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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279화 (28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79화>

하아-

곤돌라에 탄 천문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류세연의 깜짝 놀란 외침이 터졌다.

“저기 항구! 저 거대 괴수가 이상해!”

천문석과 일행은 순간적으로 항구로 고개를 돌렸다.

항구 앞, 바다에 멈춰 선 채, 주위에 가득한 컨테이너와 자동차, 어선을 폭격하듯 집어던지던 거대 괴수.

거대 괴수가 멈췄다!

수많은 촉수로 이뤄진 말미잘같이 생긴 거대 괴수가 촉수를 바닷속으로 늘어트리고 있었다.

빛을 굴절시키는 투명한 촉수에서 흐르는 짙은 녹색의 마력광!

녹색의 마력광이 흐르는 거대한 촉수가 너울거리다가 문득 올라오는 순간.

녹색 거품이 부글거리는 바닷물이 거대한 젤라틴 덩어리처럼 뭉텅, 뭉텅 항구 위로 떨어졌다.

푸르르르릉-

이 불길한 녹색 바닷물 덩어리가 푸딩처럼 흔들릴 때,

이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거대한 집게. 갑각에 덮인 몸통. 촉수 덩어리들!

거대 괴수는 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헌터 업계의 오랜 격언 그대로였다.

녹색 바닷물 덩어리 속에서 해양 마수와 몬스터가 쏟아졌다!

거대한 게, 단단한 갑각을 두른 가재, 맹독 촉수를 흔드는 해양 마수!

반짝이는 비늘과 암녹색 해조류를 휘감고 암갈색 무기를 든 어인족(魚人) 몬스터!

거대 말미잘 괴수가 촉수를 휘저어 녹색의 바닷물 덩어리를 퍼 올리는 매 순간.

푸르릉, 푸르르릉-

녹색 거품이 부글거리는 바닷물 덩어리가 항구에 떨어지고, 이 안에서 해양 마수와 몬스터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이 해양 마수와 몬스터 무리는 항구 곳곳으로 흩어져 눈에 보이는 모든걸 박살 내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박살 나 무너지는 컨테이너 더미!

부서지는 어선과 뒤집혀 불타는 화물차!

거대 괴수를 자극할까 봐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던 항구 수비대는 밀려 오는 해양 마수와 몬스터에게 화력을 쏟아부었다.

타다다다당-

하늘을 울리는 마탄 총성이 끝없이 이어지고, 마탄의 푸른 마력광이 대낮인데도 환하게 항구를 물들였다.

그리고 항구를 향해 이동하는 장갑차량과 헌터 부대 병사들이 나타났다.

이들이 순식간에 항구 주위에 진지를 만들고 화망을 만들어 화력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해양 마수와 몬스터가 너무 많았다.

화망을 벗어난 해양 마수와 몬스터가 하나둘 내륙으로 새어 나가고 있었다.

천문석의 시선이 화망을 벗어난 5미터가 넘는 게 마수의 뒤를 쫓았다.

대형 게가 타다닥- 갈지자로 달려 나가는 방향에는.

해안 도로.

드문드문 자리한 카페.

축대 위에 세워진 별장들.

그리고 완만한 경사를 따라 펼쳐진 거대한 농장이 있었다.

거대한 농장.

임옥분 여사의 대농장이었다.

그리고 이 방향의 곤돌라에 서니, 스카이라운지에선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검은 트랙과 넓은 관중석을 갖춘 자동차 경주장.

천문석은 보는 순간 직감했다

저 경주장이 특급 헌터와 임옥분 여사가 갔다는 자동차 경주장이었다.

그리고 자동차 경주장은 항구와 대농장 사이에 있었다.

[항구 - 경주장 - 대농장]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이 선은 화망에서 벗어난 해양 마수와 몬스터가 달리는 선과 일치했다.

해양 마수와 몬스터가 특급 헌터와 임옥분 여사가 있는 자동차 경주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   *

“할머니…….”

상황을 깨달은 류세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순간.

쿵, 쿵, 쿵-

등 뒤에서 둔중한 진동과 다급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여기! 여기 사람 있어요!”

어느새 공포도 잊고 넋을 놓고 주위를 살피던 강화영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봤다.

위이이이잉-

곤돌라가 내려가는 호텔 창문 너머.

객실, 레스토랑, 라운지.

수많은 사람이 있다!

절박한 표정의 사람들이 강화 유리창에 달라붙어 의자와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쿵-

단단한 강화 유리창 너머에서 전해지는 둔중한 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들 모두 항구에서 새어 나온 마수와 몬스터들을 보고 다급해진 상황.

이때 누군가의 절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여기야! 이곳에 대면, 뛰어내릴 수 있어! 여기로 와!”

한 사람이 뻥 뚫린 창밖으로 손을 내밀고 흔들었다.

그 뒤에 젖먹이를 안고 있는 여자와 십여 명의 사람이 모여 환호성을 질렀다.

“여기예요!”

“다행이다! 살았어!”

“하느님 감사합니다!”

“구해 줘야…….”

강화영이 자신도 모르게 말한 순간.

김철수와 천문석의 눈이 마주쳤다.

복잡한 시선이 오가고, 천문석이 나서려 할 때.

김철수가 한발 앞서 외쳤다.

“몬스터가 여기까지 오기 전에 대피할 시간 충분합니다! 천천히 비상계단으로 움직이세요!”

순간 곳곳에서 들려오는 외침!

“방문이 막혔어!”

“이 층은 비상계단 입구가 안 열려요!”

“무서워서 나갈 수가 없어요!”

“창문 밖으로 기어나갈게요! 거기서 받아주시면 안 돼요!?”

……

“…….”

김철수는 대답 없이 주위를 살폈다.

강화 유리창으로 만들어진 호텔 창 곳곳에 달라붙어 외치는 사람들의 수가 백여 명을 훌쩍 넘는다.

이들을 모두 구하려면 몇 시간은 걸릴 것이다.

김철수의 시선이 강화영, 류세연, 천문석 한 명 한 명을 향했다.

위기 상황에서 최악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

누군가는 선택하고 움직여야 한다.

김철수는 천문석을 슬쩍 밀어내고 곤돌라 조정 패널 앞에 섰다.

그리고 하강 버튼을 눌렀다.

위이이이잉-

곤돌라는 빠르게 내려갔다!

“앗! 철수 씨!?”

깜짝 놀라 외치는 강화영을 류세연이 잡고, 천문석이 김철수를 말없이 바라봤다.

“야, 뭐 하는 거야!?”

“이 새끼가 혼자 살겠다고!

“거기 멈춰! 잠깐만 세워봐!”

“가지 마세요! 제발 가지 마세요!”

……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지만, 김철수는 절대 멈추지 않았다.

곤돌라는 빠른 속도로 내려갔고, 수많은 사람의 원망과 분노가 김철수에게 쏟아졌다.

이렇게 곤돌라가 1층에 도착하고, 천문석과 류세연, 강화영 세 사람이 내렸을 때 김철수는 말했다.

“문석아 먼저 가라. 난 볼일이 좀 남았다.”

“네? 철수 씨 그게 무슨?”

강화영이 당황하는 순간.

김철수는 씨익 웃으며 땅에 내려선 강화영과 류세연, 천문석을 차례로 봤다.

깜짝 놀라 자신을 보는 강화영.

굳은 얼굴로 자신을 보는 류세연.

그리고 이미 짐작했다는 듯 평소처럼 웃고 있는 천문석.

김철수는 천문석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 알고 있지? 항상 자기 사람을 챙기는 게 먼저다. 선택의 순간에는 절대 주저하지 마라.”

이미 김철수의 생각을 짐작하고 있던 천문석은 바로 대답했다.

“철수 형도 내 사람인데요?”

“뭐? 야, 내가 사장님이고 형인데! 당연히 내가 널 챙겨야지!”

“…….”

“……아까 보니까. 난 짐만 될 것 같긴 하지만 말야.”

하하하-

김철수가 웃는 순간, 류세연과 강화영이 김철수를 불렀다.

“철수 오빠.”

“철수 씨…….”

김철수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세연아. 나중에 보자!”

“화영 씨. 오늘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김철수는 곤돌라 상승 버튼을 눌렀다.

위이이이잉-

다시 올라가는 곤돌라 위에서 김철수는 외쳤다.

“그럼 모두. 이번 일 끝나고 봐요.”

“철수 형! 진짜 괜찮겠어요!?”

천문석의 외침에, 김철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야, 나 고층 빌딩, 고압 세척의 달인이라고 불린 사람이야! 그보다 너 구하러 갈 사람 있지? 얼른 가라! 사람 몸은 하나다! 언제나 자기 사람부터 챙겨야 하는 거 잊지 말고! 항상 조심해라!”

“철수 형! 이거 받으세요!”

탁-

천문석이 던져 준 소방 도끼를 받는 순간.

“철수 씨!”

김철수는 다시금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른 강화영과 시선이 마주쳤다.

흙이 가득 묻은 모노톤 투피스.

어디론가 사라진 진주 귀걸이 한 짝.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흙과 눈물이 흘러 엉망이 된 얼굴.

게다가 머리에 안전 헬멧을 쓰고, 투피스에 하네스를 채워서 웃기기까지 한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른 이 엉망이 된 얼굴을 보는 순간, 김철수는 어쩐지 웃음이 나고 강화영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어차피 해프닝으로 만났을 뿐 서로 사는 세계가 다르다.

지금 이 순간이 헤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김철수는 크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화영 씨!”

“…….”

강화영이 김철수를 보는 순간.

김철수는 웃음기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조상님이 화영 씨를 도운 거예요!”

“네?”

“제가 애프터 신청하고. 맞선이 더 진전됐는데 제 정체를 알았으면 엄청 큰일이잖아요?”

“…….”

“그러니까 조상님이 화영 씨를 도운 거죠! 하하하-.”

웃어야 하는 타이밍인데, 강화영은 웃음기가 전혀 없는 얼굴로 물끄러미 김철수를 보고 있었다.

하, 하하-

어색하게 웃던 김철수는 문득 생각나는 게 하나 있었다.

이거 말해도 될까?

지금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 하지만 강화영과 다시 만날 일은 없었다.

미련을 남기느니 말이라도 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김철수가 고민하다가 입을 여는 순간.

“화영 씨…….”

“철수 씨…….”

강화영도 동시에 입을 열었다.

“먼저 말하세요.”

위이이이이잉-

이미 높게 올라온 곤돌라.

김철수는 사양하지 않고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화영 씨! 저…… 정말정말 죄송한데요!”

“네! 말하세요!”

“호텔 레스토랑! 백구십삼만……!”

김철수가 꼭 해야 할 말을 하는 순간, 갑자기 마른하늘에 뇌성이 울려 퍼졌다.

쿠르르릉, 쾅-

“ㅁㅁㅁ ㅁㅁ, ㅁ ㅁㅁㅁ 안 될까요!?”

갑자기 울려 퍼진 이 뇌성이 김철수의 짠내나는 외침을 지워 버렸다.

“철수 씨! 뭐라고요!? 레스토랑이 뭐가 안 된다고요!?”

강화영이 다시 물었지만, 곤돌라를 탄 김철수는 어느새 목소리가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이 올라갔다.

“이제 출발하죠.”

천문석은 류세연과 강화영과 함께 부가티 시론이 찾아 달리며.

내력이 실린 손과 연신 뒤돌아보는 강화영, 멀어지는 김철수를 차례로 봤다.

역시 철수 형!

엄청난 인맥으로 소개팅을 그렇게 주선했으면서도 본인은 솔로인 이유가 있었다.

“철수 씨 괜찮겠지? 세연아.”

달리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연신 뒤돌아보는 강화영.

러브 시그널을 강제 시청 당한 천문석의 촉이 말한다.

강화영의 마음속에 김철수에 대한 호감이 싹트고 있다고!

그런 상황에서 조상님 드립을 치고, 호텔 식대를 외치다니…….

역시 철수 형이었다!

“오빠! 저기 차 있어!”

이때 류세연이 부가티 시론을 찾았다.

천문석은 로비로 달리며 외쳤다.

“바로 열쇠 찾아올게!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그리고 호텔 로비로 들어가기 직전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높게 올라간 곤돌라가 보였다.

이 곤돌라 위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고 안전 헬멧에 하네스와 장갑을 낀 채 자신에게 소방 도끼를 흔드는 남자가 보였다.

자기 사람을 먼저 챙긴 후.

홀로 호텔에 남아 고립된 사람들을 구하는 이 남자가 김철수였다.

재벌 3세가 아니어도, 그 자체로 괜찮은 사람, 철수 형.

“철수 형! 조심해요!”

천문석은 내력을 실어 외치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로비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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