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돈의 라이안-53화 (52/57)

제53장 상급마족 네르갈과 라비아탄

라이안이 챠둠의 소식을 듣기 지구의 시간으로 약 30분 전.

하나의 성을 함락하고 잠시나마 평화에 젖어 있던 병사들이 성벽 위에서 성벽 밖의 사람을 발견하고는 나팔을 불었다.

뿌우우우우우!

“성벽 밖에 사람이 있다!”

“문을 열어라!”

가끔씩 사람들이 모여들었기에 평소처럼 성안으로 들여보내려는 병사였다.

그러나 성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있었으니 바로 갈천혁의 목소리였다.

“멈춰라! 성문을 열지 마라!”

10인의 영웅 중 한 사람이 소리치자 병사들은 곧 행동을 멈춘 채 상황을 지켜봤다.

갈천혁이 빠르게 성벽 위에 올라오더니 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 그 옆에 혁마소가 오더니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마기로구나. 그럼 저놈들은 사람이 아니라 마족이겠군.”

“우리가 기운을 감지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안에서 도륙 당했을 것이다.”

그들이 성벽 아래에 있는 마족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성안에는 비상이 걸렸으며 10인의 영웅 모두 성벽 위에 모였다.

“어찌해야 하는가?”

타미르안이 물었고 갈천혁이 대답했다.

“마기의 기운을 측정하기 힘들 정도라네. 너무도 강해.”

“자네가 말하는 마기라는 것이 아마도 마력을 말하는 것이겠지. 그래, 얼마나 강하기에 그러는 것인가?”

“아마도 우리 모두가 달려들어야 가능할 것 같다네.”

갈천혁의 말에 나머지 8명 모두가 급격히 표정을 굳혔다.

그러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 갈천혁과 혁마소밖에 없었고 이들은 갈천혁의 말을 크게 신용하고 있었다.

그들이 상의를 하고 있을 때 한 마족이 다른 마족을 보며 말했다.

“이봐, 네르갈. 거봐, 내가 실패할 거라고 말했었잖아?”

“쳇, 안 통하는군. 라비아탄, 혹시 이들 중 우리의 정체를 알 수 있는 놈들이 있는 거 아냐?”

“흠. 글쎄? 두고 보면 알겠지.”

“하여튼 이놈들이 우리의 마물들을 모두 죽여 버렸으니 그 대가는 치르게 해줘야지.”

아마도 이 일대에 있는 마물들은 그들이 부리는 마물이었던 모양이었다.

네르갈과 라비아탄.

이들은 상급 마족으로 마계로부터 상당수의 마물들을 데리고 나왔었다.

자신들의 세력을 중간계에 와서 새로이 구축하고 싶었던 이들이었으나 그 세력을 10인의 영웅들이 모두 쓸어버렸고 그에 분노한 이들이 이렇게 손수 나선 것이었다.

네르갈이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우선 문이 거슬리니 문부터 부셔버려야겠군.”

네르갈이 성문 앞으로 다가서자 위에서 지켜보던 갈천혁의 신형이 그곳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네르갈은 성문 앞에 서자마자 마력을 모아 성문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광!

“어라?”

네르갈의 주먹에도 성문은 무사했다. 갈천혁이 두 손을 모아 네르갈의 주먹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네르갈의 주먹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뒤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고 갈천혁의 등이 성문에 부딪치며 커다란 소음을 냈다.

갈천혁은 곧바로 한쪽으로 몸을 날리며 부르르 떠는 팔을 잡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네르갈은 갈천혁을 보며 의외라는 듯 말했다.

“인간은 맞는 것 같은데. 요즘은 인간들이 다 그렇게 강한 것인가? 발크르스 마왕님과 싸웠었던 인간도 있었다고 하니 말이야.”

“내가 바로 그 발크르스 마왕과 싸웠다는 인간의 할아버지 되는 사람이다.”

갈천혁의 말에 네르갈은 얼굴을 굳히며 조금 긴장했다.

‘발크르스 마왕님과 싸운 인간과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큰일이다.’

네르갈은 라비아탄에게 눈짓을 보내며 들었냐고 물었고 라비아탄 역시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르갈은 냉철히 생각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군. 조금 전 내 공격에 팔을 떨고 있으니.’

네르갈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위에서 9명의 사람들이 내려왔다.

혁마소는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아직도 팔을 떨고 있는 갈천혁을 보며 조금 전 갈천혁이 막은 마족의 주먹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했다.

‘갈가가 저 정도로 피해 입은 것을 감출 수 없는 정도라니.’

혁마소는 마족이 생각보다 더욱 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둘이나 되었으니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혁마소가 상황을 보며 자신들의 공격력을 적절히 분산시켰다.

“나와 갈가는 이놈을 맡을 터이니 도마뱀 네놈은 아이들을 데리고 저놈을 상대해라.”

“알았다, 혁 인간.”

여전히 그들의 호칭은 발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은 잘 맞는 듯했다.

네르갈은 라비아탄에게 다가가는 8명을 보며 생각했다.

‘흠. 탐색전이 필요할 것 같군.’

네르갈은 서둘러 전투형태로 변신했고 역시나 악마와도 같은 형상으로 변했다. 라비아탄 역시 네르갈과 똑같이 전투형태로 변신하며 8명을 맞이했다.

성벽 위에서는 긴장된 마음으로 병사들과 기사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르갈이 갈천혁을 보며 먼저 공격했다. 갈천혁에게 자신이 공격한 데미지가 아직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르갈이 빠르게 달려들었지만 갈천혁은 당황하지 않고 장법으로 공격했다.

“대력금강장!”

네르갈은 갑자기 금빛의 커다란 손이 자신에게 날아들자 두 팔과 두 다리를 모으며 막았고 곧 뒤로 한참을 날아갔다.

츠즈즈즉.

땅에 발이 끌리며 겨우 멈춰선 네르갈은 자신의 팔다리를 보며 심하게 인상을 썼다.

“신성력이 담긴 공격인가? 젠장, 귀찮게 되었군.”

갈천혁이 사용한 방법은 소림의 무공이었으며 그 무공에도 역시 항마의 효능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갈천혁은 소림의 무공이 진작부터 마물들에게 효과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네르갈에게도 소림의 장법을 사용했는데 다행히 효과가 있음을 알고 약간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갈천혁은 곧 검을 뽑아들었고 네르갈에게 달려들었다.

“달마십삼검! 불자활검!”

네르갈은 자신의 급소로 빠르게 날아오는 두 개의 검세의 방향을 몸을 비틀어 피해내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갈천혁은 달마십삼검 중 쾌검식인 쾌불타검, 쾌룡호타, 달마쾌초의 세 초식을 연달아 펼쳤고 폭풍 같은 쾌속의 검세에 네르갈은 계속해서 밀려나고 있었다.

그에 혁마소 또한 보고만 있지 않았다.

네르갈의 뒤로 이동한 혁마소는 네르갈이 갈천혁의 공격을 피할 수 없도록 모든 방위를 차단하며 공격해 가고 있었으니 네르갈로서도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상황은 라비아탄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다섯이 검을 들고 있었고 그중 셋은 마치 팔라딘처럼 느껴지는 라비아탄이었다.

바로 헤인드와 디로안 그리고 라드이라였다.

라비아탄이 가장 두려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라드이라였다.

라드이라의 검이 자신을 스쳐지나갈 때마다 검에 닿지도 않았는데도 자신의 살이 타듯이 녹아들었기 때문이었다.

“크윽! 엄청난 신성력이다.”

라비아탄이 세 명의 공격을 피하고자 하면 아크포민 공작과 이즈리스 남작이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공격을 해오니 라비아탄으로서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겨우 그들의 포위를 벗어났다 싶으면 하늘에서 마법이 공격해왔다.

마법공격에는 그리 큰 타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라비아탄의 시선을 가리기에는 충분했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또다시 검을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포위가 되어 있었다.

전투는 점점 치열하게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인 이상 지칠 수밖에 없었고 마족은 보다 체력이 강인했다.

시간이 지나자 라비아탄은 검을 들고 있는 자들의 움직임이 서서히 둔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곧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세 사람의 공격을 피하면서 일부러 빈틈을 만들어준 것이다.

아크포민 공작은 기회를 포착하고 정말 좋은 순간이라 생각했고 곧 그 빈틈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안 돼!”

검술의 경지가 가장 높았던 라드이라가 재빨리 아크포민 공작을 말리려 했지만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라비아탄은 순간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아크포민 공작의 팔을 잡을 수 있었고 아주 빠르게 그의 팔과 다리를 부러뜨렸다.

투둑!

툭!

“크아아악!”

라비아탄이 아크포민 공작을 잡고 있어 나머지 사람들은 공격할 수가 없었고 라비아탄은 사악하게 웃었다.

“크흐흐, 역시 인간들의 약점은 이런 것이군. 마족이라면 가차 없이 공격했을 것인데 말이야.”

“끄으으윽.”

아크포민 공작이 고통에 겨워 신음 소리를 내었고 라비아탄은 다른 사람들을 보며 아크포민 공작의 부러진 팔을 더욱 강하게 짓눌렀다.

“끄아아악!”

아크포민 공작의 고통스러운 비명은 주위 동료들로 하여금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때 타미르안이 에나와 이미화를 보며 메시지 마법으로 말했다.

-모두 동시에 마족을 향해 홀드마법을 전개해라!

그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고 곧 타미르안이 소리쳤다.

“지금이다!”

“홀드!”

“홀드!”

“강화 홀드!”

세 사람이 마법주문을 외치자 라비아탄은 순간 자신의 몸이 움직이기 힘들다는 것을 느꼈고, 라드이라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라비아탄의 머리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라비아탄은 들고 있던 아크포민 공작을 움직여 라드이라의 검을 막으려 했지만 곧 그것조차 늦었다고 판단하며 아크포민 공작을 아예 라드이라에게 던졌다.

라드이라는 자신의 품으로 안겨온 아크포민 공작을 안전히 안아들 수 있었고 곧 마족을 경계했다.

그러나 그 사이 마족을 시야에서 놓친 라드이라였고 그것은 검을 들고 있던 모든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퍽!

“아악!”

퍼벅!

“꺄악!”

하늘 위에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방금 마법을 펼친 에나와 이미화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런!”

타미르안이 뒤늦게 알아채고는 크게 소리치며 라비아탄에게 브레스를 내뿜었다.

“이노오오옴!”

수하아아아아아!

타미르안의 브레스는 라비아탄에게 적중했고, 타미르안은 한참 동안 브레스를 내뿜었다.

이제는 되었다 싶어 타미르안이 브레스를 뿜는 것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자신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고도 라비아탄이 두 팔로 몸을 가린 채 멀쩡히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강한 상급마족인 라비아탄이라고 해도 아주 멀쩡할 수는 없었다. 몸 구석구석이 화상을 입은 듯 녹아내린 곳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라비아탄은 인상을 굳히고 있는 타미르안을 보며 말했다.

“크으, 제법이군. 드래곤들에게 소외당한 드래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이 역시 너겠지?”

“닥쳐라! 그들은 드래곤의 율법을 깬 배신자들이다!”

타미르안이 다시 한 번 브레스를 내뿜으려 했으나 라비아탄이 재빠르게 성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니!”

“크흐흐, 역시 성 쪽에는 브레스를 내뿜지 못하겠지?”

“이 교활한 마족 놈이!”

타미르안이 다른 마법으로 라비아탄을 공격하려고 했으나 곧 그보다 빠르게 라비아탄을 아래에서 공격해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라드이라였다.

“항마칠검! 마천참광유!”

“아니! 크윽!”

라비아탄은 설마 아래에서 이 높이까지 인간이 떠오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공술을 사용할 줄 아는 라드이라였기에 자신의 몸을 최대한 가볍게 만들며 라비아탄이 있는 곳까지 떠오른 것이었다.

라비아탄은 재빨리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고 라드이라의 검에 한쪽 옆구리를 베일 수밖에 없었다.

땅에 내려선 라비아탄은 상당히 고통스러웠으나 그래도 이제야 이들을 상대할 만하다고 생각하며 얼굴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옆구리의 상처가 욱신거렸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나보다 더 많은 공격력을 잃은 저들은 이제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사실 그랬다.

라비아탄은 옆구리의 상처 외에는 전투를 하는데 별 지장이 없었다.

반면에 그가 상대하는 사람들의 수는 벌써 3명이나 줄어들었기에 라비아탄이 훨씬 유리해진 상황이었다.

전투는 한동안 지속되었고 곧 헤인드부터 시작해서 디로안까지 몸 곳곳에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

이즈리스 남작은 이미 다리까지 후들거리고 있어 더 이상 공격이 무리일 정도였고, 곧 라비아탄의 공격을 받아 땅에 수십 바퀴를 구르며 먼 곳까지 굴러갔고 이미 기절했는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라드이라 역시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신성력은 문제가 없었으나 지신의 체력은 이미 그것을 따라갈 수 없는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그들이 밀리고 있을 때 갈천혁과 혁마소의 상황 또한 그리 좋지는 않았다.

갈천혁은 소림의 무공을 알고 있었으나 혁마소는 마교의 수장이었기에 패도적인 무공밖에 몰랐다.

힘으로 상대하기에는 네르갈이 너무도 강했기에 혁마소가 네르갈의 주목표가 되어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네르갈이 어느 순간부터 혁마소를 갈천혁과의 가운데에 끼고 전투를 했기에 갈천혁은 쉽게 네르갈을 공격할 수 없었고, 혁마소는 네르갈의 공격에 온몸 이곳저곳이 찢겨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노오옴!”

소리를 버럭 지르며 네르갈을 공격했지만 혁마소의 공격은 네르갈에게 모두 보이는지 먹혀들지 않았다.

곧 혁마소는 네르갈을 시선에서 놓쳤고 그 기운이 옆에서 나타났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콰광!

네르갈의 주먹이 혁마소의 옆구리를 때렸고 혁마소가 벽에 처박히며 피를 토했다.

“커헉!”

부들부들 떨며 일어나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전투를 하기에는 힘겹게 보였다.

이번에는 갈천혁이 혁마소를 보고는 크게 분노하며 네르갈을 공격했다.

“달마십삼검! 달마십삼연환무검(達摩十三連環霧劍)!”

달마십삼검 연환식을 전부 뿜어내는 달마십삼검 연환검초의 절예!

수백 개의 검영들이 네르갈에게 날아들었고 그 기세는 태산을 뽑아 던질 정도였다.

“크윽! 이게 무슨!”

네르갈은 엄청난 숫자의 빛줄기를 다 피하지 못하고 있었고 곧 갈천혁의 연환식이 멈췄다.

갈천혁과 네르갈 사이에는 상당한 먼지가 피어올랐고 성벽 위에 있던 사람들은 아래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 공격으로 인해 네르갈이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서서히 흙먼지가 걷히고 네르갈의 모습이 나타났다. 네르갈의 모습에 성벽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갈천혁이 동시에 얼굴을 굳혔다.

“크윽. 네 검이 나를 상처 입힐 수는 있지만 나를 죽이지는 못한다.”

네르갈의 온몸에는 수백 가닥의 검상이 있었으나 그 깊이는 너무도 얕았다. 말 그대로 전혀 치명적인 상처는 주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네르갈은 분노를 일으키며 갈천혁을 공격해갔다.

“죽여 버리겠다!”

네르갈의 분노가 담긴 공격은 갈천혁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강했다.

이제는 공격하는 입장이 아닌 방어만 하는 입장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갈천혁이 계속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을 때 이미 다른 쪽에서는 전투가 마무리 되어 있었다.

라비아탄의 손에 라드이라의 목이 붙들려 있었고, 하늘에 떠 있는 타미르안은 차마 공격하지 못하고 라비아탄을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라드이라로 인해 공격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이미 전투가 종결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크으윽.”

라드이라가 라비아탄의 손에 붙들려 신음을 흘리고 있을 때 라비아탄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주 귀찮은 놈들이었어. 자칫 혼자 왔으면 당할 뻔했는걸? 그래, 어떻게 죽여줄까?”

라비아탄의 이죽거림에 라드이라는 절대 굴하지 않았고 침을 뱉으며 말했다.

“퉤. 죽여라, 마족.”

“크으, 이놈이!”

라비아탄이 심기가 크게 상했는지 손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라드이라의 복부를 찌르려 했다.

그 모습에 쓰러져 있던 헤인드와 디로안이 황급히 말리려 했지만 이미 그들에게는 일어날 힘조차 없었다.

“안 돼… 라드이라.”

“젠장, 막아야 하는데… 일어날 수가…….”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라비아탄의 손이 라드이라의 복부를 찔렀다.

아니, 찌르려했다.

“아니!”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라비아탄은 자신의 손에서 라드이라가 언제 사라졌는지조차 느낄 수 없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라드이탄은 라드이라를 안아 땅에 눕히는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라드이라는 꼼짝없이 자신이 곧 죽는다고 생각하다가 라비아탄의 목소리에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라이안… 돌아왔군요.”

“그래, 마족들을 상대하느라 수고가 많았어. 이제 내가 왔으니 푹 쉬어.”

라이안은 라드이라의 수혈을 짚으며 그가 잠을 잘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라이안을 본 타미르안이 블링크를 이용해 가까이 다가갔고 라비아탄을 경계하며 말했다.

“라이안,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타미르안도 수고했어. 우선 이들을 한곳에 모아주고 치료를 해줘. 마족들은 내가 상대할게.”

“알겠네.”

갈천혁으로부터 라이안이 측정하기 힘들만큼 강해졌다는 말은 들었었다. 그리고 발크르스 마왕과도 거의 대등한 전투를 벌였다는 소문도 들었기에 라이안을 믿고 있는 타미르안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강해졌을까.’

궁금했지만 타미르안은 서둘러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는 치료마법을 펼치기 바빴다.

라비아탄은 라이안이 범상치 않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속도는 빠르군. 내 손에서 그를 빼간 것은 칭찬해줄 만해.”

라이안은 라비아탄의 말을 무시했고 오히려 다른 곳에서 여성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네 상대는 나야.”

“으음? 너는, 샤린!”

역시나 같은 상급 마족이라서 그런지 서로 잘 아는 듯했다.

“라비아탄, 많이 다쳤네? 옆구리는 신성력에 다쳤나 봐? 쉽게 복구되지 않는 것을 보니?”

“설마, 네가 인간의 편에 섰단 말인가?”

“아니? 난 라이안을 따를 뿐이야.”

샤린이 라이안을 보자 라비아탄 역시 그를 쳐다보았다.

“겨우 하찮은 인간 따위를 따른단 말이냐! 네가 왜?”

라비아탄은 샤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곧 샤린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난 우리 마계의 법칙을 따를 뿐이야. 싸워서 지면 죽임을 당해 흡수당하던가 아니면 이긴 자의 수하가 되는 게 우리 마계의 법칙이잖아?”

“그럴 리가… 네가 겨우 인간 하나에게 졌단 말인가?”

라비아탄의 말에 샤린이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라이안은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강하지. 내가 빠져들 만큼.”

샤린은 말과 함께 라비아탄을 공격해갔다.

라비아탄은 강하게 저항했으나 이미 마력도 많이 소진한데다 상처까지 입고 있어서 샤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갈천혁은 네르갈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어 주위를 살필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 자신의 옆구리를 잡아채는 것이 아닌가.

“아니! 어디로 간 것이지?”

네르갈 역시 갈천혁이 마치 그 자리에서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았고 주위를 둘러보며 빠르게 자신의 상황을 인식했다.

* * *

타미르안이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는 곳에서 나타난 갈천혁은 곧 자신의 허리를 안고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아니, 라이안… 돌아왔구나!”

혁마소는 라이안을 보며 크게 기뻐했고 라이안이 갈천혁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주며 말했다.

“매번 걱정만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이제부터는 제가 상대 할게요, 쉬고 계세요.”

“흠. 그래, 알겠다.”

네르갈은 곧 한쪽 구석에 있는 갈천혁과 혁마소를 발견했고 빠르게 그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라이안이었다.

“어느 틈에……!”

네르갈은 라이안을 경계하며 물러섰다.

‘벌써 두 번이나 이 인간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이 인간, 위험해.’

네르갈은 본능적으로 라이안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눈을 돌려 한쪽에서 샤린이 라비아탄을 공격하는 것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어째서 샤린이 우리를 공격하는 거지?”

네르갈은 샤린이 라비아탄을 공격하는 이유가 눈앞에 있는 인간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물었던 것이었고, 라이안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녀가 나를 따르기로 했으니까.”

“말도 안 돼. 상급 마족이 마왕도 아닌 인간을 따르다니!”

“그게 마계의 법칙이라고 하더군. 이긴 자의 수하가 되는 것.”

“설마, 네가……!”

네르갈은 샤린이 자신보다 약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상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상급마족들은 서로 잘 싸우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기더라도 이긴 마족 역시 상처를 입기 때문이었다.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다른 상급마족에게 공격을 당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결국 싸운 두 마족이 다른 싸움에 끼어든 마족에게 힘을 흡수당하게 된다.

네르갈이 마계에 있을 때 샤린을 공격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것을 후회하는 네르갈이었다.

하지만 네르갈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라이안과 싸워 반드시 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상급 중에서도 상급에 속해 있다. 내가 인간 따위에게 질 리가 없어!’

네르갈은 곧 마족 특유의 날카로운 손톱을 내세우더니 라이안을 공격해갔다.

하지만 라이안에게는 네르갈이 샤린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느꼈다. 네르갈의 공격이 너무도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갈천혁과 타미르안은 라이안의 움직임을 전혀 따라갈 수 없었다.

“정말 대단하군. 도대체 자네의 손자는 어디까지 강해질 것이란 말인가?”

타미르안의 질문에 갈천혁이 라이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네. 라이안이 어떻게 저러한 힘을 가지게 되었는지 영문을 모르겠어.”

팔찌가 라이안의 힘을 봉인하고 있었고 그 봉인이 풀리며 라이안이 갈리스인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경위를 갈천혁이 알 길은 없었다.

라이안은 굳이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네르갈이 공격해 오는 것을 재빠르게 옆으로 피한 라이안은 곧 수강을 일으켜 네르갈의 팔을 내리그었다.

“크아아악!”

네르갈은 고통에 울부짖으며 뒤로 계속해서 물러났다.

본래 네르갈이 있던 자리에는 그의 손톱이 세워져 있는 팔이 잘려 떨어져 있었다.

라이안은 고통스러워하는 네르갈보다 그의 잘린 팔을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마족은 마수와 다른가? 가루로 변하지 않는군.”

라이안은 모르고 있었다.

포스안 제국에서 켈베로스가 죽으며 검은 가루와 같이 변한 것은 바로 신성력이 깃든 땅이어서 그랬다는 것을…….

하지만 이곳은 마기가 넘쳐났기에 네르갈의 잘린 팔은 그대로였다.

네르갈은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힘겨워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하던 네르갈은 곧 라비아탄이 있던 곳으로 눈을 돌렸고, 샤린이 쓰러져 있는 라비아탄의 목을 자르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젠장!”

샤린이 라비아탄의 힘을 흡수하고 있음에도 네르갈은 라이안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알려야 한다. 이곳에서 벗어나 삼 마왕 하비마고 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해.’

이곳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마왕이 삼 마왕 하비마고였기에 그곳으로 도망을 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네르갈이었다.

네르갈이 급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샤린이 라이안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하나는 처리했어요, 라이안.”

라이안이 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네르갈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며 몸을 틀어 빠르게 도망갔다.

그러나 네르갈은 오래지 않아 하나의 섬광을 보았고 그것이 그가 느낀 생의 마지막이었다.

어느새 라이안이 네르갈의 앞에 나타나 그의 목을 잘라버렸기 때문이었다.

네르갈의 머리는 아주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아래로 떨어졌고 몸 또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샤린이 즐겁게 뛰어오며 말했다.

“네르갈의 힘은 제가 흡수해도 될까요?”

“마음대로 해. 어차피 샤린의 힘이 강해지면 나를 더 많이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라이안의 말에 샤린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짓더니 곧 네르갈의 힘을 흡수했다.

네르갈의 몸에서 검은 연기와도 같은 것이 올라왔고 그 기운들은 곧 샤린의 코와 입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네르갈의 몸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연기도 올라오지 않았고, 샤린은 두 손을 올리며 넘쳐나는 힘에 크게 만족스러워 했다.

“대단해, 이 힘. 어떤 상급마족하고 싸워도 이길 것만 같아.”

샤린은 두 상급마족의 힘을 흡수해 이미 최상급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샤린이 흡족해 하고 있을 때 라이안은 타미르안과 갈천혁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제 타미르안의 레어는 안전하니 사람들을 모두 그곳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어요.”

하지만 타미르안은 샤린을 보며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저 마족이 바로 내 레어에 쳐들어왔던 마족이라네. 그런데 어찌 가만 놔두고 있는 것인가?”

이전에 수많은 마물들과 함께 샤린이 자신의 레어를 공격했던 것이 생각나는 타미르안이었다.

“괜찮아, 이제는 우리 편이니까. 왜? 설마 타미르안은 샤린이 무서운 거야?”

“아, 아니네! 대 골드드래곤의 수장인 내가 설마 마족 따위를 무서워하겠는가?”

타미르안은 샤린과 같이 행동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언제 다시 마족들이 공격해 올지 알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함께하기로 했다.

라이안은 곧 성벽 위에 있는 병사들과 기사들을 보며 타미르안에게 물었다.

“사람들의 인원수는 얼마나 되지?”

“흠. 한 6만 5천정도 된다네. 거대 마법진을 새겨서 이동한다 해도 며칠은 걸릴 것이라네.”

드래곤도 마나가 무한으로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 많은 인원을 텔레포트시키는 것은 힘들었다.

라이안은 타미르안의 말을 들으며 챠둠의 전함이 아쉽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라이안의 머리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드래곤 로드의 아공간에 갇혀 있는 챠둠의 몸체를 구해낸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후후후, 지금이라면 너무도 쉽게 이길 수 있지.”

“무슨 말인가?”

타미르안의 물음에 라이안은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단지 아주 좋은 운송수단이 떠올랐을 뿐이야. 우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사람들을 최대한 빨리 옮기고 있어줘. 내가 한 번에 그들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올 테니.”

샤린이 라이안과 타미르안의 대화를 들었는지 타미르안을 노려보다가 라이안에게 물었다.

“라이안은 함께 가는 것이 아닌가요?”

“응, 샤린은 우선 타미르안을 도와주고 있어. 난 구해줘야 할 사람이 있거든.”

“저도 도울게요.”

“아니야, 나 혼자서도 가능한 일이야. 샤린은 내가 없을 때 이들을 지켜줘. 부탁이야.”

샤린은 라이안이 부탁이라는 말을 하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알겠어요. 라이안의 말에 따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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