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드러나는 진실들 (5)
“내 아들 건들기만 해 봐!!!!”
이문호는 격노하며 그들에게 고함을 쳤다.
“어이구야.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오? 무섭네그려.”
마약 카르텔은 자기들끼리 깔깔대며 그를 비웃었다.
“그런데 그렇게 윽박지르기만 한다고 일이 끝나지는 않소.”
그들 중 한 명이 동료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지시를 받은 동료는 권총을 꺼내 이문호를 겨눴다.
이문호는 온몸에 피가 솟구치면서 오싹함을 느꼈다.
“좋게 말할 때 알아들었으면 좋겠소. 나체로 죽은 아내가 거리 한가운데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말이오.”
이문호는 마약 카르텔의 말에 이가 빠득빠득 갈렸다.
하지만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괜한 저항은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킬 것 같았다.
“······당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결국 이문호는 마약 카르텔이 원하는 대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에게는 가족을 잃는 것이 제일 최악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대화가 통하구려.”
마약 카르텔은 품에서 돈뭉치를 꺼내 책상 위로 던졌다.
“선입금이요. 그거 받고 마음 푸시오.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나중에 차차 알려주겠소.”
“······”
딱히 거기에 응답하지 않는 것이 이문호에게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는 거였다.
카르텔도 그것을 굳이 긁지는 않았다.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겠소.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잘 있길 바라오. 아들과 좋은 시간 보내시고.”
그렇게 말하며 그들은 자리를 떴다.
쾅!
이문호는 그들이 사라지자 오른손으로 책상을 세게 내리찍었다.
책상은 구멍이 생기며 파였고 그의 손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다.
“으아아아아아!!!!”
그는 절규하며 울부짖었다.
***
“아빠!”
차에서 내린 이라일은 자신을 마중 나온 이문호를 보자마자 달려가서 포옹을 했다.
“잘 지내셨어요?”
“그럼. 잘 지냈지.”
“흐흐. 아빠 더운 데서 고생이 많으셔요.”
“뭘 이 정도 가지고. 아빠는 천하무적이라 이 정도로는 끄떡없다.”
이문호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배고프지? 어서 밥 먹으러 가자. 간만에 우리 아들이랑 맛있는 거 좀 먹어야겠다.”
“흐흐. 고마워요.”
이라일은 간만에 가족을 만나 신이 났다.
학기 중에는 기숙사에서 지내서 그렇게 쓸쓸하지는 않았지만 방학 중에 맞이하게 되는 빈집은 뭔가 그를 허전하게 만들었다.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혼자 남겨졌다라는 사실은 어쨌거나 그를 슬프게 만들었다.
아직은 고등학생인 이라일에게 혼자 남겨졌다는 것은 약간 버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하루빨리 이곳에 와서 가족을 만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지금 그 꿈같은 순간이 이렇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라일은 가족과 대화하면서 그 외로움을 순식간에 잊었다.
그만큼 그는 행복했다.
이문호 또한 행복했다.
아들과 같이 보내는 이 시간은 마약 카르텔과의 일도 잊게 해줄 만큼 달콤했다.
하지만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 비참한 현실이 다시 일깨워지면서 절망감이 찾아왔다.
대처를 잘못하면 이 모든 행복한 순간이 와장창 박살 날 것이다.
그는 매우 두려워서 안절부절못했다.
“당신 손 왜 그래요?”
“그냥 어디에 좀 부딪쳤어. 아무것도 아니야.”
“······”
조미란은 남편에게 분명 무슨 일이 있다고 확신했다.
더 이상 모르는 척 넘어갈 수가 없었다.
“빨리 말해줘요. 제가 당신을 모르겠어요? 속일 사람을 속여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하아······”
이문호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라일이가 한국으로 떠나면 말해줄게.”
“당신······”
“일단은 라일이와 행복한 시간 보내자고. 라일이 녀석 혼자 외로웠는지 너무 좋아하더라.”
“······알겠어요.”
조미란은 더 캐봤자 이문호를 불편하게만 할 것 같아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
“벌써 떠나야 한다니······”
이라일은 아쉬움에 풀이 죽었다.
“하하. 짜식. 너도 곧 어른이야. 옛날 같았으면 네 나이에 벌써 장가가고 부모로부터 독립했어. 이제는 씩씩하게 혼자 잘 살아야지.”
“뉘예. 뉘예.”
“이게 아빠한테 버릇없이.”
이문호는 헤드락으로 이라일을 응징했다.
“아악! 아파요.”
“우리 없이도 잘 살 수 있어? 없어?”
“잘 살게요!!! 그만 나 줘요!!!”
이라일이 항복하자 이문호는 그만 그를 풀어줬다.
“라일아.”
이문호는 갑자기 아들을 근엄하게 불렀다.
“혼자 둬서 미안하다.”
“······”
이라일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꾸역꾸역 울음을 삼켰다.
여기서 터지면 그는 못 버틸 것 같았다.
이라일은 이문호에게 밝게 미소를 지었다.
“아니에요. 저 또 한국 가서 혼자 씩씩하게 잘 지낼게요. 그러니까 아빠도 여기서 몸 건강히 조심히 잘 지내세요.”
“그래. 고맙다.”
“저 이만 갈게요.”
이라일은 이문호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잘 가!”
그렇게 이라일은 행복하게 보냈던 휴가를 마치고 이곳을 떠났다.
아들을 배웅하고 온 조미란은 저녁 때가 돼서 도착했다.
“왔어? 라일이 잘 갔어?”
“네. 잘 갔어요. 도착하면 연락 준대요.”
“그렇군.”
이문호는 씁쓸해하며 말했다.
“이제 말해주시죠. 당신 요즘 왜 그러는 거예요?”
조미란의 물음에 이문호는 별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최근에 마약 카르텔 쪽에서 나에게 동업을 제안했어. 우리 공장에서 만드는 항공부품에 마약을 넣어서 유통하고 싶대. 물론 나는 거절했지. 그런데 그 자식들이 당신과 라일이를 걸고 나를 협박하기 시작했어.”
“세상에······그래서요?”
“그래서······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
“다, 당신!!”
조미란은 깜짝 놀라며 남편을 쳐다봤다.
“라일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총을 내미는데 진짜 머리가 새하얘지더라. 거기서 더 저항할 수가 없었어. 당신을 죽여버리겠다고 하고······”
“······”
남편의 말을 들은 조미란은 왜 지금껏 남편이 그래왔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온 남편이 안쓰러웠다.
“그런데 요 며칠 라일이와 함께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어. 녀석. 너무 외로웠나 봐. 이렇게 아들을 혼자 내버려 두는 것도 못할 짓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다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쩔까 싶어.”
“당신 이거 오랫동안 준비한 거잖아요. 괜찮겠어요?”
“괜찮아. 난 다 포기할 수 있어. 이런 공장 사장으로 있는 것보다 적어도 당신과 라일이 앞에서는 떳떳한 사람이고 싶어. 범죄로 돈을 버느니 그냥 정리하는 게 낫지.”
이문호는 굳은 결심을 하고 아내에게 말했다.
조미란은 남편의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남편은 이 결정을 하려고 많은 고민을 했을 거다.
딱히 여기에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조미란 역시도 마약 카르텔과 동업하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그래요. 상황이 이런데 어쩔 수 없죠. 당신 결정대로 해요.”
“고마워.”
“뭘요. 맘 편히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저는 당신 결정에 다 따를게요.”
아내의 동의도 얻었기 때문에 이문호는 당장 일을 진행시키기로 했다.
그는 마약 카르텔과는 협조하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공장을 팔 준비를 했다.
카를로스의 도움으로 그는 일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가 있었다.
어느덧 멕시코를 떠날 준비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어 이곳 지방 관료를 찾아갔다.
지방 관료는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문호 씨. 떠날 준비는 잘 되어 갑니까? 여기서 좀 더 지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떠난다니 아쉽군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요. 저도 아쉽네요.”
“하하하. 어쩔 수 없죠. 다음에 또 뵙기를 빕니다.”
“저도요. 그동안 도와주셔서 고마웠어요. 저 근데······할 말이 있는데요.”
이문호는 머뭇거리며 이야기를 꺼냈다.
“뭡니까?”
“사실 제가 이 공장을 정리하는 이유가 마약 카르텔 때문입니다. 그놈들이 제 공장을 마약 유통을 목적으로 이용하려고 해서요. 그래서 이렇게 비밀리에 일을 진행 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
관료는 이문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진작 말씀해 주시지 그랬어요? 그런 일이 있었다니······그래서 일을 급하게 진행시킨 거군요. 아무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약 카르텔은 저희가 알아서 막도록 하죠. 문호 씨는 편하게 한국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하하. 이거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그러면 믿고 떠나겠습니다.”
이문호는 지방 관료와 이야기를 마치고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공장도 거의 제 가격을 주고 팔아 모든 것이 평탄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며칠 뒤 그들이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 됐다.
“이제 떠나는구먼.”
한밤중이어서 모든 불이 다 꺼져있는 공장을 쳐다보며 이문호는 말했다.
“어때요? 아쉬워요?”
조미란은 그런 남편에게 물었다.
“전혀! 오히려 홀가분해. 이제 그 골치 아픈 마약 카르텔 놈들 신경 쓸 일도 없고. 이제 라일이랑 다시 같이 지낼 생각하니 너무 좋기만 한걸.”
“역시 긍정왕 이문호라니까.”
“하하하. 이만 가자고. 비행기 놓치겠어.”
“그래요. 빨리 가요.”
그들은 짐을 다 싼 다음 그것을 차에 실었다.
“사장님!!!”
그들이 그러고 있던 와중에 카를로스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모두 자고 있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문호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찾아왔다.
“결국 이렇게 가시는군요.”
“그래. 카를로스. 그동안 고마웠어. 나중에 또 보도록 하지.”
“네. 사장님. 그동안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그래. 고맙네.”
이문호는 카를로스와 작별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났다.
그들이 그렇게 차를 타고 가던 도중 이문호는 뭔가 주변의 차들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부터 계속 그들을 따라왔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주변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 대체 뭐······”
그가 어떻게 대처할 새도 없이 옆의 트럭이 그들의 차를 냅다 박았다.
“꺄악!!!!!”
“크윽!!!!”
그들이 타고 있던 차는 심하게 몇 바퀴를 굴렀다.
차는 완전 엉망이 되어버렸다.
“으윽······”
이문호는 아픈 몸을 이끌고 기를 쓰며 깨진 문틈 사이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을 계속 따라오던 차에서 누군가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문호에게 동업하자고 찾아왔던 마약 카르텔 놈들이었다.
“이 자식들······”
이문호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마약 카르텔은 차에서 기어 나오는 이문호에게 다가간 다음 쭈그려 앉아 그를 내려다봤다.
“선생. 그러게 그냥 계속 우리와 일했어야지. 왜 그랬어? 그러면 이런 꼴은 안 당했잖아.”
그는 이죽거리며 죽어가는 이문호를 비웃었다.
“참 애석해. 그렇게 믿었던 카를로스가 첩자인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리고 그 관료 녀석도 이미 우리랑 한통속이라고. 애초에 여기서 네 편은 없었어.”
“그, 그런······”
이문호는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나왔다.
이 모든 게 그들이 계략이었던 것이다.
자기는 그것도 모르고 이들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공장은 잘 쓰도록 하지. 이만 편히 가라고.”
그렇게 이문호와 조미란은 마약 카르텔로 인해 생을 마감했다.
***
[라일 님의 부모님께 사업을 제안한 사람, 카를로스, 지방 관료 죄다 마약 카르텔과 한통속이었습니다. 라일 님의 부모님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들에게 이용당한 것이었습니다.]
그게 디오가 알려준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었다.
피눈물이 쏟아질 지경이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미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이 시발!!!!!!!”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울부짖으며 바닥을 주먹으로 계속 내리쳤다.
“크흑!”
부모님이 너무 불쌍했다.
대체 왜 그분들은 이런 일을 당해야 했던 것일까?
멕시코 쪽에서는 부모님이 당했던 일을 그냥 교통사고였다고 발표했다.
그 개 자식들이 덮은 게 분명했다.
범죄 세력과 공직자와의 유착.
그리고 그들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희생당하는 무죄한 사람들.
이 개 같은 일이 거기서도 똑같이 행해진 것이다.
[라일 님.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알려드릴 사실이 있습니다.]
격분하며 울분을 터뜨리고 있는 나에게 디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뭔데?”
[라일 님의 부모님을 그렇게 만든 마약 카르텔 놈들. 현재 문리버에도 마약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
난 이제 완전히 확고해졌다.
“내 기필코 싹 다 내 손으로 직접 쳐 죽일 거야!!!! 더 이상 이 세상에서 그딴 비리와 범죄가 나오지 않도록 아주 멸종시켜 버리겠어!!!!”
이제부터는 거침없는 보복이 시작될 것이다.
110화. 아마존 전투 (8)
“이게……. 대체 무슨…….”
어안이 벙벙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존재가 또 있었던 것이다.
“너…… 누구냐……?”
분명 이 녀석은 내 말을 듣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건 알 거 없어.]
역시나 메시지가 쓰여졌다.
이제껏 내가 저런 입장이었는데, 당하는 입장에 서니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
“어디서 가짜가 나를 따라 하고 있어?”
[네가 지금 그 가짜에게 당하고 있잖아.]
하하하…….
이거 진짜 열받네.
이제껏 나에게 당했던 놈들이 왜 그렇게 성을 냈는지 알 것 같다.
이거 굉장히 열받는다.
‘디오.’
나는 속으로 디오를 불렀다.
[네.]
‘추적 가능하겠어?’
[사실 계속 시도하고 있었습니다만 쉽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상대는 저와 비슷한 수준의 데이터 자아를 가진 것 같습니다.]
‘그렇군…….’
나 같은 존재가 앞으로 없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막상 만나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이미 나는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반면, 녀석은 정체를 숨기고 있으니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겁이 나지는 않는다.
단지 박살 내야 할 존재가 더 생겼을 뿐이다.
상대가 그 누구든 내 앞길을 막는다면 부숴버릴 생각이다.
“당하긴 뭘 당해? 잘 대처했잖아. 이 바보야.”
[흥! 여유로운 척 연기하기는.]
아…….
진짜 저 메시지 겁나 열받네.
“내가 너를 못 찾아낼 거라 생각하나 본데 큰 오산이야. 기다리고 있어. 내가 너도 박살 내 줄 테니까.”
[기대할게. 근데 그러려면 여기 있는 제이슨 대령부터 처리해야 되지 않을까?]
데이터 보호막이 여전히 제이슨을 감싸고 있는 상황이었다.
‘디오. 일단 이 데이터 보호막부터 해체 가능해?’
[한번 해보겠습니다.]
디오가 해체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잠시 대기했다.
[하하하하. 생각보다 어려운가 보지?]
녀석의 비아냥거리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디오. 더 이상 놀림 받으면 나도 자존심이 많이 상할 것 같은데……. 아직 멀었어?’
[최대한 해보고 있는 중이지만 쉽지가 않군요……. 해체한 순간 곧바로 복구해버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다시 역으로 당할 분위기였다.
뭔가 수를 써야 했다.
나는 제이슨을 감싸고 있는 보호막에 손을 댔다.
[ㅋㅋㅋ. 애쓴다. 이제껏 쉽게 쉽게 나가다가 갑자기 막히니까 당황스럽지?]
진짜 저 메시지 좀 어떻게 안 되는지 모르겠다.
나도 저랬을까 싶다.
현재 기억의 자아가 자신의 지식을 모두 나에게 넘겨준 상태.
녀석에게 지식을 이어받은 뒤로 나는 매일 꾸준히 데이터 다루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데이터 응집은 이미 마스터한 상황이었지만 변환은 아직 미숙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숙하다고 안 할 수는 없지…….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도해보기로 했다.
보호막에 손을 대니 데이터 흐름이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엄청나게 견고한 데이터 구조였다.
디오가 왜 애먹고 있는지 알만했다.
‘디오. 나도 도와줄 테니까 같이 하자.’
[알겠습니다.]
이제껏 연습했던 것을 바탕으로 나는 데이터 보호막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았지만, 계속해보니 적응돼서 더 빠르게 해체가 가능했다.
팽팽했던 기세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보호막 데이터 구조는 점점 무너져갔다.
하지만, 곧바로 반격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복구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망할……. 우리도 더 박차를 가하자고!’
나도 온 집중을 다 해 보호막 데이터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데이터의 흐름에 집중하다 보니 외부에서 데이터가 계속 유입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일단은 그걸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오. 내가 데이터를 차단하고 있을 테니까. 네가 보호막 좀 해체해 줘.’
[알겠습니다.]
디오랑 나는 이미 최고의 콤비라 죽이 척척 맞았다.
“우린 시답잖은 네놈과는 차원이 달라!”
나는 호기롭게 외치며 데이터 벽을 만들어 놈이 보내는 데이터의 유입을 막았다.
확실히 데이터 유입을 막자 복구가 끊기기 시작했다.
‘디오. 되는 거 같아. 얼른 빨리 해체해.’
[예. 알겠습니다.]
데이터 유입이 끊기자 보호막은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려갔다.
지금이 바로 기회였다.
“장수진!”
“네!”
갑자기 내가 부르자 수진이는 흠칫하며 깜짝 놀랐다.
“빨리 제이슨을 공격해! 지금이 기회야.”
“알겠습니다.”
역시 요원 짬바가 있어 수진이는 바로 말귀가 통했다.
수진이는 단검을 꺼내 바로 제이슨의 심장에 꽂았다.
푸슉-!
“커헉!”
제이슨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나왔고 곧바로 몸이 축 늘어졌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처리한 것이다.
“장수진. 물러서!”
유입이 거세게 들어와 더 이상 막기는 한계였기에 얼른 장수진에게 외쳤다.
수진이는 내 말대로 황급히 뒤로 달아났다.
“크흑!”
나도 얼른 제이슨에게서 물러났다.
지잉-!
다시 보호막이 생성되었고 제이슨 심장에 꽂혀 있는 단검이 그대로 박살 나 버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제이슨은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라일 님.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수진이는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
“나중에 알려줄게.”
일단은 녀석을 마저 상대하는 게 먼저였다.
“한껏 까불더니 별거 아니네.”
나는 최대한 비꼬며 말했다.
[흥! 버거웠던 주제에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는. 넌 연기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
“뭔 연기 타령이야. 나한테 진 게 창피해서 괜히 이상한 트집이나 잡고 있는 네 꼴이 우습다.”
서로의 계속된 신경전이 이어졌다.
이 녀석 말투를 보아하니 나랑 같은 과라는 느낌이 들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솔직히 중2병 걸린 것 같은 말투다.
솔직히 내가 저런 말투를 사용했다는 게 오그라들기는 하지만 상관없다.
상대를 열받게 만드는 데 이 말투가 완전 제격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을 뿐이다.
[정말 내가 너에게 졌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면, 직접 나타나서 나와 싸우던가.”
일부러 녀석을 도발하며 물었다.
[개수작 부리지 마. 도발해서 내 정체를 드러내게 하려는 거 누가 모를 거 같아? 나를 너무나 우습게 보고 있나 보군. 난 너처럼 정체를 드러내는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않을 거다.]
“맘대로 해라. 내가 직접 찾아서 네가 누군지 밝혀낼 테니까.”
[ㅎㅎㅎㅎ. 기대하지.]
그 말과 함께 데이터 보호막은 사라졌다.
“하아…….”
간만에 느껴 본 긴장감으로 인해 그만 다리가 풀렸다.
“괜찮습니까?”
수진이는 걱정된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나랑 비슷한 존재가 있는 거 같아.”
“네?!!”
수진이는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야. 세계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놈이 더 있어. 언제부터 녀석이 그럴 수 있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개입할 생각인 거 같아.”
“…….”
수진이는 충격을 많이 받았는지 말문이 막힌 것처럼 보였다.
“녀석의 힘을 직접 경험한 것은 난데, 왜 네가 더 충격을 받냐?”
“그렇긴 한데…… 라일 님과 같은 존재가 더 있다니. 이건 그야말로 재앙과 같은 소리입니다. 만약 그놈의 정신상태가 비정상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그 말인즉슨……. 네가 지금까지 나를 재앙으로 생각했다는 말이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말꼬리를 잡자 수진이는 당황했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했다.
계속 장난칠 기분은 아니라 이쯤 하기로 했다.
“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맞아 재앙이지. 그놈이 미친놈이라면 정말 큰 일이야.”
머리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녀석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
이제 막 힘이 생긴 걸까?
그게 아니라면 왜 지금에서야 나타난 것일까?
녀석은 분명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
대체 무슨 의도로 나를 공격했을까?
모르겠다.
일단은 마약 카르텔 일은 마무리하는 게 먼저일 거 같다.
“애들아, 이만 돌아가자.”
“네.”
우리는 브라질에서 마련해준 본진으로 향했다.
***
그로부터 며칠 뒤.
결국 마약 카르텔은 한 놈도 남김없이 다 소탕되었다.
내가 정보를 계속 풀었던 덕에 아마존 전투에서 살아남은 마약 카르텔 녀석들은 더 이상 숨어 있을 곳이 없었다.
살아남은 녀석들은 그들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들의 손에 차근차근 보복을 당했다.
전 세계 뉴스가 이 일을 다루고 있었다.
“현재 마약 카르텔 전부가 없어진 상태라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은 모두 길거리에 나와 환호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마약 카르텔을 미국에서 주도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에, 각 나라들은 미국에게 답변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계속 침묵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터넷에서도 사람들은 난리였다.
-마약 카르텔이 전부 다 박살이 났대…….
-미친……. 실화냐?
-대체 warrior의 힘은 어디까지인가?
-미군 특수부대까지 싹 다 쓸어버렸대.
-헐……. 미국까지 건드려?
-근데 미국은 할 말 없음. 뒤에서 마약 카르텔 도와주고 있었던 거 자기들 입으로 자수했는데 어쩔 거야?
-그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 같은데?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건데? 그냥 warrior에게 또 당하는 거지.
-ㅅㅂ. 미국까지 건든다고? 이러다가 진짜 난리 나는 거 아니야?
-warrior가 다 알아서 하겠지. 뭐가 걱정이야?
“풋!”
마지막 댓글이 웃겨서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그러세요?”
수진이는 혼자 웃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며 쳐다봤다.
“사람들이 쓴 댓글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서. 한 번도 나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멋대로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게 웃기지 않냐? 내가 당연히 미국을 손쉽게 박살 낼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이미 간접적으로 라일 님의 힘을 봤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진이는 빈말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솔직히 내가 확신이 없었다.
그놈을 만난 이후로 이전까지 당연했던 것이 당연한 게 아니게 되었다.
그 이후로 며칠이 지났지만, 녀석은 그 뒤로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디오를 통해 녀석의 정체를 계속 뒤지고 있는 중이었지만,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녀석은 내가 하는 일에 딱히 개입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 이후로 매 순간 녀석이 나타날 것을 대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나는 디오에게 특별히 보안에 신경 써주라고 강조했다.
그때가 버겁지 않았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방향이 흘러가기는 했지만, 분명 녀석은 강했고 조금만 밀렸으면 당하는 건 내가 될 수도 있었다.
나는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너 혼자서는 안 돼. 앞으로는 동료들과 같이 성장해서 나가야 해.’
갑자기 내 기억의 자아가 남겼던 말이 떠올랐다.
설마…….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그런 말을 한 것인가?
그때는 단순히 동료애를 느끼고 싶어서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더 큰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짜식아…….
진작에 제대로 말했으면 좋았잖아.
그래도 다행인 것은 데이터 쉴드를 개발하면서 수진이와 일수가 세계 데이터를 어느 정도 다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역시 녀석의 말을 듣기를 잘했다.
좋아.
사실 내가 너무 먼치킨이라 심심하긴 했어.
더 이상 발전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었는데, 간만에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네.
“수진아.”
“네.”
“한국에 돌아가면 너도 나와 같은 능력을 지니게 만들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