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거침없는 보복 (2)
“너 대체 어떤 새끼야?!!!!!!”
강기석은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악을 질러댔다.
귀청 떨어질 뻔했네.
왜 이렇게 목청이 좋아?
“기석아. 귀 아파!!! 그렇게 안 해도 잘 들리니까 소리 좀 지르지 마라.”
“너 설마!!!!! warrior가 너였어?!!!”
강기석은 경악하며 물었다.
“어. 나야. 금방 알아차릴 줄 알았는데 너 생각보다 멍청하구나? 왜 엄한 데서 warrior를 찾고 있어?”
“너 이 개새끼. 당장 글 안 내려?!!!!!!”
“기석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잘도 글 내려 주겠다. 부탁해도 모자랄 판인데 무슨 명령질을 하고 있어?”
“이 시이발!!!!!!!!!”
녀석의 살기가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 너무 재밌다.
“너 양기택이랑 결국 갈라졌더라? 불안 불안하긴 했어. 기택이가 여태껏 잘 참은 거지. 그 자식이 네 뒷바라지 그렇게 열심히 해준 것도 모르고 그렇게 함부로 대하다니. 넌 정말 인간 말종이다.”
“닥쳐!!!”
“너 할 줄 아는 게 욕하고 성질내는 것밖에 없지?”
“이······이······”
녀석은 너무 분한지 어린애 마냥 씩씩거리기만 했다.
“크흐흐흐흐. 기석아. 어차피 주식 지분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으니까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도 별로 상관없었지? 바로 사과하고 사퇴하니까 민심 가라앉고 레인 오버 시리즈가 잘 돼서 주가 오르니까 설렜어?”
내가 생각해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난 녀석을 약올렸다.
“그런데 이제 주가 급락하고 있는 거 보고 있자니 피눈물 나지? 근데 어떡하냐? 주가는 앞으로 더 떨어질 거야.”
“너 내가 신고하면 너도 감옥 가는 거야!!!”
“그래? 뭘로 신고할 건데?”
“그야 당연히 불법 기밀유출이지.”
“푸하하하하하하하.”
난 녀석의 말에 박장대소했다.
진짜로 웃기긴 했는데 열 받으라고 더 오버해서 웃었다.
“증거는?”
“뭐?!!”
“증거! 어떻게 증명할 건데? 설마 그냥 무작정 신고할 생각은 아니지?”
“너 내가 이 통화 다 녹음하고 있어!!!!! 이거 공개하면 끝이야.”
“에휴. 기대를 무너뜨려서 미안한데 너 이 통화 녹음 못 해. 내가 막아놨어.”
“그런······”
녀석은 황당한지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정도까지 왔으면 내 말이 블러핑이 아니란 것을 충분히 깨달았을 거다.
“warrior는 추적도 안 돼. 글도 절대 못 내려. 다 내가 그렇게 해 놓은 거야. 하지만 넌 절대 증명 못 하지.”
“이라일······”
강기석은 어떤 말을 할지 모른 채 내 이름만 애석하게 불렀다.
“내가 졌어. 라일 씨.”
엥?
이건 또 무슨 전개야?
“라일 씨 정말 대단하네. 내가 요새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이렇게 유능한 사원이 내 밑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동안 살았어. 라일 씨. 내가 실수했네. 그러니까 한 번만 봐주게. 어?”
이 자식 이제 무슨 어린애 마냥 떼쓰기 시작했다.
“내가 사죄의 뜻으로 가지고 있는 주식 반을 주겠네. 이제 그러면 당신도 디씨소프트의 대주주가 되는 거야. 그러면 회사 주가를 다시 회복시켜야 당신도 좋지 않겠어?”
하하.
기석아. 너는 정말 내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고 하는 거야?
그리고 너를 믿느니 차라리 지나가던 개를 믿겠다······
[절대 받아주지 마십시오. 저런 인간을 믿었다가 뒤통수 맞을 확률이 98%입니다. 정석한도 버리고 이제껏 도와준 양기택한테도 함부로 한 놈입니다.]
갑자기 디오가 나섰다.
이 녀석 뭔가 흥분한 것 같다.
‘야. 걱정 마. 너는 98%로 밖에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보기엔 200%야.’
그리고 애초에 저 제안은 개똥 같은 제안이다.
“기석아. 너는 내가 호구로 보여? 어디서 쓰레기를 가져다가 거래를 하려고 해? 아까도 말했지만 그 주식 여기서 더 떨어져서 아주 나락을 찍을 거야. 그리고 너가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주는 건데 내가 맘만 먹으면 네 주식 내 것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야. 대체 무슨 제안을 하고 있는 거니?”
“너······이 버러지 같은 자식!!!!! 내가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해?!!!!”
역시나 바로 돌변한다.
“응. 날 더 재밌게 만들어줘. 너가 발악할수록 난 더 흥미진진하니까. 그럼 무운을 빈다.”
“이 개새끼야!!!!!!!”
고막 떨어질 거 같아 바로 전화를 껐다.
진짜 강기석 욕 하나는 찰지게 한다.
“아직 살만한가 봐. 기운이 펄펄하네.”
[강기석은 구치소에 있는 게 마치 호캉스하는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경찰청장이 봐주고 있어서 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먹기만 하는데요.]
“구치소에 있는 게 호캉스라고? 허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강기석과 경찰청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인 사이입니다. 마치 라일 님과 일수 님 같은 사이라 생각하시면 되죠. 그래서 강기석은 경찰청장 빽으로 구치소 안에서 눈치 전혀 안 보고 설칠 수 있습니다.]
“지금 나와 일수를 어디다가 대고 있는 거야? 아놔. 기분 나쁘네.”
나는 디오에게 불쾌함을 드러냈다.
개발자가 이런 눈치는 탑재 안 시켰나······
[죄송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든 건데 실례가 되어버렸군요. 다음부터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담부턴 조심해라. 그건 그렇고 뭐 잠시 즐기고 있으라 해. 어차피 그 짓거리도 이제 곧 못하게 될 테니까.”
나는 녀석이 곧 고통받을 것을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망할!”
이라일과 통화를 마친 강기석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녀석을 이대로 가만둘 수는 없었다.
강기석 씩씩거리며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강 사장님.”
“어이. 윤 서장. 내 부탁할 게 있네.”
“네. 말씀하십시오.”
“사람 한 명 좀 잡아넣어.”
다짜고짜 누구를 집어넣으라는 말에 윤 서장은 당황했다.
“누굴 말입니까?”
“이라일이라고 우리 사원이 하네 있는데 말이야. 그 녀석이 최근에 우리 회사 기밀을 유출했어. 당장 체포해줘.”
“!!!!!!”
윤 서장은 강기석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이라일이라고 하면 이전에 경찰서에 와서 난리 쳤던 그놈이었다.
그날 그놈은 여기 경찰서 사람들의 약점을 잡고 있으면서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다 공개해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녀석은 자기 말만 잘 들으면 뇌물 받은 것을 모두 묻어주고 파일까지 다 소멸해준다고 했었다.
그래서 윤 서장과 다른 경찰들은 냉큼 이라일 쪽에 붙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인데 이라일을 잡아넣으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장님. 그게 좀 힘들 거 같은데요.”
윤 서장은 단번에 거절했다.
“뭐가 어째?!!”
강기석 특유의 다혈질이 또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이때까지 받아 처먹은 게 얼마인데 이까짓 일도 못 하겠다고 빼는 거야?!!!!!”
강기석은 윤 서장에게 윽박질렀다.
“하아······”
윤 서장도 짜증이 났는지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장님. 그 이라일이라는 놈이 우리 약점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사장님이랑 양 대표한테 뇌물을 받았던 순간 찍었던 사진과 자료 말이에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강기석은 뭔가 불길함을 느꼈다.
그는 서장의 말을 듣는 순간 그 자료가 왠지 자기들이 보관해놨던 자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시면서 뭘 시치미 떼십니까? 이라일이 그게 사장님과 양 대표쪽에서 보관하고 있던 자료라고 하던데요.”
“······”
강기석은 묵묵부답했다.
설마 했는데 바로 그것이었다.
“말이 없으신 걸 보니 이라일 말이 정말 맞는가 보네요.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입니다. 사장님.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그래! 그랬어. 근데 그게 뭐 어쨌다고?”
강기석은 오히려 뻔뻔하게 나왔다.
“우리가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혹시나 문제 생기면 내놓아야 할 카드 정도는 필요하잖아. 자네들이 우리 말을 계속 잘 들어준다는 보장도 없고 말이야. 지금처럼!!!!”
강기석은 급발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돈 받아 처먹었으면 당장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년에 쥐꼬리만한 연금이라도 제대로 받으려면 말이야.”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협박이지. 윤 서장. 부양할 가족도 있으면서 왜 그래? 딸 곧 대학 가지 않아? 학비는 어떻게 내려고 그래? 아! 곧 딸이 세상을 떠날 거라 학비를 걱정할 필요는 없나?”
“······”
윤 서장은 강기석이 딸을 거론하자 하마터면 그에게 쌍욕을 박을 뻔했다.
“······가족은 건들지 마시죠.”
그는 간신히 감정을 다스리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에서 분노는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면 어서 가서 잡아 오게. 내 그러면 딸은 안 건들 것을 약속하겠네.”
“······알겠습니다.”
윤 서장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그래.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그럼 부탁하겠네.”
윤 서장은 강기석과 통화를 마치자마자 앞의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찍었다.
“개자식!!!!!”
그의 반응에 다른 경찰들이 그를 쳐다봤다.
“왜 그러십니까?”
조지호가 와서 그에게 와서 물었다.
“지호야.”
“네. 서장님.”
“애들 데리고 가서 당장 이라일 잡아 와.”
“!!!!!!!”
***
[라일 님.]
한창 복수할 계획을 구상 중인데 디오가 불렀다.
“응. 왜?”
[곧 손님들이 도착할 겁니다.]
“손님? 누구?”
[이전에 라일 님이 포섭했던 경찰들입니다.]
“아~ 그놈들? 왜? 설마······미쳐가지고 나한테 지금 개기러 오는 것은 아니겠지?”
[미친 거 맞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하.”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진짜 어이가 없네. 갱생의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다니.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던데 역시 그런 건가.”
나는 씁쓸함에 혀를 끌끌 찼다.
“굳이 그런 선택을 했다면 어쩔 수 없지. 다 처리할 수밖에.”
나는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네!”
나가보니 디오가 알려준 대로 경찰들이 와 있었다.
“이라일. 당신을 회사 기밀 유출과 무고 혐의로 체포한다.”
조지호는 경찰 신분증을 내게 들이대며 말했다.
“하하하. 진짜 다들 개그하는 거야 뭐야? 무슨 드라마 찍어?”
“뭐가 웃겨?!!! 지금 장난으로 보여?!!!!”
조지호는 내 태도가 기분 나쁜지 불쾌함을 드러냈다.
“그럼 이게 장난으로 안 보이냐? 니 신분증을 나한테 왜 내밀어? 비리 경찰도 꼴에 경찰이라고 어필하는 거야 뭐야? 그리고 너가 나한테 들이 내밀어야 하는 것은 경찰 신분증이 아니라 구속영장이야.”
“뭐?”
녀석은 내 말에 동공이 흔들렸다.
“구! 속! 영! 장! 이렇게 똑바로 말했는데 못 알아듣겠어?”
“······”
조지호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없어? 설마 구속영장도 없이 날 체포하려고 온 거야?”
“긴급 체포로 구속영장 없이 너를 붙잡을 수 있어.”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게 지금 누굴 병신으로 아나.
“아니 형사소송법도 제대로 모르면서 어떻게 지금까지 경찰일 했나 몰라. 아! 그냥 그렇게 뇌물 받으면서 쳐 놀면 몰라도 되겠다.”
나는 중지를 치켜세우며 녀석의 얼굴에 친히 법규를 박아줬다.
“존경하는 경찰관 님들. 형사소송법 제200조 3입니다. 제가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어야 긴급 체포 사유가 되는데 방금 저를 잡으러 온 이유가 회사 기밀 유출과 무고 혐의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게 구속영장 없이 체포하러 올 정도로 그렇게 중대한 범죄인가 보죠?”
녀석들은 변명할 말이 없는지 자기들끼리 눈빛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한심했다.
“진짜 너희들 뻔뻔하기 그지없다. 지금 이렇게 나를 잡으러 오는 게 말이 되냐? 솔직히 너희가 정신 차리고 강기석이랑 양기택 잡으러 갔다면 난 너희를 보호해줄 생각이었어. 근데 안 되겠다. 이만 잘 가라.”
나는 녀석들에게 꺼지라는 손짓을 한 다음 현관문을 닫으려 했다.
“뭐 하는 짓이야?!!! 대한민국 경찰이 우스워?!!!”
조지호는 나를 저지하려고 막아섰다.
“꺼져. 쓰레기 새끼야.”
“끄아아아아악!!!”
녀석은 또 전기에 감전되며 몸을 신나게 떨었다.
“형님!”
동료들은 감전되어 쓰러지는 그를 보며 자지러졌다.
“인터넷이나 확인해 봐!”
쾅!
그렇게 말하며 나는 문을 세차게 닫았다.
***
“대표님!!!!”
양기택이 자신의 방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비서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김 비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게······지금 인터넷 난리 났어요!!! 나이스에 한 번 들어가 보세요.”
“대체 뭐가?”
양기택은 비서의 말을 듣고 핸드폰으로 나이스 어플을 켰다.
그는 경악하며 입을 쩍 벌었다.
벌어진 입은 다물 줄을 몰랐다.
“이, 이게······대체 어찌 된 거야?”
112화. 업그레이드 (2)
“전쟁이요……?”
뜻밖의 소리였는지 이전까지 자신만만하던 백기완 대통령의 표정이 많이 어두워졌다.
“네.”
나는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 확실하게 말했다.
“비유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의 전쟁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전쟁이라…….”
아마 이런 전개는 백기완 대통령의 시나리오에 없었나 보다.
그는 매우 당황스러워 보였다.
아까 점심때 일단 즐기라고 말하던 그가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다.
“심각한 상황이군요.”
“예. 솔직히 저도 낙관적으로 말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질문이 있습니다만…….”
그는 나를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중국에서 항공모함을 보내도 막았던 라일 씨지 않습니까? 심지어 지금 라일 씨는 그때보다 더 강해져 있는 상태이고요. 그런데 미국이 아무리 중국보다 국방력이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월등하게 높은 정도는 아닐 텐데, 왜 중국 때와는 달리 지금은 매우 심각하신 겁니까?”
사실 그의 말이 맞다.
솔직히 미국이 중국보다 강하다고 해도 아예 다른 차원에 있는 정도는 아닌데 왜 이렇게 심각하게 나오냐는 거지?
나는 백기완 대통령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그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좋은 질문입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전 미국이 어떻게 나오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 그 정도야 손쉽게 박살 낼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대체 왜……?”
“다른 존재가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
백기완 대통령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전 저와 비슷한 능력을 지닌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그 존재가 미국을 도와주고 있어요.”
“!!!!!!!”
백기완 대통령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깜짝 놀랐다.
“그런 괴물이 또 등장했다는 것입니까?”
대통령님?
그 말은 저도 괴물이라는 뜻인가요?
따지고 싶었으나 지금 분위기가 워낙 심각한 상태라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어차피 나도 내가 괴물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었다.
“네.”
“허허…….”
백기완 대통령은 기가 찬 지 실없는 웃음소리만 냈다.
“그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미국인입니까?”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게 제일 중요했나 보다.
이해한다.
하지만, 문제는 나도 그걸 알고 싶다는 것이다.
“모릅니다. 그의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
이것 또한 그의 시나리오에 없던 이야기인지 안 그래도 어두운 표정이 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큰일이군요.”
“큰일이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무래도 대통령은 할 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솔직히 더 불안합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니까요.”
“적인 것은 확실한 겁니까?”
“확실합니다. 녀석은 확실히 저를 죽이려 했습니다. 거의 성공할 뻔했고요.”
“맙소사…….”
대통령은 이제 입까지 벌리며 놀랐다.
아무래도 나에 대한 신뢰가 엄청났나 보다.
내가 죽을 뻔했다는 말을 그의 상식에서는 있을 수 없는 말인지도 모른다.
계속 절망적인 말을 해서 그런가 대통령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더 했다가는 까무러칠 기세다.
이제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녀석과 힘겨루기를 했을 때 저는 녀석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는 거겠죠.”
“…….”
여전히 심각한 얼굴이라 나는 억지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다.
“매번 말하듯, 저 warrior입니다. 저를 막으면 그냥 다 박살 낼 뿐입니다. 대처법은 충분히 있습니다. 일단 저는 제 편에서 저와 같은 존재를 만들 생각입니다.”
“당신과 같은 존재요?”
“네. 거기에는 대통령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오늘 대통령은 심장이 남아나질 않겠다.
몇 번을 놀라는지 모르겠다.
“저에게 당신과 같은 능력을 주겠다고요?”
“그렇습니다.”
“가능한 겁니까?”
“시도해봐야겠지만, 이론상 가능합니다. 일단은 저도 갑자기 능력이 생긴 것이니까요.”
“…….”
백기완 대통령은 여기에 그렇게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싫습니까?”
“솔직히 싫지는 않지만… 제가 당신과 같은 존재가 되면 어떻게 변할지 걱정되긴 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통령님처럼 올곧은 사람이 흑화한다면 이 세상에 온전히 있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하하하하하.”
다행히 그는 나의 농담에 웃어줬다.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사실 좀 급하긴 합니다. 그 녀석이 언제 일을 벌일 줄 모르니 최대한 빨리 대처해야 하거든요.”
“라일 씨.”
그는 갑자기 여유를 찾고 이전의 대통령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음의 정리를 한 것 같았다.
“저는 이미 라일 씨와 한 배를 타기로 결정한 몸입니다. 이제 와서 물러서거나 도망치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그런 비겁자가 되는 것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확고하게 말했다.
“저에게 능력을 주십시오. 기꺼이 받도록 하겠습니다. 오히려 두렵기보다는 라일 씨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설레는군요.”
“하하하하하.”
이 아저씨는 아무래도 나를 많이 예뻐하는 것 같다.
아버지보다는 많이 젊지만, 그래도 포근함이 느껴진다.
“일단은 좀 더 연구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데이터 쉴드 연구에 더 박차를 가하려고 합니다. 예산을 더 끌어다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렇게 조처하겠습니다. 미국과 전쟁을 할 판인데 예산을 아끼고 있겠습니까.”
“하하하. 감사합니다. 거기에 덧붙여 보안에 더 신경 써야 하니 믿을만한 요원들도 지원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인원을 더 분배해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백기완 대통령에게 엄지척을 날려주었다.
“라일 씨.”
그는 사뭇 진지하게 나를 불렀다.
“네.”
“아까 많이 놀라고 당황했던 주제에 이런 소리 하는 게 우습지만……. 저는 라일 씨를 믿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라일 씨가 다 잘 해결해줄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는 흔들림 없는 태도로 말했다.
그의 진심은 잘 전달되었다.
“그 기대에 부응해드리겠습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예.”
우리는 웃으며 서로 악수를 주고받았다.
나는 청와대를 나와 간만에 내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가니 많이 설레기도 했다.
역시 집만 한 게 없다고 했던가.
[라일 님.]
하지만 불길한 예고가 왔다.
“어. 왜?”
“인터넷을 확인해 보십시오.”
나는 곧장 핸드폰으로 나이스에 들어갔다.
“……이게 뭐냐?”
나이스에는 내가 공항에서 백기완 대통령과 만났던 모든 순간들이 다 찍혀 기사로 나가고 있었다.
“너 내가 아까 기자들이 사진들 못 올리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근데 왜 올라와 있는 거지?”
[분명 막았는데 제 감시망을 뚫고 올려놨습니다. 내리려고 계속 시도 중이지만 그것도 막히고 있는 중입니다.]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놈 짓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기사를 차근차근 더 확인했다.
“하하하. 이 새끼가…….”
욕이 절로 나왔다.
오늘 일과 관련된 모든 기사에 녀석이 메시지를 남겨놓은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안 나타나서 섭섭했지? 네가 많이 보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이렇게 다시 나타났어.]
진짜 깐죽대는 게 엄청나다.
이 녀석은 사람 열받게 하는 데는 아주 뭐 있는 거 같다.
[전처럼 라일 님이 저를 도와주시면 내릴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어쩌시겠습니까?]
“됐어. 애쓰지 마. 어차피 이미 그 장면을 본 사람도 많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니까.”
홧김에 모든 포털사이트를 엎어버리려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그랬다가는 녀석의 도발에 넘어가는 꼴밖에 더 될 게 없다.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할 바에는 어서 동료들에게 능력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더 나았다.
이렇게 넘기려고는 했지만, 기분이 더럽기는 했다.
“간만에 재밌는 놈이 등장했네.”
이 warrior가 너 따위에게 당할 것 같으냐?
배로 더 갚아주겠다.
***
집으로 가려다가 나는 곧바로 연천 연구소로 향했다.
가는 도중 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 잘 다녀왔어?”
“응. 그것보다 일수야. 너 어디야?”
안부를 물을 새도 없이 나는 바로 녀석의 위치를 물었다.
“여기 연구소지. 왜?”
잘 됐다.
연구소에 없었으면 픽업해서 갈 생각이었는데 그냥 바로 연구소로 직행하면 될 것 같다.
“일단 지금 그쪽으로 가니까 만나서 이야기하자.”
“……그래.”
일수는 물어볼 게 많은 듯 보였지만 일단은 내 요청대로 해주었다.
연천 연구소에 도착하니 일수가 마중 나왔다.
“흐흐. 왔냐?”
녀석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녀석의 어깨를 툭 쳤다.
“다녀왔다.”
“대단하신 분 나오셨어. 마약 카르텔을 정말로 박살 내다니. 진짜 네가 이러는 게 나는 정말 새삼 놀랍다.”
일수는 혀를 내두르며 나를 칭찬하기 바빴다.
“네 덕에 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워졌어. 확인해 보니까 라틴 아메리카 쪽에서는 네가 거의 영웅이던데?”
“뭐 그렇게 됐지.”
칭찬이 오그라들기도 했고, 지금 이런 이야기보다는 다른 이야기가 급해 나는 화제를 돌렸다.
“일수야. 지금부터 내 이야기 잘 들어.”
“……응.”
나는 일수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자초지종 다 설명했다.
일수는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나와 비슷한 존재가 있다는 이야기에서 일수는 많이 놀라는 듯했다.
아까 있었던 기사 이야기까지 나는 모든 이야기를 마쳤다.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것 같아. 녀석은 지금껏 만났던 적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야.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바로 목덜미를 물릴 것 같은 느낌이야.”
“흐음…….”
일수는 고민하며 헛기침 소리를 냈다.
“그래서 어떻게 대처하려고 하는데?”
“지금 나처럼 너희도 능력을 가질 수 있게 하려고 해.”
“흐흐흐흐.”
놀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일수는 내 말에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
“뭐야? 그 반응은?”
“이제껏 내가 뻘짓거리를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일수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뜻인데?”
“네가 멕시코로 떠난 한 달 동안 내가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니거든.”
나는 일수에게 데이터 쉴드 개발을 계속해달라고 부탁한 상태였다.
방어적인 면에서는 충분하다고 판단되니 세계 데이터를 다루는 법을 더 익히면서 3차 버전에는 정보적인 면을 더 보완하라고 했었는데…….
“난 네가 떠난 이후로 계속 연구에 집중했어. 수진이랑 네가 멕시코에 가서 고생하는데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일수는 한껏 자랑스러워하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세계 데이터란 게 어떤 건지 잘 몰랐지만, 계속 연구하다 보니 점점 깨닫게 되었고 재미도 있더라고. 그래서 이전보다 배는 더 열심히 연구했지.”
“너 설마…….”
뭔가 녀석이 엄청난 걸 말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네가 지금 원하는 것에 내가 도달한 것 같아.”
113화. 업그레이드 (3)
이건 무슨 소리지?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일수를 쳐다봤다.
일수는 의기양양하게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나도 네 ‘디오’ 같은 거 하나 만든 거 같아.”
“!!!!!!!”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네가 만들었다고……?”
“응.”
여전히 해맑은 일수였다.
“어떻게?”
말이 안 된다.
내가 옆에 붙어서 같이 개발했다고 해도 될까 말까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혼자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네 덕에 나도 세계 데이터를 다룰 수 있게 되었잖아. 네가 예전에 응집된 세계 데이터가 자아를 가진 것이 바로 디오라고 설명해 줬던 게 생각나서 나도 한번 데이터를 응집해보려고 시도해봤어. 그런데 되는 거 같더라고.”
“…….”
일수 이 자식.
천재인가?
아무리 내가 가이드를 잘 해줬다지만 그걸 또 곧잘 따라 하다니…….
“한번 확인해 봐도 돼?”
“응.”
일수는 나를 연구소 안에 있는 극비 실험실로 데리고 갔다.
“아직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너한테 처음 보여주는 거야.”
녀석은 사원증을 찍으며 내게 말했다.
“영광이군.”
“크크. 그래. 영광인 줄 알아라.”
일수는 흐뭇하게 웃으며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컴퓨터들이 몇 대 있었고 중간에는 실험 탁자가 있었다.
탁자 위에는 투명한 푸른 구체가 공중에 떠 있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였네?”
그건 일수 말대로 응집된 세계 데이터였다.
나는 신기해서 그곳으로 다가갔다.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응집된 세계 데이터가 현실에서 이렇게 가시적으로 구현된 것은 나도 처음 본다.
뭐 사실 나도 이렇게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굳이 할 필요가 없어서 안 해봤긴 했는데…….
어쨌거나 신기하긴 하다.
나는 일수가 만든 응집 데이터에 손을 대었다.
응집된 구체 안에서 데이터들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아직 구조가 단순하고 데이터가 별로 안 들어있긴 했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를 훨씬 뛰어넘고도 남는다.
나는 맨바닥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이 정도면 진도가 반 이상이 나간 거다.
나는 대뜸 일수에게 다가가 녀석을 꼭 안아 주었다.
“사랑한다.”
“야! 왜 이래? 나 남자 안 좋아하거든!!!”
일수가 너무 질색하길래 바로 놓아주었다.
나는 녀석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정말 넌 짱이다. 내 친구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하하하하. 뭐 이 몸이 뛰어나긴 하지.”
일수는 내 칭찬에 한껏 뻐기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일수야.”
나는 흐뭇하게 녀석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 왜?”
“오늘부터 풀로 야근이다. 쉬는 날 없다.”
“…….”
일수는 완전 질색하며 나를 경멸하듯이 쳐다봤다.
“장난?”
“장난 아니야. 장수진이랑 너랑 이제 같이 풀로 야근할 거야.”
“오! 수진이랑? 그러면 또 내가 열심히 일할 맛이 나지…….”
밝아진 일수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었다.
“라고 할 줄 알았냐? 이게 나를 뭔 호구로 아나?”
일수는 바로 내게 헤드락을 걸었다.
“야, 야! 아파!”
일수가 정말 나를 안 놔줄 기세로 헤드락을 걸었기 때문에 비물질화를 해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진짜 저거 사기 기술! 나도 조만간 저걸 배워야겠어.”
“오! 잘 생각했어. 근데 그러려면 야근을…….”
“이 자식이 진짜!!!!”
일수는 정말로 화를 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긴급상황이란 말이야. 좀 도와줘.”
지금은 달래줄 때이다.
그래도 일수는 착해서 바로 내 말에 따라준다.
“오케이. 이 형님이 특별히 봐주도록 하겠어.”
그렇게 말하는 일수였지만 걱정이 앞서긴 하는지 한숨을 푹 깊게 내쉬었다.
“하아……. 또 야근이라니……. 허허허허.”
녀석은 허탈한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실없이 끌끌 댔다.
“이 불쌍한 인생. 언제 야근으로부터 자유로워질까? 허허허허.”
현실을 받아들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가면서 일수를 힐끗 쳐다봤는데 녀석은 내게 원망 섞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하하하.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부탁한다.
일단 상당히 긍정적이다.
솔직히 마음속 한 편에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일수 덕분에 완전히 싹 사라져 버렸다.
나는 곧바로 수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왜요?”
녀석은 잠에서 깨다 일어났는지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아무래도 집에 들어가자마자 누워서 잤나 보다.
“수진아. 그래. 고생했으니까 일단은 쉬고 내일부터 풀로 야근에 들어가자.”
“……네?”
수진이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내일부터 좀 빡세게 일할 예정이라는 것만 알아둬. 오케이?”
“……네.”
녀석은 빨리 다시 자고 싶은지 대충 대답한 것처럼 보였다.
크크.
어떤 미래를 다가올지 모른 채 그냥 ‘네’라고 하다니.
애석하구나.
푸하하하하하.
혼자 속으로 박장대소하며 전화를 끊었다.
***
다음 날
연구소에 온 장수진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장수진 또한 어제의 일수처럼 정색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풀로 야근이라고?”
“……라일 님. 이건 정말 아니죠.”
장수진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기세였다.
“어제 네가 ‘네’라고 했잖아.”
“제가 언제요?”
잠결에 대답해서 기억 못 하는 것 같아 녹음해준 것을 들려주었다.
“…….”
장수진은 억울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차라리 죽여요. 무슨 풀로 야근이에요?!!”
“야. 지금 너도 알다시피 많이 급한 상황인데 도와주면 안 될까? 내가 보상으로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장수진은 많이 답답해 보였다.
“으아아아아악!”
갑자기 냅다 소리를 지르는 장수진이었다.
나랑 일수는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할게요…….”
“진짜?”
“어차피 매번 똑같은 시나리오잖아요. 저는 결국 라일 님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그건 맞지.”
그 말에 장수진은 살기가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아…….”
녀석은 체념한 듯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근데 이건 너한테도 좋은 거야.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무지 강해질 테니까.”
“다 좋은데 좀 쉬게는 해줘야 할 거 아닙니까?”
“그 녀석이 계속 도발해 온단 말이야. 여유롭게 있다가는 우리가 당할 판이라서. 다행인 것은 일수가 많이 진도가 나간 상황이야. 일수한테 지도 받으면 너도 금방 할 수 있을 거야.”
내 말에 일수는 방긋 웃으며 자신감 넘치는 포즈를 취했다.
일수는 장수진에게 듬직한 인상을 보이려고 그렇게 한 것 같은데 내가 봤을 때는 오히려 역효과인 것 같다.
“알았습니다. 바로 하죠.”
장수진은 힘이 빠진 채로 터벅터벅 실험실로 걸어 들어갔다.
“일수야 부탁한다. 저 녀석 멘탈 케어 좀 잘해주고. 연구도 부탁할게.”
“알았어. 나만 믿어.”
그렇게 말하며 일수는 얼른 장수진을 달래러 갔다.
“하하하하하. 역시 내 친구야.”
띠리리리-!
흐뭇하게 일수가 가는 것을 바라보는데 전화가 울렸다.
[박이나.]
아…….
그동안 너무 잊고 지냈던 것 같다.
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네. 이나 씨.”
“라일 씨. 잘 쉬셨어요?”
“예. 어제 간만에 꿀 같은 잠을 잔 것 같네요.”
진짜 집에 들어 오자마자 뻗었었다.
간만에 편안하고 안락하게 잔 것 같다.
덕분에 지금 컨디션이 매우 좋다.
“다행이네요.”
내가 잘 쉬었다는 거에 박이나는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좋아해 주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더 나를 생각해주는 것 같다.
“라일 씨.”
갑자기 박이나는 뭔가 분위기를 잡으며 말했다.
“저 보고 싶지 않았어요?”
“보고 싶었죠.”
“그래요……?”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한 말투였다.
“혹시 괜찮으시면 오늘 저 좀 만나실 수 있으신가요? 회사 일 관련해서도 그렇고, 라일 씨가 거기서 어떻게 지냈는지도 듣고 싶네요.”
“좋죠.”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안 그래도 박이나를 만나려고 했었는데 오히려 나이스지.
“어디서 볼까요?”
“다른 곳에서 보면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요……. 이나 씨 집무실에서 보면 어떨까요?”
“아……. 하긴.”
박이나는 그때 같이 점심 먹었을 때를 떠올렸는지 바로 납득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지금 바로 거기로 가겠습니다.”
“예. 조심히 오세요.”
나는 곧장 디씨소프트 본사로 갔다.
똑똑똑!
“네.”
“이라일입니다.”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가자 박이나가 밝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하얀 수트를 입고 있는 그녀는 한층 더 우아하게 보였다.
“오랜만이네요.”
“정말로요.”
박이나는 나를 방 중앙에 있는 테이블로 안내했다.
“라일 씨. 커피 좋아하시죠?”
“네.”
“우리가 전에 갔었던 카페에서 가져온 커피가 있어요. 바로 준비해서 내올게요.”
“오! 감사합니다.”
그때 그 카페가 커피를 정말 잘하긴 했다.
나는 박이나가 내온 커피를 한 모금 했다.
“와. 역시 최고네요.”
내가 좋아하자 박이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죠?”
“고생이랄 건 까진 없고……. 그냥 그렇죠 뭐.”
“라일 씨 부모님과 관련된 일. 마무리는 잘하셨나요?”
“네……. 후련해요.”
“그랬다니 다행이네요.”
그렇게 말하며 박이나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라일 씨 말대로 지금 저희 디씨소프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심상치 않아요. 특히 마약 카르텔을 처치하는데 지대한 공로를 미쳤다고 칭찬이 자자해요. 물론 저희 디씨소프트를 반대하는 세력도 있지만 그건 소수일 뿐이고, 많은 사람들이 저희를 지지해주고 있어요.”
“거봐요. 제가 이렇게 될 거라고 말했잖아요.”
“하하하하하. 진짜 라일 씨는 대단하시다니까요.”
박이나는 호탕하면서도 기품있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 저랬으면 방정맞다고 느껴졌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웃는 것조차 아름다울 수 있나 싶다.
“사실 저는 회사의 이미지나 이득을 떠나서 마약 카르텔이 사라지는 게 옳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라일 씨가 하신 일을 지지했죠. 역시 라일 씨는 마약 카르텔을 모두 없애주셨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횡포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어요. 라일 씨는 정말 모두의 영웅입니다.”
이 ‘영웅’이라는 소리는 정말 계속 들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오그라들 수가 없다.
하지만 박이나가 또 이렇게 말해주니 싫지만은 않다.
“영웅이라니 과찬입니다. 저는 그냥 부모님의 복수를 한 것이고 나머지 것들은 그냥 따라온 것이죠.”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게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됐으니까요. 정말 최고입니다!”
박이나는 내게 양 엄지를 치켜세우며 계속 칭찬을 했다.
계속 듣고 있자니 민망해서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이나 씨.”
이번에도 좀 가볍지 않은 부탁이라 최대한 진지하게 나왔다.
“예.”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이런 말씀 드리기가 좀 그렇지만 많이 급해서요…….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부탁이라뇨? 어떤?”
박이나는 호기심 반 불안한 반으로 물어보는 거 같았다.
“예전에 이나 씨만 따로 노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고 했었죠?”
“……그랬…… 었죠.”
박이나는 약간 민망해하며 대답했다.
“이제 이나 씨와도 같이 일하고 싶네요.”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는 이나 씨에게도 저와 비슷한 능력을 드리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