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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29화 (30/1,336)

# 30

비정규직 천마 - #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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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

어느새 눈보라가 잦아든 옥상.

단단히 눈이 다져진 옥상 곳곳에 부상을 입고 낑낑거리는 늑대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 한 가운데 강화 해머를 든 천문석이 서 있었다.

천문석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늑대 무리를 살폈다.

남은 늑대는 30여 마리.

여전히 늑대가 한두 마리씩 옥상에 나타나 합류하지만,

죽고 부상당한 늑대들 때문에 늑대 무리의 기세는 완전히 꺾였다.

천문석이 가만히 서 있어도 늑대들은 넓게 포위한 채 달려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눈보라 속의 전투에 체력은 깎였지만,

격전을 치른 것치고는 상처도 없고 몸 상태도 좋았다.

이 모든 게 강화 전투복 덕분이었다.

순간, 강화 전투복에서 느껴지는 미지근한 열감.

천문석은 미소지었다.

엄청난 냉기 속에서도 여전한 열감.

이 열감 덕분에 눈 폭풍 속에서도 체력을 보존하며 싸울 수 있었다.

천문석은 사용할수록 지금 입고 있는 헌터용 강화 전투복이 마음에 들었다.

빌린 장비를 반납할 때, 꼬맹이 엄마 장민에게 넌지시 가격을 물어볼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늑대와의 싸움은 소강상태,

잡생각을 하며 숨을 고르던 천문석은 다시 전투 준비를 했다.

빈 왼손을 앞으로 내밀고,

오른손의 해머를 늘어트려 시계추처럼 가볍게 흔들기 시작했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자세.

그러나 천문석이 자세를 잡자, 늑대들은 바짝 긴장했다.

그르르-

위협적인 소리를 내는 늑대를 보며 천문석은 웃었다.

심공을 잃었다고,

모든 무공을 잃은 것은 아니다.

영혼육백(靈魂肉魄).

수련으로 영육에 쌓은 무공은 혼백에 그 흔적을 새긴다.

죽음과 함께 영육은 스러져 천지로 돌아가나, 혼백은 끝없이 이어진다.

영육에 쌓였던 무공이 사라져도,

혼백에 새겨진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늑대 무리와 전투를 이어가며 천문석의 육체는 오랜 기억을 떠올리듯 무공을 다시 펼쳐내고 있었다.

비록 내력이 실리지 않은 초식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천문석은 이 늑대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허허실실.

천문석은 빈 왼손을 비스듬히 세우고, 오른손에서 흔들리는 둔기에 힘을 실었다.

허실을 전환해 상대의 빈틈을 찌르는 검술을 둔기술로 변형한 것.

그러나 내력이 없기에 허실 모두 부족하다.

그렇기에.

허, 모자라는 변화는 원근을 농락하는 왼손으로.

실, 떨어지는 파괴력은 강화 해머의 무게로 채운다.

천문석은 허실을 담은 이 기술로 늑대 몇 마리를 단숨에 끝장내고,

늑대들을 농락하다시피 쥐어박아 전투 의지를 꺾었다.

그르르-

늑대들이 한껏 몸을 낮추고 긴장할 때,

천문석은 빈 왼손을 앞세워 단숨에 앞으로 뛰었다.

쿵-

깨에에-

늑대 무리는 놀란 새들처럼 다급히 뒤로 뛰어 물러섰다.

그리고 충분히 멀어진 순간 다시 몸을 돌려 으르렁 대면서 위협했다.

"...?"

천문석은 다시 한번 뛰어 다가갔지만,

이번에도 늑대 무리는 다급히 뒤로 물러서더니 으르렁 대기만 했다.

"너희 뭐하냐···?"

그르르르-

제자리에 웅크린 채 으르렁대는 늑대들.

천문석이 잠시 생각하다가 펄쩍 뛰는 시늉을 했다.

깨에에-

깜짝 놀란 늑대들은 우르르 뒤로 도망쳤다가,

천문석이 움직이지 않은 걸 확인하고 눈치를 보며 돌아왔다.

늑대들은 다시 거리를 두고 으르렁거렸다.

"하- 이 새끼들."

이제야 상황을 깨달은 천문석은 탄식을 흘렸다.

이 늑대들은 학습했다.

자신이 온갖 방법으로 늑대들을 낚고 쥐어 박은지도 한참.

학습을 완료한 늑대들은 더는 낚이지 않고,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채 으르렁거리고만 있었다.

다른 늑대들이 더 오기를 기다리는 건가?

아니면 자신이 배고픔과 추위에 지치기라도 바라는 건가?

천문석은 슬쩍 문이 있던 자리를 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할까?

질문과 동시에 떠오르는 생각.

지금쯤이면 류세연과 이세영 선생님, 학생들은 충분히 멀리 이동했겠지?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어···?"

신나게 늑대들을 쥐어박느라 잊고 있었다!

늑대들과 싸운 건 학생들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충분한 시간이 지난 지금,

더는 늑대들과 싸울 필요가 없었다!

천문석은 힐끔 멀리 난간에 걸린 밧줄을 봤다.

밧줄로 가는 경로에 늑대들이 늘어서 포위하고 있지만,

이놈들은 제대로 겁을 먹은 상태다.

그냥 앞으로 걸어만 가도 늑대들은 좌우로 갈라질 거다.

그렇게 늑대 무리를 지나 밧줄에 완강 고리를 걸고 땅으로 내려가면 깔끔하게 탈출할 수 있었다.

천문석은 바로 움직였다.

하앗-

크게 기합을 지르고 늑대 무리 중앙을 향해 돌진했다.

깨에에에-

생각대로 겁먹은 늑대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천문석은 순식간에 늑대 무리를 돌파했다.

그리고 뻥 뚫린 옥상 문 앞을 지나가는 순간.

철렁, 가슴이 훅 꺼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천문석은 달리던 몸을 비틀어 땅을 박차고 옆으로 뛰었다.

후웅-

이 순간 하얀 무언가가 훅 지나가고, 공기를 찢는듯한 파열음이 울렸다.

콰앙-

콰지직-

가슴을 때리는 엄청난 힘!

전술 조끼에 들어있던 단단한 금속 상자가 일격에 우그러들고,

늑대의 치악력에도 버티던 강화 패드 십여 장이 동시에 와작 깨지며 쏟아지는 충격을 감쇄했다.

천문석은 엄청난 힘에 날아가면서도 눈을 부릅뜨고 문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보였다!

어슬렁어슬렁 천천히 문에서 나오는 눈처럼 새하얀 백곰!

커다란 승합차만 한 거대한 백곰이 붉은 눈으로 날아가는 자신을 보다가.

포효했다.

크아아아앙-

폭발하듯 뒤집혀 하늘로 솟구치는 눈!

공기가 찢어질 듯 떨리고, 균열의 푸른 빛마저 포효에 일렁이는 것 같았다.

거대한 백곰의 포효에 겁먹은 늑대들이 꼬리를 말고 구석으로 도망칠 때.

천문석은 눈밭 위로 나뒹굴며 피를 토했다.

피를 토한 천문석은 한 바퀴 구르며 정글도를 뽑고, 몸을 일으키며 뽑은 정글도를 백곰에게 겨눴다.

쿨럭-

피거품이 섞인 기침이 터지고,

입가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그러나 천문석은 피를 흘리면서도 백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백곰의 붉은 눈과 마주친 순간 시작된 맥동!

쿵-

순간 심장이 북 치듯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피부를 저릿저릿하게 울리는 살기!

살기에 반응해 거칠게 뛰는 심장!

훅 올라오는 짙은 피비린내!

천문석은 직감했다.

저 백곰은 기척을 죽이고 벽 뒤에 숨어,

늑대 무리와 싸우는 자신을 노렸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교활한 백곰.

이 백곰은 교활한 지혜에 엄청난 힘,

거대한 육체에서 뿜어지는 폭발적인 속도까지 지닌 마수였다!

늑대 무리처럼 여력을 남기고,

농락하듯 싸우다가 도망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등을 보이는 순간, 죽는다.

방법은 하나,

정면으로 싸워 꺾어야 한다!

천문석이 격전을 다짐하는 순간,

거칠게 뛰던 심장 소리가 뚝 멈췄다.

그리고 뱃속 깊숙한 곳에서 끓어 오르는 열기!

이 열기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피비린내를 지워 버렸을 때.

천문석은 깨달았다.

강적을 만나,

일격을 맞고 피를 토하고 있다.

이제 이 강적과 싸워 끝장을 봐야 한다.

생사결!

삶과 죽음이 갈릴 격전이 시작된다.

그러나 두렵지도 긴장되지도 않았다.

자신은 눈앞의 강적이 너무나 반갑다는 듯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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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석이 정글도를 잡고 백곰의 눈을 계속 노려보자,

백곰은 언제 천문석을 공격했냐는 듯이 딴청을 부리며 눈을 슬쩍 피했다.

그리고 어슬렁어슬렁, 천천히···.

눈이 가득 쌓인 옥상 위를 걸었다.

쿵, 구릉-

쿵, 구르릉-

거대한 백곰의 발걸음마다,

쌓인 눈이 푹, 푹 꺼지고 옥상 바닥이 북처럼 울렸다.

천문석은 정글도를 앞으로 겨눈 채, 천천히 백곰을 따라 걸었다.

그러나 백곰은 천문석은 관심도 없다는 듯이 입을 크게 벌려 하품하고 앞발로 얼굴을 쓱쓱 만지더니.

휙-

엄청난 속도로 돌진했다!

그러나 백곰이 돌진하는 상대는 천문석이 아니었다.

겁먹고 구석에 모인 늑대 무리.

백곰은 늑대 무리로 돌진해 포효하며 앞발을 휘둘렀다.

크아앙-

붉은 피가 폭발하듯 터지고,

뜨거운 김이 확 피어올랐다.

백곰의 앞발에 걸린 늑대는 울음소리 한번 내지 못했다.

탄력 있고 단단한 털이 순식간에 잘리고,

단숨에 허리가 끊어져 두 동강 나 죽었다!

깨에에엥-

뒤늦게 겁먹은 울음소리가 울리고,

늑대들은 꼬리를 말고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귀찮은 늑대 무리를 쫓아낸 백곰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파악-

순간 백곰은 등에 박히는 따끔한 느낌을 받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백곰이 몸을 돌리자,

다시 한번 등에서 올라오는 따끔한 느낌!

이제야 백곰은 깨달았다.

적이 자신을 공격하고 있었다!

한낱 먹잇감의 공격에 설원의 폭군 백곰은 분노했다.

크아아앙-

포효와 함께, 폭풍처럼 사방으로 뿌려지는 공격.

두 동강 난 늑대 사체가 갈가리 찢기고,

높게 쌓인 눈이 폭발하듯 하늘로 솟구쳤다.

분노한 백곰의 무자비한 공격이 이어졌다!

크아아앙-

쿵, 쿵, 쿵, 쿵-

전신을 저릿저릿하게 울리는 포효!

매 걸음 바닥을 울리는 무거운 발걸음!

훙, 훙, 훙, 훙-

공기를 찢어발기는 공격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붉은 피와 하얀 눈,

늑대 털과 살점이 뒤섞여 폭발하는 살상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때 백곰의 등을 찌른 천문석은 백곰의 팔 아래로 굴러 다시 한번 정글도를 찔렀다.

파악-

정글도는 백곰 가죽을 뚫었으나 그뿐,

두터운 지방질에 막혀 나아가지 않는다!

천문석은 정글도를 즉시 당겨 뽑고 백곰 옆구리를 스치듯 빠져나갔다.

파앙-

순간, 천문석이 있던 위치에서 폭발하는 눈!

한발 늦게 휘둘러진 백곰 앞발에 맞은 눈이 흩날리고,

분노가 담긴 포효가 연이어 터져 나온다.

크아앙, 크아아앙-

형체를 가진듯한 백곰의 포효가 자르르 몸을 울릴 때,

천문석은 거대한 백곰의 육체 한자 거리에서 보법을 밟아 나갔다.

혼백에 새겨진 투로를 따라,

극에 이른 화권(和拳)의 달인이 되어 움직인다!

천문석은 굽이진 계곡을 흐르는 물처럼 백곰의 몸을 타고 흘렀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화권!

그러나 극강(極强)의 힘은 부드러움(柔)마저 단숨에 끊어낸다.

무게는 곧 파괴력이다.

천문석이 혼백에 새겨진 화권으로 물처럼 흐른다 해도.

백곰의 엄청난 무게에는 스치는 것만으로도 화권의 부드러움을 끊을 극강의 힘이 담겨져 있었다.

그렇기에 영육에 쌓은 내력 없이는 화권으로 백곰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착용한 장비, 강화 전투복과 강화 군화, 정글도가 천문석이 화권으로 백곰과 싸우는 걸 가능하게 했다.

파지직, 파직-

육체의 흐름에 따라 단단하게 경화되고 유연하게 풀리는 강화 전투복!

강화 전투복은 내가 기공이 몸을 보호하듯, 백곰의 몸을 스치며 전해지는 힘의 여력을 흘려보냈다.

파스슥, 쿵-

흐르는 물처럼 눈 위를 스치는 강화 군화!

강화 군화는 보법의 움직임에 따라 대지를 스치며 힘을 흘리고 끌어 올렸다.

우르르, 쩌엉-

쉴 새 없이 떨며 종처럼 우는 정글도!

앞세운 정글도가 백곰의 폭풍 같은 기세를 흘리고 공격의 맥을 끊어 육체가 나아갈 길을 인도했다.

천문석은 온 힘을 다해 백곰과 정면으로 맞부딪혔다.

적의 강건한 육체를 방패 삼고,

힘의 여파를 강화 전투복으로 흘리며,

폭풍 같은 기세를 정글도를 앞세워 뚫는다!

천문석은 굽이진 계곡을 흐르는 거친 격류가 되어 흐르고 흘렀다.

일격!

백곰의 정타, 단 일격만 맞아도 끝나는 싸움이다.

날을 세우듯 생사의 극에 선 정신이 예리하게 일어날 때,

천문석, 전생 천마는 서서히 전투의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호흡을 태워 육체를 움직이고,

일 검에 혼을 실어 찔러 넣는다!

휘이잉-

백곰의 거센 공격을 피하는 순간.

폭풍 같은 힘과 기세를 뚫고 다가가,

보법으로 모으고 모은 힘을 터트린다!

파아악-

단숨에 백곰의 몸을 꿰뚫는 정글도!

그러나 단지 한 뼘!

온 힘을 다해 찔러넣었으나,

정글도는 단지 한 뼘 더 들어갔을 뿐이다.

백곰의 육체에 박힌 정글도는 단단한 화강암에 닿은 듯 파르르 떨릴 뿐 나아가지 않았다.

거대한 백곰의 두꺼운 지방층과 근육이 천연의 갑옷이 되어,

화권으로 흘리고 보법으로 힘을 모아 일심으로 찌르는 정글도를 막아내고 있었다.

훙-

순간 공간을 찢듯 횡으로 휘둘러지는 앞발!

천문석은 휘청 뒤로 기울어져 공격을 피하고,

빙글 몸을 돌려 물 흐르듯이 움직였다.

공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상황이지만,

천문석은 실망하지 않았다.

이 순간 누가 가르쳐 준 게 아닌,

전생의 삶에서 스스로 깨달은 무리가 절로 떠오른다.

만근의 거석도 천 년 동안 떨어지는 물방울에 깨지는 법!

무기를 단단히 잡고,

온 힘을 다해서 내려쳐라.

한 번으로 안 된다면.

두 번, 세 번··· 몇 번이라도!

적이 박살 날 때까지.

때리고 때려라!

하-

기합과 함께 보법을 밟아 쏟아지는 여력을 흘리고,

다음 순간 오히려 성큼 다가가 백곰의 몸에 붙어 물처럼 흐른다.

천문석은 무아지경 속에서 절정의 화권을 펼치며, 정글도를 찌르고 다시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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