석은 양쪽에서 쏘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삼촌 애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
“친구…….”
류세연이 어이없어하고 한경석이 고개를 저을 때.
박찬호 검사관은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긴 하지. 하아- 요새는 의사도 각성해야 해. 의학계의 트렌드 자체가 변했어. 흉부, 신경, 성형, 피부, 치과, 내과…… 전부 각성력이 있어야 한다니까. 치유 능력과 결합한 의술은 차원이 달라. 수술 성공률, 회복 속도 모두 비교가 안 돼. 에휴- 나도 각성을 해야 하는데…… 그래서 좋은 기운 받겠다고 게이트 방벽에 사무실까지 냈는데. 언제 각성하는 거야…….”
“힘내! 의사 할아버지! 우리 꼭 힘내서 각성하자! 특급 의사! 특특급 헌터가 되는 거야!”
특급 헌터는 힘내라는 듯 박찬호 검사관의 등을 두들겼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꼬맹이가 초로의 의사를 토닥이며 위로하는 광경.
“…….”
“…….”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광경에 모두가 말을 잊는 순간.
박 찬호 검사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힘내…… 어, 잠깐! 야! 난 그냥 특급인데 넌 왜 특특급이야!?
“난 지금도 특급 헌터니까 그렇지! 당연히 각성하면 특특급 헌터가 되는 거야!”
“와! 이 긍정적인 녀석! 미성년자 각성 확률 거의 제로라니까! 솔직히 네가 특특급 헌터 되는 거 보다! 내가 이중 각성해서 특특특급 의사 하는 게 더 빠르겠다!”
“아냐! 이번에는 감이 왔어! 나 오늘 엄청 운 좋아! 알바! 알바가 말 좀 해 줘!”
“무슨 말?”
“아까! 알바랑 같이 단풍 구경 간 북한산에서 내가 보석 주웠잖아! 보석!”
“뭐! 보석! 보석 원석 주운 거야!”
“보석이라고!?”
“북한산에 보석이 나와요!?”
“진짜로 보석 주운 거야!”
깜짝 놀란 외침이 쏟아지고 호기심 어린 시선이 모여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특급 헌터는 보석을 주웠다.
이름이 보석인 10점짜리 돌멩이를 주웠으니까!
“특급 헌터가 주운 보석은 10점짜리 돌멩이…….”
천문석이 진실을 말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한껏 고개를 치켜들고 외쳤다.
“모두 들었지! 오늘 나 엄청 운 좋아! 분명 각성할 거야! 혹시 각성 못하면 이거 전부 다 알바가 마실 거야!”
특급 헌터는 당근 주스가 가득 담긴 상자를 번쩍 들고 바로 앞에 나타난 문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외쳤다.
“할 수 있다! 할 만하다!”
[각성 검사실]
“좋아! 승부다! 꼬맹이! 김 간호사 바로 세팅하고 시작하자!”
“네 선생님!”
뒤이어 박찬호 검사관과 김 간호사가 각성 검사실로 들어가고 복도에 탄식이 울려 퍼졌다.
“……그러니까. 왜 내가 당근 주스를 마시는 건데…….”
어느새 ‘우리’에서 ‘알바’가 당근 주스를 마시는 거로 변한 상황.
그러나 천문석의 의문에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친구! 얼른 들어가자! 크크큽-.”
“삼촌! 파이팅! 후후훜-.”
천문석의 양팔을 잡은 한경석과 류세연 두 사람만이 웃음을 삼키며 각성 검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
그리고 황 비서가 마지막으로 검사실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쿵-
헌터로 구른 지 수개월.
천문석은 마침내 각성 검사실에 오게 됐다.
류세연과 특급 헌터의 각성 검사를 받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