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26화>
정보가 전해진 순간 제주도를 수색 중이던 064 헌터 부대장은 바로 움직였다.
지금 원양으로 나갈 수 있는 건 거대 괴수와의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제주 함대뿐.
제주 함대의 헬기가 뜨고 고속함들이 움직였다. 목적지는 제주도 남서쪽 해상, 제주도와 남중국을 잇는 선이었다.
고속함을 움직인 064 헌터 부대장은 마음이 급해졌다.
군함처럼 화력을 갖췄거나 컨테이너선처럼 특수 장치를 갖추지 않은 배를 타고 원양으로 나가는 건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바다로 도망쳤다고는 생각도 못했다.
‘코어’를 가지고 도망치는 ‘이세기‘가 남중국에 도착하기 전에 어떻게든 잡아야 했다!
남중국은 헌터 군벌들로 개판인 상황.
해안선에 대한 감시가 철저한 한국과 일본, 북중국과 달리, 어선 한 척해안에 몰래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세기가 남중국에 도착하면 ‘코어‘회수는 완전히 물 건너간다!
헌터 부대장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미 7함대의 나이트 아머를 긴급 동원하면서 작전 중 ‘면책권’을 부여하고, 연료인 ‘최고등급 정제 마석‘과 거대 괴수 ‘코어‘제공에 동의했다.
최고등급 정제 마석 제공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대금으로 지급하기로 한 거대 괴수 ‘코어‘!
나이트 아머 엔진에 시동을 거는 데 필수인 ‘코어‘는 게이트 안정화 장치에도 필수인 소모품이었다.
서울, 부산, 대전 같은 대도시에 만들어진 게이트 안전지대는 코어 와 정제 마석으로 작동했다.
마석은 수많은 이세계 사냥터, 던전 광산, 마석 광산 등에서 쏟아지기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코어는 얻을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다.
마경의 핵.
균열과 던전 클리어 보상.
거대 괴수 같은 재앙등급 몬스터와 마수.
그리고 아주 희박한 확률로 고등급 마수에서 나온다.
……
코어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거래가 자유로운 ‘마석‘과 달리 ‘코어‘는 거래가 제한되고 해외 반출 자체가 금지되어 시장가격 자체가 없었다.
대형 길드 레이드 팀에서 코어를 획득하면, 즉시 헌터부에서 일련번호를 찍고 태그를 붙여 관리에 들어간다.
그런 코어가 사라진 거다!
미 7함대에 지급하기로 한 코어를 배를 째고 안 줄 수는 없었다.
결국, 이미 사용처가 정해진 코어를 하나 빼서 줘야 한다는 건데…….
만약에 게이트 안정화 장치에 배정된 코어가 하나 적어진다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안정화 권역에서 빠진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새롭게 방어 체계를 재구축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들 거다.
당연히 시민들은 분노하고,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은 낙선할 것이다.
그 어떤 정치인도 낙선이 예정된 사고 앞에서 참지 않는다.
당연히 국방부 장관과 헌터부 장관이 깨질 테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줄줄이 깨지게 된다.
그렇다고 코어를 사 오기도 쉽지 않았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에 소모품처럼 들어가는 코어를 타국에 판다는 건, 자국 내 안정화 권역, 안전지대의 크기를 줄인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이건 판 쪽도 산 쪽도 윤리적인 문제가 생길 일이었다.
064 헌터 부대장은 방금 통화 한 박찬석 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기억났다.
‘나도 방법을 알아보겠지만! 가능한 그 코어 꼭 회수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박찬석 준장이라도 코어를 구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지금 코어를 얻을 유일한 방법은 정체불명의 헌터, 이세기!
[이 괴수 코어는 내가 찜했다! 이세기.]
당당하게 거대 괴수 몸통에다가 범행 자백과 이름을 새겨 놓은 그 미친놈을 잡는 방법뿐이다!
하지만 쉽지 않을 거라는 감이 왔다.
이세기라는 헌터는 도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보통 적출에 12시간은 걸리는 코어를 순식간에 뽑아내고!
코어에서 흘러나오는 파력 파동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제주도를 빠져나갔다!
마력 스캐너로 제주도 인근 해역을 몇 번이나 훑었는데도 아직도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은 군인이다. 임무가 떨어지면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
064 헌터 부대장은 부하들에게 다시 한 번 명령했다.
“전술 정보기! 아직인가!? 다시 한 번 연락해라! 늦으면 코어가 날아가게 생겼다고!”
* * *
끼이익-
차가 멈춘 순간 사복 차림의 박찬석 준장이 내리며 운전병에게 말했다.
“난 걸을 생각이니. 이만 퇴근하게.”
운전병을 보낸 박찬석 준장은 침을 꿀꺽- 삼키고 멀리 솟은 아파트 단지를 봤다.
‘압구정 신신현대 아파트 단지‘.
2000년 최초의 게이트가 서울에서 열리고, 서울이 아작났을 때 폐허가 됐던 이 아파트 단지가 새로 지어진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이곳에 박찬석 준장의 희망이 있었다.
코어를 구할 마지막 희망이!
박찬석 준장은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로 걸어가며 급박하게 돌아간 오늘 하루를 생각했다.
장민 대표를 통해 미 7함대의 나이트 아머 공중 강습을 요청하면서 ‘코어‘를 대금으로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이미 사용처가 정해진 코어를 대금으로 지급하는 건 불가능해도, 거대 괴수를 잡고 나온 코어를 지급하는 건 가능했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상부 인가를 받았는데…….
어이없게도 거대 괴수 코어가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고 미 7함대와 거래를 주선한 장민 대표를 상대로 배를 쨌다가는 진짜로째일 상황!
헌터부에 비밀리에 비축해 둔 코어를 대금으로 우선 지급하려 했는데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지방 선거 때문에 헌터부 비축 코어가 바닥났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이야기였다.
결국, 박찬석 준장은 자신이 아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코어를 확보하려 했다.
낙동강 전선 때부터 20년!
온갖 던전과 균열, 마경에서 구른 전우 중에 ‘코어‘를 꿍쳐둔 놈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대형 길드에 이사로 있는 전우에게 전화를 건 순간 박찬석은 폭풍 같은 쌍욕을 먹었다.
지금도 통화내용이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야, 이 사기꾼 새끼야. 3년 전. 1월 1일. 22시 12분!”
“코어 하나 빌려 주면! 분명 한 달 후에 갚겠다고 했지!?”
“너! 한 달 후에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못하지!?”
“너 이 새끼. 국가에 대한 헌신에 감사한다고! 나한테 훈장 보냈어!”
“훈장을 보냈다고! 훈장을! 이 미친놈아!”
“그런데 뭐, 코어 하나 없냐고? 코어가 담배냐? 빌려 가고 왜 안 갚아 새끼야!”
“박찬석! 이 미친 사기꾼……!”
……
박찬석은 뒤늦게 기억했다.
예전에도 이 녀석한테 빌리고 훈장과 헌터 포인트로 대가를 치르고 입을 씻었다!
재빨리 전화를 끊었지만, 이미 늦었다.
다른 전우들은 이미 연락이 갔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전화를 받은 전우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너 내 방패 빌려 간 거부터 갚아라!”
“최고등급 정제 마석! 정말 급하다고 빌려 간 거!? 그것부터 갚아! 새끼야!”
“그렇지 않아도 내가 전화하려고 했는데…… 이번에 아주 좋은 땅이 나와서…….”
……
자신의 인맥으로는 더는 ‘코어‘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었다.
코어는 ‘거래 제한‘물품이자, ‘국외 반출 금지‘물품이다.
이건 역으로 말하면 대놓고 현금 거래를 하거나, 국외 반출만 하지 않으면 소유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코어는 그 희귀성과 유용성으로 큰 가치를 지녔기에 초고액 화폐처럼 사용되곤 했다.
상속, 증여, 랭커 스카우트, 초고가의 마도구와 부동산 거래 등.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초고액 화폐의 유용성은 하나둘이 아니다.
대형 길드 수뇌부.
레이드 팀을 꾸린 대기업 보안팀.
소수의 인원으로 던전 클리어가 가능한 랭커들.
……
박찬석 준장은 코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큰 거물들에게 당장이라도 연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어를 가지고 있다는 걸 확신해도, 이 거물들에게 코어를 빌릴 힘과 영향력은 자신에게 없었다.
그래서 박찬석 준장은 이곳으로 왔다.
이곳 압구정 신신현대 아파트 단지에 자신이 아는 최고의 인맥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대한민국 길드 랭킹 3위 안에서 항상 드는 태성 길드, 한국 최고의 탱커 이태성 길드장에게 ‘야, 야-’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이세영 소장님!
박찬석 준장은 비밀 유지를 위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세영 소장님의 집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일은 너무나 중요해서 직접 찾아왔다.
어떻게든 코어를 지급하지 않으면 미군과 장민 대표와의 신뢰 관계에 금이 가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기 직전, 박찬석 준장은 우뚝 멈춰 서서 심호흡했다.
며칠 전 신동대문에서 헤어질 때, 찾지 말라고 분명 말씀하셨다.
옛 상관의 명령을 어기고 집 앞까지 찾아왔으니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바짝 긴장한 박찬석 준장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 띠리리-
발신음이 길게 이어질 때.
대로 너머 백여 미터 밖, 편의점 앞에 앉아 박찬석 준장을 보는 사람이 있었다.
찢어진 청바지에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야구 모자를 눌러쓴 20대 청년.
동네 백수 같은 차림새의 청년이 편의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바나나 우유를 쪽쪽 빨아 먹고 있었다.
청년은 전화를 거는 박찬석을 보며 웃었다.
제주도 사태가 해결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지금, 헌터 부대 현역 준장이 사복 차림으로 아파트 단지에 나타나 바짝 긴장한 채 전화를 걸고 있다.
지금 박찬석 준장이 전화를 거는 사람이 누굴지 바로 감이 왔다!
며칠 전 아깝게 놓친 그 녀석이다!
“역시, 박찬석 저놈 알고 있었구나! 새끼가 어디서 구라를 까! 하- 시바. 도대체 며칠을 따라다닌 거야?”
순간 옆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비즈니스 정장 차림의 여자가 대답했다.
“지금 3일째 따라다니고 계십니다. 은성 그룹, KG화학, 미쓰비시 그룹, 금성 길드 허무인 길드장과의 약속을 모두 캔슬하고 말이죠. 길드장님.”
움찔한 남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재빨리 말했다.
“야, 호칭 조심해!”
“고개 돌리지 마! 대답도 하지 말고! 박찬석 저놈 눈치 엄청 빨라!”
“그리고 너 왜 자꾸 정장 입어!? 내일부터는 적당히 나랑 맞춰서 입어!”
“지금 청년 백수로 위장하고 미행 중인데, 정장 입은 사람이 말 걸면 이상해 보이잖아!”
“위장하셨다고요? 청년 백수로요……? 하아-.”
깊은 한숨 뒤로 비서의 탄식 어린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제발 그만 하세요! 길드장님!’
그러나 야구 모자를 눌러 쓴 청년은 비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제 곧 그 녀석을 다시 만난다.
낙동강 전선의 영웅.
서울 수복 작전의 브레인.
역대 최고의 레이드 커맨더.
염동력자 마혁진이 신동대문에 나타났단 이야기를 듣고, 달려갔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마주친 그 녀석!
나이 든 얼굴, 하얗게 센 머리, 너무나 미약해진 각성력.
하지만 보는 순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검은 폭풍, 이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