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돈의 라이안-54화 (53/57)

제54장 라이안의 협박

그들과 헤어진 뒤 라이안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바로 인두루인 제국의 상공이었다.

라이안은 하늘에서 인두루인 제국의 황성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길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래도 드래곤들이 이곳의 인간들을 다 죽이지는 않았나보군. 유희를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라이안의 말대로 드래곤들이 인두루인 제국의 인간들을 모두 죽이지 않은 이유는 그것에 있었다.

만년에 가까운 인생을 살아가는 드래곤들에게 유희라도 없으면 아무리 그들이라도 그 지루함에 공허함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라이안은 곧 그 자리에서 텔레포트를 이용해 사라졌고 또 다시 라이안이 나타난 곳은 다름 아닌 챠둠이 봉인 당했던 아공간이 있던 자리였다.

라이안의 행동을 우주에서 모두 보고 있던 챠둠이 라이안에게 물었다.

“이곳은 제 몸체가 있는 곳이 아닙니까?”

“어. 보고 있었어?”

“딱히 우주에서 할 일도 없습니다. 가끔씩 마법으로 사라지는 주인님의 위치를 찾는 일 밖에는요.”

“하하하, 왜? 사람들하고 같이 있지 않고.”

라이안의 말에 챠둠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 모습으로 내려가면 혁마소에게 어떤 봉변을 당할지.”

“흠. 하긴 그것도 그래?”

“크윽.”

라이안이 챠둠의 목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지금 너의 몸체를 다시 찾아줄 것이니까?”

“정말입니까?”

“내가 너한테 왜 거짓말을 하냐? 지금의 힘이라면 드래곤 로드쯤은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거든.”

“하지만 그가 죽으면 아공간도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그래서 지금 드래곤 로드에게 협박을 할 생각이야.”

“협박이라고요? 협박이 먹혀들겠습니까?”

“두고 봐야지. 나도 과연 어떻게 될지는 모르니까.”

챠둠은 라이안의 말에 크게 신뢰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켜볼 수밖에.

* * *

드래곤 로드인 티모스탄은 끝없는 자유로움을 느끼며 자신의 레어에서 그 자유를 만끽했다.

그 얼마나 율법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가.

11서클이라는 강함을 가질 수는 있지만 대신 로드 안에만 묶여 있어야 하는 드래곤들의 율법을 티모스탄은 언제나 벗어나고 싶어 했다.

여타 다른 드래곤 로드들이 그랬듯 티모스탄 역시 자신이 로드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드래곤 로드가 정하면 그것으로 그 말을 따라야 하는 것 또한 율법이었다.

그렇게 억지로 로드가 된 티모스탄은 평생 자신의 레어에만 묶여 유희 한 번 해보지 못했고 가끔씩 내려오는 신언을 받느라 마음 편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발크르스 마왕과 손을 잡기로.

발크르스 마왕은 대륙의 하늘을 마기로 채워 신들로 하여금 중간계를 관여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기로 했었고, 티모스탄은 전 드래곤들에게 알려 발크르스 마왕의 현신을 막지 말라는 명을 내렸었다.

결국 드래곤들은 발크르스 마왕과의 계약으로 대륙의 한 곳을 자신들의 영토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그 어떤 율법에도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티모스탄은 자신의 레어에서 어떤 유희를 즐길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고 그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때 그의 상념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그렇게 좋지?”

“누구냐!”

티모스탄은 빠르게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이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고, 그곳에는 티모스탄을 만나기 위해 제루이판 왕국에서 텔레포트해 온 라이안이 있었다.

“나? 난 내 물건을 찾으러 온 사람이다.”

“인간이 어떻게…….”

“어떻게 너도 모르는 사이에 이곳에 올 수 있었냐고?”

“인간,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고 왔는가?”

티모스탄이 라이안에게 드래곤 피어를 사용하면서 물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라이안에게 통할 리 없었다.

“피어 따위는 나한테 안 통하니까 우선은 앉아.”

티모스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드래곤 피어를 견뎌낸 인간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라이안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피어를 견디며 자신 앞에 놓인 의자에 앉는 것을 보며 티모스탄 역시 얼굴을 굳힌 채 자리에 앉았다.

“좋다. 뭔가 할 말이 있나 본데 그 말부터 들어주마.”

“후훗, 바로 공격부터 해올 줄 알았는데 의외인데?”

“너의 말하는 것에 따라 네가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될 것이다.”

티모스탄은 라이안이 굉장히 특이하다고 느꼈고 그 점에 있어서 흥미로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난 네가 가지고 있는 내 물건을 찾으러 왔다.”

티모스탄은 라이안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내가 너의 물건을 갖고 있다고? 허허허, 웃기는구나. 내가 인간들이 탐낼 만한 물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네 물건이라니? 내가 너의 물건을 언제 빼앗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렇지. 빼앗은 거나 다름없지.”

“그것은 별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 것 같군.”

“좋아, 말하지. 챠둠을 꺼내줘라.”

“챠둠?”

이름만으로는 잘 생각이 안 나는 티모스탄이었다. 하지만 라이안의 다음 말에 티모스탄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네가 너의 아공간에 가두어버린 챠둠을 말하는 것이다.”

“아니, 네가 그것을 어떻게……!”

드디어 생각이 났는지 티모스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라이안을 쳐다보았고, 라이안은 티모스탄을 똑바로 응시하며 똑똑히 말했다.

“챠둠은 내 가족이다. 당장 그를 풀어줘라.”

“말도 안 된다. 그는 분명 다른 세계에서 온 생명체라고 말했다!”

티모스탄은 라이안의 정체가 궁금했다.

“네 정체가 무엇이냐! 어찌해서 그 사실을 알고 있단 말이냐!”

라이안은 티모스탄의 기세로 보아 언제든지 공격할 것이라고 느꼈다.

“난 챠둠과 같은 차원에서 태어난 인간이다. 그리고 챠둠은 언제나 내 옆에 있어주던 나의 가족이고.”

티모스탄은 라이안의 말을 들으며 깊이 생각했다.

‘지금 눈앞의 인간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차원을 넘어온 존재가 그 거대한 물체만이 아니라는 것인가?’

티모스탄은 자신의 결정을 말했다.

“그것은 안 되겠군. 그는 위험한 존재다. 이곳 세계에 해를 끼칠 존재인 만큼 그는 절대 풀어줄 수 없다.”

티모스탄은 강하게 말했다.

하지만 라이안은 굴하지 않았다.

“후회할 텐데.”

“미쳤구나, 이세계의 인간이여. 네가 어찌해 드래곤 피어를 견뎌내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따위 말투는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다!”

티모스탄이 한 손에 파이어볼을 만들고는 곧 그것을 라이안에게 던졌다.

화르르륵.

콰광.

하지만 라이안은 이미 그곳에서 다른 곳으로 몸을 옮긴 뒤였다.

“아니, 어디로……!”

티모스탄은 라이안을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고 곧 레어 밖에서 라이안의 음성이 들려왔다.

“밖으로 나와라. 상대해주마!”

라이안의 목소리를 들은 티모스탄의 신형이 곧 그곳에서 사라졌고 레어 밖에서 나타났다.

티모스탄은 허공에 떠 있는 라이안을 보며 생각했다.

‘자체적으로 부유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라이안이 떠 있는 모습에서 전혀 마나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기에 든 생각이었다.

지금 라이안의 능력은 바로 봉인에서 풀려진 갈리스인의 능력 중 하나였다.

티모스탄이 레어 밖으로 나오자 라이안이 말했다.

“난 너에게 부탁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협박을 하러 온 것이다. 넌 드래곤들의 자유를 위해 신을 배신하고 마왕과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내가 모든 드래곤들을 죽여 버린다면 어떻겠는가!”

“미친, 인간 따위에게 쉽게 당할 드래곤들이 아니다!”

티모스탄은 라이안의 말에 크게 분노하며 헬 파이어를 시전했다.

“헬 파이어! 죽어라, 인간!”

라이안은 빠르게 날아오는 검붉은 헬 파이어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티모스탄은 그 모습을 보며 라이안이 헬 파이어로 인해 순식간에 녹아버릴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순간 티모스탄이 입을 다물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쾅!

수아아아앙!

라이안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헬 파이어를 한 손으로 쳐냈고 그 헬 파이어가 다른 곳으로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멀리 날아간 헬 파이어는 다른 곳에 높이 솟아 있던 산을 날려버리며 불태웠다.

콰르르르릉!

라이안이 티모스탄의 놀란 표정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장난치지 마라. 겨우 이 정도의 공격으로는 나에게 작은 상처조차 입힐 수 없다. 어서 드래곤으로 현신해 덤벼 보아라. 드래곤 로드여!”

티모스탄은 차츰 라이안에게 두려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은 드래곤들 중 가장 강한 드래곤 로드가 아닌가.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인간, 네가 강하다는 것은 인정하겠다. 하지만 곧 그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티모스탄은 라이안이 보는 앞에서 폴리모프를 해제했고 곧 금빛의 골드 드래곤으로 변신했다.

“카오오오오!”

티모스탄은 자신의 위용을 뽐내며 포효했고 곧 라이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 이제 더 이상 살아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할 말이다.”

라이안은 한줄기의 빛과도 같이 달려들었고 티모스탄은 곧 블링크로 사라졌다.

다른 곳에서 나타난 티모스탄은 라이안에게 마법을 시전했다.

“대지와 함께 불타올라라. 뉴클리어 블라스터.”

궁극으로 분류되는 11클래스의 마법이었다.

공기 중에 원자 반응을 일으켜 대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

많이 쓰면 평균 온도가 올라갈 뿐만 아니라 핵겨울까지 불러올 수 있는 무서운 마법이다.

라이안은 주위의 공기가 뜨겁게 타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라이안이 있는 곳의 공기가 점점 일렁거리기 시작했고 곧 붉게 타올랐다.

그 순간!

콰과과과광!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의 영향은 티모스탄의 레어에도 미쳤고 레어의 절반이 날아갔다.

그 일대의 산들 역시 제대로 올라서 있는 산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티모스탄 역시 자신의 마법에 휩쓸릴까 봐 더욱 먼 곳으로 자리를 피했다.

그만큼 위력이 대단한 마법이었다.

티모스탄은 뜨거워진 대기를 느끼며 만족스러워 했고 서서히 사그라져 가는 열기와 불길을 보며 크게 울부짖었다.

“카오오오오!”

한참을 포효하던 티모스탄은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이상한 느낌에 앞을 본 순간 경악했다.

“아니, 이럴 수가! 그 마법을 견뎌냈단 말인가!”

그랬다.

라이안은 티모스탄에게 힘의 차이를 느끼게 만들려고 몸으로 그 마법을 견뎌내었다.

라이안의 몸은 강한 열기로 인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러한 모습으로 티모스탄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나라도 이것은 상당히 뜨겁군. 혹시 앞으로 사용할 공격이 이 정도의 공격이라면 얼마든지 받아주마. 하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라이안은 그 불길 속에서 뜨거워 죽는 줄 알았다. 자신의 힘을 끌어내어 버텨내기는 했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라이안은 티모스탄이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끼도록 만들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티모스탄은 어이가 없었다.

‘나라 한들 이 마법에는 한줌에 재가 되거늘. 어떻게!’

티모스탄은 자신이 어떠한 공격을 하더라도 정말로 라이안이 말한 대로 그에게는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 느꼈다. 티모스탄의 반응을 눈치 챈 라이안이 마지막 쇠말뚝을 박았다.

“넌 나를 막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네가 챠둠을 봉인에서 꺼내주지 않는다면 난 이 대륙에 있는 모든 드래곤들을 죽일 것이다. 어찌 하겠는가!”

티모스탄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라이안이 정말로 부탁이 아닌 협박을 하러 왔다는 것과 자신은 그 협박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크윽, 알겠다. 아공간을 열겠다.”

라이안은 티모스탄의 결정에 속으로 쾌재를 외쳤지만 겉으로 표를 내지 않으며 말했다.

“잘 선택했다. 티모스탄이여, 너는 지금 모든 드래곤들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라이안의 말에 티모스탄은 다시 인간으로 폴리모프하며 자신도 모르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들은 아공간이 있는 마법진으로 자리를 옮겼고 라이안은 티모스탄이 주문을 외우는 것을 지켜봤다.

티모스탄으로서는 굴욕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으로 인해 드래곤들이 멸종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티모스탄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아공간이여! 모습을 드러내라!”

티모스탄의 말과 함께 하얀 백색의 공간이 나타났고 라이안은 그곳에 있는 챠둠의 커다란 전함의 몸체를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하늘에서 보고 있던 챠둠은 기쁜 나머지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지듯 불줄기가 되어 라이안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고 곧 아공간으로 들어가 커다란 전함에 장착되었다.

챠둠은 라이안의 도움으로 아만다리움 금속으로 되어 있는 자신의 강인한 몸체를 다시 되찾을 수 있었고 라이안에게 감사해했다.

“주인님, 감사합니다.”

“하하하, 감사는 무슨. 앞으로 말이나 잘 들어. 알았지?”

“알겠습니다.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좋긴 좋은가 보구나. 후훗.”

라이안과 챠둠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워프로 사라져갔고 그곳에 남아 있던 티모스탄은 하늘을 보며 한탄했다.

“허허… 어찌 내가 이리되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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