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29화 (33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29화>

이태성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학생들의 얼굴에 묘한 동질감과 웃음이 피어났다.

“형도 이름이 태성이에요?”

“형네 부모님도 헌터 지망생이었어요?”

“……헌터 지망생?”

이태성이 반문하자 한 학생이 대답했다.

“이태성 길드장 같은 헌터 되라고 ‘태성’이라는 이름 많이 붙이잖아요?”

“와! 어쩐지 태성이란 이름이 많아진 거 같더라니! 그래서였어!?”

이태성이 오랜 의문의 답을 깨닫는 순간, 고등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우리 반에도 정태성, 최태성, 박태성. 다 있다니까요.”

“여기에도 태성이 하나 있어요.”

순간 한 학생이 앞으로 나서서 상체를 숙이며 건달인사를 했다.

“제가 김태성입니다! 태성 형님!”

흐흐흨-

크크킄-

하하핰-

이태성과 학생들은 동시에 낄낄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때 편의점 앞 도로에 자동차가 멈춰 섰다.

롤스로이스 팬텀.

학생들의 시선이 팬텀에 모이는 순간 운전기사가 운전석에서 내려 재빨리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운전기사는 여전히 낄낄대는 이태성에게 깊게 고개 숙이며 말했다.

“길드장님.”

“…….”

순간적으로 침묵이 흐르고 곧 경악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어……?”

“어, 어어 길드장!?”

“이게…… 무슨……!?”

“길드장인 이태성이면……!?”

경악한 학생들이 얼빠진 목소리를 낼 때.

탁, 탁, 탁-

이태성은 학생들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지나갔다.

“야, 나중에 찾아와. 밥 사줄게. 어디로 찾아와야 하는지 말 안 해도 알지?”

그리고 이태성의 손이 한강 너머 북쪽을 가리켰다.

광화문 광장, 태성 길드 성채 빌딩!

학생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때.

이태성은 경악으로 굳어진 학생들을 지나쳐 운전기사가 열어 준 팬텀 뒷좌석에 탔다.

쿵-

운전기사가 문을 닫고 롤스로이스 팬텀이 출발하는 순간 경악으로 굳어 있던 학생들이 외쳤다.

“이태성!”

“진짜 이태성이라고!?”

“태성 길드, 이태성!?”

“와, 대박! 내가 이태성 길드장님한테 골드를 받은 거야!?”

“하,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완전 가보인데!”

“야, 사진 찍었으면 쥐어 터졌어!”

“맞아! 이태성 길드장 사진은 고등학교 졸업 앨범 사진 말고는 한 장도 없잖아.”

……

학생들의 외침을 뒤로하고 롤스로이스 팬텀은 움직였다.

“공항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운전기사가 절도있게 고개를 숙이는 순간.

이태성은 비서에게도 지시했다.

“크루즈선 하나 구해라. 내일 부산에서 출발해서 완도를 거쳐 제주도까지 움직여야 한다.”

뜬금없는 지시였지만, 비서는 이미 이런 길드장에게 익숙했다.

바로 메모하며 어떻게 크루즈선을 구할지 고심할 때.

“현대 고등학교. 수학여행 일정을 알아내서 바로 보고해라.”

길드장의 다음 지시가 들려왔고 비서는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현대 길드가 아니라…… 현대 고등학교요? 중학교, 고등학교 할 때 고등학교 말씀이신가요?”

“어, 현대 고등학교. 중요한일이니까 바로 움직여.”

“…….”

비서가 설명을 구하는 표정으로 길드장을 봤지만, 이태성은 이미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세영.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검은 폭풍 영입 계획을!

크크큭-

이세영의 행방을 알아낸 이태성이 롤스로이스 팬텀을 타고 떠나갈 때.

박찬석 준장은 여전히 뚫어지게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처음 신호가 몇 번 울렸을 때 끊은 이후로, 번호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할 뿐 아직도 걸지 못한 전화.

“…….”

한참을 고심하던 박찬석은 마침내 결심을 굳혔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었다.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로!

박찬석은 공중전화기로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

딸깍-

상대가 전화를 받는 순간 방금 잠에서 깬듯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당직실입니다.

“네? 어디라고요?”

바짝 긴장했던 박찬석이 자신도 모르게 묻는 순간.

-흠, 흠- 죄송합니다. 목이 잠겨서…… 고용노동부 당직실입니다.

“……죄송합니다. 잘못 걸었나 보네요.”

박찬석은 전화를 끊은 후 번호를 다시 확인한다.

‘044-202-7999.’

이세영 소장님이 긴급 상황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하면서 건네주신 암호화됐다는 전화번호.

박찬석은 신중하게 번호를 확인해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다.

-네 고용노동부 당직실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같은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

사과 후 전화를 끊은 박찬석 준장은 암호화됐다는 전화번호를 네이버 검색창에 입력했다.

[고용노동부 당직실]

“…….”

예전에 통화했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

박찬석 준장은 마침내 깨달았다.

당했다!

* * *

제주 대학 병원의 VIP 병실.

김철수가 구해 낸 자매 중 언니가 전화 통화 하고 있었다.

“꼭 좀 찾아주세요. 그분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회장님.”

-회장님은 무슨 작은 아버지라고 불러라. 세인이 너는 걱정하지 말고. 회복에만 신경 써. 형님이랑 형수님이 크게 놀라셨어.

“네. 작은아버지. 그리고 객실에 같이 있던 사람들…….”

-너 버리고 도망친 그놈들? 넌 신경 쓸 거 없다. 작은아버지가 다 정리할게.

“아뇨. 제가 정리하도록 할게요.”

-……

단호한 조카의 목소리에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지다가 대답이 들려왔다.

-김 실장 보내 줄 테니 도움받아. 한번 바닥을 보인 사람이랑 인연을 정리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거다. 이런 일은 생각 이상으로 지저분해질 수 있어.

“네. 감사합니다. 작은아버지. 다시 한 번 부탁드려요. 그분 꼭 좀 찾아주세요.”

그리고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동생이 재빨리 전화기를 낚아챘다.

“작은아버지. 저예요! 유인이!”

동생이 작은아버지와 통화를 시작할 때.

허세인은 병상에서 몸을 일으켜 창가로 걸어갔다.

도르륵-

링거대를 끌고 걸어간 창가.

VIP 병실의 커다란 창밖으로 화려한 제주도의 야경이 보였다.

불과 몇 시간 전 거대 괴수의 등장으로 시가지가 박살 나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던 모습은 모두 꿈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게 꿈일 리는 없었다.

“저희 정말 친한 친구라니까요!”

“……무사한지 얼굴만 볼게요!”

“내가 다 설명할 수 있어!”

“세인아! 유인아! 나야!”

“사과할 기회를 줘!”

……

VIP 병실 문밖, 경호원들에게 제지를 당하면서도 쉴 새 없이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21층이 붕괴하고 자신과 동생이 침대 아래 깔렸을 때 모른 척하고 도망친 사람들.

유력 정치인, 기업인, 법조인의 2세들이다.

평소 끈질길 정도로 달라붙던 그들은 한번 바닥을 보였음에도 부끄러움도 없이 다시 달라붙으려 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방금 통화한 사람.

자신과 동생의 작은 아버지.

금성 그룹 허세창 회장 때문이었다.

자기 자식들에게는 냉정한 허세창 회장이, 조카인 허세인, 허유인에게 유독 너그럽고 약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지금 밖에 있는 얼굴 두꺼운 이들은 자신들과의 친분을 무기로 십 대 그룹의 일원 금성 그룹과 관계를 맺으려 하고 있었다.

이때 어느새 전화 통화를 끝낸 동생이 경호원들이 막고 있는 문을 보며 말했다.

“언니……?”

허세인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바닥을 본 이상 관계를 돌릴 방법은 없다.

여기선 여지를 주지 않고 깔끔하게 잘라 내는 게 서로에게 좋았다.

그리고 지금은 더욱 중요한 일이 있었다.

허세인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라산에 막혀 그 호텔은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둠 속에서 의식을 잃고 있을 때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

문득 돌아온 정신에 고개를 들었을 때 어둠 속에서 보이던 두 눈.

헬멧과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에서 별처럼 빛나던 두 눈과 단호한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사람은 주저 없이 잔해에 깔린 침대를 들어 올려 자신을 구해 주고는 무너진 천장에 매몰돼 버렸다.

마력 각성자의 도움으로 호텔 21층에서 빠져나와 치료를 받고 정신을 차린 후.

그 사람은 알 수 없는 비명을 지른 후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민박집!’

허세인은 그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했다.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 구두를 신었고.

이 위에 벨트와 고리가 달린 장비를 착용했다.

그리고 안전 헬멧에 마스크, 소방 도끼를 들고 있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

아는 건 그 빛나던 눈과 단호한 목소리.

그리고 자신과 동생을 구하기 전에, 호텔에 고립된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구하고서는 그냥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허세인은 문득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그 사람이라고 나서는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염동력자, 육체 각성자, 무공 각성자…….

수많은 각성자와 헌터들이 자신이 바로 호텔에서 수백 명의 사람을 구한 사람이라고, 자신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허세인은 한눈에 이들이 그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봤다.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던 침대 밑을 빠져나올 때 들려왔던 그 외침.

‘할 만하다!’

이 외침에서 절절히 끓어오르던 그 복잡한 감정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이 외침에 담긴 감정은 각성자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어렵지 않은 일을 할 때 보이는 감정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이 한계를 넘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간신히 해낼 때 터트리는 그런 감정이 담긴 외침이었다.

허세인은 문득 손을 들어 창가에 입김을 불고 짧은 문장을 썼다.

반드시 찾으리라.

회장님, 아버지, 자신의 모든걸 사용해서라도.

허세인은 몇 번이고 다짐하며 창가에 쓴 짧은 문장을 읽었다.

“할 만하다.”

* * *

“으아, 으아아-.”

“허리, 허리가 너무 편하다!”

침대에 눕는 순간 터져 나온 탄성!

김철수는 평생을 동굴에서 살던 사람처럼 연신 탄성을 터트렸다.

“철수 형. 도대체 어디서 잔 겁니까? 민박집에 침대 없었어요?”

천문석이 들고 온 이불을 내려놓으며 묻자, 김철수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말로만 듣던 90년대 수학여행 방이더라. 바닥에 얇은 이불 깔고 대충 누워서 잤다.”

“…….”

“제주도 물가 완전 미쳤어! 그 방이 얼만 줄 알아? 20만원이야! 내 서울집 월세가 45만원인데! 1박에 20만원이라니까!”

천문석은 분통을 터트리는 김철수에게 슬쩍 물었다.

“철수 형. 호텔에서 사람들 구한 사람. 방송에서 찾던데요? 포상금도 준다던데…… 반반 콜?”

뜬금없는 말이지만, 천문석과 김철수는 벌써 몇 년 동안 같이 일해 왔다.

척하면 척이었다.

“와. 이 기발한 녀석. 네가 익명의 제보를 하고. 내가 나서서. 포상금을 반반으로 나누자고!?”

“흐흐흐- 그렇죠.”

천문석이 음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김철수는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자.”

“그 마력 각성자 때문예요?”

김철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짜 연락처 줄 정도면 진짜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건데. 내가 나서서 말하면 미안하잖아. 그리고…….”

김철수는 씨익 웃으며 천문석을 봤다.

“뭐, 사실 내가 한 일이 특별한일도 아니잖아?”

김철수의 시선이 천문석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문으로 향했다.

“난 할머니랑 같이 잘 거야!”

“누나는 이제 찬밥인 거야!?”

“아유. 우리 강아지는 할머니가 좋아요?”

“며칠 만에 엄마 봤는데? 진짜로? 정말로? 엄마랑 같이 안 잘 거야!?”

……

“특급 꼬맹이, 세연이, 여사님. 대표님. 그리고 문석이 네가 활약했지. 뭐, 나야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지.”

김철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맛있는 흑돼지구이를 먹고, 허리가 편한 침대에 누웠으며. 그리고 여기 4등상 부상도 받았잖아.”

김철수가 부상으로 받은 오이를 흔드는 순간.

천문석과 김철수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

흐흐흐-

크크크-

이 순간 천문석은 너무나 유쾌해졌다.

무공, 각성, 재산은 한 사람의 가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주지 않는다.

한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결정한다.

김철수, 철수 형은 무공을 익히지도, 각성하지도 않았다. 재벌 3세도 아니었다.

하지만 철수 형은 그 행동만으로도 훌륭한 사람이었다.

이때 문득 들려오는 철수 형의 목소리.

“앗! 이 오이 너 줄까?”

천문석은 대답 없이 잡낭을 열었다.

잡낭 안에는 특급 헌터가 던지고 도망간 오이가 가득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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