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848화>
‘놀랍게도 이 모든 게 전부 우연이었다!’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마혁진이 겪었을 일이 영화처럼 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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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 병참 도시에 울려 퍼진 방송!
[13분 후에 ‘부산행 게이트’가 열린다! 용역 헌터 모두 머리 방향! 북쪽 부두로 달려라! 집으로 가는 배, 글라이더 선이 기다리고 있다!]
이 방송을 듣게 된 마혁진은 정신없이 북쪽 부두로 달려 글라이더선을 탔다.
북쪽 부두의 글라이더선은 워커7과 아수라 비서가 이미 세팅을 끝내놓은 상황.
마혁진이 타는 순간 글라이더선은 자동으로 활주 부두를 달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워커7이 미리 세팅한 대로 7번 글라이더선이 움직였던 궤적을 따라 움직인다.
휘이이이이잉-
다른 글라이더선이 거대 괴수를 유인했던 것처럼 사막 위를 난 것이다.
이미 거대 괴수가 모조리 넘어와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하늘 위를!
그리고 마침내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게이트는 작아진 후.
글라이더선의 직경은 10미터!
게이트 직경이 10미터보다 작아지면 당연히 통과할 수 없다!
즉, 글라이더선은 작아진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게이트 링에 걸린 채 가속했다!
이 순간 워커 실트가 게이트를 향해 활강하며 정제 마석을 던졌고 자신이 본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마혁진이 탄 글라이더선은 마침내 걸려 있던 게이트를 통과해 쏘아졌고!
게이트로 들어가던 워커 실트는 튀어나온 글라이더 선에 낙하산이 걸려 저 멀리 타워 크레인에 걸리게 된 거다!
///
“……!”
이 모든 것은 상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어째선지 이 상상이 현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 들어 이 모든 우연을 예비한 존재를 봤다.
하늘!
‘우연? 하늘의 농간이란 거 더 정확하다!’
이 모든 것은 재앙의 화신이자 불운의 아이콘인 워커 실트에게 하늘이 내리는 고난이다!
그게 아니면 이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설명이 안 된다!
“……!”
순간 머리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연이은 불운과 사건·사고에 하늘의 저울을 의심하고 하늘님에게 삿대질도 몇 번 했다.
그러나 저 멀리 타워 크레인에 걸린 워커 실트, 진정한 불운의 아이콘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
하늘 위에 우주가!
바닥 아래 지하실이 있었다!
[천문석 VS 워커 실트]
워커 실트와 비교하면 자신은 운이 나쁜 게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운이 좋았다!
하늘님은 큰 거 한 방을 위해 그동안 힘을 모으고 계셨으니까!
이번 난장판에서 먹은 5관 금괴 6개, 30관, 112.5kg의 금괴가 바로 하늘님의 큰 거 한 방이었던 거다!
자잘한 행운이 아닌 이런 대운(大運)이라니!
가슴이 터질 듯 하늘님에 대한 충성심이 차올랐다!
하늘님에게 최고의 경의를 바치려는 순간 문득 들려온 목소리가 엉뚱한 곳으로 흐르던 천문석의 정신을 깨웠다!
“설마…… 설마……!? 이 모든 게! 이 전부가 네가 준비한 거라고!?”
마혁진의 혼란스러운 목소리!
마혁진한테 입 털던 걸 깜빡했다!
천문석은 재빨리 마음을 가다듬고 마혁진의 얼굴을 살폈다.
불신, 의혹, 경악, 설마, 혹시!
찰나의 순간에 변하는 마혁진의 얼굴!
여기서 말을 더하는 건 하수!
천문석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결정적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마혁진이 외쳤다.
“이세기! 너 왜 그렇게까지 한 거냐!? 뭐 때문에!?”
지금이 신뢰와 불신을 가르는 결정적 순간이다.
천문석은 마혁진이 부른 ‘이름’의 진짜 주인을 상상했다.
무림 맹주, 천검 이세기!
한마디 말이 천금보다 무거운 의와 협, 그 자체!
찰나의 순간 천문석의 기도가 일변했다.
고산 준봉 같은 위엄과 추상 같은 기상!
천천히 입을 열어 태산 같은 무거움을 담아 짧게 말한다.
천검 이세기가 된 것처럼!
“그것이 신의(信義)이기 때문이다.”
“……!”
마혁진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어 버렸다.
붉게 충혈된 두 눈과 멍하니 벌린 입!
어깨에서 시작된 전율이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져 나가 격동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힐끗 눈동자만 움직여 마혁진을 살피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무림 맹주 이세기의 말을 들은 무인들과 같은 반응이다!
마혁진은 완전히 경도됐다!
‘와- 이게 이렇게 먹힌다고!? 이건 진짜 할 때마다 신기하네!’
천문석은 새삼 감탄하면서도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먹히는 게 당연했다.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자신도 이 모든 게 우연이란 게 믿기지 않는다!
마혁진은 마경, 열사의 사막에서 개고생하며 심신이 지치고 시야가 좁아졌다. 게다가 기절해 단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있는 상태!
여기에 천검 이세기 스타일로 마음을 흔드는 한 마디까지 던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은 마혁진에게 바라는 게 없었다!
바라는 게 없는 구라, 피해자가 없는 사기!
이것이야말로 구라, 사기, 협잡, 입 털기 궁극의 경지다!
평범한 조폭 보스 마혁진은 당연히 속을 수밖에 없었다!
천문석은 격동으로 전신을 떠는 마혁진에게 툭 말을 던지고 몸을 돌렸다.
“자 그럼 만나서 반가웠고. 이제 서로 각자 갈 길 가자!”
그리고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글라이더선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세기 선생님.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선생님? 이건 또 뭐야!?’
처음 듣는 호칭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자 빛바래고 헤진 헌터 부대 군복을 입고 깍듯이 허리 숙인 남자가 보였다.
‘얘는 또 누구야!?’
허리를 펴는 순간 군복에 붙은 명찰이 보였다.
[김태우 중령]
‘김태우 중령!’
신동대문 난장판!
광장을 뚫고 나온 초거대 사슴벌레가 등판 위에서 벌어진 격전!
[자신 vs 염동력자 마혁진, 김태우 중령] + 니케!
격전을 치르던 중 갑자기 난입한 니케가 모든 걸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지하 터널에 갑자기 나타난 사막에 넷 모두가 같이 떨어졌다.
마혁진, 김태우.
자신, 니케.
자신과 니케는 탈출했다.
그러나 염동력자 마혁진과 김태우 중령은 사막 안으로 도망쳤다!
그 사막이 바로 게이트 너머 마경, 열사의 사막이다!
즉, 열사의 사막을 달리는 기동 병참 도시에는 마혁진뿐만 아니라 김태우 중령도 있었다!
‘김태우 중령! 이 녀석도 있었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다. 누구라도 놀랄 상황이었다!
그러나 천문석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 같이 왔군.”
“네! 이세기 선생님 덕분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김태우 중령은 다시 한 번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만나자 분통을 터트리는 마혁진과는 다르다.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적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허리를 숙였다!
잠깐 입을 털어 홀린 마혁진과 달리 만만치 않다는 느낌이 왔다.
‘하- 얘는 또 어떻게 처리하지!?’
머리를 굴리는 순간.
김태우 중령은 허리를 펴며 말했다.
“이세기 선생님! 이곳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우선 몸을 피하시죠.”
‘……뭐!?’
의문을 품는 순간 느껴졌다.
타타타타타타-
하늘을 가로지르는 헬기!
부아아아아앙-
도로를 달려오는 트럭!
헌터 부대가 사후 처리를 위해 달려 오고 있다!
순간 천문석과 김태우 중령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세기 선생님. 지금까지의 악연은 여기서 깔끔하게 모두 잊죠! 비행 원반에는 저 혼자 타고 있던 겁니다. 제가 ‘책임지고’ 아주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김태우 중령의 손이 해운대 방향을 가리켰다.
손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난장판이 된 시가지가 보였다.
강화 유리창에 쩍쩍 금이 간 빌딩.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장갑 버스.
연쇄 충돌로 뒤엉킨 자동차.
EMP 마력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모습!
이 모습을 보는 순간 김태우 중령의 말에 담긴 행간의 의미가 이해됐다!
핵심은 ‘책임지고!’ 이 말이다.
여기는 이세계가 아닌 한국이다!
EMP 마력 폭풍을 터트린 건 워커 실트가 만든 거대 악어 로봇이다!
하지만 자신도 그 자리에 있었다!
재수 없게 엮여서 소송이라도 걸리면 상상을 초월한 보상을 해야 한다!
지금 김태우 중령은 이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거다!
‘이녀석 갑자기 왜 이래!?’
해지고 바래진 군복과 까칠해진 얼굴을 보면 마경에서 개고생한 게 짐작됐다.
그러나 김태우 중령은 머리 회전이 빠르고 속임수와 기만에 능한 스타일.
아무렇지도 않게 마탄을 쏘고 조폭과 이권을 나누던 녀석이다!
김태우 중령에게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협잡과 사기, 기만의 냄새가!
‘뭐지!? 이 녀석 뭐를 노리는 거지!?’
빙글 시선을 돌리는 찰나의 순간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게 뇌리에 새겨졌다.
뒤집힌 천막.
뒤엉킨 잡동사니.
날개가 꺾인 채 모로 누운 헬기.
넘어져 스파크가 튀는 장갑 버스.
곳곳에서 널브러진 헌터들과 군인들.
그리고 해변 곳곳에서 몸을 일으킨 헌터와 군인들이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어디로?’
모래사장의 잡동사니 사이에 파묻힌 글라이더선을 찾아서!
앞바다에 쓰러진 거대 괴수 사체 일곱을 향해서!
‘이거구나!’
찰나의 순간 김태우 중령의 내심이 눈으로 보듯 짐작됐다!
화씨지벽(和氏之璧)!
비행 원반, 글라이더선!
김태우 중령은 승부수를 던졌다.
‘하, 이 녀석! 잔머리 봐라?’
그러나 화씨지벽이 고사로 남은 건 그런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옥석(玉石)!
옥인지 돌인지는 갈아 봐야 알 수 있는 법!
천문석은 내심 웃었다.
김태우 중령이 원하는 대로 비행 원반과 골칫덩이를 같이 넘기고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이게 최선의 선택이다!
“그래! 그럼 수고해라! 될 수 있는 한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천문석은 주저하지 않고 몸을 돌려 달렸다.
* * *
“야! 이세기! 어디 가는 거야!?”
마혁진은 이세기가 달리는 순간 반사적으로 외치고 시선을 움직였다.
비행 원반 옆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김태우 중령.
모래사장 너머 해운대 시가지를 향해 달려가는 이세기.
신동대문 지하 터널에서 열사의 사막에 떨어졌을 때와 같다!
지하터널로 달리던 이세기.
사막 안쪽으로 달리던 김태우.
이세기와 김태우 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마혁진은 깨달았다.
처음부터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생각하기도 전에 입과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이세기! 기다려라! 같이 가자!”
마혁진은 반사적으로 이세기를 따라 달리며 생각했다.
이세기는 사건·사고를 몰고 오는 재앙의 화신이다!
그러나 역으로 사건·사고에서 빠져나올 열쇠이기도 했다!
그 지옥 같던 열사의 사막에서 탈출한 것이다!
난장판이 된 해운대를 보는 순간 감이 왔다.
아직 재앙은 끝나지 않았다!
안전한 곳에 도착할 때까지 이세기와 붙어 있어야 한다!
후회를 남길 선택은 한 번이면 족하다!
마혁진은 염동력장을 펼쳐 날 듯이 이세기를 따라붙었다.
“기다려! 같이 가자!”
“뭐야? 왜 따라오는데!? 여기 한국이야! 각자도생 몰라!? 이제 은원도 없으니까! 우리 서로 갈 길 가자니까!?”
천문석과 마혁진은 단숨에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도로로 올라갔다.
이 모습을 보던 김태우 중령은 피식 웃었다.
일이 너무 쉽게 풀려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헬기, 고속정, 트럭.
사방에서 헌터 부대가 모여들고 있다.
계절은 가을이고 이세기의 분위기로 봐서는 연 단위의 시간이 흐른 건 아니다.
즉, 자신이 신동대문 지하터널에서 실종된 지 대략 2, 3달가량 지났다.
그냥 군인도 아닌 헌터 부대 특무대 중령이 실종됐다.
당연히 헌터 부대에서는 자신의 행적을 시간 단위로 조사했을 거고 그동안의 비위행위가 낱낱이 밝혀졌을 거다.
자신의 귀환이 알려지는 순간 헌병대에 연행되어 악명높은 던전 노역형을 선고받을 확률이 99%다!
그러나 이 비행 원반이 있다!
마력으로 중력을 제어하는 놀라운 마도구가!
헌터에게 배분은 신성한 것!
그건 헌터 부대에서도 당연히 지켜지는 절대적인 법칙이다.
이세기와 마혁진이 사라진 지금 이 비행 원반은 자신의 것이다!
‘이 비행 원반으로 딜을 한다!’
그동안 다져둔 라인을 움직여 딜을 하면 최악이라도 군복을 벗는 선에서 마무리할 수 있다.
모아둔 돈과 마석, 자신의 실력과 인맥이면 2, 3달이면 대형 길드 이사까지 올라갈 자신이 있었다!
“자, 어서 와라! 하하하-.”
김태우 중령이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헬기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타타타타타타-
시가지 방향이 아닌 해안선 방향!
김태우 중령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바로 알아봤다!
헌터 부대에서 운용하는 강습 헬기!
위관급 장교가 지휘하는 10명 내외의 소대 병력을 실은 강습 헬기가 다가오고 있다!
‘위관급 장교! 운이 좋다!’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지휘관이 탄 헬기!
바로 강습 헬기를 타고 본부로 이동 라인에 연락해 여론부터 조성한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내고. 엄청난 마도구와 함께 귀환한 현역 중령!’
사람들은 영웅 이야기를 좋아하는 법!
제대로 여론을 조성하면 군복을 벗는 게 아니라 진급할 수도 있었다!
김태우 중령은 크게 손을 흔들며 각성력을 실어 외쳤다.
[헌터 부대 특무대 김태우 중령이다! 상부에 긴급 보고할 사항이 있다! 지휘관이 누군가!?]
외침과 동시에 강습 헬기에서 문에서 상체가 튀어나왔다.
“지휘관! 이름이……!”
반사적으로 외치던 김태우 중령은 굳어 버렸다.
헬기에서 상체를 내민 사람은 타격대용 검은 군복을 입은 작은 체구의 여군이었다.
그리고 이 여군은 김태우 중령이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종류의 풀 페이스 헬멧을 쓰고 있었다.
커다란 눈, 길게 뻗은 더듬이, 노란색을 물든.
“꿀벌…… 인형 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