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9화
209. 초전 박살 (1).
로만 후작은 눈앞의 중년인을 보 며 할 말을 잃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남 자는 이렇지 않았었다.
“크투•“… 크투루…… 크투루...... w입에서 타액을 주룩주룩 흘려 가 며 중얼거리는 중년인을 보던 로만 후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크투루가 무엇입니까?”
로만 후작의 옆에 있던 외팔이 기사가 물었다.
그 질문에 로만 후작은 턱의 수 염을 쓰다듬으며 답했다.
“위대한 오래된 자 중 하나지.”
"위대한 오래된 자? 오래된 자가 아니라요?”
"특정 몇몇은 위대한 오래된 자 라고 한다. 줄여서 위대한 자라고 하지. 아무튼 심해의 지배자라 불 리는 강력한 존재인데……로만 후작은 중년인, 토로다 남 작의 뺨을 후려갈겼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제대로 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의 석상은 일반인은 보는 것만으로 미친다고 하더군.”
로만 후작도 오래된 자에 대한 연구를 한 사람.
그렇기에 꽤나 지식이 있었다.
“심해의 지배자에 대한 신앙은 오 래전 사라졌다. 그들의 증표와 신물 은 모두 상아탑에서 회수했다고 했 는데…… 야곱!”
“예.”
“상아탑에 확인해보도록. 혹시 심 해의 지배자와 관련된 물품이 반출 된 적이 있는지.”
“알겠습니다.”
야곱은 바로 수정구를 들어 상아 탑에 연락해보았다.
잠시 후, 상아탑과 연락을 마친 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해의 지배자의 석상을 암왕이 반출했다고 합니다.”
“암왕이……로만 후작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 물었다.
암왕 레이몬이 요한과 안면이 있 다는 것쯤은 로만 후작도 알고 있 었다.
어쩌면 암왕이 심해의 지배자의 석상을 요한에게 준 것일지도 몰랐 다.
‘그러겠지. 사베트의 일을 생각하 면…… 그 자료를 받는 것으로 대 가를 지불했을 거야.’
심해의 지배자의 석상은 로만 후 작도 본 적이 있는 물건이었다.
익스퍼트 이하의 사람이 보면 광 기에 점점 물들게 하는 위험한 물 건.
그런 것을 요한에게 내어 줄 줄 이야.
로만 후작은 탁자를 가볍게 툭 쳤다.
"위험한 것 아닙니까?”
로이스가 걱정스레 물었지만 로 만 후작은 고개를 저었다.
“일반인에게 쓴다면 위험한 물건 이지. 하지만 익스퍼트 수준이면 충분히 저항할 수 있다.”
“그리고 정신력을 강화하는 약이 있습니다. 그것으로도 몇 시간 정도 는 그 기운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야곱의 설명까지 듣고 나서야 로 이스는 안도했다.
그렇다면 이제 앞날을 생각해야 한다.
"플로겐 너머의 길에 숲이 생겼 습니다. 그것은 백왕 플로란스의 짓이라 사료됩니다.”
“백왕이 있다면 산을 넘기는 힘 들겠군요.”
카일로는 천천히 말했다.
원래라면 군을 둘로 나눠 하나는 정면,또 하나는 산을 넘을 생각이 었다.
하지만 드루이드인 그녀가 적군 에 있다면 산을 넘는 것은 자살행 위였다.
“그럴 거야. 나도 한 번 본 적이 있었지. 대기근 때 도브다만 왕국 의 요청을 받아 전장에 참여했었 다.”
그 당시 그녀는 홀로 전장에 나 섰다.
산을 넘어들어오는 수많은 도적, 그리고 다른 나라의 약탈군들은 결 국 산을 넘지 못했다.
수천이 넘는 적군을 산의 양분으 로 만들고,그곳에 숲을 만들어내 버렸었다.
그 위용을 떠올리니 아직도 몸이 떨렸다.
“산에서는 드루이드와 절대 싸워 서는 안 된다.”
자연의 힘 중 식물의 힘을 쓸 수 있는 플로란스가 있다는 것.
그것을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 이다.
로만 후작은 지도를 보았다.
“결국 플로겐을 통해 바그너 영 지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는 건가.”
두 개의 진입로 중 하나를 쓸 수 없게 되었다.
로만 후작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로이스를 보았다.
“성마 기사단 전원을 움직일 수 있겠지?”
“가능합니다. 다들 전의를 불태 우고 있습니다.”
“전략은 하나다.”
윌카스트 백작도 바보가 아닌 이 상 플로겐에서 빠져나올 길에 방벽 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방벽을 방패 삼아 싸울 터.
병사들을 먼저 내보낸다면 요한 이 위대한 자의 석상을 쓸 가능성 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피해가 늘어날 것 이 분명했다.
“성마 기사단이 출격하여 초전에 박살 내버린다.”
“방벽을요?”
"그래. 그들이라면 심해의 지배 자의 석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해 를 보지 않는다.”
성마 기사단의 강력한 랜스차징 이라면 방벽을 공략하는 것도 어렵 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통해 방벽을 부수고,전 부대가 진격해 난전이 이루어지게 하면 된다.
“그리된다면 요한도 함부로 위대 한 자의 석상을 쓰지는 못할 거다. 그건 피아구분이 불가능한 물건이 니까.”
“초전 박살이라…… 나쁘지 않습 니다.”
로이스는 검을 꽉 잡았다.
그에게 고개를 끄덕인 로만 후작 은 야곱에게도 말했다.
“혹시 모르니 자네는 대기하게.”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세부 적인 전략은 차후 짜도록 하고.”
로만 후작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 며 말하자 그의 제장들은 막사 밖 으로 나갔다.
그리고.
홀로 남은 로만 후작은 지도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쩐지 너무 찜찝하 단 말이지……* * *도둑 길드에서 데려온 도둑들의 첩보가 들어왔다.
밤을 틈타 로만 후작의 대군이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그 보고를 받은 지휘부는 긴장했 다.
“선두에 성마 기사단이 있습니 다.”
그 배치만으로도 적의 전략은 대 충이나마 알 수 있다.
성마 기사단을 내세웠다는 것.
강력한 힘으로 방벽을 무너트리 고 초전으로 큰 피해를 입히겠다는 것이다.
“성마 기사단의 랜스 차징은 아 주 강력합니다. 거의 공성추와 같 지요.”
마스터를 위시로 한 성마 기사단 의 랜스 차징은 유명하다.
그들이 가진 마법 장비까지 총동 원한다면 어지간한 성벽까지 크게 흔들릴 정도다.
급조한 방벽 정도로는 쉽게 막아 내지 못할 것이다.
“요한에게 심해의 지배자의 석상 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으니……일반 병사들을 요한이 공격하지 못하게 하려는 작전이다.
성마 기사단으로 방벽을 무너트 리고.
방벽이 무너지면 본대가 움직인 다.
그 후 난전이 펼쳐지게 되면 어 쩔 것인가.
지휘부에는 묵직한 한숨이 연신 터져 나오고 있었다.
"요한. 넌 어떻게 생각하냐?”
“잘 됐네요.”
‘그걸 노리기도 했고.’
일부러 적이 초전박살을 선택하 게 판을 깔아놨다.
판에 들어와 줬다면 잡아줘야 하 지 않겠나.
요한의 심드렁한 대답에 마고 후 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성마 기사단은 네가 잡겠다고 했지?”
“예.”
“어떻게 싸울 생각이냐.”
“정면승부요.”
옆에서 듣던 메이와 하인스의 표 정이 굳었다.
이번에 요한이 바그너 기사단과 타이론 기사단을 이끌기로 했었다.
그런데 정면승부라니.
아무리 자신들이 강하다고 자부 하지만 성마 기사단과 정면승부는 이길 수 없다.
“저. 공자님. 공자님께서 저희를 높이 평가해주시는 것은 감사합니 다. 그래도.”
“내가 그동안 꾸준히 가르쳤는 데. 잘할 수 있겠지?”
“으 ”
하인스는 신음했다.
요한의 말대로 그는 바그너 기사 단을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하지만 그래도 무리다.
난감해하는 하인스를 향해 요한 은 씩 웃었다.
“농담이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 싸우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 을 테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보면 알아.”
그 말을 끝냈을 때.
막사 안으로 레드바가 들어왔다.
"방금 들어 온 첩보입니다. 한 시간 거리에 로만 후작의 군이 접근했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우리도 준비해 야겠군.”
싸움에 대한 각오는 이미 했다.
하지만 그 강력한 로만 후작과 싸울 생각을 하니 다들 조금은 질 려 있었다.
그들을 향해 요한은 한차례 웃었 다.
"에이〜 뭘 그리 겁들을 내실까. 자자. 웃으면서 싸웁시다. 웃으면 서.”
이런 상황에서 웃을 정도의 강심 장은 요한 정도가 다다.
그를 빤히 보던 마고 후작은 요 한의 어깨를 잡았다.
“만약 이번 전쟁에서 네가 이긴 다면. 내 딸과의 교제를 허락하지.”
“사양하겠습니다.”
마고 후작의 제안은 타이론 후작 가의 후계자로 만들겠다는 말과 같 았다.
하지만 요한은 대놓고 내키지 않 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있는 영지도 마다해야 하는데 뭔 후계자야.’
“넌 좋은 기회를 줘도 그러냐?”
“사람이 백 명 있으면 취향은 백 개가 있는 법이지요. 아. 물론 영애 께선 아주 훌륭하신 레이디라고 생 각은 합니다.”
말을 마친 요한은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 마고 후작은 윌카스 트 백작을 잡았다.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요한 저 녀석이 워낙 자기주장 이 강한지라 뭐라 말씀드릴 수 없 군요.”
볼을 긁적거리며 윌카스트 백작 은 대답을 회피했다.
그의 반응에 마고 후작은 한숨을 쉬었다.
지휘부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로 긴장감을 날리는 사이.
요한은 막사로 돌아가 전투를 준 비했다.
“공자님. 진짜 괜찮으신 겁니까?”
전투가 벌어지면 부상자는 나올 수밖에 없다.
그 치료 때문에 전쟁에 참여한 야스진은 그의 갑옷 끈을 당겨주며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야. 이번 전쟁끝나면 추천장 써줄게.”
“어? 정말이십니까!?”
“그래. 어차피 지면 못 써줄 테 니까.”
“끄응……“흐. 내가 축의금 많이 넣어주 마.”
야스진의 어깨를 툭 쳐주고 요한 은 밖으로 나갔다.
이미 바깥에는 바그너 기사단과 타이론 기사단의 정예들이 대기하 고 있었다.
합이 모두 사백.
수에서도,질에서도 밀린다.
걱정하는 기사들을 향해 요한은 웃으며 말했다.
“오늘 있을 전투는 너희가 지금 까지 한 전투 중에서 가장 쉬운 전 투가 될 거다.”
“예? 그게 무슨……“군소리 말고 붙기나 해. 얘들아! 가자!!”
요한의 외침이 터져 나오자 광약 과 플로란스도 붙었다.
그들을 이끌며 요한은 방벽을 넘 었다.
적의 랜스 차징을 막기 위해서 요격대로 나선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길 끝에서 흙먼지와 함께 군이 보이고 있었다.
지평선을 가득 메울 것 같은 군 대가 오고 있다.
그들을 지켜보던 요한은 천천히 미스릴 검을 뽑았다.
“랜스으으으!!!!”
요한의 부대를 발견한 것일까?
선두에 있던 중갑의 기사 중 하 나가 외쳤다.
그리고.
로드만 왕국 최강의 창이라 불리 는 성마 기사단의 돌진이 시작되었 다.
“차지이이 잉!!”
달려오는 가속도까지 붙여서 한 번에 부숴버릴 생각처럼 보였다.
달려오던 도중 성마 기사단의 마 법이 발동되었다.
화살을 막는 마법.
그리고 가속도를 올려주는 마법.
무게를 늘리는 마법.
온갖 종류의 마법이 성마 기사단 에게 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던 요한은 한걸음 나섰다.
‘좀 더 와라…… 좀 더.’
거대한 흙먼지와 함께 성마 기사 단이 점점 커진다.
그들을 노려보던 요한은 양팔을 벌리며 입을 열었다.
“나의 영역에 온 것을 환영한다.”
여섯 개의 코어가 활성화되었다.
요한은 심장에서부터 차오르는 막대한 힘을 느꼈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 손을 내 밀며 꽉 쥐었다.
그 순간.
-쿠당탕탕!!
달려오던 수백의 성마 기사단의 단원들이 볼씽사납게 바닥을 나뒹 굴고 말았다.
“이,이게 어떻게……?”
로드만 왕국 최강의 기사단인 성 마 기사단이다.
그들이 견습 기사도 아니고 말의 조종에 실패해 넘어진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고 전부가?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인스는 기겁하며 요한에게 다 가갔다.
“공자님…… 헉!! 괜찮으십니까!?”
요한의 코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요한은 그저 냉정히 주먹 을 쥐고만 있을 뿐이었다.
“별거 아니야. 그냥 죽을 정도로 아프고 수명이 깎였을 뿐이니까.”
그게 뭐가 별거 아닌가.
황당해하는 하인스를 향해 요한 은 강하게 외쳤다.
“내 걱정 말고 쓸어버릿!!”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