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비정규직 천마 - #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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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
'마흔 번인가?'
천문석은 백곰 등에 박힌 정글도를 비틀어 뽑으며 뒤로 뛰었다.
순간, 거센 바람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쿵-
백곰의 기둥 같은 앞발이 수직으로 허공을 가르고 바닥을 때려 울린다.
파아악-
쿠우우웅-
쌓인 눈이 폭발하듯 비산하고,
강화 콘크리트 바닥이 울렸다.
그러나 백곰의 이번 일격은 전과 달리 강화 콘크리트 바닥을 깨뜨리지 못했다.
힘이 빠졌나!?
생각과 동시에 바닥을 짧게 박차 백곰에게 들어간다.
탁, 탁, 탁-
천문석은 깊은 공격을 하려다가 반전해 뒤로 펄쩍 뛰었다.
훙-
축 늘어져 있던 백곰의 오른손이 횡으로 그어져 천문석이 들어가려던 공간을 찢어발겼다.
교활한 녀석!
백곰은 왼손으로 힘이 빠진 척 낚시질을 하고,
늘어져 있던 오른손으로 정타를 넣으려 했다.
이 백곰 마수는 힘과 교활함을 겸비하고 공격의 사이사이 천문석을 낚으려 했다.
몬스터가 아닌 음흉한 무림인과 싸우는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온갖 귀계가 난무하는 무림을 뚫고 나왔던 천문석에게 이 정도 속임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파악, 파악-
눈을 걷어차 백곰의 시야를 가리며 엇갈린 사선으로 뛰는 천문석.
천문석은 왼손의 정글도를 빙글빙글 돌려 손에 남은 힘의 잔향을 흘렸다.
그리고 따라붙으려다가 눈을 뒤집어써 속도가 죽은 백곰과 거리를 유지했다.
백곰은 더운 숨을 뿜어내며 천문석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후우, 후욱-
쿵, 쿵, 쿵-
거친 호흡,
무겁고, 느린 발걸음.
백곰은 처음처럼 폭발적으로 치고 들어오지 못하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따라붙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고,
천문석은 내심 웃었다.
만근 거석을 깨뜨리는 천년의 물방울은 실패했지만, 백곰의 체력을 뭉텅 깎아내는 건 성공했다.
백곰은 화권으로 달라붙은 천문석을 잡으려 격렬한 공격을 했고 체력을 빠르게 소모했다.
당연했다.
북극곰 두 배 이상 크기인 거대한 백곰.
마석의 힘으로 폭발적인 힘과 속도를 내지만 그 또한 무한은 아니다.
마수화된 몬스터라도 육체에 기반을 둔 생물체.
이 추위 속에서 저 거대한 육체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체력 소모가 크다.
격렬한 공격은 저 거대한 백곰의 육체에 큰 부담이 됐을 거다.
치타가 엄청난 순간 속도를 내지만,
체온 상승 때문에 그 속도를 유지 못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체력을 소진한 백곰은 처음처럼 폭발적인 민첩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발을 질질 끌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여유가 생긴 천문석은 천천히 뒤로 걸으며 백곰의 전신을 살폈다.
백곰의 하얀 털 위로 피가 흘러 굳어있다.
천문석이 찔러 넣은 정글도가 만든 상처다.
그러나 마흔 번이 넘는 칼질을 했음에도 피로 물든 곳은 양 옆구리와 등, 세 곳뿐이다.
천문석이 칼질을 저 세 부위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백곰의 엄청난 무게가 지지대가 되어 두꺼운 가죽을 뚫는 건 성공했지만,
겹겹이 쌓인 지방층과 바위같이 단단한 근육에 막혀 장기를 찢는 치명타는 들어가지 않았다.
천문석은 화권으로 흘린 힘을 역으로 이용해 같은 곳을 계속 찔러 꿰뚫으려 했다.
그러나 한 뼘이 훌쩍 넘는 지방질을 뚫는 게 한계였다.
심공이 없어 내력을 끌어낼 수 없는 지금,
천문석은 저 백곰의 단단한 근육을 뚫는 데 결국 실패했다.
‘이제 어떻게 할까?’
백곰의 몸에서 흐르던 피는 이미 멈춘 지 오래.
체력을 확 깎아냈지만.
여전히 저 백곰에겐 일격으로 자신을 죽일 힘이 있고, 자신에겐 백곰의 명줄을 끊을 힘과 기술이 없다.
백곰을 상대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순간.
욱씬, 저려오는 가슴.
천문석은 강화 전투복을 슬쩍 봤다.
격전의 흔적이 남아있는 방검복과 강화 전투복 한가운데.
처음 기습 공격을 맞은 가슴에서 묵직한 통증이 올라온다.
천문석은 통증을 느끼며 내심 웃었다.
운이 좋았다.
전술 조끼에 넣어둔 이사장의 금속 상자가 충격을 완화하지 않았다면,
십여 장의 강화 패드를 단숨에 깨뜨린 힘에 가슴이 내려앉아 죽었으리라.
그리고 이 무기가 아니었어도 죽었겠지.
천문석은 앞으로 겨누고 빙글빙글 돌리는 정글도를 봤다.
마력 회로가 작동하지 않는 정글도.
그러나 이 정글도는 수십 번이나 백곰의 단단한 육체를 뚫고,
무거운 공격을 흘려 받았음에도 이 하나 나가지 않았다.
이 정글도는 마력 회로가 아니더라도 천금을 준다 해도 아깝지 않을 무기였다.
역시 W. S. 인더스트리!
초거대기업의 기술이 집약된 무구다웠다.
...
천문석이 뒤로 걸으며 상념에 잠길 때,
백곰의 붉은 눈에 교활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무수히 많은 늑대를 죽이고,
수많은 마석을 삼켜 진화한 백곰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뒤로 걷는 작은 놈.
그 뒤로 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금 저 작은 놈은 스스로 뒤가 막힌 사지로 걸어가고 있었다.
후우, 후욱-
백곰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더욱 힘겹게 발을 끌어 적을 따라 걸었다.
체력이 소진된 듯 연기하며,
작은놈이 막다른 곳에 몰린 순간 쏟아낼 일격을 준비한다.
백곰의 붉은 눈에 섬뜩한 광기가 차오르고,
쿵, 쿵 맥동하는 마석에서 전해진 강대한 힘이 체력이 빠진 몸에 모인다.
그리고 잠시후.
툭-
뒤로 걷던 작은놈은 무언가에 다리가 걸렸다.
놀란 듯 움츠러드는 몸!
이 순간 백곰은 모아온 힘을 폭발시켜 포효하며 돌진했다!
크아아앙-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작은 놈!
멍청한 놈은 이제야 뒤가 막힌 걸 깨닫고,
도망치지도 못하고 우뚝 서 있었다.
크아아아앙-
백곰이 다시 한번 승리의 포효를 내지를 때,
안전 상자에 다리가 걸린 천문석은 눈을 반짝였다.
걸렸다!
천문석은 바로 뒤로 두 번 뛰어 안전 상자를 밟고 난간 위로 올라섰다.
난간 위에 선 채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천문석.
이 순간 백곰은 해일처럼 돌진해!
거대한 몸을 무너지듯 던지면서 양발을 내려쳤다!
후우웅-
콰아아앙-
엄청난 힘과 무게가 실린 백곰의 일격에 강화 콘크리트 난간이 박살 나는 순간.
천문석은 이미 난간을 박차고 뒤로 뛰었고,
광기가 폭발한 백곰은 뒤로 뛰는 천문석을 향해 몸을 날렸다.
휘이이잉-
거대한 백곰과 천문석이 15층이 넘는 건물 옥상에서 떨어졌다.
크아앙-
백곰은 공중에서 울부짖으며 떨어졌고.
기이이익-
천문석은 밧줄에 완강 고리를 걸고 천천히 내려갔다.
크아아앙-
천문석은 떨어지며 발버둥 치는 백곰을 향해 외쳤다.
"중력이 내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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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강 고리를 잡은 천문석은 흐뭇한 표정으로 떨어지는 백곰을 봤다.
이것이야말로 무공과 현대 물리학의 조화, 중력권!
중력의 맛이 어떠냐!
천문석이 어이없는 상상을 하며 웃을 때, 이변이 생겼다.
콰아앙-
크르르륵-
떨어지는 백곰이 발톱을 건물 벽에 박아 넣은 것이다!
떨어지는 속도를 줄이려는 발악.
그러나 원숭이도 아니고 백곰의 거대한 몸과 무게로 이런 게 가능할 리 없었다.
"어···?"
그런데 이게 됐다.
콰르르륵-
강화 콘크리트 벽을 갈아엎는 백곰의 발톱!
백곰이 떨어지는 속도가 확연히 느려지고 있었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천문석은 어이없었으나, 바로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실이었다.
이대로라면 저 백곰은 땅에 처박히는 게 아니라 땅에 내려서게 생겼다.
천문석은 땅 위에서 백곰과 2차전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완강 고리를 조정해 떨어지는 백곰을 직접 끝장내려다가···.
멈췄다.
"..."
천문석의 시선이 완강 고리가 걸린 방검복 아래로 향했다.
홀스터가 보였다.
이세영 선생님이 준 장 총신 리볼버 총구가 튀어나와 있는 홀스터가!
천문석은 바로 홀스터에서 리볼버를 꺼내 안전장치를 풀고 해머를 당겼다.
묵직한 리볼버를 잡은 천문석은 떨어지는 백곰을 신중히 겨누고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콰앙-
묵직한 반동과 폭음.
맵고 신 화약 연기가 확 뿜어지는 순간.
보였다.
리볼버 총구에서 쏘아진 마탄!
마탄의 탄두 궤적을 따라 오렌지색 빛이 쏘아진다.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평범한 마탄이 아니다!
파지지직-
마탄의 빛이 백곰과 닿는 순간.
백곰의 육체에서 쏟아진 마석의 마력이 탄두를 저지했다.
그러나 긴 꼬리를 만든 오렌지색 섬광이 하나로 모이자,
마탄의 섬광이 마석의 마력을 꿰뚫고 백곰의 몸에 박혔다.
크아앙-
백곰은 몸에 박히는 마탄의 섬광에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마탄은 백곰의 육체를 관통하지 못했다.
두꺼운 지방질과 강철같은 근육이 마탄을 막아냈다.
그러나 마탄의 불꽃이 백곰의 육체를 태웠다.
두꺼운 지방이 타들어 가는 작열통!
백곰은 고통에 몸부림쳤고,
벽에 박아넣었던 발톱이 뽑혔다.
백곰은 다시 추락했다.
기이이이잉-
천문석은 완강 고리를 조절해 백곰을 따라 떨어지며,
백곰이 벽에 발톱을 박아 넣으려 할 때마다 리볼버를 쐈다.
쾅, 쾅, 쾅, 쾅-
어느새 다섯 발의 탄환을 쐈을 때.
콰아앙-
백곰은 눈을 뚫고 지상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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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이익-
탁-
천문석은 땅에 내려서자마자, 완강 고리를 풀고 뜨겁게 달아오른 리볼버를 홀스터에 넣었다.
그리고 정글도와 강화 해머를 빼 들고, 백곰이 떨어진 곳으로 달렸다.
백곰이 추락하며 폭발하듯 비산한 눈에 시야가 가려진 상황.
천문석은 흩날리는 눈을 헤치고 달렸다.
아직 백곰이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마수의 생명력은 끔찍할 정도.
가능성은 충분했다.
천문석은 바로 확인 사살을 할 생각이었다.
눈 속에 처박힌 백곰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거대한 백곰은 폐차장의 구겨진 자동차처럼 땅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예상대로 백곰의 엄청난 무게가 추락의 충격을 극대화해 치명상을 입은 상태.
팔다리는 망가진 장난감 인형처럼 뒤틀렸고 가슴은 푹 꺼졌다.
정글도로 뚫어놓았던 구멍에서는 멈췄던 피가 다시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를 박고 불을 붙인 듯 선명한,
오렌지색 불꽃을 다섯 개 보였다.
파스스스-
백곰의 몸에서 빛나는 오렌지색 불꽃.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마탄!
자신이 쏜 리볼버의 마탄에 새겨진 마력이 백곰의 육체를 파고들어 태우고 있었다.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홀스터에 넣어둔 리볼버를 봤다.
아직도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리볼버.
문득 이세영 선생님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릴 때···.
크르르-
엉망으로 박살 난 백곰이 거친 소리를 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백곰은 아직 살아 있었다!
천문석은 바로 움직였다.
부르르 떠는 백곰의 옆구리, 자신이 수십 번의 칼질로 뚫어놓은 구멍에 정글도를 박아넣는다.
으아악-
파아악-
정글도 손잡이를 손바닥에 고정하고 악을 쓰며 온 힘을 다해 가슴 방향으로 밀어 넣었다.
크르르륵, 크아-
백곰의 으르렁거림이 커질 때,
천문석은 정글도 손잡이를 강화 해머로 때렸다!
쾅-
크아아앙-
정글도가 한 뼘 들어가는 순간,
터져 나오는 엄청난 포효!
당장이라도 일어날 듯 몸이 들썩이고,
팔다리를 허공으로 뻗어 버둥거린다.
천문석은 괴성을 지르며 강화 해머로 정글도를 연이어 내려쳤다.
으아악-
쾅, 쾅, 쾅-
크아아앙-
단단한 바위에 정을 때려 넣는 듯한 반발력!
백곰의 옆구리에 박힌 정글도가 안으로 파고들수록 반발력은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열 번이 넘어가고 스무 번째 강화 해머가 정글도를 때린 순간.
파아악-
정글도는 마침내 단단한 근육을 꿰뚫고 뼈를 부수고 장기 끝까지 파고 들어갔다!
이 순간 부들부들 떨며 몸을 일으키려던 백곰의 전신에서 힘이 탁 빠져나갔다.
쿵-
버둥거리던 사지가 힘을 잃고 땅에 떨어지고,
부르르 떨면서도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몸이 멈췄다.
백곰은 마침내 죽었다!
하-
천문석은 연이은 해머 질의 충격으로 부들거리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백곰을 꿰뚫은 정글도를 당겼다.
백곰의 근육에 단단히 맞물린 정글도는 해머로 몇 번이나 때려 상처를 벌리고서야 뽑혔다.
정글도를 뽑는 순간 솟구치는 붉은 피.
천문석은 능숙하게 솟구치는 피를 피하고,
정글도에 묻은 피를 눈과 백곰의 털로 닦아냈다.
그리고 아직 따뜻한 백곰 사체 위에 털썩 앉았다.
들끓던 마음은 어느새 착 가라앉았다.
승리!
생사결 끝에 거머쥔 승리.
피를 끓게 하는 단어에도 어쩐지 담담했다.
천문석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균열의 푸른빛 아래서,
조용히 칼로리바를 씹고 수통의 물을 마시며 생각했다.
이제 이곳에서 나갈 시간이다.
길고 긴 하루가 마침내 끝난다.
칼로리바와 물을 모두 마신 천문석이 앉아 있던 백곰 사체에서 몸을 일으키려 할 때.
귀에 익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우으으으으-
"...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학교 건물 뒤에서 늑대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었다.
늑대들은 하울링을 하더니,
다리를 절뚝이며 힘겹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
천문석은 잠시 말을 잃었다.
산에서 구르고,
얼음벽에 돌진하고,
옥상에서 쥐어 터졌다.
끝없는 패배와 좌절을 겪었음에도 꺾이지 않는 근성.
겁을 집어먹고 도망쳤다가도 다시 돌아와 대드는 용기.
불굴의 근성과 용기를 가진 탱탱볼 늑대들이 다시 나타났다!
하-
천문석은 헛웃음을 터트리면서도 감탄했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불굴의 의지로 돌진하는 늑대들이라니!
전생의 무림인들.
그중에서도 가장 끈질겼던,
은혜는 빨리 잊고 원한은 대대손손 물려 줘가며 갚는 혈교의 미친놈들보다 이 늑대들이 훨씬 더 끈질기고 근성 있는 것 같았다.
천문석은 진심으로 이 늑대들에게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