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25화>
웃음을 터트린 모두는 평상에 앉아 수박 감귤 화채를 나눠 먹기 시작했다.
할머니 품에 안긴 채 수박 감귤 화채를 먹던 특급 헌터가 잊고 있던 걸 기억했다.
“앗! 깜빡했어!”
특급 헌터가 퐁퐁검을 짚고 일어나 외쳤다.
“모두 모였으니까! 이제부터 할 일이 있어!”
“뭔데?”
“할 일?”
구으으-?
띠딛띠-?
킼, 키키킥-?
류세연, 김철수, 사슴이, 반짝이, 니케가 의아해하고.
임옥분 여사와 장민 대표가 흥미롭게 바라볼 때.
천문석이 말했다.
“너 뭐 하려고? 엉덩이도 아플 텐데 그냥 화채나 먹지?”
“아냐!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이야!”
특급 헌터는 퐁퐁검을 지팡이처럼 짚고 달려 무언가 가득 들어 있는 자루를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평상 가장자리에 서서 외쳤다.
“오늘 모두 열심히 해서! 특급 헌터는 아주 만족스러워! 그래서 내가 상을 주기로 했어!”
뭐지, 이 행보관 같은 외침은?
“…….”
어이없어하면서도 흥미가 담긴 시선이 모이자.
특급 헌터는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우선 1등. 최고의 활약상!”
특급 헌터는 주머니에서 자동차 열쇠를 꺼내 흔들었다.
“오늘 최고의 활약을 한 1등은 슬프게도 이 열쇠만 남기고 악당 로봇에게 납치된! 특급 쌩쌩이야! 모두 박수!”
짝짝짝-
구으으, 띠딛디, 키키킥-
사람들의 박수 소리와 친구들의 울음소리가 울릴 때.
특급 헌터의 시선이 천문석에게 향했다.
“2등은 알바야. 알바는 훌륭한 특급 알바야. 오늘 하루 아주 훌륭했어! 이건 내 선물.”
특급 헌터는 주머니에서 말간 돌을 꺼내 천문석에게 건네줬다.
“이 말간 돌은 엄청 훌륭한 돌이야. 꼭 가지고 다녀!”
바닷가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는 파도에 깎인 유리 조각같이 말간 돌.
키즈카페에서 봤던 아이들의 보물이 그렇듯,
이 말간 돌도 왜 훌륭한 돌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천문석은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순간 손에 닿는 녹색의 길쭉한 야채, 오이.
“……이 오이는 뭐냐?”
“이 오이도 부상이야! 시원하고 아삭해서 맛있어!”
“…….”
특급 헌터가 가져온 자루 안에는 오이가 잔뜩 들어 있었다.
비누 맛이 난다고 오이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녀석이 임옥분 여사님에게 홀린 이후로는 오이를 엄청나게 먹고 있었다.
그리고 잇달아 상이 수여됐다.
“3등은 세연 누나! 된장찌개 완전 맛있었어! 70점!”
“4등은 철수 형! 뉴스에 나오다니 엄청 부러워! 81점!”
“뭔가 이상한데?”
세연이 의아해하자 특급 헌터는 대답했다.
“흑돼지가 된장찌개보다 맛있잖아? 전혀 안 이상해.”
탁, 탁-
그리고 류세연과 김철수에게 하나씩 주어지는 오이.
“두 사람에게도 특급 헌터의 칭찬과 부상으로 맛있는 오이를 하나씩 줄게! 아주 잘했어요. 세연 누나, 철수 형.”
“…….”
“…….”
두 사람 모두 멍하니 오이를 보는 순간.
특급 헌터는 다시 외쳤다.
“그리고 공동 5등은 사슴이와 반짝이! 마지막에 좀 아쉬웠지만, 오늘 아주 용감했어!”
구으으-!
띧디딛-!
두 채권 추심원이 울음소리를 내자.
쏴아아-
둘 앞에 가득 쌓이는 해바라기 씨앗!
“이건 부상이야! 맛있게 먹어.”
그리고 특급 헌터는 마지막으로 새끼 다람쥐를 봤다.
“마지막으로 니케!”
킥-!?
“나는 오늘 니케에게 매우매우 실망했어!”
키킥-?
“아니! 늦게 온건 괜찮아!”
키키킼-?
“아니야! 절대! 물어서 화나서! 그런 거 아냐!”
키킼키키-?
“니케는 친구들이 열심히 일할 때 혼자서 맛있는 거 먹고는 자고 있었잖아!”
특급 헌터는 해바라기 씨를 가리켰다.
“그래서 니케가 꼴찌야!”
키기키긱킥-?
니케가 이게 뭐지 하는 표정으로 울 때,
특급 헌터는 사슴벌레, 풍뎅이, 니케를 가리키며 다시 한번 외쳤다.
“사슴이, 반짝이는 공동 5등! 오늘 잘했어!”
“니케는 6등 꼴찌야! 아주아주 실망이야!”
이 순간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가 서로를 봤다.
띠디딛-
구으으-
그리고 깨달았다.
맹약자가 선언했다!
자신들이 5등,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가 6등.
이제 자신들이 저 무시무시한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보다 위다!
서열이 역전된 것이다!
구으으-!
띠디딛-!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가 기쁨의 울음소리를 터트릴 때.
니케는 눈을 크게 뜨고 이빨을 딱딱거리며 무섭게 울었다.
키키킼키킼킼키킼-
그래서 특급 헌터의 딱밤을 맞았다.
“이야압! 하늘을 잇는다!”
따아악-
뀨, 뀨규-
그리고 모든 일을 끝낸 특급 헌터가 평상에 다시 엎드리려 할 때.
장민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엄마는 상 안 주는 거야?”
장민이 말하자마자 특급 헌터는 오이를 척 내밀었다.
“할머니는?”
임옥분 여사가 장난스럽게 묻자,
잠시 고민하던 특급 헌터가 내민 오이를 반으로 뚝 잘라서 내밀었다.
그리고 미안하단 듯이 말했다.
“상을 줄 수는 없어. 특급 헌터 상은 공신력 있는 상이거든. 상은 못 받아도 이 오이 맛있으니까 오이 먹어.”
이렇게 모두는 화채와 오이를 같이 먹었다.
와그작-
천문석은 오이를 씹고.
와사삭-
달콤한 수박과 새콤한 감귤을 먹었다.
수박 감귤 화채와 오이.
이상한 조합이었지만,
근사한 저녁노을 아래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들과 먹으니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거대 괴수와 마신의 강림체로 액땜을 했으니,
제주도 휴가 중에는 또 다른 사건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제 편하게 제주도에서 쉬다가,
서울로 돌아가 거대 괴수 ‘코어‘를 팔면 건물주가 되는 거다!
아침의 난장판과는 달리 평온한 저녁.
게다가 엄청난 전투 보상까지 챙겼다!
카캬카-
천문석은 너무나 즐겁게 웃었다.
이렇게 제주도 휴가 2일 차,
평온한 저녁이 지나가고 있었다.
* * *
거대 괴수가 사라지고 긴급 구조 작업과 새어 나간 마수와 몬스터 소탕도 끝났다.
안전지대 제주도가 뚫리고 거대 괴수는 나타난 사건은 충격적이었지만,
거대 괴수 등장과 쓰러지기까지 걸린 시간이 이례적일 정도로 짧았다.
인명 피해는 거의 나지 않았고,
흩어진 마수와 몬스터의 수도 많지 않았다.
며칠에 걸친 정밀수색을 해야겠지만,
제주도 사태는 빠르게 일단락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오히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본 해상 자위대와 내각 정보실.
호위대군 함대가 엄청난 피해를 보았는데,
막상 회유 대상인 나찰승은 갑자기 발생한 균열 너머로 사라진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찰승 회유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다.
원래대로라면 이번 나찰승 회유 작전에 관련된 모두가 줄줄이 경질당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제주도에 나타난 거대 괴수와 호위대군 함대의 격전에 제주도의 유력자들과 한국 국민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수직으로 상승했다.
현대 국가에서 국민의 여론은 곧 실질적인 지원의 이유가 된다.
미국 7함대 나이트 아머 1개 소대.
한국 헌터 부대의 레이드 1개 팀이 호위대군 함대 수리, 정비를 끝낼 때까지 일본의 본토 방위에 도움을 주기로 약속했다.
해상 자위대에 압력을 넣었던 정치인들의 혜안이 칭송받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난 지금.
내각 정보실의 후세 케이코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세기!
나찰승과 같이 싸웠던 헌터.
나찰승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이세기를 찾아야 했다!
케이코는 이세기란 이름을 가진 헌터들의 기록을 검토하고 있었다.
한국의 유력 헌터들은 세계 각국의 스카우트 대상.
이세기란 이름을 가진 한국 헌터를 찾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중에서 거대 괴수와의 전투가 일어났을 때 다른 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제외한다.
이렇게 추린 인물의 수가 10명!
후세 케이코는 열 명의 이세기를 찍은 사진과 영상의 확인을 모두 끝내고.
10장의 사진을 테이블 위에 펼쳤다.
촤르르륵-
사진이 넓게 펼쳐진 테이블 앞,
후세 케이코는 이마를 짚고 눈을 감았다.
이세기와 만난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며 머릿속에 그의 모습을 그려낸다.
헌터용 헬멧과 마스크.
녹색 진흙과 부식성 체액으로 색이 바랜 강화 전투복.
허리춤에는 작은 방패와 검이,
어깨 위로 첨단이 부러진 봉이 불쑥 솟아 있다.
홀로 엄청난 격전을 치렀음에도 여유 넘치던 이세기!
이렇게 그려낸 이세기의 모습에 짧은 대화 중 느낀 분위기를 입힌다.
거침없는 말투와 행동,
고요한 호수처럼 미동도 없던 몸.
헬멧 뒤에서 느껴지는 오연한 시선까지!
그리고 머릿속 이세기가 말하는 순간.
‘하나만 대답해 주마.’
후세 케이코는 번쩍 눈을 뜨고 테이블에 놓인 10장의 사진을 빠르게 훑었다.
세세한 특징을 살피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분위기와 보는 순간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러나 10장의 사진 중 그 누구도 이 사람이라는 감이 오지 않았다.
후세 케이코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헬기 강습함에 만들어진 내각 정보실 임시 사무실.
수십 명의 정보실 요원들이 이세기로 의심되는 열 명의 한국 헌터들의 동선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 순간 뭔가 잘못 짚었다는 감이 왔다.
“이세기는 어디로 간 거지?”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사무실 벽에 걸린 지도가 보였다.
제주도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일본이 위에는 한국이 있다.
그리고 왼쪽에 자리한 중국!
후세 케이코의 눈이 번뜩였다.
이(李) 씨는 중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다.
이 순간 번개같이 머리를 스치는 생각!
마수와 몬스터가 나타나기 시작한 이후로 해안선에 대한 감시는 철저하다.
한국과 일본으로 몰래 들어오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아무 준비 없이 배를 타고 원양으로 나가는 건 마수와 몬스터의 입안으로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세기는 나찰승과 같이 싸운 실력자다.
‘그렇다면!?’
쾅-
후세 케이코는 테이블을 내려쳤다.
깜짝 놀란 정보실 요원들의 시선이 모이는 순간.
후세 케이코는 성큼성큼 사무실을 가로질러 벽에 걸린 지도 앞에 섰다.
쿵-
후세 케이코의 주먹이 지도 위 제주도를 때렸다.
쓰으윽-
지도 위를 훑으며 서쪽으로 움직이는 손.
후세 케이코의 손이 멈춘 곳은 중국 장쑤성(江蘇省)!
“지금 하는 일을 모두 멈추고! 중국을 확인한다!”
“이세기!”
“성별 남성!”
“20대 초중반!”
“주 무기는 검으로 추정!”
후세 케이코의 손이 장쑤성 상해를 시작으로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움직였다.
장쑤성, 저장성, 푸젠성!
남중국 해안의 3개 성을 훑던 손이 푸젠성(福建省)에서 멈춘 순간.
후세 케이코는 다시 한번 외쳤다.
“이 3성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확인한다! 이세기는 분명 이곳으로 이동 중이다! 이 3성의 도시에 연고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후세 케이코,
내각 정보실 국내 3부 팀장의 예지에 가까운 정확한 감은 정보실 내에서 유명했다.
정보실 요원들은 바로 남중국 3성에 있을 ‘이세기‘의 흔적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이때 후세 케이코는 남중국 해안의 3성을 다시 한번 노려봤다.
북중국은 모든 헌터들이 국가 공무원이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헌터들의 활동과 거래가 엄격히 제한된 상황.
헌터 군벌이 장악한 남중국의 해안 3성.
이세기의 목적지는 장쑤, 저장, 푸젠 남중국 3성 중 하나라는 감이 왔다.
이세기가 한글을 쓰고 한국어로 말했다는 것에 낚여서 시간을 허비했다.
한국인이 아니어도 헌터 상당수가 마력 각인을 받아 한국어를 알고 있다는 걸 잊은 것이다.
가장 중요한 초기 골든 타임을 놓쳤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있다.
이세기는 거대 괴수 ‘코어‘를 가지고 빠져나간 상황.
‘코어‘는 마석과 달리 국외 반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당연히 검문검색이 철저한 항공편은 사용할 수 없다.
후세 케이코의 시선이 제주도 서쪽 넓게 펼쳐진 바다로 향했다.
이세기는 분명히 이 바다를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목적지는 장쑤, 저장, 푸젠의 남중국 해안을 이루는 3성 중 하나!
이때 후세 케이코는 다시 한번 감이 왔다.
푸젠성(福建省)!
파벌을 이룬 헌터 군벌들의 대립으로 난장판인 지역,
남중국에서 코어를 처분하기에 푸젠성보다 좋은 곳은 없다!
지금 호위대군 함대는 큰 피해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방법은 있었다!
후세 케이코는 자신 만큼이나 절실히 이세기를 아니, ‘코어‘를 찾고 있을 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주도의 064 헌터 부대.
아이러니하게도 나찰승 회유 작전을 시작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거로 생각한 제주도 064 헌터 부대가 지금 자신들에게 가장 큰 조력자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후세 케이코는 이 상황을 차마 좋아할 수가 없었다.
064 헌터 부대의 호의는 2개 호위대군 함대가 입은 천억엔 단위 피해의 결과였으니까.
하아-
후세 케이코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 때.
딸깍-
전화가 연결되고 후세 케이코는 자신의 예상을 064 헌터 부대에 알렸다.
그리고 ‘코어’를 찾기 위해 항구와 인근 해수욕장, 도심지와 바다, 공항을 샅샅이 뒤지던 064 헌터 부대에 비상이 걸렸다.
평온한 저녁, 천문석이 던진 스노우볼이 구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