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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28화 (32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28화>

고맙다! 친구야!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이세기에게 인사를 하고,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러브 시그널을 봤다.

손안에 곧 건물이 될 코어가 있어서일까?

아무 걱정 없는 20대 남녀 6명의 풋풋한 연애 이야기가 3배는 재밌어졌다!

그리고 러브 시그널이 끝나는 순간.

“오늘도 재밌었어! 역시 이시언은 최고야!”

신나하는 외침과 함께.

쓰으윽, 쓰윽-

누군가 마루를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 있는 사람 중에 마루 위로 미끄러질 사람은 한 명뿐이니 누군지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알바! 뭔가 좋은 일이 있는 거 같은데!? 얼굴에서 막 웃음이 느껴져!”

예상대로 엉덩이가 아파 엎드린 채로 마루를 미끄러져 온 특급 헌터였다.

“……너 괜찮냐?”

“뭐가?”

“엉덩이 말야?”

“완전 괜찮아! 잘 봐!”

이야얍! 얍, 얍!

특급 헌터는 엎드린 채로 기합을 지르며 쓱, 쓱- 마루 위에서 원을 그렸다.

그리고 즐거운 목소리로 외쳤다.

“이거 엄청 재밌어! 엉덩이 맞길 잘한 거 같아! 카캬캌-.”

와, 이 긍정적인 녀석!

특급 헌터는 역시 특급 헌터였다.

엉덩이가 아파서새빨개져 기어 다니면서도 거기서 즐거움을 찾다니!

“알바! 뭐 좋은 일 있어!? 엄청 웃는 얼굴인데!?”

“내 얼굴에서 막 웃는 게 느껴진다고?”

“응!”

특급 헌터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고.

천문석은 새삼 감탄했다.

‘와, 이 귀신 같은 녀석! 어떻게 알아챈 거야?’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이 이런 기분일까?

천문석은 특급 헌터 눈앞에 이제 곧 건물로 변할 괴수 코어를 내밀며 은근슬쩍 자랑했다.

“이 구슬 어떠냐? 엄청 좋아 보이지 않냐?”

쓱 훑어보더니 바로 나온 대답.

“별론데?”

“……뭐? 야, 자세히 좀 봐! 이거 보통 구슬이 아냐.”

특급 헌터는 씨익 웃더니 반바지 주머니에서 구슬을 꺼내서 내밀었다.

“알바! 이 구슬 봐봐! 엄청 좋은 구슬은 이런 구슬이야!”

“…….”

별다를 게 없는 구슬이었다.

엄지손톱 정도 직경의 보통의 돌 구슬.

그러나 특급 헌터는 엄청난 보물을 보여 준다는 듯 너무나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게 뭐가 대단한데?”

“뭐!? 어떻게 이걸 모를 수가 있지! 이건 앙꼬 대장이 앙꼬에게 준 구슬이란 말야!”

특급 헌터가 깜짝 놀랄 때, 천문석도 깜짝 놀랐다.

“……앙꼬 대장이 앙꼬한테 준 구슬을 어떻게 네가 가지고 있는데?”

순간 특급 헌터는 너무나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카캬캌- 앙꼬랑 구슬치기해서 땄어!”

“……앙꼬가 내가 아는 키즈카페 앙꼬 맞냐? 그 이름이 어려운 아이?”

“앙투안 코스틴 로롤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외치는 특급 헌터.

“……걔한테 이 구슬을 땄다고?”

천문석은 다시 한 번 확인했고, 특급 헌터도 다시 한 번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맞아! 앙꼬 이 구슬 잃고는 분해서 엉엉 울었다니까! 잘 봐봐! 내가 이 구슬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 줄게!”

이야얍!

특급 헌터는 엎드린 채 기합을 지르며 구슬을 튕겼다.

따아악-

손끝에서 쏘아진 구슬이 1미터 앞 기둥을 때리는 순간.

핑그르르르-

엄청난 스핀이 걸려서 원을 그리며 손으로 되돌아 왔다.

돌아온 구슬을 휙- 낚아챈 특급 헌터가 자랑스럽게 들어 보이며 말했다.

“어때 대단하지!? 앙꼬한테 이거 따는데 엄청 힘들었어! 앙꼬가 이 구슬 잃고는 엉엉 울었다니까!”

카캬카캌-

그리고 너무나 신나게 웃음을 터트리는 특급 헌터.

놀라운 기술이고 쓸만한 구슬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앙꼬는 특급 헌터가 좋아하는 아이다.

그런데도 특급 헌터는 앙꼬를 엉엉 울리면서까지 구슬을 땄다!

“너 괜찮냐?”

“뭐가?”

“앙꼬 울었다면서?”

“그게 왜?”

특급 헌터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시크한 표정으로 단호히 말했다.

“승부는 냉정한 거야!”

“…….”

앙꼬와 특급 헌터가 잘 안 되는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특급 헌터는 좋아하는 아이라도 승부가 걸리면 봐주지 않는 냉정하고 철저한 아이였다.

“어!? 잠깐!”

이때 문득 예전 일이 기억났다.

특급 헌터와 키즈카페에 놀러 갔을 때, 분명 특급 헌터는 앙꼬가 외치는 순간 가장 먼저 앞장서서 자신을 잡으러 달려왔다!

“……설마!?”

“알바 뭔데?”

특급 헌터가 의아해하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구슬 > 앙꼬 > 나]

“야, 너 전에 앙꼬가 명령하니까! 나 잡으러 달려왔잖아!? 혹시 나 구슬한테도 진 거냐!?”

“앗!”

시크한 표정이 무너지고 당황한 얼굴이 드러나는 동시에 마루 위로 미끄러지는 특급 헌터!

쓱, 쓱, 쓱, 쓰으윽-

특급 헌터는 번개같이 마루 위로 미끄러져 도망치며 외쳤다.

“알바! 미안! 이 오이 먹어!”

후두둑-

오이가 무더기로 날아왔다.

“특급 헌터!”

* * *

“박찬석! 이 미친놈!”

편의점 의자에 앉은 이태성은 이를 갈았다.

곧 나타날 거라 예상한 이세영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

박찬석이 2시간이 다 되도록 아파트 단지 앞에서 서성이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태성은 각성력을 끌어올린 채 박찬석 준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당연했다.

처음 몇 번 신호가 갈 때 깜짝 놀라 전화를 끊은 박찬석 준장은 전화번호를 누르고 지우기만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2시간이 다 되도록!

“와, 이 어이없는 새끼…… 하-.”

이태성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 섞인 탄식을 흘렸다.

어떻게 된 게 자신의 주위에는 제정신, 상식적인 놈들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시는 게 어떨까요? 아니면 보안팀을 붙이시는 게……?”

멀찍이 떨어진 비서가 조심스레 말하는 순간.

이태성은 손을 들어 비서의 말을 끊었다.

이런 일은 남을 시켜서는 안 되는 직접 해야 하는 일이다.

이때 편의점이 있는 건물 입구에서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낯익은 학생들.

2시간 전 이태성을 보고 수군거리며 편의점에 들렸다가 건물 2층 PC방에 들어갔던 학생들이다.

5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정신없이 떠들며 이태성 앞을 지나갔다.

“오크 던전 자리 잡기 힘든데, 1렙만 더하고 가자.”

“담임한테 전화 왔잖아. 당장 집에 안 들어가면 찾아온다고.”

“내일이 수학여행인데. 담임 왜 그러냐?”

“그러게 나이도 많으신 분이 새로 와서 열정이 너무 넘친다니까.”

“너희 담임 바꼈냐?”

“바뀐 지 며칠 안 됐어. 원래 담임 선생님 출산 휴가 가고 임시 담임 왔어.”

“남자 여자?”

“여 선생님인데. 교감보다 나이 많아 보이던데?”

“교장보다도 많을걸? 어제 보니까 교장이 우리 담임한테 깍듯이 인사했어.”

“교장이? 교장 원래 임시직 선생님들 캐무시 하잖아? 왜 인사를 하지?”

“임시 담임이 빽 있는 거 아닐까?”

“빽 있으면 임시 담임으로 안 오지. 임시 담임 일도 많고 박봉인데.”

“하긴 너희 담임 과목이 뭔데?”

“역사. 수업 중에 전투 이야기해 주시는데 완전 실감 나! 낙동강 전선에서 진짜 싸우는 거 같더라니까.”

“맞아. 장난 아냐. 무슨 메달도 보여 주시던데…….”

“그 메달 이렇게 생겼냐?”

이때 기척도 없이 불쑥 얼굴 앞에 내밀어지는 스마트폰.

“흐억- 깜짝이야!”

“히익- 누구세요!?”

학생들이 깜짝 놀랄 때.

이태성은 스마트폰을 흔들며 다시 물었다.

“야, 이거 자세히 봐봐! 그 메달 이렇게 생겼냐고?”

놀란 학생 한 명이 다가와 스마트폰 화면에 뜬 메달을 살폈다.

[서울 수복 작전 참전 메달]

역사 선생님이 보여 주시던 메달과 똑같은 메달이었다.

적혀 있던 문장만 빼고.

“좀 다른데요? 선생님 메달에는 ‘낙동강 전선 참전‘이라고 새겨져 있었는데요?”

“색은 어떤데? 이거랑 같냐?”

“……네, 색은 같은데요.”

화면을 유심히 살핀 학생의 대답을 듣는 순간 이태성은 신동대문에서 들었던 외침이 기억났다.

‘난 이제 선생으로 돌아갈 거야!’

며칠 전 임시 담임으로 온 나이 많은 역사 선생.

게다가 낙동강 전선의 전투 경험담을 실감 나게 풀어 놓고 1급 수훈자에게 수여된 참전 메달을 가지고 있다.

거의 확실했다!

이태성은 바로 물었다.

“너희 담임 선생님 이름 뭐냐?”

“…….”

“…….”

학생들은 경계하는 얼굴로 이태성을 봤다.

이태성은 씨익 웃으며 한 학생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너 혈맹 하지?”

“네? 그걸 어떻게?”

“오크 던전에서 렙업한다며? 오크 던전에서 렙업할 정도면 아직 쪼렙이네. 형이 골드 좀 쏴줄까?”

이태성은 스마트폰에서 혈맹 온라인을 실행시켜서 인벤토리를 슬쩍 보여 줬다.

순간 학생들은 경악했다.

10억 골드!

골드 벌기가 개 빡센 혈맹 온라인의 현 거래 시세는 1:10!

“현금 1억원!?”

한 학생이 경악해 외치는 순간 화면을 보던 다른 학생들도 너나 할 거 없이 외쳤다.

“이거 장비 봐! 15강 거지의 망토. 15강 거지의 갑옷, 15강 거지의 투구…….”

“와, 시바- 드랍 확률 옵션에 몰빵한 15강 거지 풀셋이잖아!”

“이거 장비 가격이 도대체 얼마야!?”

“이거 캐부자 셋트잖아! 유니콘 혈맹 군주도 10강 거지 셋트인데!? 와! 형 재벌이에요!?”

“검 봐봐! 검! 15강. 강탈의 검!”

“와! 얼마나 캐부자면 공격 시 랜덤으로 깨지는 강탈의 검에 강화를 해!?”

순간 고등학생들의 선망 어린 시선이 이태성에게 쏟아졌다.

찢어진 청바지와 목이 늘어난 티셔츠.

PC방에서 며칠 샌 것 같은 몰골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태성은 이 연령대 고등학생들에게 존경받을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다.

게임의 고수!

잠시 후 이태성과 학생들은 같은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골드에 장비까지 선물 받고 웃고 있는 고등학생들은 테이블에 산처럼 쌓인 냉동 만두와 치킨, 핫바와 컵라면, 삼각 김밥을 흡입하듯이 먹었다.

그러면서 게임도 잘하고, 화끈하고 격의 없으면서도 캐부자인, PC방 죽돌이에서 이제는 동네 친한 형이 된 이태성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이태성은 눈을 빛내며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세영!

임시 담임 교사 겸 역사 선생님의 이름은 이세영이 맞았다!

이런 우연이 있다니!

내일 당장 학교로 찾아가서 잡을까!?

생각과 동시에 그래선 안 된다는 감이 왔다.

신동대문에서 겪은 이세영은 힘을 잃었어도 전투 감각은 여전했다.

절대 도망치지 못할 장소에서, 절대 거절하지 못할 상황을 만들고 제안을 해야 한다!

마침 상황이 아주 좋았다.

이태성은 학생들에게 방금 들은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너희들 내일부터 수학여행 간다고?”

“네.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요.”

“원래는 오늘 제주도 사건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몰랐는데.”

“방금 피시방에 있을 때 문자 왔어요. 해결돼서 그대로 간다네요.”

“아마 부산에서 배 타고 해안선을 따라 완도로 갔다가 제주도로 갈 거예요.”

“아, 더럽게 오래 걸리겠네. 그냥 비행기 타면 안 되나?”

“완도에 있는 게이트 방문해야 한다던데?”

“완도는 왜? 게이트는 광화문에도 있잖아?”

“거기가 게이트 전쟁 때 무슨 방어 거점이라던데. 호남평야, 무슨 작전?”

“완도랑 호남평야는 멀지 않나?”

……

학생들은 음식을 먹으며 한마디씩 했고, 이태성은 눈을 반짝였다.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이세영!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배 위, 섬인 제주도 모두 도망칠 곳은 없다!

거기서 이세영을 포획한다!

이미 학교 이름을 아는 이상 타고 갈 선박과 일정을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이제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이태성은 멀리서 자신을 주시중인 비서에게 슬쩍 손짓했다.

“야, 나 먼저 간다. 나중에 보면 아는 척하고.”

이태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아이템 고마워요! 형.”

“형. 사주신 거 잘 먹을게요.”

“나중에 저희 쩔좀 해 주세요.”

“어, 형 이름이 뭐예요!?”

학생들은 깨달았다.

아직 이 캐부자인 형 이름도 묻지 않았다!

학생들의 시선이 모이는 순간 이태성은 짧게 대답했다.

“이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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