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22화 (523/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22화>

천문석은 바로 최설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장님. 최설 사원, 대리 승진 부탁드립니다. 이번 배송의뢰에서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그래? 하긴 최설 사원이 우리 사무실 에이스지. 혼자서 서류 작업 표준을 만들었는데. 이번엔 현장에서 고생까지 했으니…… 알았다.”

김철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리 승진을 약속했다.

그러나 최설의 광채가 번뜩이는 눈은 미동조차 없이 천문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문석은 재빨리 최설에게 다가가서 속삭였다.

“야. 너도 봤잖아. 이번 사태는 내 잘못이 아냐. 그렇다고 과장으로 승진시킬 수는 없잖아?”

“…….”

대답 없이 까맣게 탄 팔을 쓱 내미는 최설.

최설의 까맣게 탄 팔에서는 하얗게 허물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강물에 반사되는 운송선에서 일한 최설.

최설의 새하얀 피부는 완전히 검게 변하고 허물까지 벗겨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자신의 잘못도 약간, 아니 사실은 좀 많이 있었다.

천문석은 다시금 머리를 굴렸다.

지금 문제의 본질은 김철수 사무실에 ‘대리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는 것!

짐바브웨에서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을 때.

3경 5000조의 짐바브웨 달러 가 1$의 미국 달러 와 교환된 것처럼.

모두가 대리로 승진한 지금 대리 승진은 최설에게 메리트가 없었다.

어차피 대리가 돼봐야 사무실 막내, 막내 대리인 것이다!

그렇다고 최설을 바로 과장으로 진급시킬 수는 없다.

직원 10명도 안 되는 작은 사무실이지만, 인사에는 원칙과 공정, 납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승진할 만했다.’

‘아쉬움은 있어도 공정했다.’

직원 모두가 원칙이 지켜졌고, 아쉬움은 있어도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해야 한다.

원칙이 무너지면 개판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그러나 까맣게 타서 허물마저 벗겨지고 있는 최설에게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지?’

고심하는 순간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다.

지금 문제는 모두의 직위가 ‘대리’라는 것.

최설을 과장으로 올리는 게 안 된다면, 반대로 생각하면 어떨까?

즉 최설 대리 밑에 신입 사원을 두는 거다!

천문석은 바로 최설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건 어때? 네 밑으로 사원을 고용하는 거야.”

“앗!?”

순간 짧은 탄성과 함께 눈빛에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최설!

최설은 재빨리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내가 꼭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걔가 서류 작업, 인력 관리, 접객에 있어서 전문가거든.”

“알았어. 그것까지 오케이. 딜?”

천문석은 바로 손을 내밀었고.

“딜.”

최설은 환한 얼굴로 천문석이 내민 손을 붙잡고 흔들었다.

“철수형! 서류 작업 신입 사원 한 명 채용 가능할까요? 최설 인맥인데…….”

김철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색해서 대답했다.

“서류 작업? 최설 인맥이라고! 마침 사무실 직원이 필요했는데 잘됐네! 최 대리 언제든 오라고 말해 주세요.”

“신입 사원이요?”

“그럼 나도 선배가 되는 거야!?”

“지금 우리 완전 직장인 같지 않냐!?”

“캬- 우리 이모가 지금 내 모습을 봐야 했는데!”

대리 4인조가 신입 사원이라는 말에 솔깃해할 때.

최설은 환한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장님! 그 녀석이 보통 야간 근무라서. 밤 시간대에 연락해서 바로 면접 시간 잡도록 하겠습니다!”

김철수 사장부터 최설 막내 대리까지 사무실 모두가 만족하는 순간.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세요! 앗! 저 이거 보조 배터리 좀 빌려 갈게요!”

천문석은 감귤 상자와 보조 배터리를 들고 사무실을 나셨다.

쿵-

철문이 닫히는 순간 최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사무실에 완전히 자리 잡고 부르려 했던 오랜 친구를 부를 때가 왔다!

제주도 삼합 카지노 호텔 지배인, 진교은.

진교은을 김철수 사무실의 신입 사원으로 부를 때가 왔다!

* * *

휘이이, 휘휘-

감귤 박스를 든 천문석은 언제나처럼 273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마침 시간은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애매한 평일 오후, 버스 좌석은 거의 다 비어 있었다.

천문석은 감귤 박스를 옆좌석에 놓고 편하게 창가에 앉아 창밖 광화문을 바라봤다.

인도에는 관광객과 일반인, 직장인들이 바쁘게 걷고, 도로에는 수많은 차량이 줄줄이 이동하고 있다.

불과 며칠 전,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본 텅 빈 인도와 난장판의 된 도로, 박살 난 빌딩과 폐허가 된 건물이 이렇게 변했다는 게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하-

이 순간 웃음이 터지고 어째선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게이트 전쟁 승리로 얻게 된 평화로운 일상.

이 일상을 만드는 데는 자신의 힘과 노력도 약간은 들어갔다.

하지만 진정한 영웅들은 따로 있었다.

부으으으응-

이때 버스가 부드럽게 회전했다.

버스 창문 너머로 곧게 뻗은 광화문 광장이 보였다.

수많은 헌터와 일반인이 가득한 광장 위로 기억 속 사람들의 모습이 투영된다.

-마수와 몬스터와 끝까지 싸운 군인.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경찰.

-바리케이드를 쌓고 화염병을 던지며 싸운 주민.

-바이크를 타고 달리며 쇠파이프로 몬스터를 후려친 폭주족.

-열심히 오리배 페달을 돌려 한강을 건넌 시민들.

……

1999년과 2000년, 게이트가 열린 세기말과 밀레니엄을 살아간 모든 사람.

게이트 전쟁, 그 불꽃 같은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수많은 영웅을 생각하며.

천문석은 말했다.

“감사합니다.”

* * *

서울 시내를 달리는 273 버스 안.

천문석은 보조 배터리를 연결한 스마트폰으로 폭풍 검색을 했다.

-서리 늑대.

-탱탱볼 늑대.

-시고르자브르.

-냉기를 뿜는 늑대.

……

천문석은 집중해서 스마트폰 검색 결과를 살폈다.

의인 광장은 시고르자브르 광장이 됐지만, 광장을 먹는 방법은 바뀌지 않았다.

아니 약간 바뀌긴 했다.

한강을 얼리는 것에서 한강에 얼음 다리를 놓는 것으로!

그러나 이미 한번 했던 일!

서리 늑대만 찾으면 다시 얼음 다리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리고 천문석은 확신이 있었다.

2000년에 실종된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는 분명 20년 존버에 성공했다!

이 시대 2020년 어딘가에 분명 서리 늑대는 있다!

그 서리 늑대만 찾으면 시고르자브르 광장을 먹을 수 있다!

찾는다면 말이다…….

찾는다면…….

에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서리 늑대가 있을지도 모를 장소들이 떠올랐다.

게이트 너머 광활한 이세계.

불쑥 튀어나오는 포켓 공간 던전.

무작위로 나타나는 공간의 틈 균열.

게이트 전쟁의 난장판에서 서리 늑대가 이동했을 장소가 못해도 수백 곳은 된다.

게다가 20년이 지났다.

그 흔적을 찾고 추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천문석은 서리 늑대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헌터들은 게이트, 던전, 균열 그 어디든 간다.

그리고 사람 생각은 모두 비슷한 법이다.

동글동글한 털 뭉치 같은 서리 늑대를 완벽히 표현한 동상!

이런 동상을 만들었다는 건 서리 늑대의 모습에 대한 거의 완벽한 정보가 전해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시고르자브르 광장, 수천억은 될 광장의 소유권이 서리 늑대에게 있다.

서리 늑대의 정보가 있고, 서리 늑대를 찾으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당연히 수많은 헌터들이 눈에 불을 켜고 서리 늑대를 찾았을 거다.

한강에 얼음 다리를 만들면 수천억 가치의 광장을 날름할 수 있으니까!

보물선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처럼. 지난 20년 동안 서리 늑대를 찾아다닌 헌터들이 하나둘이 아닐 거다.

그러나 검색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시고르자브르, 초능력 개라고 시베리안 허스키를 파는 브리더 광고.

-깜짝 놀라는 이모티콘이 계속 이어지는 허탈한 블로그 정보 글.

-시고르자브르가 누군가의 장난에서 시작됐다는 예리한 음모론.

별 의미 없는 내용과 낚시글만 가득할 뿐. 서리 늑대의 목격 정보 같은 유용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당연했다.

폐쇄적인 헌터 업계에서 서리 늑대 목격 정보 같은 유용한 정보가 그냥 풀릴 리 없다.

그런 유용한 정보는 이너서클 안에서만 돌고 있을 거다!

그리고 이 폐쇄적인 이너서클 안에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자신에겐 이미 있었다.

오래전 장철 헌터의 소개로 가입한 달콩 헌터 클럽!

거기서 정보를 얻으면 된다!

그러나 급하게 움직여서는 안 된다.

수천억 가치의 광화문 게이트 지역 광장이 걸린 일!

치밀하고 은밀하게,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 움직여야 한다!

마침 백곰권 꼬맹이가 잠잠해질 때까지 한 달 정도는 숨을 죽여야 했다.

천문석은 심플한 계획을 세웠다.

한 달 동안 치밀한 서리 늑대 추적 계획을 짜면서, 겸사겸사 이 펜던트의 비밀을 파헤친다!

천문석의 손에는 어느새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펜던트가 들려 있었다.

북한산에서 만난 이름 모를 절대자가 최후의 순간 자신에게 전한.

나이트 아머가 봉인된 펜던트!

이 봉인된 펜던트에서 어떻게 나이트 아머를 꺼낼 수 있는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천문석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장강 유통의 장민 대표!

장민 대표의 인맥과 능력이라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그 전에 확인할 게 있었다.

자신이 일으킨 마지막 나비 효과.

천문석은 문득 미소 지으며, 며칠 전 만난 사람들을 떠올렸다.

주저하지 않고 석궁을 쏘고, 살벌하게 부엌칼 창을 휘두르던 소녀.

조각 같은 미남이라는 말이 너무나 어울리는 회사원.

마지막 선물로 곰인형 곰곰이를 던져 준 아이.

자신에게는 며칠의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소녀, 회사원, 아이에게는 20년의 세월이 지났다.

살벌한 소녀는 한 회사의 대표가 됐고, 잘생긴 회사원은 1세대 헌터가 됐다.

그리고 아빠 품에 꼭 안겨 있던 아이는 훌쩍 자라 자신과 비슷한 나이가 됐을 거다.

장민, 장철, 장세린.

그리고 특급 헌터.

특급 헌터네 가족들은 전보다 더 크게 웃고, 더 즐겁고 신나게 지내고 있을 거다.

아직 확인하기 전인데도 반드시 그럴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걸 확인하는 건 조금 나중의 일이다.

정말 길었던 의뢰가 마침내 끝난 지금 배불리 먹고 늘어지게 쉬는 게 먼저였다.

팅-

천문석은 손에 쥔 펜던트를 공중으로 튕겨 올렸다.

핑그르르-

빠르게 회전하는 펜던트를 잡는 순간.

천문석은 감귤 상자를 들고 버스 좌석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느새 273번 버스는 목적지, 자신의 옥탑방이 있는 동네에 도착했다.

집으로 가는 길.

천문석은 슈퍼마켓에서 구이용 삼겹살과 한우 10kg, 찌개용 목살 2kg, 채소와 맥주, 음료수, 과자 특히 육포를 잔뜩 샀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언덕을 올라 5층 건물 계단을 지나 옥상 문 앞에 섰다.

마침내 집에 돌아왔다!

옥상 문 너머 너무나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질 때.

천문석은 박력 있게 옥상 문을 열며 외쳤다.

“특급 알바가 왔다!”

이 순간 들려왔다.

탱, 탱, 탱-

탄력 있는 탱탱볼이 튕기는 소리가!

그리고 보였다.

동글동글 새하얀 털 뭉치가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 아래서 날아가는 모습이!

천문석의 시선이 털 뭉치를 따라 움직였다.

동글동글 새하얀 털 뭉치는 옥탑방 벽으로 날아가 부딪치고.

탱, 탱, 탱-

탄력 있는 탱탱볼처럼 벽과 바닥을 튕겨 돌아왔다.

새하얀 털 뭉치는 강아지였다.

강아지!

크기가 확 작아졌지만,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며칠 전 세기말에서 돌아올 때 헤어진 동료!

시고르자브르 광장의 주인!

수천억 광장의 소유주, 서리 늑대!

치밀한 계획을 세워 반드시 찾겠다고 다짐했던 서리 늑대가!

내 집, 내 옥탑방 벽과 옥상 바닥에 튕기고 있었다!

진짜 탱탱볼처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