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847화 (848/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847화>

“……제에에엔자아아앙!”

워커 실트는 갑자기 튀어나온 글라이더선에 낙하산이 채여 빠르게 멀어졌다.

“……와, 쟤는 나보다 더하네.”

힐끗 하늘을 본 천문석은 한숨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워커 실트. 재수 없는 녀석. 그래도 힘을 내라.”

워커 실트가 그렇게 넘으려던 게이트는 마지막 불꽃을 태운 것처럼 빠르게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천문석은 흐릿해지는 수면 너머 이제는 보이지 않는 친구들에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고마웠다. 친구들! 안녕이다!]

곧 게이트는 꺼지듯이 사라졌다.

화르르르르륵-

그리고 거대 악어 괴수 로봇 곳곳에서 터져 나온 새파란 불꽃이 거세게 솟구쳐 사방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그러나 육지까지 타고 갈 배도 활강할 낙하산도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없다!

저 바다를 헤엄쳐 해운대 모래사장으로 올라가면 되니까!

“하늘님. 기대도 안 했습니다!”

천문석은 하늘을 향해 외치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할 만하다!”

* * *

촤아아아-

나이트 아머는 정신없이 바다를 달려 마침내 해안 절벽에 도착했다.

‘이 위에 있다!’

평소라면 육지로 올라가 도로를 타고 올라가는 게 더 빠르다는 걸 알아챘을 거다.

그러나 지금 나이트 아머를 조종하는 장민의 눈에는 깎아지른 절벽만 보일 뿐 다른 길은 보이지도 않았다.

장민은 주저하지 않고 해안 절벽을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콰직, 콰드득-

무게가 걸리는 순간 바위가 깨지고 금 간 외장갑이 부서져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장민의 눈과 귀에는 이 모습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특급 헌터. 특급 헌터……!’

애타게 엄마를 찾을 아이의 엉엉 우는 얼굴과 울음기 섞인 목소리만이 끝없이 보이고 울려 퍼졌다.

‘같이 있었어야 했는데…….’

‘아무리 안전한 던전이라도 가지 못하게 해야 했는데…….’

가슴이 찢어질 듯한 후회가 밀려 오는 순간 지난 일주일의 기억이 떠올랐다.

특급 헌터가 비서들을 따돌리고 옥탑방 알바형이랑 강원도 던전에 놀러 갔을 때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알바씨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강원도에 생겨난 이상 던전은 위험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갑자기 하늘에 화살표가 생겨나고 강릉에 생겨난 이상 던전이 거품이 꺼지듯 사라졌다!

장민은 모든 힘과 인맥을 동원해 강릉 던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했다.

알바씨, 특급 헌터, 최설, 진교은, 한호석 교수, 허준이라는 오러 각성자.

그리고 100여명의 용역 헌터들이 이상 던전에 휩쓸려 같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됐다!

정신이 나갈듯한 상황에서 모든 인맥을 동원 한국에서 일어난 특이사항을 확인했다!

그리고 알아냈다!

재금 그룹 최고위층에서 은밀히 추적하고 있던 사건과 용의자를!

전국에 뿌려진 앵커와 갑자기 나타난 이상 던전들!

5개 게이트 마력장을 이용해 펼쳐진 한국 전체를 뒤덮는 대마법, 하늘에 만든 화살표!

이 모든 일을 일으킨 거로 추정되는 용의자들의 사진을 봤다.

그중 PC방 CCTV에 찍힌 메로나를 입에 문 아이 사진을 보는 순간 장민은 깨달았다!

‘이 아이, 아니 ‘이계인’이 범인이다!’

장철과 함께 1차 게이트 사태를 재현하는 던전을 찾아 헤맬 때 만났던 강철 같은 사람, 스승님!

스승님은 자신에게 검술을 가르치며 예언 같은 말을 남겼다.

‘언젠가 대화만 해도 분노가 솟구치는 꼬맹이로 보이는 이계인을 만날 거다.’

‘뭔가 사건이 터졌다면 무조건 그놈이 범인이다!’

‘파동검으로 사정 봐주지 말고 쥐어박아라! 절대! 절대로 방심하지 마라!’

그리고 더없이 진지한 태도로 꼬맹이가 그린듯한 엉망진창 몽타주를 보여 줬던 스승님!

PC방 CCTV에 찍힌 용의자와 스승님이 보여 준 엉망진창 몽타주 속 인물의 특징이 같았다!

스승님이 말한 ‘이계인’이 이상 던전 사건에 관련됐다!

이 순간 장민은 모든 것을 동원해 그 이계인의 행적을 추적했다.

PC방 CCTV에 찍힌 이계인이 택시를 타고 향한 곳은 전남 진도!

진도에서 시작해 부산까지 행적을 따라 이동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해운대 앞바다에 게이트가 열리고.

특급 헌터의 헌터용 시계가 신호를 보냈다!

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만 갈 뿐 받지 않았다.

그리고 추적을 시작하는 순간 100미터 바닷속에 가라앉아도 신호를 보내는 헌터용 시계의 신호가 돌연 멈췄다!

마지막으로 신호가 멈춘 장소는 게이트가 열리고 거대 괴수가 튀어나온 해운대 앞바다!

장민은 바로 나이트 아머를 실은 트레일러 와 함께 해운대로 달렸다.

그리고 격전을 치른 지금 특급 헌터가 있는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쿠우웅-

바위를 밟고 나이트 아머를 끌어올리는 순간 탁 트인 공터가 나타났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

너무나 익숙한 어린이 자동차.

어린이 자동차 보닛 위에 아이가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작은 몸.

번쩍 든 손에 들린 구슬.

바지춤에 찔러 넣은 나뭇가지 검.

“……!”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보는 순간 얼굴이 왈칵 일그러지고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솟았다.

“아, 아아…….”

가슴속에 쌓고 쌓은 말이 너무 많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장민 대표는 신호용 경적을 내려쳤다.

부우우우웅-!

거대한 뿔피리 소리가 울리는 순간.

뒷모습만 보이던 아이는 빙글 몸을 돌렸다.

지난 일주일, 단 한순간도 잊지 못한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특급 헌터!”

말문이 트이는 순간 고장 난 나이트 아머 전성관에서 장민 대표의 절절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헌터! …… 아!]

장민은 공터 위로 나이트 아머를 끌어올려 한달음에 달려갔다.

쿵-

나이트 아머가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경악한 외침이 터져 나오고!

“악당 로봇!”

특급 헌터는 찰나의 순간에 운전석에 앉아 움직였다.

부아아아아아아앙-

어린이 자동차는 거센 엔진음과 함께 쏘아지듯 출발했다!

“너 어디가!?”

“꼬맹이! 갑자기 뭐야!?”

“특급 헌터! 혼자 가면 안 돼!”

……

“악당 로봇이 나왔어! 긴급 상황이야! 난 절대로 특급 쌩쌩이 3호를 뺏기지 않는다!”

[잠…… ]

다급히 외치는 순간 어린이 자동차는 이미 도로를 질주해 멀어졌다.

“…….”

부아아아아앙-

장민은 빠르게 멀어지는 특급 헌터와 어린이 자동차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 순간 익숙한 어린이 자동차의 이름이 기억났다.

부가티 헌터 미니.

“……저 빌어먹을 부가티 헌터 미니.”

* * *

으아악-

천문석은 악을 쓰며 해운대 해변에 오르는 순간 외쳤다.

“할 만했다!”

그리고 픽- 쓰러지듯 해변에 드러누웠다.

기동 병참 도시에서 시작해서 해운대 앞바다로 이어진 난장판!

연이은 격전에 내력과 체력이 바닥을 때린 상태에서 옷까지 입고 수영을 했다!

그것도 폭우와 새파란 화염이 쏟아지고 거대 괴수의 체액이 흐르는 바다를!

‘전혀 할 만하지 않다! 빌어먹을 하늘! 끝까지 이런 식이라니!’

그러나 하늘님의 농간도 이제 끝이다!

게이트는 닫혔고 크리스털 병도 회수했다!

이제 서울로 올라가 회수한 크리스털 병만 보내 주면 워커7의 의뢰도 끝난다!

그리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이번 난장판에서 얻은 보상, 5관 금괴 6개!

마침내 전생부터 품은 꿈을 이룰 때가 온 것이다!

전생 천마, 비정규직 알바 천문석이 아닌, 건물주 천문석이 되는 거다!

흐흐흐흐흑-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터져 나오고 몸에 힘이 돌아왔다!

벌떡 일어나는 순간 육지로 날아갔던 글라이더선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바다 위를 튕기기 시작했다.

촤아, 촤아, 촤아아아-

글라이더선은 물수제비를 뜨는 돌멩이처럼 한참을 바다 위를 튕겨 모래사장 위로 올라왔다!

촤아아아아아-

사방으로 모래를 흩뿌리며 멈춰 서는 글라이더선!

워커 실트!

매달려 있던 워커 실트는!?

천문석은 글라이더선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워커 실트는 보이지 않았다.

‘떨어졌구나!’

반사적으로 글라이더선이 날았던 궤적을 훑자 곧 워커 실트의 모습이 보였다.

건축 중인 타워 크레인에 걸려 있는 낙하산!

워커 실트는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워커 실트는 무사했다!

천문석은 씩 웃으며 주위를 돌아봤다.

헬기, 장갑 버스, 천막, 간이 방벽…….

온갖 잡동사니가 널브러진 해변 곳곳에 신음을 흘리며 일어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해변 너머 저지선이 펼쳐졌던 시가지도 상황은 마찬가지.

도로는 저지선을 펼쳤던 차와 장비가 뒤엉켜 엉망이 됐고, 고층 빌딩의 강화 유리는 모조리 거미줄 같은 금이 간 상태였다.

악어 로봇이 터트린 EMP 마력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다!

이때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다.

타타타타타-

하늘에서는 헬기가 날아오고.

위이이이잉-

꽉 막힌 도로 너머에선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빌딩 안으로 몸을 피한 헌터와 군인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오고 있다!

저들 모두가 곧 해운대로 달려올 거다.

귀찮은 일을 피하려면 당장 여기서 튀어야 한다. 하지만 그전에 꼭 할 일이 있었다!

8번째 글라이더선!

기동 병참 도시에서 발사한 글라이더선은 분명 1에서 7번까지 7척이다!

기억에 없는 8번째 글라이더선이 게이트에서 튀어나와 워커 실트를 날려 버리고 모래사장에 꽂혔다!

혹시 기동 병참 도시에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다.

이 안에 누가 탔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천문석은 성큼성큼 걸어가 강철봉으로 글라이더선 출입구를 두들겼다.

그리고 강철봉을 내려쳐 입구를 강제로 열려는 순간.

파아아앙-

폭발하듯 문이 떨어져 나가고 모래가 치솟았다!

재빨리 옆으로 피하는 순간 들려오는 외침!

“드디어 돌아왔다!”

‘한국어!? 분명 용역 헌터들은 다 데려왔는데!?’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누더기를 걸친 거지꼴의 남자가 보였다.

이 남자의 몸 주위에서 일렁이는 힘의 파도, 염동력장!

‘염동력자 마혁진!’

“……!”

하늘 고래호 선실에 처박아 둔 마혁진!

몇 번이나 기억했는데!

계속 급한 일이 터져 미루다 보니 완전히 까먹은 조폭 보스 마혁진이다!

하늘 고래호에 깜박하고 버려 두고 온 염동력자 마혁진이 스스로 8번 글라이더선을 타고 지구로 돌아왔다!

‘와! 이 녀석! 근성 뭐야!?’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는 순간 마혁진과 시선이 마주쳤다.

“……!”

“……!”

마혁진의 희열에 찬 눈이 찰나의 순간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변했다!

“이세기! 야, 이 새끼야! 나는 버려 두고 너 혼자 넘어와!? 내가 얼마나 시껍했는 줄 알아! 미친놈아!”

염동력장을 몸에 휘감고 돌진하는 마혁진!

반사적으로 내력을 끌어올렸지만, 가닥가닥 말라 버린 내력은 움직이지 않는다!

싸우면 필패한다!

“하하하하하-.”

천문석은 재빨리 웃음부터 터트리고 눈만 움직여 주위를 훑었다.

엉망진창이 된 해운대 앞바다와 모래사장!

마혁진이 타고 온 글라이더선!

순간 머릿속에서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자동으로 입이 열렸다!

“야! 내가 널 잊고 있었겠냐!? 당연히 데려올 방법 준비해뒀지! 너 내가 준비한 방법으로 넘어왔잖아! 모르겠냐?”

“……뭐?”

마혁진이 멈칫하는 순간.

천문석은 모래에 처박힌 글라이더선을 가리켰다.

“글라이더선! 네가 타고 온 이 비행 원반, 글라이더선! 이거 내가 준비한 거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해 봐라!”

천문석은 버럭 소리 질러 마혁진의 말을 끊고 말을 쏟아 냈다!

“중력을 조정해 자유자재로 나는 비행 물체!”

“이거 완전 UFO 아니냐!? 이런 엄청난 마도구가 잠금장치도 없이 부두에 놓여 있던 거 이상하지 않았어!?”

“게다가 글라이더선을 처음 타는 네가 조종했는데!”

“무사히 게이트를 넘어서! 무사히 이곳 해운대 모래사장에 도착했다고!?”

풉-

천문석은 세상에서 제일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헛웃음을 삼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

마혁진은 어느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멈춰 선 상태!

천문석은 자신만만한 표정,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반문했다.

“너 진짜로 이 모든 게! 전부 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냐?”

‘놀랍게도 전부 우연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