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21화>
“…….”
천문석이 할 말을 잃는 순간.
최설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이글이글 두 눈이 불타는 최설!
최설은 천천히 일어나 사무실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가리켰다.
“엠마, 선임 ‘대리’님.”
“게릭, 우수 ‘대리’님.”
“클릭스, 최우수 ‘대리’님.”
“폴리머, 마력 각성자 ‘대리’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최설.
“최설, 막내 ‘대리’.”
“…….”
천문석은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장 1, 부사장 1, 대리 5, 사원 0.
아니, 여기가 무슨 가족 회사도 아니고 전부 다 대리야!?
그러나 누군가를 설득하는 건 천문석의 특기!
“최설! 생각해 보면 이 상황이 그다지 나쁘지…….”
어떻게든 입을 털어 설득하려는 순간.
으아악-
최설이 분통을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너 이번에도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거지! 뭐가 이따위야!? 전부 대리잖아!? 직원이 다섯 명인데 전부 대리라고! 야, 이 사기꾼아! 뭐, 대리 특진이라고!?”
천문석은 재빨리 높게 쌓인 귤 상자 뒤로 몸을 피하며 외쳤다.
“야, 나한테 뭐라고 하면 안 돼! 나 너랑 같이 부산 던전에 있었잖아!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야!”
“뭐!?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야, 이!”
분노한 최설이 귤 상자를 향해 돌진할 때.
대리 4인조가 움직였다.
“모두 부사장님을 지켜야 한다!”
“모두 막내 대리를 막아랏!”
“이 무슨 불손한 언행을!?”
리더 엠마가 명령하는 순간 탱커 게릭이 번개같이 움직여 앞을 막고, 근딜 클릭스, 마력 각성자 폴리머가 좌우를 포위했다.
최설은 순식간에 4명의 대리에게 포위돼 움직이지 못했다!
딱 맞아떨어지는 호흡과 타이밍!
“훌륭하다!”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4인조 대리에게 포위당한 최설이 분통을 터트렸다.
“빌어먹을 부산 던전! 젠장할 배송의뢰! 땡볕에서 일주일 동안 운송선을 몰았는데! 전신이 까맣게 탈 때까지! 버텼는데! 으아악!”
까맣게 탄 최설이 절규했다.
삼합회 보스 비서 출신 최설은 김철수 사무실에 꼭 필요한 사무처리 인재!
천문석은 재빨리 최설을 진정시켰다.
“잠깐만! 최설 대리! 내가 해결해 줄게! 잠시만 기다려!”
외침과 동시에 대리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장본인 김철수 사장님, 철수형을 찾았다.
그러나 텅 빈 사장 책상!
사무실 안 어디에도 철수형은 보이지 않았다!
“철수형! 사장님은 어디에…….”
천문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게릭이 절도 있는 자세로 대답했다.
“사장님은 금성 그룹과 미팅이 있으셔서 나가셨습니다!”
“……금성 그룹? 그 10대 그룹? 금성 그룹!?”
반문하는 순간 바로 들려오는 대답.
“네 맞습니다!”
아니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금성 그룹이 여기서 왜 튀어나와!?
천문석이 경악하는 순간, 대리 4인조가 자랑스럽게 외쳤다.
“캬- 역시 김철수 사장님!”
“사장님께서 온몸을 던져 거래를 뚫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금성 그룹 협력업체입니다!”
“김철수 사무실의 앞에는 탄탄대로가 깔렸습니다!”
이때 상기된 얼굴의 엠마가 천문석의 등을 팡팡 두들기며 외쳤다.
“야, 그뿐이 아냐! 너, 금성 길드 알지? 우리 금성 길드하고도 거래 열었어! 크크킄- 완전 대박이야! 우리 회사 장난 아냐!”
“……!”
금성 길드면 차세대 헌터로 유명한 허무인이 있는 대형 길드!
그런 대형 길드가 우리 같은 작은 사무실이랑 거래를 텄다고!?
“앗! 그러고 보니!”
자신도 쿠팡맨 시즌2에서 의뢰 보수 이상의 대가를 챙겼다!
캐부자 마도구 제작자, 레이 실트!
재금 연구소의 하얀 번개 추이린 수석 연구원!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빡세게 구르며, 이 두 사람과 일반적인 동료 이상의 끈끈한 인간관계를 형성했다!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장강 유통, 장민 대표.
-1세대 헌터 장철.
-재금 연구소, 추이린 수석 연구원.
-오리온 길드, 최후식 이사.
-대인 전 세계 랭커 암살검 한경석.
기존 인맥에 새로운 인맥이 추가됐다!
-마도구 제작자, 레이 실트.
-10대 그룹, 금성 그룹.
-대형 길드, 금성 길드.
헌터 업계의 실력자들!
자신이 배송의뢰를 수행하는 동안, 김철수 사무실은 이들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도약의 기반을 마련했다!
자신은 나이트 아머가 봉인된 펜던트를 얻고, 시고르자브르 광장을 날름 할 방법을 찾았다.
거기에 더해서 김철수 사무실까지 폭발적 성장을 앞두고 있다!
하늘이 그동안 겪은 불운의 보상을 한방에 해 주고 있다!
“이렇게 재수가 좋을 수가! 카캬카-
천문석이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대리 4인조도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크킄킄- 맞아! 우리 엄청 재수 좋아!”
“하하하- 부사장님. 저를 고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충성, 충성! 김철수 사무실에 뼈를 묻겠습니다!”
“전 무급으로 일해도 좋습니다! 으하하-.”
어느새 천문석과 대리 4인조는 분노한 최설은 까맣게 잊은 채, 충성과 자부심이 담긴 웃음과 외침을 쏟아 내고 있었다.
끼이익-
이때 철문이 열리고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왔습니다…….”
“철수형!”
번개같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보였다.
퀭한 눈과 푸석한 머리카락.
턱 끝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과 터진 입술.
김철수는 키즈 카페 점장으로 구를 때처럼 더 초췌해진 모습으로 철문 앞에 서 있었다.
“철수형……?”
천문석이 의문을 담아 묻는 순간.
김철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왔냐? 문석아…… 고생 많았다. 바로 집에 가서 좀 쉬어라.”
“아니, 철수형 얼굴이 왜 그래요? 쉴 사람은 제가 아니라 형 같은데…… 철수형 무슨 레이드라도 다녀 왔습니까!?”
“…….”
김철수는 말없이 천문석에게 눈짓하고 비품이 높게 쌓인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둘은 몇 년이나 알바를 같이한 척하면 척인 사이!
천문석은 재빨리 김철수를 따라 들어갔다.
김철수는 감귤 박스가 산처럼 쌓인 곳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문석아. 요즘 너무 힘들다…….”
“네!? 힘들다고요!?”
천문석은 진심으로 놀랐다.
철수형은 화학 공장 대형 하수관 슬러지를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깰 때도!
힘들다는 말 한번 하지 않고 묵묵히 일을 모두 끝내고 픽- 쓰러져 기절한 사람이다!
그런 철수형이 힘들다는 말을 한다고!?
“철수형 도대체 무슨 일이…….”
경악한 천문석이 묻는 순간.
김철수의 주머니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띠리리리리-
순간 김철수는 보지도 않고 휴대폰을 받으며 대답했다.
“네. 화영씨…….”
‘화영씨?’
부으으응-
통화 중인데 다시 진동하는 김철수의 휴대폰!
“화영씨 잠시만 전화가 걸려 와서…… 네? 아닙니다. 세인씨 아니에요…….”
‘세인씨?’
어쩐지 귀에 익은 두 이름과 쩔쩔매며 전화를 받는 철수형.
이때 감귤 박스 너머 존경스러운 눈으로 철수형을 보며 속삭이는 4인조 대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사장님.”
“난 사장님을 존경하기로 했어.”
“당연히 존경해야지! 저렇게 온몸으로 노력하시는데!”
“우리 회사의 발전은 모두 김철수 사장님 덕분이라니까!”
……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간질거리는 뇌리!
무언가 생각이 날락말락 했다!
‘뭐지, 내가 놓친 게 뭐지!?’
스스로에게 물을 때.
문득 눈앞에 높게 쌓인 감귤 상자가 보였다!
[임옥분 농업 법인]
순간 버튼을 누른 듯 생각이 튀어나왔다!
임옥분 여사님, 제주도!
‘강화영’은 철수형과 맞선을 본 임옥분 여사님의 손녀이자 류세연의 사촌 언니다!
‘허세인’은 철수형이 제주도 호텔 매몰사고 현장에서 구해 준 사람이다!
자신이 배송의뢰를 받고 부산 던전으로 출발하기 직전.
철수형은 ‘강화영’과 ‘허세인’두 사람과 흥미진진한 연예를 시작했다!
순간 기이한 직감이 왔다.
허세인, 흔치 않은 ‘허’씨 성.
그런데 방금 다른 허씨 성을 가진 사람 이야기를 들었다.
금성 길드의 허무인!
게다가 금성 길드의 모회사 격인 금성 그룹의 오너 일가의 성이 ‘허’씨다!
그리고 김철수 사무실은 금성 길드, 금성 그룹과 관계를 맺었다!
[김철수 사무실] *** [금성 그룹, 금성 길드]
직원 수 10명도 안 되는 작은 헌터업 사무실과 10대 그룹 금성 그룹!
아무 관련 없을 것 같은 둘 사이를 이어 준 존재가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허세인! 철수형이 구해 준 사람이 금성 그룹 오너 일가와 관련이 있구나!’
깨달음의 순간.
“네, 그럼 30분 후에 로비에서 뵙겠습니다. 세인씨.”
강화영의 전화를 받은 김철수는 허세인이라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문석아. 나 나가봐야겠다. 미안하다. 고생하고 왔는데 술 한잔할 시간이 없네.”
“아닙니다! 사장님! 당장 나가보셔야죠!”
천문석은 미래의 재벌 사위, 철수형에게 깍듯이 대답했다.
김철수는 목소리 만들어도 천문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야, 진짜 그런 거 아냐! 지금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서 그래.”
하아-
깊은 한숨 뒤로 이어지는 혼잣말 같은 목소리.
“분명 세연이랑 특급 헌터한테 코치를 받았는데…… 뭔가, 뭔가. 점점 더 난장판이 되는 것 같아…….”
철수형의 혼잣말을 듣는 순간 무엇이 문제인지 감이 왔다!
류세연과 특급 헌터 모두 연애를 예능, 러브 시그널로 배운 모태 솔로다!
그런 두 사람의 코치를 모태 솔로 철수형이 받았으니 상황이 잘 진행될 리 없었다!
이때 고개를 젓던 김철수가 문득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보다 사무실도 궤도에 올랐으니까. 너 휴가 잘린 거 합쳐서 장기로 쉬다가 와라. 이번에는 진짜로 좀 쉬어. 그렇게 빡세게 일하다가 큰일 난다.”
철수형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초췌한 얼굴로 자신부터 챙기고 있었다.
“제가 보기엔 휴식은 철수형이 더 필요한 거 같은데…….”
“뭐? 야, 나 완전 쌩쌩해! 요새 사무실도 잘나가고 완전 할 만하다. 하하하-.”
웃음을 터트린 김철수는 대리 4인조를 슬쩍 가리켰다.
“이야기 들었지? 우리 사무실 금성 그룹, 금성 길드하고 거래 텄다!”
김철수는 잘나가는 청년 사업가처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침 백곰권 꼬맹이를 피하고자 당분간 몸을 사려야 하는 상황.
천문석은 조심스레 물었다.
“진짜 그래도 될까요?”
“당연하지. 현장 업무는 저기 대리들이 잘 해 주고 있어. 벌써 ‘헌터부 긴급 던전 호출’에 3번이나 출동해서 길드 포인트도 쌓았다.”
헌터부 긴급 던전 호출.
게이트 안정화 권역 밖에 무작위 던전이 생길 때 헌터부에서 떨어지는 호출이다.
직접적인 보상은 크지 않지만, 이를 통해 길드 포인트를 쌓으면 각종 이권이 주어진다.
그런 헌터부 긴급 던전 호출에 출동해서 길드 포인트를 쌓았다는 건.
김철수 사무실이 서류 핸들링 업무를 넘어 현장 업무, 몬스터 헌팅 영역에도 진출했다는 뜻이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몇 주 동안에도 김철수 사무실은 발전하고 있었다.
철수형이 엠마, 게릭, 클릭스, 폴리머. 네 사람을 대리로 승진시킨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지금은 안전한 낮은 등급 던전에 팀으로 참여해서 클리어하고 있어. 너 쉬고 돌아오면 인력 충원하고 조금씩 위험도 큰 임무로 돌리자. 잘 하면 내년쯤 이세계 거점 도시에 작은 길드 오피스 하나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철수형! 캬- 사장님은 계획이 항상 있으시군요!”
김철수는 피식 웃으며 천문석의 어깨를 툭 쳤다.
“계획은 무슨. 네가 뚫어 준 인맥 덕분이야. 그리고 너 통장 확인해라. 동대문 의뢰 인센티브 입금했다. 앗. 잠시만 깜빡할뻔했네.”
갑자기 책상 서랍을 열고 무언가를 찾는 김철수.
“아, 여기 있었네. 이거 장강 유통에서 온 거다. 가져가서 확인해 봐.”
김철수는 장강 유통 로고가 인쇄된 서류 봉투를 건넸다.
묵직한 서류 봉투를 받는 순간 내용물이 뭔지 감이 왔다.
이세계 쿠팡맨 시즌 1.
그때 얻은 뼈 도끼와 상급 마석 경매 관련 서류다.
“철수형 그럼 전 먼저 가 볼게요. 아 여기 사용한 장비랑 서류 놓고 갈게요. 배송품 인수증이랑 관련 서류. 장비 들어 있습니다.”
“알았어. 뒤처리는 걱정하지 말고 얼른 가서 쉬어라. 이번에도 고생 많았다. 푹 쉬어.”
김철수가 말하는 순간 게릭, 클릭스, 폴리머, 엠마가 뒤이어 입을 열었다.
“부사장님! 장비는 제가 깔끔하게 정비하겠습니다!”
“부사장님! 사무실은 걱정 말고 푹 쉬다 오십시오!”
“앗! 부사장님. 이거 감귤 상자 가져가세요! 사무실에 엄청 많습니다.”
“잘 가! 푹 쉬고 의뢰 때 보자.”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감귤 상자를 든 천문석이 마지막 인사와 함께 나가려 할 때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검게 탄 얼굴 한가운데 광채가 번뜩이는 눈이 보였다.
최설!
“…….”
말은 없었지만, 최설의 뜨거운 시선을 받는 순간 직감했다!
이대로 떠나면 김철수 사무실 최고의 사무처리 인재를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