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879화>
성큼성큼 걸어 산에서 내려가는 천문석.
어깨 위에 목말을 탄 특급 헌터.
목말 태워 주는 아빠, 삼촌, 형.
어디서건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목말을 타고 있는 건 특급 헌터였다.
특급 헌터는 주위에 가득한 단풍놀이 행락객들에게 외쳤다!
“안녕하세요! 불고기 맛있어요! 야채 김밥은 조금만 맛있어요!”
“불고기 김밥! 우와앗! 완전완전 맛있어!”
“야채 김밥에 불고기를 올리면?”
“그건 불고기 김밥이 아냐!”
“모두 야채 김밥 말고 맛있는 불고기 김밥 드세요!”
“나는 못 먹었지만…….”
……
아이 특유의 앞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정신없는 외침이 계속 이어졌다.
천문석은 시선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때 주위를 걷는 사람들이 수군대다가 성큼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꼬마야. 이 초코파이 먹어!”
“이 오이도 먹으면서 가라.”
“이거 참치 김밥이거든 받아라.”
“누나 주스 많이 있거든. 이 주스 넣어 줄 게 가져가서 먹어.”
“초콜릿이랑 바나나 우유야. 내려가서 형이랑 먹어. 알았지?”
……
초코파이, 오이, 김밥, 초콜릿, 우유…….
천문석에게도 먹거리를 건네며 말한다.
“힘내세요!”
“아들? 동생? 하…… 힘내라.”
“하아- 원래 젊을 때는 힘든 거야.”
“이거 부담 갖지 마라. 동생 같아서 주는 거다.”
툭, 툭- 팔과 어깨를 두들기며 손에 주머니에 배낭에 넣어 주는 먹거리와 지폐들!
“……!”
얼떨결에 받는 순간 어깨 위에서 씩씩한 대답이 들려왔다.
“우앗! 감사합니다! 특급 헌터입니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특급 헌터는 목말을 탄 채로 활짝 열린 배낭을 앞으로 내밀고 사방에 꾸벅꾸벅 인사하기 시작했다!
후두두두둑-
배낭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음식, 동전, 지폐들!
“우와, 우와! 감사합니다! 알바 우리 요플레! 요구르트 사 먹을 수 있어! 우리 이제 부자야! 카카카캌-.”
특급 헌터가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배낭에 들어오는 먹거리와 동전 지폐의 수가 더 많아졌다!
‘아니, 잠깐 이게 뭐야!? 설마……!?’
천문석은 번쩍 고개 들어 목말 탄 특급 헌터의 모습을 살폈다!
낙엽과 흙이 곳곳에 달라붙은 옷!
크리스털 병을 돌려보낼 때 일어난 마력 폭풍 때문이다!
문득 고개를 내리니 자신의 모습도 특급 헌터와 다르지 않았다!
순간 머리에 섬광이 번뜩이고 어떻게 된 상황인지 감이 왔다!
낙엽과 흙이 잔뜩 묻은 옷을 입은 청년과 꼬맹이가 등산로를 내려 오고 있다.
이때 꼬맹이가 외친다.
‘모두 야채 김밥 말고 맛있는 불고기 김밥 드세요! 나는 못 먹었지만…….’
“……!”
천문석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달았다!
지금 주위의 등산객들은 자신과 특급 헌터를 깊은 감정이 담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안쓰러움!
자신과 특급 헌터를 안쓰럽게 불쌍하게 보고 있었다!
즉, 지금 초코파이, 참치 김밥, 우유 같은 먹거리와 동전, 지폐를 주는 건!
동정이었다!
‘120억 자산가(예정)인 자신과 진짜 재벌 2세 특급 헌터를 동정한다고!?’
“잠깐! 그런 거 아닙니다! 이 녀석 점심 제대로 먹었어요! 부자집! 얘 엄청난 부자집 아이에요!”
“……괜찮아!”
“그래! 맞아 부끄러운 게 아냐!”
“나도 소싯적에는 힘들었어! 힘을 내!”
안쓰러운 얼굴로 어깨를 두들기는 사람들!
‘틀렸다! 전혀 믿지 않는다!’
이때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특급 헌터의 배낭!
저 배낭은 캐부자의 상징! 장철 헌터의 공간 확장, 무게 경감 배낭이다!
“특급 헌터 그 배낭…….”
이때 아주머니 한 분이 성큼 다가와 특급 헌터에게 보자기를 내밀었다.
“이거 불고기 김밥이야. 이거 가져가서 형이랑 같이 먹어…….”
“앗! 알바! 진짜 불고기 김밥이야! 우리 불고기 김밥 먹을 수 있어! 으아, 으아앗! 감사합니다!”
“많이 먹고 힘을 내야 한다.”
특급 헌터가 불고기 김밥을 번쩍 들고 환호하는 순간.
물기 어린눈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특급 헌터의 손을 꼬옥 잡아 주시는 아주머니.
“흠, 흠-.”
“하, 비가 오나…….”
“그러게 물방울이 떨어지네.”
……
사방에서 헛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괜스레 하늘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상황.
천문석은 고개를 돌려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류세연, 한경석, 장민 대표.
그러나 세 사람은 일행이 아닌 듯 멀리 떨어져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파들파들- 몸을 떨고 있었다.
“…….”
장갑 SUV를 주차한 백운 탐방 지원 센터에 도착할 때까지 특급 헌터의 외침은 계속 이어졌다.
“감사합니다! 특급 헌터입니다! 잘 먹겠습니다! 알바 우리 완전 부자 됐어! 카카캌-.”
이렇게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재금 그룹과 헌터 부대가 북한산 곳곳에 설치한 검문소를 통과했다.
* * *
끼이이익-
장갑 SUV가 광화문 광장에 멈추는 순간.
배낭을 멘 특급 헌터가 제일 먼저 뛰어내렸다.
“나 완전 부자 됐어! 단풍놀이 최고야!”
그리고 그 뒤로 천문석과 류세연, 한경석, 장민 대표가 차에서 내렸다.
장민 대표는 바로 앞 광화문 게이트 지역을 둘러싼 방벽을 가리켰다.
“같이 가려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겼네요. 광화문 게이트 지역 입구에 가면 황 비서가 대기하고 있을 거예요. 특급 헌터는…….”
빵빵해진 배낭 안을 보며 신나 하던 특급 헌터는 재빨리 말을 쏟아 냈다.
“장민! 난 알바랑 같이 갈게! 나 각성 검사 계속계속 받아서 저기 완전 잘 알잖아! 닥터 박 의사 할아버지랑 김 간호사 누나도 나 보고 싶을 거야! 알바, 세연, 경석! 길 잃을지도 모른다니까! 내 도움이 꼭 필요해! 그러니까…….”
장민 대표는 말을 쏟아 내는 특급 헌터를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 짓더니 문득 고개 돌려 천문석을 봤다.
장민 대표의 의미심장한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 천문석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장민 대표는 이미 특급 헌터의 오늘 계획을 알고 있었다!
특급 쌩쌩이 3호!
‘미안하다! 특급 헌터!’
천문석은 마음으로 사과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장민 대표는 손을 뻗어 특급 헌터 얼굴 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딱-
순간 특급 헌터의 외침이 멈추고 간절한 눈빛,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민. 나 알바랑 같이 가도 되지?”
장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와아아- 됐어! 됐다고! 알바 우리 성공했어! 오늘 엄청 운이 좋아! 카카카캌-.”
특급 헌터가 환호성을 터트리는 순간.
장민 대표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 돌려 말했다.
“알바씨. 그럼 부탁드려요. 아, 이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처리할게요.”
장민은 추적기가 담긴 보안 상자를 흔들어 보이고 장갑 SUV를 타고 멀어졌다.
“휴우- 다행이야! 모두 빨리 따라와! 각성 검사는 내가 완전 전문가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특급 헌터를 선두로 천문석, 류세연, 한경석은 광화문 게이트 지역을 향해 걸었다.
곧 횡단보도가 나오고 그 건너편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앗! 황 비서 누나! 우리 여기 있어!”
* * *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바로 각성 검사받으실 수 있게. 검사관님과 예약…….”
“알바! 이쪽이야! 닥터 박 의사 할아버지 사무실 이쪽이야!”
특급 헌터는 넓은 복도를 앞장서 걸었다.
천문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돌아봤다.
이곳은 광화문 게이트가 있는 경복궁 전체를 둘러싼 장벽. 헌터 부대가 주둔한 거대한 장벽 안이었다.
밖에서는 여러 번 봤지만, 안으로 들어오는 건 처음이다.
창문이 없다는 걸 제외하면 보통의 건물과 다를 것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곳에는 각성 여부만 확인 가능한 보통의 검사 기계가 아닌 게이트 마력장을 이용한 정밀 각성력 검사 기계가 있었다.
이 정밀 각성력 검사 기계는 각성 여부뿐만 아니라 각성 계통과 수치까지 뽑아낼 수 있었다.
이 수치를 기반으로 검사관이 각성 계통과 등급을 판정한다.
여기서 확인되는 각성 계통과 각성 등급으로 헌터 업계의 출발선이 결정된다.
천문석은 문득 시선을 돌려 류세연을 봤다.
평소와 다름없는 느긋한 발걸음.
그러나 오랫동안 류세연을 알아온 천문석은 알 수 있었다.
‘이 녀석 긴장했구나!’
천문석은 툭 던지듯이 가볍게 말했다.
“뭘 그렇게 긴장해? 당연히 무공 각성이겠지! 카캬캌-.”
“아니거든! 마력 각성으로 나올 거거든!”
“누구나 각성 검사 전에는 그렇게 생각한다지?”
“아니거든! 경석 언니!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말없이 따라오던 한경석은 바로 대답했다.
“당연히 마력 각성이지! 세연은 천재잖아!”
봤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드는 류세연.
내심 웃음을 삼킬 때.
특급 헌터의 발걸음이 멈췄다.
“여기야!”
특급 헌터는 퐁퐁검으로 문을 가리켰다.
[닥터 박 사무실]
A4지에 인쇄한 간이 명패가 붙어 있는 강화 철문.
“여기라고?”
천문석의 물음에 황 비서가 대답했다.
“네, 여기 맞아요. 검사관님 사무실이에요.”
황 비서는 두 번 노크하고 문고리를 돌렸다.
“잠겨 있네요. 약속 시각까지 10분 남아 있으니…….”
특급 헌터는 번쩍 손을 들고 외쳤다.
“알바 나 좀 위로 올려 줘!”
“위로?”
천문석은 고개를 갸웃하며 특급 헌터를 번쩍 위로 들어 올렸다.
“고마워!”
특급 헌터는 씩 웃으며 퐁퐁검을 뻗어 강화 철문을 미친 듯이 두들겼다!
파바바바밧-
두두두두둥-
돌발 상황에 모두가 굳는 순간 철컥- 문이 열리고 분노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야, 이 꼬맹이 녀석! 내가 한 번만 두들기랬지!”
특급 헌터는 미꾸라지처럼 쓱 빠져나가 문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외쳤다.
“닥터 박 의사 할아버지! 간호사 누나! 안녕안녕! 나 오늘도 각성 검사받으러 왔어! 모두 빨리 들어와!”
반사적으로 안으로 들어가자 책상 뒤에 앉은 초로의 의사와 문 옆에 자리한 간호사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장강 유통에서 온…….”
황 비서가 인사하는 순간 특급 헌터가 한발 먼저 외쳤다.
“여기는 황 비서 누나! 옆에는 특급 알바! 세연 누나! 경석형이야! 냉장고! 냉장고가 없어졌잖아!?”
“크카카카- 꼬맹이 녀석! 그 냉장고 내다 버렸다! 너 이제 그 어린이 주스…….”
“찾았어!”
특급 헌터는 다다닥- 책장으로 달려가 쓱- 옆으로 밀었다.
그르륵-
순간 책장이 옆으로 밀리고 작은 미니 냉장고가 나타났다.
특급 헌터는 익숙하게 냉장고를 열고 그 안에 가득한 음료수를 파바밧 꺼냈다.
“어떻게! 어떻게 안 거야!? 김 간호사도 못 찾았는데!”
“하, 선생님…….”
김 간호사가 한숨을 내 쉬는 순간.
특급 헌터는 꺼낸 음료수를 나눠 주기 시작했다.
“모두 음료수 먹어! 알바는 포도! 세연은 딸기! 경석은 오렌지! 간호사 누나는 사과! 박 의사 할아버지는! 당연히 당근당근당근!”
“야, 이 꼬맹이 녀석!”
박 의사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자기 맘대로 냉장고를 열고 음료수를 나눠 줬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천문석은 재빨리 나서서 대신 사과했다.
“제가 대신 사과…….”
그러나 분노한 외침이 한발 먼저 터져 나왔다!
“야! 왜 나는 항상 당근이야! 내가! 어 내가 분명히 당근 주스 싫다고 말했지! 당근 주스는 너나 먹어!”
“에휴- 박 의사 할아버지 편식하면 안 돼.”
“뭐!? 그게 네가 할 소리야! 넌 당근 주스 한 번도 안 먹었잖아! 나만 계속 당근 주스잖아!”
“당연하지! 원래 어린애는 편식해도 괜찮아! 네이버 지식인에 아이 편식 쳐 봐! 엄청엄청 편식하는 아이 많단 말야! 박 의사 할아버지는 어른이잖아! 어른은 편식하면 안 돼! 당연히 당근도 잘 먹어야 해! 알았지? 그래서 박 의사 할아버지는 당근 주스를 먹어야 해! 당근당근!”
그리고 책상 위에 줄줄이 놓이는 당근 주스들!
박 의사의 얼굴이 한 방 맞은 듯 충격으로 멍해졌다.
“어, 잠깐…… 이게 뭔가…… 뭔가 좀 이상하긴 한데…… 아이랑 다르게 어른은 나이만큼 경험과 의지력이 있으니…… 편식이란 걸 개인의 의지로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닌…….”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던 박 의사는 흠칫 고개를 멈췄다.
“아니긴 뭐가 아냐! 말려들 뻔했잖아! 교활한 꼬맹이 녀석! 야! 난 다른 어른이랑 달라! 어차피 갈 날 얼마 남지 않아서 편식해도 괜찮아!”
“아…… 그렇지…… 하긴 검사 할아버지가 의사 할아버지 편식쟁이라 야채 하나도 안 먹어서 조만간 훅 갈 거라고 했어. 하아…….”
특급 헌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 쉬었다.
“야, 그만해! 한숨 쉬면서 고개 끄덕이니까 진짜로 훅 갈 거 같잖……! 어? 잠깐만!”
“응?”
“검사 할아버지? 이지광!? 걔가 내가 편식쟁이라 야채 안 먹어서 조만간 훅 갈 거라고 했다고!?”
“응!”
“와, 와. 와! 이지광 얼척없는 녀석! 걔는 삼겹살 먹을 때 상추도 안 먹는 놈이야! 내가 걔한테 두부 식단 먹이려고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그런데 뭐!? 내가 편식쟁이라 훅-! 갈 거라고!? 꼬맹이 당장 전화 걸어! 내가 진실을 밝히겠다!”
“알았어! 나 명함 받았어!”
특급 헌터는 기다렸다는 듯이 배낭을 내려놓고 주머니를 뒤졌다.
“…….”
“…….”
“…….”
천문석, 류세연, 한경석.
“…….”
그리고 황 비서는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멍하니 이 모습을 바라봤다.
각성 감사관은 각성 등급을 결정하는 자리.
외압에 흔들리지 않도록 사회적 지위와 명망이 있는 의사가 선정된다.
하얗게 센 머리와 금테 안경, 지성이 번뜩이는 눈빛!
겉모습은 과연 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겉모습으로 꼬맹이와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천문석, 류세연, 한경석 세 사람은 같은 생각을 했다.
‘진짜 각성 검사관 맞는 거야!?’
이때 간호사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맞아요. 닥터 박. 박찬호 선생님. 각성 검사관 맞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