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27화 (328/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27화>

생각지도 못한 이세영을 만난 순간.

힘을 되찾아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돌아온 것은 단호한 거절이었다.

청년은 바로 들러붙어서 될 때까지 매달리려 했으나, 역시 힘을 잃어도 검은 폭풍은 검은 폭풍이었다!

이세영은 앗- 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도망쳐 버렸다.

도망친 그 녀석을 찾기 위해 3일 동안 박찬석 준장을 미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꼬리를 잡았다!

검은 폭풍, 이세영이 서울에 있었다니 상상도 못했다!

“하, 시바- 엉뚱한 이세계만 훑고 있었네!”

청년이 희열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할 때.

편의점으로 들어가던 고등학생무리 중 한 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저 형. 그 사람 닮지 않았냐?”

“누구? 연예인 닮은 사람이 있어?”

솔깃한 얼굴로 편의점 앞 테이블을 본 학생은 실망한 표정이 됐다.

“옷 입은 거 보면, 여기 2층 PC방 죽돌이 형 같은데?”

“아니, 자세히 봐봐. 이태성 길드장님 닮은 거 같은데? 그 졸업앨범 사진이랑 비슷하잖아?”

“뭐!? 이태성 길드장!?”

“그 캐부자 이태성!?”

깜짝 놀란 학생들의 시선이 의자로 향했다.

그리고 곧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연이어 터졌다.

“야, 이태성 길드장이면 재산이 조 단위일 텐데. 찢어진 청바지 입고 편의점 의자에 앉아서 바나나 우유를 먹고 있겠냐?”

“옷도 그렇지만, 분위기가 딱 봐도 헌터가 아니네.”

“맞아. 레이드 탱커가 아니라 동네 백수형인데 뭘.”

“그리고 무엇보다 이태성 길드장이면 우리가 이렇게 무사할 리 없지.”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성 길드의 이태성 길드장은 수많은 괴담의 주인공이었다.

몰래 사진을 찍은 파파라치가 갑자기 거지꼴로 던전에서 발견되고.

스팸 메일을 보내던 해외 도박 사이트가 갑자기 몰려 온 헌터들에게 박살 났다.

불친절했던 주민센터 직원이 넋이 나간 얼굴로 오크와 같이 묶인 채 발견되고.

이태성에게 국정조사 출석을 요구하고 12시간 동안 대기 시킨 국회의원 자택이 하늘에서 떨어진 마수로 무너진 적도 있었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한국 사람은 모두 짐작하고 있었다.

20년 동안 일어난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특이사건의 범인이 이태성 길드장이란 걸.

한국에는 이태성보다 돈이 많은 사람도, 영향력이 큰 사람도, 명성이 높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면에서는 이태성이 한국에서 최고였다.

미친놈!

이태성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 최고의 미친놈이었다!

그런 이태성이 자신을 보고 수군거리는 학생들을 그냥 놓아둘 리 없었다.

학생들은 곧 동네 백수형에 관한 관심을 접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

학생들의 수군거림을 들은 비서는 내심 한숨 쉬며 옆 옆 테이블의 길드장을 힐끗 봤다.

찢어진 청바지에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다 먹은 바나나 우유를 계속 빨아 먹는 정말 없어 보이는 청년.

다리를 테이블에 올린 채 편의점 플라스틱 의자를 흔드는 청년의 모습이 너무나 익숙해 보인다.

누구나 방금 학생들처럼 동네 백수, PC방 죽돌이라고 생각할 모습이다.

자신도 정말로 그런 게 아닌가 헷갈릴 지경이니까.

그러나 이 청년이 자신의 상관이었다.

서울 수복 작전을 성공시킨 1세대 헌터이자, 20년 동안 지금 모습 그대로인 신체 노화조차 정지한 최고등급 각성자.

한국 탱커 랭킹 부동의 1위.

한국에서 3대 길드를 꼽으면 항상 들어가는 태성 길드의 길드장.

이태성.

지금 옆 옆 테이블 몇 번을 봐도 백수 청년 같은 사람이 태성 길드 이태성 길드장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태성 길드장의 모습은 평소 그대로였다.

미행을 위해서 위장을 했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사 온 야구 모자 말고는 평소 모습과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누가 상상이나 할까?

재산이 조 단위라는 태성 길드, 이태성 길드장의 평소 모습이 이렇다는걸!

수행비서인 자신도 아직 믿기지 않는다.

이 백수 같은 청년이 어지간한 대기업보다 영향력이 큰 태성 길드의 길드장이다!

‘하아-.’

비서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태성 길드 취업에 성공하여 비서실에 발령받고 수행비서가 된 순간 정말 미친 듯이 기뻐했다.

길드장의 수행비서.

그것도 그냥 길드장이 아닌 그 이태성 길드장의 수행비서라니!

엄청난 행운이 믿기지 않았었다.

그때 자신을 보는 선배들의 불쌍한 눈빛을 알아봐야 했는데…….

이태성 길드장은 모든 면에서 소문으로 듣던 것 이상이었다.

비서가 다시 한 번 탄식할 때.

이태성 길드장의 신난 목소리와 음흉한 웃음이 들려왔다.

“세영아! 기다려라! 내가 네 힘을 찾아주마!”

크크크-

“그리고 알뜰히 부려 먹어 주마!”

“…….”

비서는 슬그머니 일어나 한 칸 더 옆 테이블로 옮겼다.

이렇게 스노우볼이 구르고 있었다.

-전투 보상으로 챙긴 거대 괴수 ‘코어‘.

-코어를 선점하려고 새겨 놓은 한글 문장.

-너무 자주 사용해서, 이제는 자기 이름보다 더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가명 ‘이세기‘.

천문석이 제주도에서 한 일들이 스노우볼이 되어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구르고 있었다.

제주도, 일본, 중국, 서울.

수많은 사람을 엮어서 데굴데굴 커다랗게.

그러나 막상 스노우볼을 굴린 사람, 천문석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신나게 웃고 있었다.

* * *

별과 달이 뜬 여름밤.

마당에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캬카-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린 후, 힐끗 저택 1층 넓은 마루를 살폈다.

평소라면 호기심어린 얼굴로 제일 먼저 달려올 녀석이 아무 반응이 없었다.

커다란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

맨 앞에 엎드린 특급 헌터.

특급 헌터 엉덩이에 부채질을 해 주는 임옥분 여사님.

귓속말을 나누며 텔레비전에 집중한 류세연과 장민 대표.

그리고 특급 헌터에게 질문 중인 철수 형.

“……그러니까. 이시언이 에리나를 좋아한다고?”

“맞아. 내가 보기에는 이시언도 분명 에리나를 좋아해. 그런데 차가 없어서 슬프게도 차일 위기야!”

“……좋아하는데 차가 없어서 차인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잘 설명해 줄게. 잘 들어 봐…….”

특급 헌터뿐 아니라 일행 중 자신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러브 시그널에 집중하느라 자신에게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천문석은 주의를 끌려던 웃음을 그치고 잘 보이도록 들고 있던 구슬도 내렸다.

‘이 엄청난 보물을 얻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니!’

천문석은 손에 들고 있던 검은 구슬을 보며 탄식했다.

이 검은 구슬은 거대 괴수의 코어를 일기일원공으로 압착해서 만들어 낸 거대 괴수 코어 구슬이었다!

다급한 상황이라 내력을 때려 부어선지 코어는 보물이 아니라 평범한 구슬처럼 보였다.

‘아, 적당히 할걸.’

이대로라면 류세연과 특급 헌터에게 아무리 코어를 보여 줘도 별 감응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코어는 팔 물건!

코어를 팔아서 건물주가 되는 날, 두 사람의 선망 어린 시선이 쏟아질 테니까!

흐흐흐-

천문석은 진심으로 즐겁게 웃으며 인터넷에 ‘코어 가격‘을 검색했다.

“뭐야, 뭐 이렇게 뜨는 게 없어?”

바로 거래소별 시세와 업자들 광고가 뜨는 마석과 달리 코어는 아무리 찾아도 가격이 보이지 않았다.

간혹 있는 건 별 의미 없는 질문 글뿐이었다.

천문석은 화면을 스크롤 했다.

이때 한 인터넷 언론사의 기사가 보인다.

[코어 가격 심층 탐구!]

재빨리 기사를 클릭하니 본문 글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뜬 광고 사이 짧은 문구가 눈에 박혔다.

‘코어는 거래 제한 품목입니다.’

거래 제한!?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지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마당에 쪼그려 앉아 기사에 집중했다.

빠르게 행간을 건너뛰고 중요한 내용 위주로 훑었다.

[코어는 필수품이자 소모품! 당연히 기자는 코어의 가격이 엄청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취재를 시작하자 실상은 예상과 달랐다. 문제는 코어의 실 수요자가 한정적이라는 것!]

[코어가 주로 사용되는 곳은 게이트 안정화 장치와 나이트 아머를 운용하는 ‘국가‘. 마도 공학 ‘연구소‘. 고등급 마력 무구를 만드는 ‘공방‘. 등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은 코어를 돈으로 사들이지 않았다.]

[헌터 포인트나 이권, 마탄과 완성품을 대금으로 주는 방식으로 코어를 거래했다.]

[이런 이상한 거래의 이유는 코어 거래에 게이트 안정화 권역이라는 윤리적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코어는 영토나 마찬가지다…….]

……

이 뒤로 기사에는 코어 거래의 윤리적 문제점들이 길게 이어졌다.

결론은 하나였다.

코어를 살 사람은 국가나 연구소, 대형 공방들!

그리고 이들은 개인에게는 코어를 사지 않는다.

대형 길드나 랭커 등, 출처가 확실한 코어만 산다.

그것도 금전 거래가 아닌 헌터 포인트, 완성품 제공 같은 물품거래로만!

즉, 개인은 코어를 돈을 받고 팔 방법이 없었다!

‘아니, 이게 뭐야!?’

충격을 받는 순간 집중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장민 대표가 보였다.

장민 대표.

헌터 업계의 거물 장민 대표라면!?

천문석은 재빨리 마루에 올라, 장민 대표 뒤에 앉아 은근슬쩍 말을 걸었다.

“대표님. 코어는 얼마나 하나요? 엄청 비싸겠죠?”

장민 대표는 러브 시그널에 시선을 둔 채로 고개를 저었다.

“코어는 시세랄게 없어요. 사실 코어는 구하는 사람도 많고 팔려는 사람도 많은데…….”

“…….”

“실제 거래를 하기에는 걸리는 게 많아요. 정부에서 거래 제한을 걸어 놓은 것도 있긴 한데…… 사실 윤리적 문제가 더 큰 장애죠.”

“윤리적 문제라면?”

“코어는 팔아도 욕을 먹고, 사도 욕을 먹거든요.”

천문석은 장민 대표의 말을 듣는 순간 ‘코어는 영토다.’라는 기사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리고 코어 시세가 왜 나오지 않는지, 코어 와 관련된 복잡한 상황을 깨달았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영토는 그 땅의 가치, 가격 여부를 떠나 판매할 수 없다.

코어도 마찬가지다.

코어를 판다는 것은 안전지대를 늘릴 기회를 파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사는 쪽과 파는 쪽 양쪽 모두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국가에서 시중에 풀린 코어를 무작정 사들여서 안정화 권역을 늘릴 수도 없었다.

코어는 계속 사용되는 소모품이란 게 문제였다.

게이트 안전지대를 넓혔는데 코어 수급에 문제가 생겨서 안전지대를 줄인다면?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게 된 사람들은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의 지지, 선거로 국회와 대통령을 뽑기 때문에.

안전지대를 늘리는 건 쉬워도 안전지대를 줄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코어를 이용한 안전지대 증감은 단기간이 아닌, 장기적인 코어 수급 상황을 보고 극도로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코어는 뜨거운 감자.

아니, 1000도의 열을 뿜어내는 다이아몬드다.

엄청난 가치를 지녔지만, 팔기 위해 건드리는 순간 큰 화상을 입어 버린다!

기껏 획득한 전투 보상, 코어를 판매할 수 없는 어이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천문석은 실망하지 않았다.

수요는 공급을 창출하고,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이 말대로 필요가 생기는 순간 사람들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미 천문석의 머릿속에선 코어를 팔 수많은 방법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 방법 중 가장 심플한 방법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1000도의 화상을 입고 정부에도 찍히겠지만 괜찮았다.

‘내가 찍히는 게 아니니까!’

천문석은 거대 괴수와 마신의 강림체와의 전투에서 전신을 가린 채 전투 대부분을 엄청난 반발장 안, 촉수 속에서 치렀다.

즉,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다.

게다가 거대 괴수에게서 코어를 빼낼 때 새겨넣은 문장이 결정타다!

[이 괴수 코어는 내가 찜했다! 이세기.]

이 순간 천문석은 감탄했다.

‘이렇게 재수가 좋다니!’

무림 던전 때 하도 ‘이세기’ 이름을 팔다 보니, 이번에도 무의식중에 이세기라는 이름을 판 것뿐인데…….

이게 신의 한 수가 됐다!

코어를 날름하고 거래해서 정부에 찍히는 건 ‘천문석‘이 아닌 ‘이세기‘이다!

그러나 이세기에게도 실질적인 피해는 없었다.

이세기는 지금 무림 던전에서 무림 맹주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과 이세기 모두에게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와! 이게 이렇게 되네!’

마치 미리 의도한 것처럼 상황이 딱딱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역시 천검 이세기!

이세기는 언제나 도움이 되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천문석은 코어 구슬을 바라보며 무림 던전에서 비무행 중일 친구를 향해 말했다.

고맙다!

이세기, 내 친구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