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거침없는 보복 (1) (16/201)

15화. 거침없는 보복 (1)

‘디씨소프트 역대 최고 매출 기록’

‘레인 오버 2 거침없는 질주. PC방 점유율 2위 달성.’

‘레인 오버 리마스터. MZ세대 저격 성공.’

게임 관련 기사는 온통 ‘레인 오버’에 관한 이야기다.

외국 게임들이 판을 점령하고 있고 국내 온라인 게임은 명함도 못 내미는 이 시기에 레인 오버는 국산 게임의 자존심을 지켰다.

각각 PC방 점유율 2위와 3위를 기록하며 레인 오버 시리즈는 거침없이 질주했고 디씨소프트의 주가는 계속해서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디씨소프트가 해외 기업과 견줄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디씨소프트가 세계적으로 K-게임 열풍을 불러일으킬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추세였다.

강기석은 인터넷으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띠디디디~!!!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양기택이었다.

“여어. 기택이.”

강기석은 기분 좋게 전화를 받았다.

“강 사장님. 잘 지내십니까?”

“그럼 덕분에 잘 지내지. 양 대표가 도와준 덕에 우리 회사가 잘 돌아가고 있어. 고맙네. 아주 나이스 메인 화면이 레인 오버로 도배되어 있더군. 하하하하하. 좀 과한 것 같기도 하고.”

“그 정도는 해야죠. 뭐 마켓팅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레인 오버가 탄탄한 게임이기에 가능한 겁니다.”

“하하하하. 자네는 정말 말을 예쁘게 한단 말이야. 그게 너무 좋아.”

“뭘요. 전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요.”

그들은 서로 칭찬을 주고받느라 난리였다.

“그나저나 거기 상황은 어떻게 됐습니까?”

“여자한테 돈 좀 주면서 말 돌리라고 설득했네. 곧 나갈 것 같아.”

“다행입니다. 역시 돈이 최고네요.”

“하하하하. 말이라고.”

“나오시면 레인 오버 성공 기념 축하파티라도 해야겠습니다.”

“어이구. 당연하지. 내 거하게 할 계획이네.”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나오시면 그때 뵙도록 하죠.”

“그래. 알겠네.”

그들은 그렇게 훈훈한 통화를 마쳤다.

[자기들끼리 서로 난리 났습니다.]

디오는 강기석과 양기택의 통화 내용을 들려주었다.

“아주 좋아 죽는군.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전혀 모른 채 말이야.”

[이제 시작하실 겁니까?]

“시작해야지. 주가도 충분히 올라서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어.”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오케이!”

지금부터 과자나 뜯으면서 디씨소프트가 어떻게 몰락하는지 관람할 차례다.

***

현재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주요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레인 오버 리마스터’와 ‘레인 오버 2’의 가챠 확률 조작에 대한 글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warrior란 아이디가 올린 이 글은 해당 게임들에 대한 소스코드랑 주석까지 상세하게 공개했다.

이글은 내부고발이 확실할 정도로 너무나 자세하고 세세하게 게임 정보들을 드러냈다.

해당 글이 올라오면서 디씨소프트는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ㅅㅂ 장난해? 전설템 나올 확률이 0.01%가 아니라 사실 0.005%?

-이 새끼들이 진짜 보자 보자하니까.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안 뜨더라.

-진짜 우리를 얼마나 호구로 봤으면 이러냐?

-개자식들. 진짜 환불 안 해주면 가만 안 둘 거야.

-얘네 양아치인 거 사실 저번 성추행 스캔들 떴을 때부터 알아봤어.

-맞어. 얘네 범죄자 집단이잖아. 역시는 역시인가.

-이제 완전히 정떨어짐. 다시는 레인 오버 안 할거임.

-나도. 불매 운동 시작해야 할 듯. 유저의 무서움을 보여줘야 정신차라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그래! 언제까지 호구 취급당할 거야?

각종 게임 커뮤니티는 온통 디씨소프트에 대한 욕이었다.

“시이발!!!! 내 돈 물어내!!!”

“확률 조작 장난하냐?!!!!!”

고객센터는 항의 전화로 폭주했다.

사옥 앞은 항의하는 유저들로 인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성난 유저들은 회사를 무너뜨릴 기세로 몰려 들었다.

“저희가 다 설명해 드릴테니 일단 진정하시고······”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당장 우리 돈 물어내!!!!!”

유저들의 분노는 식을 줄을 몰랐다.

디씨소프트 직원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직원들은 계란 세례를 맞기도 했다.

항의가 너무 거세서 경찰까지 출동해 유저들을 막아서야 했다.

경찰들이 오지 않았으면 정말 큰 사단이 났을 거다.

승승장구했던 디씨소프트의 분위기는 하루 아침에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

“양 대표! 이게 어찌된 일이야?!!!!”

“저, 저도 모르겠습니다.”

양기택은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자네가 대표인데 모르겠다니. 당장 글 내리고 해명하는 기사들 올려!!”

“강 사장님. 그게 저희도 글을 내려보려고 했지만 내려지지가 않습니다.”

“뭐야?!!!”

강기석은 양기택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양 대표. 장난하지 말게. 지금 난리난 거 자네도 알잖아. 어서 글 내리게!!!”

“정말로 안됩니다. 지금도 계속하고 있지만 내려갈 생각을 안 합니다.”

“그 무슨!!!!”

강기석은 참지 못하고 그만 성을 냈다.

“그 글을 올린 놈은 대체 어떤 새끼인데?!!!”

“저희가 추적을 해봤지만 그것도 안 됩니다. 누가 올렸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뭐?!!”

“그냥 아예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양기택은 절망하며 말했다.

“저희 쪽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이트도 다 똑같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해명하는 기사는 이미 전부터 올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

“이상하게 해명 기사는 올리자마자 감쪽같이 사라지고 비난하는 글들만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 시바알!!!!!!!!!”

강기석은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니 일이 평탄하게 잘 진행되다가 왜 이러는 건데?!!!!”

그는 화풀이할 데를 찾지 못하고 계속 악만 지를 뿐이었다.

“제 생각인데 말입니다. 분명 내부 소행이 분명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렇게 자세하게 공개 못 합니다. 아무래도 직원들 내에서 범인을 찾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진짜 어떤 놈이지 밝혀지면 내 가만두지 않겠어!!!!!!”

강기석은 양기택과 전화를 마치고 곧장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난데. 당장 전 사원 조사해서. 누가 그 글 올렸는지 찾아내! 당장!!!!”

***

[강기석과 양기택 열심히 삽질하는 중입니다.]

“너 그런 단어도 사용할 줄 아냐?”

[당연하죠. 제가 모르는 단어가 있겠습니까?]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됐다.”

정말 디오랑 대화하다 보면 사람이랑 말하는 거 같다.

“그래서 어떻게 삽질하는데?”

[warrior가 누군지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자기들끼리는 내부 소행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방금 디씨소프트의 전 사원을 조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크크크. 내부 소행은 맞지. 근데 내가 회사에 없는데 어떻게 찾으려고.”

나는 재밌어서 웃음이 나왔다.

[강기석 사장 많이 화난 것 같습니다. 양기택 대표에게 소리 지르고 아주 난리 났습니다.]

“하하하하.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그러면 어쩌려고. 이제 슬슬 2차 폭로를 시작해볼까? 디오!”

[네. 시작하겠습니다.]

디오는 레인 오버 시리즈의 확률 조작 폭로에 이어 디씨소프트에서 행한 다른 확률 조작도 올렸다.

강기석.

정신없이 휘몰아쳐 줄 테니까 어디 한번 버틸 수 있으면 버텨보라고.

***

-야! warrior가 또 글 올렸다.

-이번에는 뭔데?

-미친······이번만 이런 게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이래왔네.

-아니. 조작을 안 한 게임이 없잖아.

-대체 어디서부터 썩은 거야?

-옛날부터 의혹이 있긴 있었어. 다 묻히긴 했지만.

-디씨소프트가 손을 썼겠지. 개자식들.

-진짜 완전 정 떨어졌어. 난 디씨소프트는 이제 쳐다도 안 봄.

-나도.

-야! 불매운동하자. 렝저씨의 무서움을 보여줘야겠어.

-당근. 진짜 이제부터 내가 디씨소프트 게임 하면 사람 새끼가 아니다.

-그나저나 warrior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칼 한번 제대로 간 듯.

-그러게. 디씨소프트에 대한 원한이 깊나 봐.

-덕분에 우리가 호구였다는 사실을 일깨워줬지.

-warrior 아니였으면 뭣도 모르고 계속 당할뻔했어.

게임 커뮤니티에서 소위 렝저씨(레인 오버를 하는 아저씨)들이 주축이 되어 불매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렝저씨들은 단지 자신들의 청춘과 함께한 게임을 다시 한번 즐겁게 즐기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디씨소프트는 그 아름다웠던 추억을 완전히 망가뜨려 버렸다.

성추문 스캔들은 관련자들을 내쫓고 사죄함으로써 넘어갈 수 있었다.

게임에는 잘못이 없었으니까.

과금유도까지는 다 이해했다.

좀 과하기는 했지만 같이 돈을 버는 입장에서 게임 회사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 하면서 용납할 수 있었다.

또 학생일 때와는 달리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추억을 떠올리며 즐기기 위해서 그 정도 투자는 할 만했다.

하지만 확률 조작은 게임에 잘못이 있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에 대한 분노는 엄청났다.

로맨티스트 렝저씨들은 순정을 빼앗긴 순간 깡패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더 이상 호구가 아니었다.

디씨소프트의 다른 게임을 했던 유저들도 렝저씨들의 항쟁에 합류했다.

그들 또한 자신이 플레이했던 게임이 확률 조작을 했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디씨소프트는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불매 운동으로 인해 정신을 못 차렸다.

PC방 점유율은 순식간에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그 치솟던 주식 또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강기석은 사장 자리를 사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사건을 이전부터 주도한 사람으로서 대주주들에게 심한 추궁을 당했다.

대주주들은 강기석을 맹렬하게 비판했고 이 사태를 어떻게든 해결하지 못하면 고소까지 할 기세였다.

강기석은 대주주들에게 싹싹 빌면서 조금만 참아주라고 양해를 구했다.

강기석은 절망했다.

그는 이 사태를 해결할 방도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 warrior란 놈 때문에 모든 게 망해버렸다.

회사의 모든 직원들을 강제로 조사했지만 warrior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그놈은 회사에서 엄격하게 감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글을 올렸다.

대체 어떤 놈인지 추적도 불가능하다.

강기석은 인터넷을 다시 확인했다.

여전히 모든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warrior의 글이 뜬다.

그는 양기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양 대표!”

“네. 강 사장님.”

“대체 왜 글을 아직도 안 내리고 있는 거야?!!!!!”

강기석은 이제껏 쌓였던 모든 화를 양기택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게 저희도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도저히 내려지지가 않습니다.”

“최선을 다 한다고?!! 근데 왜 못하는 건데? 시발!!!! 너가 빨리 조치해서 그 글을 내렸으면 이런 일도 안 생겼잖아!!! 이 버러지 같은 놈아!!!!!”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양 대표에게 좋은 소리만 하던 그였다.

손해를 보니 이제 그런 것은 없었다.

“야! 강기석! 이 병신 새끼야.”

그동안 예의를 지켜왔던 양기택도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어디서 뺨 맞고 와서 엄한 데서 지금 화풀이야? 이게 다 네가 ㅈ같이 운영해서 그런 거잖아.”

“뭐가 어째?!!!”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아주 내가 네 따까리로 보이나 보지? 이 같잖은 새끼가 그동안 도와준 것은 생각 안 하고 거지 같이 나오네. 이제부터 너랑 끝이야. 알아서 잘 해봐.”

“야! 양기택!!!!!”

양기택은 강기석의 말을 무시하고 시원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강기석은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지만 의미없는 외침일 뿐이었다.

“시이발!!!!!”

강기석은 짐승처럼 포효하며 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는 분노하며 앞에 놓은 책상을 주먹으로 냅다 내려쳤다.

강기석은 주먹이 깨질 때까지 계속 책상을 쳐댔다.

“하아······하아······”

그는 그래도 분노가 가라앉질 않는지 씩씩거렸다.

띠리리리~!

그때 전화가 울렸다.

강기석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뭐?!!!!”

그는 발신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핸드폰 화면에는 이렇게 떠 있었다.

[warrior]

111화. 업그레이드 (1)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부모님을 죽인 마약 카르텔에 대한 복수를 마쳤고 아버지의 공장도 되찾았다.

그건 분명 너무나 개운한 일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으로 인해 약간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능력을 지닌 놈이 또 있다.

그게 과연 한 명만 있을까도 의문이다.

다른 놈들도 있을 거란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문제는 만약 그런 존재들이 실제로 있다면 왜 정체를 드러내고 있지 않냐는 것이다.

“라일 님.”

한창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옆자리에 있는 수진이가 나를 툭툭 치며 불렀다.

“왜?”

“메뉴 뭘로 하실 거냐고 계속 묻는데요?”

어느새 승무원이 내 쪽으로 와 있었다.

잠시 생각에 집중하느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벌써 밥시간이 다 되었다.

“아. 혹시 한식 있나요?”

한동안 제대로 된 한식을 못 먹어서 무척 땡겼다.

“네. 비빔밥과 불고기가 있습니다.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비빔밥이요.”

“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멕시코의 영웅님.”

멕시코 승무원은 내게 싱긋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풋!”

옆에 있는 수진이는 고개를 돌려 몰래 웃다가 그만 웃음이 새어 나와 버렸다.

아…….

그래?

“뭐가 웃기지?”

솔직히 기분이 매우 나빠 정색하며 물었다.

“아, 아닙니다.”

수진이도 분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곧바로 웃음기가 사라졌다.

“하아……. 됐다. 웃기니까 웃겠지.”

“아니, 그냥 뭔가 좀 오그라들어서요. 근데 멕시코의 영웅이 맞는 표현이긴 하죠. 라일 님은 지금 그 누구도 하지 못한 것을 해내셨으니까요. 이제 라틴 아메리카는 라일 님 덕에 평온하게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수진이는 굳이 수습하려고 난리였다.

“……알았다고.”

괜히 별것도 아닌 걸로 트집 잡아봤자 속만 좁아지는 것 같다.

근데 멕시코의 영웅이라니…….

허허.

진짜 오그라들어서 못 들어주겠네.

“라일 님.”

다시 수진이가 나를 불렀다.

“왜?”

“근데 한국 돌아가면 저에게 능력을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응. 그렇지.”

“저도 솔직히 강해지고 싶지만 제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네요.”

“할 수 있어. 걱정 마.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게.”

“하하……. 엄청 확고하시네요.”

당연하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나랑 디오가 힘을 합쳐도 버거웠던 상대다.

더 이상 혼자 싸울 수는 없다.

물론 나도 더 강해져야 하지만, 동료들이 있다면 더 수월해질 것이다.

“나도 도와줄 테지만 너도 멘탈 잡아야 해. 만만치는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이래 봬도 국정원 최고 요원이었습니다. 그동안 악바리로 버텨왔는데 이번에도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자신감을 찾은 수진이의 얼굴을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비빔밥 나왔습니다.”

승무원은 밝게 웃으면서 나에게 음식을 주었다.

“그럼 멕시코의 영웅님. 맛있게 드십시오.”

“풋!”

수진이는 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안 봐준다.

꿀밤을 한 대 세게 쥐어박았다.

***

슈웅-!

비행기가 한국에 도착했다.

“…….”

창밖을 보니 의외의 장면이 펼쳐졌다.

무슨 국가 귀빈 맞이하듯이 사람들이 도열해 서 있었다.

백기완 대통령이 마중 나온 것이다.

“이건 오버지 않나…?”

기가 막혀서 뭐라 더 말이 안 나왔다.

“하하하하…….”

수진이도 그 어이 털리는 광경에 멋쩍게 웃기만 했다.

솔직히 민망해서 내리기 싫었으나, 이렇게까지 준비해줬는데 거기에 호응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야……. 가자.”

“……네.”

서로 내리기 싫어서 머뭇거렸지만 힘들게 발을 뗐다.

빠빠빰-!!!!!

“…….”

우리가 비행기 밖으로 나오자마자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진짜 맘 같아서는 비물질화된 육체로 이곳을 빠져나오고 싶었다.

“라일 씨. 오셨습니까?”

하지만 저렇게 기쁘게 나를 맞이하는 백기완 대통령의 얼굴을 보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에휴.”

어쩔 수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즐기기로 했다.

민망해서 몸 둘 바를 몰랐지만, 팡파르와 환호성 소리에 화답하며 비행기 계단에서 내려왔다.

“오랜만입니다. 대통령님.”

“하하하하하하.”

백기완 대통령은 그냥 웃으면서 나에게 갑자기 다가와 포옹을 했다.

“흐읍!”

솔직히 많이 당황스러워 머뭇거렸지만 나도 대통령에게 포옹을 했다.

찰칵-! 찰칵-!

그러자마자 엄청난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기자분들.

아무래도 몇 분 뒤에 올릴 기사에 쓸 사진인 것 같은데 어림없습니다.

‘디오. 지금 이거 관련해서 기사 올라오는 거 다 막아.’

[예. 알겠습니다.]

“라일 씨. 고생 많으셨습니다. 드디어 부모님의 복수를 다 하셨군요.”

백기완 대통령은 혼자 감동해서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생각보다 나를 굉장히 애틋하게 생각하나 보다.

뭐, 솔직히 그게 나쁘지는 않다.

“감사합니다. 뜻밖에 격렬한 환영을 받으니까 기분이 좋군요. 고향에 온 맛이 나네요.”

“오. 그렇습니까?”

백기완 대통령은 자신의 수행원에게 신호를 보냈다.

갑자기 팡파르 소리가 더 커지고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예의상 한 말이었는데 사태를 더 키워버렸다.

그냥…….

잠자코 있어야겠다.

“청와대에 만찬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동해도 되겠습니까?”

“하하하. 좋죠.”

빨리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청와대 음식을 먹을 생각에 기대가 되기도 했다.

나는 수진이만 데리고 청와대에 갈 생각이었다.

드미트리 패밀리나 류헤이카이가 내 부하들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깡패들을 청와대로 데리고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야.”

나는 드미트리와 류헤이에게 무전을 보냈다.

“네!”

“너희들은 청와대에 못 와. 이해하지? 서운해하지 마라.”

“안 서운합니다. 다 이해합니다.”

“예. 당연한 거죠. 기대도 안 했습니다.”

고맙게도 녀석들은 이해해주었다.

“오케이. 계좌로 돈 보낼 테니까 따로 부하들 데리고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쉬고 있어. 한동안 일은 없을 거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스.”

그렇게 부하들은 따로 떼어 놓고 우리는 곧바로 대통령 전용차를 타고 청와대로 이동했다.

간만에 방문하는 청와대라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대통령은 아니지만, 여기에 꽤 자주 온 것 같다.

점심은 여러 가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보쌈, 탕수육, 참치회, 스테이크 등

어떻게 하나 같이 내가 먹고 싶은 것만 준비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마음껏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우와-!”

수진이도 간만에 보는 만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솔직히 우리가 멕시코에 간 이후로 그동안 이렇게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는 감격 그 자체였다.

“편하게 드시라고 다른 사람은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편하게 마음껏 드시면 될 거 같습니다.”

대통령님.

센스 짱!

나는 백기완 대통령에게 가볍게 엄지척을 날렸다.

나와 수진이는 한동안 말없이 음식만 먹었다.

너무 교양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우리가 이런 것에 목말라 있었으니 이해 바란다.

“후아- 살겠다.”

배가 차자 그제야 주변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백기완 대통령은 맛있게 먹어준 나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후후. 맛있게 드시니 제가 다 기분이 좋네요.”

대통령이 나를 많이 좋아하긴 한가 보다.

세상에 어떤 대통령이 일개 국민에게 이렇게까지 해주냐?

물론 내가 일개 국민은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엄청난 대접이긴 하다.

“백기완 대통령님. 너무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우리나라를 위해 갔다 온 것도 아닌데 이런 대접을 받으니 너무 과분하네요.”

“꼭 우리나라 일만 해야 환영받습니까? 라일 씨께서는 마약 카르텔을 전멸시킴으로써 전 세계에 득이 되는 일을 하셨습니다. 충분히 이런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죠.”

멕시코에서도 환영을 받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렇게까지 해주니 뭔가 더 뭉클해졌다.

역시 고향이 최고인가?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제가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나눌 이야기가 있는데요…….”

“쉿!”

곧바로 백기완 대통령은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입에 대며 나를 조용히 시켰다.

“점심 먹는 이 순간만큼이라도 일단은 다 내려놓고 즐기세요. 그렇게 급하실 필요 없습니다.”

“…….”

나를 배려해주는 대통령의 마음이 느껴져서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알겠습니다.”

대통령 말대로 일단은 즐기자.

만찬을 즐기고 나서 우리는 상춘재로 왔다.

역시나 이곳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포근함이 있는 곳이다.

은은하게 나는 풀잎 향에 내 몸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루왁 커피 마셔보셨습니까? 특별히 커피를 좋아하는 라일 씨를 위해 준비했습니다.”

“좋죠~.”

하하…….

정말 많이도 준비했다.

고양이 똥에서 나왔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그것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건 정말 최고의 커피다.

풍미가 엄청나다.

나는 혼자 감탄하며 커피를 음미했다.

“그럼 이제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볼까요?”

백기완 대통령은 여유롭게 나에게 물어봤다.

이제 대통령 짬바가 좀 있다고 그는 굉장히 노련해졌다.

성장한 그를 보자 나는 입가에 미소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많이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했다.

“얼마 전에 금융회사 연합으로부터 연락이 왔었죠?”

“그랬었죠. 라일 씨를 당장 불러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지 원. 아무튼 그래서요?”

“지금 인터넷에 마약 카르텔과 CIA 그리고 금융회사 연합이 연관되어 있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난 상황입니다.”

“안 그래도 지금 전 세계가 그 일로 시끄럽습니다. 역시 라일 씨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하……. 제가 마치 문제아인 것처럼 들리네요.”

“솔직히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 거 같습니다만.”

백기완 대통령은 농담조로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마냥 농담만은 아니었고 나도 그 사실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가요?”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더 했다.

“상관없습니다. 라일 씨께서 옳은 일을 하고 계시는 건데 뭐가 문제겠습니까? 오히려 문제라면 그 일과 관련된 놈들이 문제이죠.”

대통령은 이번에는 나를 두둔해준다.

왠지 이 사람 능구렁이가 다 된 거 같다.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맞는 소리를 했을 뿐입니다.”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힘이 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한 걸리는 게 많기도 하다.

“대통령님. 다시 돌아와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면, 상황이 이런 이상 미국 쪽, 정확히 말하자면 금융회사 연합 쪽에서 분명 보복이 들어올 겁니다.”

“그게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라일 씨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텐데요.”

백기완 대통령이 이 말을 정말 진심으로 하는 거 같아서 마음이 더 걸렸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도 이렇게 자신만만했을 거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변수가 있었다.

“이번 일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날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백기완 대통령은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미국과 전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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