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신 연합(2)
수석 관리 소장.
본래부터 그는 ‘인간’에 대해 그리 관심이 있는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타인과의 관계성은 그에게 있어 아무런 가치조차도 없었다.
그는 남들과 대화를 하고 그들과 소통을 하기보단.
오히려 그 시간에 유의미한 연구의 결과물을 내길 좋아하는 인간이었다.
그것은 소장이 수도에서 명성을 쌓고서 마력학 부문의 권위자가 되는 그날까지도 계속되었다.
부와 명예가 따라붙었으나, 그는 여전했다.
그는 늘상 소통보단 결과물을 중시하는 인간이었다.
명성은 학구열 끝에 따라붙은 부가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러한 소장의 성정을 알아본 황녀 아리사가 다가왔다.
[제게 오십시오.]
그녀가 가장 먼저 그를 마주한 자리에서 내뱉었던 말은 선명했다.
지금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다면 당신의 관심이 닿을 인간이 보일 겁니다.]
황녀 아리사는 신기한 여자였다.
그녀의 말은 마치 예언처럼 들려왔다.
우습게도 그녀의 말은 틀린 것 하나 없이 들어맞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날부로 소장은 정말로 한 인간에 대해 지대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으니까.
우습지만 정말로 그러했다.
유성이라는 인간의 마력 적성은 이제껏 존재하던 그 어떤 인간보다도 말이 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유성. 그는 단적으로 말한다면.
과거 존재했다고 전해져 오던 ‘드라칸’ 만큼이나 기이한 존재였다.
황녀 아리사가 그에게 요구한 조건은 한 가지였다.
[당신에게 400년도 더 이전부터 보관해오던 드라칸의 사체를 연구할 기회를 드리죠. 그 대신, 당신이 해줄 것은 하나입니다.]
그 말에 소장은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황녀가 접촉해온 순간부터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소장은 마력학 부문에 있어 최고 권위자였다.
그는 복제된 클론이 어째서 마력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지에 연구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 태양계 전체를 다스린다는 명망높은 황족이 직접 접촉해온다면 그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소장이 그녀의 안내로 유성을 마주한 순간부터, 그는 황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진작부터 감을 잡고 있었다.
그는 흔쾌히 웃어 보였다.
[좋습니다. 그의 능력을 따라할 복제품을 만들어내길 원하는 거라면, 오히려 저야말로 바라는 것이었으니.]
그날부로 계약은 성립되었다.
소장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계약이다.
문서로만 전해져오던 옛 대전쟁의 사체를 스스로의 눈으로 목도하고, 그 모든 것들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학구열에 목을 멘 그가 이 기회를 날릴 리가 없었다.
황녀는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그것은 거짓이 없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태어난 그 결과물의 이름은 바로 프로젝트 블레이드였다.
그 산물이었던 카쉬파와 그 형제자매들이야말로, 오랜 소장의 가장 훌륭한 산물이었다.
고속 배양기에 의해 인위적으로 가속 성장시킨 이들은 불과 수 년 만에 보통의 인간이 십수 년 동안 다다라야 마땅할 성장치에 도달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강함은 그 하나하나가 족히 상위체에 견줄 만큼이나 크게 성장했다.
셋이 모이면 완전체도 능히 상대할 수 있었다.
한낱 평범한 존재들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막대한 전력에 다다른 것이었다.
소장은 소리 내어 웃어 보였다.
탐구열에 들어찬 학자의 순수한 미소였다.
“유성이라는 인간은 참으로 대단하더군.”
그는 카쉬파의 검측 결과를 툭툭 두들겨 보이며 입을 열었다.
“한 명의 인간이 온갖 말도 안 되는 다양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그런 주제에 무엇 하나 뒤떨어지는 게 없지. 능히 그 능력 하나하나가 이 우주를 뒤흔들 정도로 대단해. 놈은 괴물이야.”
소장의 연구물인 클론들조차 정작 그 연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유성이라는 이름의 인간은 기괴할 정도의 괴물이 맞았다.
그는 말했다.
“너희들은 저마다의 능력들을 가지고 있지. 시간과 공간. 그 밖에 마력과 힐링 팩터, 육체 적성 등의 것들을.”
유성의 마력적인 재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한계점은 이제껏 알려진 그 어떤 인간들에게서도 사례가 없을 정도로 방대했다.
하나의 인간에게는 하나의 마력 적성이 존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마저도 턱없이 뒤떨어진다. 바로 그것이 평범한 일반인의 기준치였다.
그러한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확실히 유성의 존재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유성의 능력은 이제껏 알려진 모든 마력 적성들을 통합적으로 포괄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소장조차도 그의 능력을 각각 열 개로서 나누어 분열한 끝에 간신히 담았을 정도다.
툭툭.
소장은 카쉬파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는 자신의 다짐을 말했다.
“언젠가 나는 너희들을 토대로 삼아 제2의 유성을 탄생시키고 말겠다.”
하지만 카쉬파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부질없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한들.
결국 지금에 와 그 유성이라는 인간은 이미 수도의 폭발과 함께 죽고 사라진 존재였다.
제아무리 남은 찌꺼기나 다름없는 그들 열 명의 클론들을 양분 삼아 기반을 다잡으려 한들, 그녀는 불가능할 거라 여겼다.
* * *
프로젝트 블레이드의 클론은 모두 합해 열 명에 달한다.
그들의 통상적인 활동 시간은 대략적으로 짧으면 이틀에서 가장 긴 개체는 사일 가량에 해당했다.
각각의 능력에 따라 그 시간은 차이가 있었다.
카쉬파의 경우에는 그들 중에서도 가장 짧은 활동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언제나 소장의 가장 가까이서 활동하고는 했다.
소장을 호위하는 동시에, 혈청을 반드시 제때에 맞기 위함이었다.
그녀 카쉬파의 경우처럼.
클론들에게는 대개 그 활동이 가능한 여분의 시간이 많을수록.
활동 반경 또한 넓기 마련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신 연합에서는 그들을 각 전장마다 밀어넣었다.
그들만큼이나 뛰어난 전력은 없었다.
유성을 토대로 배양된 복제인간들인 그들은 한데 모이면 완전체마저 상대할 정도로 강력했다.
현재 연합은 두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서 대립 중이었다.
각성자들을 필두로 한 구 연합과, 반란을 일으킨 신 연합. 이렇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로지 인간만이 적인 것은 아니었다.
드라칸은 구 연합이든 신 연합이든 간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는 놈들이었다.
때문에 두 연합군은 서로 확장하는 드라칸의 세력을 각각의 전선에서 틀어막는 동시에, 서로를 견제했다.
혼란한 와중에도 어떻게든 이 테라의 전권을 손에 쥐고 말려는, 욕심을 두고서 대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구 연합의 주둔지 중 하나에 두 명의 클론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제 알겠나, 카쉬파? 너희들은 내게서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거다! 하하하하!]
카쉬파가 몰래 흘리고 있는 무전을 타고서, 소장이 지껄이는 소리는 클론들에게로 전해졌다.
“쯧, 빌어먹을 소장 놈.”
“카쉬파가 고생이겠군.”
그들은 웃음을 터뜨리는 소장의 소리를 듣곤 인상을 구겼다.
언제 들어도 역겨운 음성이었다.
저런 인간을 가까이서 언제나 마주할 카쉬파가 참으로 힘들 터였다.
소장은 변덕스러운 인물이었다.
카쉬파를 옆에 낀 채로, 수시로 갖은 고문을 내걸 터였다.
두 클론들. 아서와 블레이드는 연병장에 걸터앉고선 전식을 씹었다.
입안이 텁텁했다.
전장에서의 배식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유난히 체구가 큰 거한, 아서가 신경질적으로 욕설을 지껄였다.
“제기랄, 맛 하나는 더럽게 없군. 이딴 걸 우리보고 처먹으라고?”
“참아, 아서.”
옆의 남자는 차분했다.
그는 가라앉은 음성과 함께 아서를 제지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말에 아서가 사나운 눈길로 그를 노려보았다.
“하! 블레이드, 개소리 마. 고작 이딴 걸로 어떻게 싸울 힘을 내? 뭐라도 처먹어야 싸울 기력이 난다고!”
“쯧.”
아서의 흥분에 블레이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블레이드는 프로젝트 블레이드의 첫 번째 산물이었다.
프로젝트는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블레이드는 같은 열 명의 클론들 중에서도 유난히 특별한 개체였다.
강함도 강함이었지만 그가 가진 유별난 적성이 그러했다.
그는 그들 형제 자매 중에서 가장 미약한 마력 출력을 가진 존재이기도 했다.
블레이드는 여러모로 유성과 닮았다.
마력적인 능력의 순수 출력이 크게 뛰어나지는 않은 대신, 그 밖에 것들이 그와 비슷했다.
기교와 기술, 그밖에 다른 이들의 능력을 흉내내는 능력이 뛰어난 편이었다.
그것은 오로지 블레이드 그만이 보유한 능력이었다.
블레이드는 소장이 첫 번째로 배양시킨 최초의 클론이었다.
하지만 소장은 그를 실패작으로 분류했다.
왜냐하면 마력 형질이 유난히도 볼품없었기 때문이다.
블레이드가 지닌 마력량은 기껏해야 보통의 마나 사용자 수준만큼도 되지 못했기에, 소장이 그를 실패작으로 분류한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클론들 중에서 그야말로 가장 뛰어난 전력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이유는 그의 특이한 성장세에 있었다.
대부분의 마력 출력이 미약한 대신, 그는 인간이 가진 기술의 발전을 극한까지 가공시켰기 때문이다.
성격 또한 차분한 편이었다. 행동하기 전에 두 번 세 번을 더 생각했다.
차분함에서부터 비롯된 차가운 이성.
그것이 그를 다른 형제들 이상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바로 그것이 클론들 모두가 그를 리더로서 추대하고 따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블레이드가 입을 열었다.
“명심해, 아서. 우리가 소장을 찌를 기회는 단 한 번 뿐이야. 기회를 손에 넣기 전까지는 지금과 같이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젠장맞을! 이 따위 상황을 참으라고?!”
그는 아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흥분에 부르르 몸을 떠는 그의 떨림이 전해져 왔다.
“화를 가라앉혀. 흥분은 육체의 기질을 불안정하게 한다. 네가 다른 녀석들보다도 유독 활동 가능한 시간이 짧은 이유지.”
본래 블레이드의 활동 시간은 장장 사흘에 달했다.
하지만 최근 그 최장 시간의 한도가 일부 수정되었다.
드라칸 놈들이 바글거리는 치열한 전장에 투입된 탓에 혈청에 맞을 여력이 없었다.
결국 그러한 상황에서 그는 하루를 더 버텨냈다.
육체가 붕괴되기 직전의 상황에서 그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정작 그러한 위기를 겪었으면서도 여전히 블레이드는 침착했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는 자신의 동료를 응시했다.
“이 따위 대우를 참으라고?! 난 더 이상 못 참겠어!”
콰직!
그의 안광에서부터 활화산 같은 마력이 터져나왔다.
순간 그에게서부터 새어 나온 마력이 주변 대기를 찢어발겼다.
새카만 흑연이 넘실거렸다.
공간을 다루는 그의 속성력이 흥분을 주체 못하고 사방에 흘러넘쳤다.
하지만 여전히 블레이드의 음성에는 고저가 없이 동일했다.
“흥분을 가라앉혀라, 아서. 그러지 않으면 죽는다. 혈청을 맞을 시간은 흥분할수록 짧아진다. 계속 그렇게 성질을 주체하지 못하다간 이전 녀석처럼 죽고 말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