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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40화 (141/1,336)

#140

무림 던전 4일째의 아침이 밝았다.

천문석은 중앙 전각 3층, 장주실의 창가에 서서 멀리 담장 밖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겨울 이른 아침인데도 검은 옷을 입은 무사들이 삼삼오오 뭉쳐 다급히 거리를 걷는 게 보였다.

눈에 익은 검은 복색의 무사들.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흑기당의 무사들이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사건이 터지고 하루가 지났다.

흑사회가 사라진 게 알려지고 청해 호수 사건의 여파가 사방으로 미치고 있다!

생각대로 상황을 직접 겪은 흑기당이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어차피 시간문제.

흑사회가 사라진 지금 그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흑도 방파들도 움직이기 시작할 거다.

곧 이 도시의 흑도 방파 모두에게 사건의 소문이 퍼져나가고 이 녀석들이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흑도 방파는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마도 18문!

이열이 정신을 차리면,

마도 18문의 일문 극음도가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이미 흑사회와 여량위는 범선을 타고 사라졌고,

이세기란 이름을 얻은 젊은 무사도 멀리 떠나갔다.

그리고 자신은 등하불명,

장가장으로 다시 스며들었다.

이곳 장가장은 무림맹과 깊은 관계를 맺은 철권 대협의 장원!

아무리 극음도라고 해도 함부로 밀고 들어올 수는 없었다.

게다가 천문석은 며칠 후면 이곳 무림 던전에서 나간다.

하-

문득 터져 나오는 웃음.

모든 상황이 생각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천문석이 미소지으며 몸을 돌리는 순간.

탁자 위에 놓인 은자 주머니 하나가 보였다.

"...!"

천문석은 은자 주머니를 보는 순간 속이 쓰렸다.

저게 마지막으로 남은 은자 주머니였다.

극음도 이열에게 받은 지급 문서는 무공비급에 끼워진 채.

여량위와 젊은 무사 둘 중 한 명에게 흘러가 버렸다.

비상금을 책 속에 끼어놨다가 잃어버리는 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단지 차이라면 그 비상금의 액수가 엄청난 거금이었다는 것이다.

“은자 3만냥!”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계산이 이뤄진다.

은 1냥에 37.5g.

은 1000냥에 37.5kg.

은 30,000냥이면 1,125kg.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은 1,125kg이라고!?

은 1톤이 넘는다고!?

아니 이게 도대체 얼마야?!

1냥에 4만 원이라고 치면 액면가만 12억원!

이곳에서는 은의 가치가 높으니 금과 비교한 실질적인 체감 가격은 5배는 된다.

60억!

게다가 물건보다 돈이 귀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 가치는 더 올라간다.

3만냥의 은자로 땅이나 산을 사고 장원을 지으면 단숨에 대지주가 될 정도의 거액이다.

“...”

천문석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터지는 헛웃음 소리.

하-

천문석은 한번 웃음에 모든걸 털어버리고 탁자 위의 은자 주머니를 챙겼다.

어차피 이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게임머니나 마찬가지다.

무림 던전에 있을 날은 4일밖에 남지 않았고, 이 묵직한 은자 주머니 하나면 남은 나흘 동안 충분히 잘 놀 수 있었다.

여량위와 이세기가 된 젊은 무사 누구에게 갔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거액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련을 날려버린 천문석은 연휴를 맞이한 직장인처럼 마음이 홀가분했다.

무림 던전 안에서 할 일은 모두 끝냈다.

검강 롱소드도 깨웠고,

전생의 자신이 실존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리고 오랜 친우 이세기와 전생의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남겼다.

처음 생각했던 계획보다 초과 성과를 거뒀으니.

이제 남은 4일 동안 적당히 조심조심 놀다가 집에 가면 된다.

'그리고 오랜 꿈을 이루는 거다!'

천문석의 시선이 검대에 걸린 롱소드로 향했다.

실전에서 확인이 끝난 검강 롱소드!

이 검강 롱소드를 팔면 한 번에 건물, 아니 빌딩주가 된다!

아니지! 어차피 성능은 확실하니까.

그냥 이 검강 롱소드로 레이드를 뛰어서 건물을 살까?

당장 건물주가 되느냐,

레이드를 뛰어서 좀 늦게 건물주가 되느냐의 선택만 남았을 뿐!

이미 천문석이 건물주가 되는 건 기정사실, 시간문제였다!

카캬카-

천문석이 행복한 고민에 웃음을 터트릴 때,

문득 방 입구에서 하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일. 총관님이 오셨습니다."

천문석은 재빨리 표정을 관리하고 말했다.

"모시세요."

---

잠시 후 천문석과 장일 총관은 탁자에 마주 앉았다.

"그 '이원'이라는 호위 무사 일은 말씀하신 대로 처리가 끝났습니다. 관청에 단단히 일러뒀으니. 어디서든 '이세기'란 이름으로 호패를 받고 땅을 사고 정착하는 건 문제가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장일 총관님."

천문석의 감사를 들은 장일은 문득 창밖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그제 밤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외출하고 돌아오셨던 날부터 성내에 이상한 소문이 들려오던데···."

"이상한 소문이요?"

"엄청난 고수가 나타나 청해 호수에서 검은 뱀을 잡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검은 뱀을 잡아요?"

천문석이 반문하자,

장일은 잠시 주위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검은 뱀은 아무래도 흑사회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흑사회주 여량위와 흑사회의 향주들. 그리고 핵심 무사들 전체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여량위. 바로 도망쳤구나!'

천문석이 내심 고개를 끄덕일 때,

장일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여러 소문이 떠돌고 있습니다."

천문석이 의아한 표정이 되자,

장일이 돌아다니는 소문을 쭉 늘어놨다.

"청해 호수에서 대포와 화살까지 사용하는 대규모 수전이 일어났다."

"소금 벌판에서 고수 두 명이 강기를 사용하는 생사결을 벌였다."

"이 고수 중 한 명은 검강을 쓰는 초절정, 천하 18성의 초고수다."

"검강을 사용한 고수는 사실 인간이 아니라, 이성을 잃게 만드는 소리를 내는 요마다."

...

천문석은 깨달았다.

자신이 벌인 일에 살이 붙어 헛소문이 되어 돌아다니고 있구나!

이때 다시금 들려오는 장일의 진지한 목소리.

"...게다가 생사결을 벌인 고수 중 한 명이 마도 18문의 고수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헛소문이겠지만. 마도 쟁투도 있었고 혹시나 해. 장가장의 무사들을 풀어 성내의 소문과 정보를 모아들이고 있습니다."

"..."

"갑자기 검강을 사용하는 초고수에. 마도 18문이라니! 이게 무슨 일인지···."

장일은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순간 천문석은 가슴이 찔렸다.

'모두 자신이 일으킨 일들이었다.'

천문석은 장일에게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

그러나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하룻밤 동안 겪은 일이 많았다.

유흥가, 도박장, 도박선, 청해 호수, 소금 벌판으로 이어지는 사건들.

여기에 얽힌 인물들만 해도 하나둘이 아니다.

흑사회, 여량위.

흑기당, 당무.

홍청방 사자.

응룡채, 마일도.

극음도 이열.

그리고 소금 벌판에서 벌인 마지막 승부까지.

천문석이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려 할 때,

문밖에서 호위 무사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일 총관님. 수련각의 손님 분들이 다시 찾으십니다."

"이런···. 아무래도 수련각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장일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수련각, 손님이면? 저랑 같이 온?"

천문석이 묻자,

장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네. 같이 들어오신 분들이 맞습니다. 지금 수련각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거기서 난리가 날 일이 있나?’

천문석이 의아해하자,

장일이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이번 기수. 벌써 3일 밤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한 명도 각성하지 못했습니다."

---

천문석은 장일 총관과 수련각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장일 총관은 문득 고개를 돌려 천문석에게 물었다.

"혹시···. 각성몽을 꾸셨는지?"

순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꿈을 꾸기는 했다.

전생의 스승님에게 딱밤을 맞으며 사냥, 요리, 수인, 염불, 부적 그리기를 배우는 꿈.

장일은 천문석의 표정만 보고도 답을 짐작하고 탄식했다.

"하- 이거 정말 큰 일이군요. 갑자기 각성몽을 아무도 꾸지 못하다니. 또 이렇게 되면 큰일인데···."

"이런 일이 전에도 있었습니까?"

천문석의 질문에 장일 총관은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사실 오래전에 한번 3기수 연속으로 각성자가 나오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철권 대협께서 이 안에 다시 들어오셔서 해결하셨습니다."

'이게 해결을 할 수 있는 문제인가?'

장일은 천문석의 의문을 짐작한 듯 바로 대답했다.

"해답을 찾지 못하자, 철권 대협께서는 무림맹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때 무림맹에서 나오신 분이 하신 말씀이 지기(地氣)가 쇠하여 공(功)이 열매 맺지 못하고 흩어진다고 하시더군요. 그때 장원 터를 한 번 옮겼습니다."

이 순간 천문석은 짚이는 게 있었다.

지기가 쇠하였다는 것은 지맥의 흐름이 약해졌다는 것.

아무리 큰 호수라도 계속 물을 퍼내면 결국에는 마르게 되는 것처럼.

무림 던전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의 계속된 각성으로 지맥의 흐름이 약해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하필 지금 일어나다니 너무나 공교로웠다.

이때 문득 한가지 가능성이 머리에 떠올랐다.

‘설마···.’

천문석이 검대에 걸린 롱소드를 볼 때.

수련각이 눈앞에 나타났다.

---

잠겼던 문이 열린 수련각.

천문석은 장일과 함께 수련각으로 들어갔다.

장일이 나타나자 사방에서 예비 각성자들이 몰려들어 다급히 말을 쏟아냈다.

"지금 아무도 각성이 안 되는데···."

"이 던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요?"

"한 명도! 단 한 명도 각성이 안 됩니다!"

"너무 이상합니다. 기한을 늘리거나 다른 조치를···."

...

이 순간 천문석은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이들을 살폈다.

초조해 보이는 얼굴의 예비 각성자들.

당연했다.

인위적인 각성은 커다란 기회.

그런데 첫 이틀 밤 동안 50% 이상이 각성몽을 꾼다는 통계와 달리,

3번의 밤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각성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각성할 확률은 줄어들고.

일주일이 되면 무림 던전에서 나가야 한다.

이번 기수의 체류 일정은 모두 일주일.

이미 다음 기수가 진입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체류 기간을 더 줄 수도 없었다.

지금 이들 예비 각성자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을 거다.

이때 장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체류 기간 연장은 안 된다.”

즉각 반발하는 예비 각성자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그럼 다른 무공비급이라도 좀 볼 수 있게 해주세요!”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이대로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화내고 애원하고 절박하게 매달린다.

장일은 묵묵부답 고개를 젓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루만 더 기다려 보자.”

"하루를 더 기다리면! 방법이 있습니까!"

"혹시 각성 방법을 숨긴 게 아닙니까?!"

누군가 버럭 외치는 순간.

장일의 눈이 차갑게 변했다.

“5번! 말을 조심해라! 난 네 부모도 네 부하도 아니다!”

순간 예비 각성자들의 분위기는 물을 뒤집어쓴 듯 얼어붙었다.

절박한 심정에 장일에게 화를 냈지만,

장일 총관은 이 무림 던전의 관리자이지 이들의 아랫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예비 각성자들이 어떻게든 장일 총관에게 잘 보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

깊은 침묵이 내려앉자 장일은 예비 각성자들을 쓱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 밤에도 아무도 각성을 안 하면 내가 다른 방법을 찾겠다. 우선 익힌 무공을 봐줄 테니. 각자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기다려라.”

장일의 단호한 말에 예비 각성자들은 말을 삼키고 하나둘 방으로 돌아갔다.

예비 각성자들이 모두 사라지자,

장일은 목소리를 낮춰 천문석에게 말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제가 무공을 먼저 좀 봐 드릴까요?”

“아닙니다. 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이곳 장서실에 볼일이 있습니다.”

천문석이 사양하자 장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예비 각성자들의 방을 찾아 한 명씩 무공을 봐주기 시작했다.

이때 수련각의 2층, 공용 장서실로 들어가는 천문석.

천문석은 무엇 때문에 각성몽을 꾸지 못하는지 짐작이 갔다.

이걸 해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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