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존경합니다!"
젊은 무사가 돌연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사기를 쳤다고 생각하는 것!
천문석은 젊은 무사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아는데. 이번에는 사기 아니다. 이거 그냥 마종권이 아냐."
“네? '야생마 같은 정력이여 솟아라!' 이게 아니라고요?”
“마종권에서 형(形)은 빌렸으나 그 안에 담긴 뜻(意)은 다르다.”
"...?"
의아해하는 젊은 무사.
문득 마음이 동한 천문석은 전법륜인을 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을 전했다.
"강건한 다리로 대지를 딛고, 굳건한 마음으로 하늘을 짊어진다. 단지 일심으로 전진하니. 그 일심은 대지(一氣)를 넘어 하늘(一元)에 닿는다."
천문석이 전하는 현기 어린 구결에 젊은 무사가 멍해질 때.
화인(火印)을 찍듯 들려오는 한 단어.
"일체유심조."
순간 젊은 무사의 전신이 격동으로 부르르 떨렸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젊은 무사는 깨달았다.
평생을 참오해야 할 화두가 지금 새겨졌다!
이때 천문석의 말이 이어졌다.
"귀하게 여길수록 더 귀해지는 법. 흔한 마종권이라 생각하지 말고 하늘에서 내려준 비의라 생각하고 일심으로 익혀라."
천문석은 문득 손을 들어 새하얀 소금 벌판에서 하늘로 선을 그었다.
“그리한다면 대지에 세워진 마음이 하늘에 닿을 것이다.”
젊은 무사는 바로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일심을 다해 익히겠습니다!"
젊은 무사가 크게 대답하자,
천문석은 여량위에게 했던 말을 다시 했다.
"선연이 닿아 다시 만난다면. 너에게도 그 뒤를 전해주겠다."
"...그 모든 정화가 어려 있다는! 일기공이요?!"
깜짝 놀란 젊은 무사가 외칠 때,
천문석은 오른 다리를 툭 치며 말했다.
"너에겐 일원공을 전해주마."
순간 젊은 무사는 다시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뼈가 가루가 되도록! 촌음을 아껴 최선을 다해 익히겠습니다!”
젊은 무사가 마종권의 비급을 움켜쥐며 다짐할 때.
천문석은 젊은 무사의 어깨를 툭 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야, 뭘 뼈가 가루가 되도록 익혀? 나중에 늙어서 고생한다. 적당적당히 익혀."
"네···?"
젊은 무사가 당황한 순간,
천문석은 훌쩍 몸을 돌려 무림고수처럼 떠나갔다.
“그럼 안녕이다. 언제나 즐겁게 살아라.”
젊은 무사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손님! 은자랑 전표 가져가셔야죠!"
“앗! 그걸 깜빡했네!”
천문석이 몸을 돌리는 순간 들려오는 쇳소리.
철그렁, 철그렁-
“어?”
젊은 무사의 옷 소매 안에서 줄줄이 나오는 주머니들!
다섯 개의 주머니를 꺼내 놓은 후,
겉에 두른 품이 넓은 장포를 벗는다.
그러자 젊은 무사의 몸에 밧줄로 묶인 주머니들이 보였다.
“...!”
천문석은 경악했다.
얼핏 봐도 스무 개가 훨씬 넘는 주머니!
"야? 이게 뭐야? 은자가 새끼를 쳤냐?! 원래 우리 거 3개였잖아? 은자 주머니가 왜 이렇게 많아!?"
흐흐흐-
음흉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젊은 무사.
"도박선 흑사회주 방에서 나올 때. 말씀하신 대로 싸그리! 챙겼습니다!"
"뭐···?"
순간 기억을 더듬은 천문석은 깨달았다.
자신이 분명 그렇게 말했다.
'싸.그.리.챙.겨.'
도박장에서 딴 돈을 챙기라고 한 건데···.
지금 바닥에 떨어진 주머니를 보니.
흑사회주의 방에 있던 도박선의 은자까지 챙겨왔다!
이 순간 천문석과 젊은 무사의 눈이 마주쳤다.
카캬카-
크크크-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는 두 사람.
천문석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하-
그 긴박한 상황에,
이런 행동력이라니!
아주 크게 될 녀석이었다!
이때 젊은 무사가 바닥에 가득 쌓인 은자 주머니 중의 하나를 챙기며 말했다.
"전 이거 하나면 됩니다."
순간 천문석은 젊은 무사의 손을 검집으로 툭 건드렸다.
철그렁-
바닥으로 떨어지는 은자 주머니.
천문석은 떨어진 주머니를 챙기며 말했다.
"나야말로 이거면 됐다."
어차피 이곳 던전 안에서만 쓸 수 있는 은자.
이제 먼 길을 떠나야 할 젊은 무사.
지난밤 위험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한 이 녀석에게 모두 주고 싶었다.
"네?! 아니 이게 얼만데 이걸 다 줘요!? 이 돈이면 작은 장원도 살 수 있어요! 아니지 아예 작은 산을 하나 살수도 있습니다!"
젊은 무사가 경악할 때.
문득 입을 여는 천문석.
"됐어. 너 젊은 무사···."
순간 천문석은 떠오른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이름을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야, 그것보다 너 이름이 뭐냐? 아직 이름도 모르네. 내 이름은 알지?"
"네 아까 얼핏 들었습니다. 천. 문자. 석자. 쓰신다고."
"그래 천문석 맞다. 그보다 넌 이름이 뭐냐?"
젊은 무사는 어쩐지 민망해하는 얼굴로 웃더니 입을 열었다.
"제가 사실 원(元) 대륙 출신 고아라. 그냥 이원(李元)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원(元)? 그런 지방도 있었나?'
천문석이 기억을 짚을 때 젊은 무사, 이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가 사실 이름이 없는데···. 손님께서 말씀하시던 '이세기'란 이름을 제가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성도 같고 손님을 오래 기억하려고···."
순간 천문석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젊은 무사가 자신이 준 마종권을 익힌다면,
언젠가는 천검 이세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
자신은 다시 볼 수 없는 오랜 친우를 이 젊은 무사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순간 천문석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이세기란 이름을 써라. 단 기억할 게 하나 있다."
"감사···. 기억이라고요?"
기뻐하며 고개를 숙이던 젊은 무사는 기억이란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때 소금 벌판 위에서 무언가를 집어 드는 천문석.
천문석이 집은 것은 부러진 극음도의 검신이었다.
퐁, 퐁, 퐁-
이때 롱소드에서 소리와 진동이 퍼져 나오며 검강이 자라났다.
천문석은 극음도의 검신에 보이지 않는 문장을 새겼다.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에 반대쪽 검신에도 보이지 않는 문장을 새겼다.
평범한 무인은 알 수 없겠지만,
초절정의 고수는 잡는 순간 알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흔적!
천문석은 부러진 검신을 젊은 무사에게 건넸다.
"이거 받아라."
"이건 왜?"
젊은 무사가 의아해하자,
천문석은 부러진 검신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나중에 '이세기'라는 사람이 찾아오면 그 검신을 보여 줘라."
"손님이 찾으시던 '이세기'라는 분이요? 그분을 제가 알아볼 수 있을까요?"
젊은 무사가 의아해하자,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보는 순간. '이 새끼 더럽게 잘생겼네!'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거야. 그 사람이 바로 이세기다."
"...아주 잘생긴 이세기라는 사람한테. 이 부러진 검신을 보여주라고요?"
젊은 무사가 어이없어할 때,
천문석은 다시 한번 검신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혹시 나랑 이름이 같은 사람이 찾아와도 그 검신을 보여 줘라."
"...그 사람도 보는 순간 알 수 있나요?"
"그렇지! 그 사람은 보는 순간 딱 느낌이 올 거다. 아, 이 사람 엄청 훌륭하시고! 멋지시고! 미래에 건물주가 꿈이시구나! 하고."
"...그런 거로 사람을 알아볼 수가 있다고요?"
젊은 무사는 이 사람 제정신인가 하는 표정으로 천문석을 봤다.
그러나 천문석은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세기’라는 이름에 흥미를 느끼고 찾아올 ‘천문석’은 이 넓은 무림에도 단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천문석은 멀리 언덕 위의 마차를 향해 걸어가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어린 이세기! 호적은 내가 정리해줄 테니까! 잽싸게 도망쳐서 그 돈으로 부동산을 사라. 내가 두 번 살아 보니까. 건물주, 그러니까 땅 주인이 최고다. 내가 준 무공은 그냥 적당히 익히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
젊은 무사는 한참 동안 멍하게 있다가 멀어지는 천문석에게 잇달아 외쳤다.
“언제나 가르침을 가슴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언제가 됐든 꼭 놀러 오세요! 엄청 커다란 산을 통째로 사고! 근사한 집을 지어서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들려오는 외침.
“스승님!”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돌려 원대륙 출신 젊은 무사를 봤다.
이제는 이세기가 된 젊은 무사, 이원.
이원은 소금 벌판에 엎드려 절을 하고 있었다.
하룻밤 위기를 헤쳐나온 짧은 인연.
그러나 어쩐지 마음이 가는 녀석이었다.
일기일원공의 모든걸 전해 전인으로 삼고 싶을 만큼.
그러나 아직 천문석의 일기일원공은 2성. 타인에게 전해주기에는 갈 길이 멀었다.
게다가 이곳에서 나갈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천문석은 문득 밝아오는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무림 던전은 과거의 세계를 모사하는 허상이라 한다.
그러나 어차피 인생은 한바탕 꿈.
선연이 이어져 다시 만나게 되고,
자신이 준 마종권으로 튼튼한 기초를 만들어냈다면.
여량위에게는 일기공을.
이세기의 이름을 받은 젊은 무사에게 일원공을 전하리라.
이때 어린 이세기가 천문석에게 아홉 번 절하고 능숙하게 마차를 몰아 떠나가는 게 보였다.
천문석은 멀어지는 어린 이세기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아마도 다시 만날 일은 없으리라.
그러나 오늘 자신이 어린 이세기에게 심은 선연의 씨앗은 오래도록 이어져.
오랜 친우, 천검 이세기.
그리고 전생 천마 천문석에게 닿을 것이다.
검신에 새겨진 보이지 않는 문장을 보게 될 이세기와 전생 천마 천문석.
두 사람의 얼굴이 그려지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황당해할 천검 이세기.
어이없어할 천마 천문석.
카캬카-
그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생각하는 순간 어쩐지 안심이 됐다.
자신이 아니어도 천검 이세기와 천마 천문석이 저 어린 이세기의 무공을 봐줄 것이니까.
"잘 살아라!"
천문석은 멀어지는 어린 이세기에게 크게 한번 외치고 언덕 위에 줄지어 서 있는 마차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차에 도착한 순간 알게 됐다.
말과 마차는 있는데 마부가 없었다!
그리고 천문석은 장가장으로 돌아가는 길을 몰랐다!
"...!"
문득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니.
황량한 소금 벌판에는 새하얀 소금 덩어리뿐 아무도 없었다!
천문석은 황량한 소금 벌판에 홀로 남겨졌다.
휘이이잉-
한겨울 칼바람이 몸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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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소금 벌판에서 출발한 천문석이 장가장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진 후였다.
사라졌던 천문석이 나타나자 장일 총관은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아니···. 몰골이!?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마차에서 내리는 천문석을 보고 깜짝 놀라는 장일 총관.
"밥부터!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
천문석은 밥을 먹고 씻은 후 죽은 듯이 잠들었다.
무림 던전 3일째의 날은 이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