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673화 (67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73화>

천문석은 처음 도주 계획을 세울 때 깨달았다.

강 위는 적염성 시가지와는 다르다.

수백척의 배가 뒤엉킨 난장판을 만들면, 싸우지 않고 피해 다닌 강자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쉽고 편하게’라는 인생 모토와는 달리 강자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그럼에도 천문석은 수백 척의 배가 뒤엉킨 난장판을 만들었고.

그 결과 완전무장한 기사 십여 명이 앞에 나타났다!

“헉, 잠시! 잠시만 이야기…….”

기사들이 숨을 몰아쉬며 말을 붙이는 순간.

천문석은 손에 낀 돌 반지를 보여 주며 외쳤다.

“정정당당히 싸우자!”

남방 공국의 기사들은 외침을 듣는 순간 그 뜻을 깨달았다.

인장 반지를 건 일대일 승부를 하자는 뜻!

제국의 남쪽 끝 대습지의 강대한 마물을 막는 방패, 남방 공국!

남방 공국의 기사들은 제국 기사들과 달랐다.

제국 기사들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질척질척 더럽고, 끈질기고, 치사하게 그 무엇이든 했다!

하지만 남방 공국의 기사들에겐 기사도와 명예의 전통이 남아 있었다!

이세기의 정정당당히 싸우자는 말을 듣는 순간.

선임 기사를 제외한 모든 기사가 뒤로 물러났다.

스르렁-

선임 기사는 롱소드를 뽑아 검예(劍禮)를 취하고 성과 이름을 말했다.

“바라다스 가문의 기사! 마이웨이 바라다스…….”

이 순간 선임 기사의 머리 위에서 하누만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마이웨이가 반사적으로 롱소드를 찌르는 순간 불쑥 튀어나온 커다란 징!

지이이이이이잉-

커다란 징 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까앙-

징을 때린 롱소드가 부러져 나가고!

“흑철검이 부러져!?”

경악한 선임 기사의 팔다리에 하누만이 달라붙어 강대한 요력을 밀어 넣었다!

오러 가 꺼지듯 사라지고 무력화되는 순간.

하누만들은 선임 기사 마이웨이 바라다스를 공중으로 번쩍 들고 번개같이 도망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핰-

크크크킄킄-

으흐흐흐흨-

“……!?”

“어, 어어어!?”

“잠깐! 잠깐만!”

기사들이 당황할 때.

천문석은 다급하게 외쳤다.

“야, 빨리 따라가서 구해! 제압된 채로 갑옷 입고 강에 빠지면! 빠져나오기 더럽게 힘들어! 얼른 움직여!”

이 순간 기다렸다는 듯한 하누만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열에 던진다! 빨리 와라!”

“하나!”

“하나!”

“하나!”

겹쳐진 배 사이, 강물이 보이는 갑판 위!

하누만들이 당장이라도 던질 듯 마이웨이의 팔다리를 잡고 흔들고 있다!

“미친놈들아! 그만해! 멈춰!”

마이웨이의 다급한 외침이 터지고.

“선임 기사님을 구해라!”

기사들이 반사적으로 달려가는 순간.

“일이삼사오륙칠팔구십!”

“일이삼사오륙칠팔구십!”

……

번개 같은 외침과 함께 선임 기사가 강물에 던져졌다!

첨벙-

사색이 된 기사들이 미친 듯이 달려갈 때.

하누만들은 재빨리 밧줄을 잡고 돛대를 올라, 길게 이어진 활대를 달려 도망쳤다.

계획대로!

휘이익-

천문석이 휘파람을 부는 순간.

도망치는 하누만과 천문석의 눈이 마주쳤다.

이심전심!

척-

척-

동시에 엄지를 내밀고 음흉한 미소를 짓는 천문석과 하누만!

크하하하핰-

카캬카카캌-

동시에 웃음이 터지고, 천문석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외쳤다.

“야, 이제부터 제대로 달린다! 알아서 잘 따라와라!”

그리고 천문석은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쇠사슬을 달려 다른 배로 넘어가고.

돛대를 올라 활대를 달려 밧줄을 잡고 뛰어내린다.

쿵-

기울어진 갑판에 착지!

단숨에 미끄러져 하갑판으로 내려가 무인지경으로 노잡이를 휩쓸고, 노가 솟은 구멍으로 옆의 배로 넘어간다!

텅 빈 배를 달려 뻥 뚫린 선체 구멍에 도착하자 보이는 구멍 너머 멀쩡한 선체!

멀쩡한 선체를 향해 떨어지는 레이 실트의 강철봉!

콰아아아-

단숨에 뚫린 구멍으로 뛰어드는 천문석과 헌터, 선원, 남궁휘!

“어디로 튄 거야!?”

“이세기 본 사람!?”

“누구 이세기 본 사람 없어!?”

이때 갑판에선 다급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이세기를 따라 달리는 모두는 감탄했다.

수백 척의 배가 뒤엉켜 만들어진 미로 같은 전장.

이세기는 이 미로를 상상도 하지 못할 방법으로 달리고 있었다!

마치 미로를 구성한 벽 위로 올라가 달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상상도 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배에서 배로 구멍을 뚫고 달리다가, 갑자기 갑판으로 뛰어올라가 외쳤다.

[이세기가 여기 있다!]

“뭐 하는 짓이야!?”

“이세기 이 미친놈!”

스스로 위치를 알리는 외침에 헌터들과 선원들이 경악하는 순간 하늘에서 터져 나오는 정신없는 농악!

지이이이잉-

둥둥, 둥둥둥-

꽝꽝, 꽈아아-

“여기다!”

“여기에 이세기가 있다!”

외침과 농악 소리에 엉뚱한 방향을 뒤지던 적들이 사방에서 밀려 왔다!

이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기감을 뻗어 주위를 훑고 뒤엉킨 배 위를 달렸다!

[야, 힘을 내!]

[성주 자리가 눈앞에 있다!]

지잉, 지잉, 지이잉-

천문석과 하누만 농악대가 쉴 새 없이 외치고 농악을 연주하며 달리고.

그 뒤로 40인의 용역 헌터와 얼떨결에 끼어든 선원들, 남궁휘가 따라 달렸다!

그리고 곧 사방에서 밀려 온 해적들과 싸움이 시작됐다!

“멀리멀리 날아가라! 흐흐흨-.”

“거지 되고 싶은 놈들 덤벼라! 하카캌-.”

괴력의 하누만 농악대가 해적들의 주머니를 털고 사방으로 집어던지고,

“공격하지 마!”

“막기만 해라!”

“이세기 놓치면 끝장이다!”

용역 헌터, 선원들이 어깨를 맞대고 해적들을 밀어내기만 하며 이세기를 쫓아 달렸다!

이세기는 경이로울 정도로 잘 도망쳤다.

뒤엉킨 배 사이에서 순식간에 도주로를 찾아내고.

온갖 기만으로 연이어 나타나는 강적들을 떼어 냈다!

간혹 발목을 잡을 강적이 나타나면 외쳤다.

“정정당당히 싸우자!”

강적이 방심하거나 비웃는 순간.

돛대 위.

널브러진 통.

뻥 뚫린 갑판.

구석에 쌓인 잡동사니.

온갖 장소에서 튀어나온 하누만이 기습공격을 했다!

크하하핰-

크크크킄-

으흐크킄-

하누만들은 미친 듯이 웃으며 강적의 팔다리를 번쩍 들고 달려 멀리멀리 집어던졌다!

“이세기! 와 이 미친놈!”

“너 진짜 마음에 든다!”

“야, 당장 농악대 들어와라!”

천문석과 하누만 농악대는 평생 합을 맞춘 것처럼 빠르게 길을 뚫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끝이 있는 법.

로브를 깊게 눌러쓴 10여 명의 적이 나타났다.

“정정당당히 싸우자!”

천문석이 다시 한 번 외치는 순간.

이들에게서 생경한 반응이 돌아왔다.

“그래! 정정당당히 싸우자!”

외침과 동시에 품에서 꺼낸 스크롤을 찢고 짧은 막대기를 겨눈다!

그리고 하누만 농악대가 기습 공격하기도 전에 먼저 공격을 쏟아부었다!

후두두둑-

수십 발의 광탄(光彈)이 쏟아지고.

화르르르륵-

이글거리는 화염구가 날아왔다!

“야! 정정당당이라니까! 말 끝나자마자 공격하는 게 어디 있어!”

천문석이 다급히 도망치며 외치는 순간 이들 주위 공기가 연속해서 폭발했다!

팡, 파아앙, 팡-

기습 공격한 하누만들이 폭발하는 압축 공기에 튕겨 나가고!

후두두두둑-

천문석에게 쏟아지던 광탄과 화염구가 반전해 튕겨 나간 하누만 농악대에 쏟아졌다!

“으앗! 이 녀석들 마법사다!”

“내 털! 내 털이 타고 있어!”

“눈부시잖아! 광탄 그만 쏴!”

하누만들이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불을 껐다.

“야, 후퇴! 후퇴해! 전략적 후퇴!”

재빨리 명령한 천문석은 부러져 솟구친 갑판 뒤로 몸을 던지며 외쳤다.

“야, 정정당당히 싸우자니까! 마법은 반칙이지!”

“마법사한테 마법을 쓰지 말라고?”

“우리한테는 이게 정정당당한 거다!”

“바로 앵커를 박는다!”

……

이 순간 급격한 마력 유동과 위기감이 느껴졌다!

“……!”

솟구친 갑판 뒤에서 뛰어나오는 순간.

방금까지 몸을 숨긴 장소가 빛의 공에 삼켜졌다.

파파파팟-

섬광이 폭발하고 빛의 공에 삼켜진 공간이 통째로 사라졌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엄청난 마법!

“계속 몰아붙여라!”

“멈추는 순간 앵커 날린다!”

“대마법진으로 날려 보내야 한다!”

마법사들의 외침을 듣는 순간 이 마법이 무엇인지 감이 왔다.

‘빛의 공 ‘앵커’라는 것에 맞으면 ‘대마법진’으로 이동한다!’

대마법진!

이름만 들어도 싸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든 앵커를 맞지 않고 제압해야 한다!

‘우선 붙는다!’

바로 돌진하려는 순간 급격한 마력 유동이 느껴졌다.

주저앉듯 몸을 숙이는 동시에 머리 위로 화염구가 지나간다!

화르르르륵-

천문석은 기울어진 갑판을 박차고 미끄러졌다!

단숨에 가까워지는 마법사들!

마법사들은 피하지 않고 지팡이를 겨눈 채 수인을 짚은 손을 움직였다.

파츠츠츠츠-

손의 궤적을 따라 생겨나는 수십 개의 광점!

‘승부를 낼 생각이구나!’

순간 머리가 번개같이 돌아갔다.

마법사 7명.

수백 개의 광점 하나하나가 광탄.

숨겨 둔 앵커 마법과 화염구도 있다!

순식간에 결론을 낸 천문석은 미끄러지는 갑판을 때렸다.

쿵-

반발력으로 몸이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강철봉을 뻗고 기합을 터트린다.

하아앗-

강철봉에서 폭풍 같은 기세가 쏟아졌다.

이 순간 수습 마법사 사이에 숨어 있던 전투 마법사는 확신했다.

‘잡았다!’

이 자리에 있는 마법사 모두에게는 자동 방어 마법, ‘압축 공기 폭발’이 걸려 있다!

한도 이상의 운동 에너지를 가진 물체가 영역에 들어오는 순간 폭발한 압축 공기가 모든 걸 날려 보내는 마법!

이세기가 압축 공기 폭발로 밀려날 때 광탄을 모조리 쏟아부어 발을 묶고 앵커를 박아 넣는다!

“여기서 승부를 낸다!”

전투 마법사가 외치는 순간.

모든 마법사는 마법봉에 박힌 정제 마석에서 바닥까지 마력을 뽑아냈다.

손의 궤적을 따라 생겨나는 광점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광점에서 쏟아지는 빛에 마법사의 전신이 하얗게 물들고.

파스스스스-

당장이라도 터질 듯 마법사들 주위의 마력장이 요동쳤다!

이 타이밍!

강철봉이 정면에서 날아왔다!

마법사들은 압축 공기가 터지는 순간.

광탄을 쏟아붓기 위해 온 정신을 강철봉에 집중했다!

시간조차 천천히 흐르는 듯한 극한의 집중 상태에서 강철봉은 한없이 느리게 다가왔다.

그리고 마침내 자동 방어 마법 경계에 닿으려 할 때.

폭풍 같은 기세로 날아오던 강철봉이 돌연 멈췄다.

집중이 깨진 마법사들의 시선이 이세기의 얼굴에 닿는 순간 보였다.

웃고 있는 얼굴.

자신들이 아닌 뒤를 보고 있는 눈동자!

이 순간 이세기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지금이다! 공격해라!”

‘기습공격!’

마법사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는 동시에 광탄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파바바바바밧-

수천 발의 광탄이 기울어진 상선으로 기어 올라온 기사들에게 쏟아졌다!

“광탄!”

“남방 마탑!?”

“야, 미친놈들아!”

“그걸 왜 우리한테……!”

……

마법사들은 광탄을 쏟아부은 후에야 깨달았다.

뒤에서 나타난 사람들은 기습 공격하려는 적이 아니라 남방 공국의 기사들 아군이었다!

후두두두두둑-

수천 발의 광탄이 기사들의 전신을 때렸다!

그러나 모든 마법사가 낚여서 기사들에게 광탄을 쏟아부은 건 아니었다.

광탄을 쏟아붓기 직전에 간신히 멈춘 전투 마법사는 바로 몸을 돌려 이세기에게 광탄을 발사하려 했다.

순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광경이 보였다.

휘이이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동 방어 마법을 뚫고 천천히 다가오는 이세기의 강철봉!

‘어떻게!?’

경악한 전투 마법사는 반사적으로 광탄을 발사했다.

파바바바바밧-

천여 발의 광탄이 3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폭발했다!

소드 마스터라도 피하지는 못할 거리!

그러나 전투 마법사는 방심하지 않고 화염구를 만들어 냈다!

이때 천천히 다가오던 강철봉이 원을 그리고.

폭발하듯 쏟아진 광탄 천여 발이 이 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반사적으로 화염구를 쏘아 보내는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른 손에 화염구가 튕겨 나갔다.

화르르르륵-

갑판에 떨어진 화염구에서 열기가 쏟아질 때 가슴에 강철봉이 닿았다.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는 순간.

고통이 아닌 다른 게 느껴졌다.

휘이이이잉-

가슴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

이 바람이 마력 코어가 자리한 영체로 스며든다!

자동 방어 마법이 해제되고 정신과 감각이 끝없이 확장된다!

번쩍 눈을 뜨는 순간 세상이 변화했다.

빛의 맛이 느껴지고, 소리의 색이 보인다!

그리고 세상에 가득한 마나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휘이이, 휘이이이-

마나의 속삭임이 전해 주는 마도의 비의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다!

지금 당장이라도 한계를 넘어 마도사 위에 오를 것만 같았다!

이때 보여서는 안 될 것이 보였다.

머리를 향해 다가오는 이세기의 손가락!

‘안 돼! 그러면 안 돼! 지금은 절대 안 돼! 제발! 조금만 있다가! 제바아아알!’

전투 마법사가 마음으로 절규하는 순간.

따아악-

정신이 새하얗게 타들어 가는 극통이 몰아쳤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던 마나의 속삭임과 마도의 비의는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

전투 마법사의 흐려지는 의식에 잇달아 소리와 외침이 들려왔다.

따악, 따악, 따악-

끄억, 끄어억, 끄아악-

머리를 잡은 마법사들과 광탄에 걸레짝이 된 기사들이 쓰러졌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 훅- 바람을 부는 이세기의 의미심장한 미소!

‘완전히 당했다!’

전투 마법사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함께 픽- 기절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