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신 연합(1)
쿠오오오!
상공의 위를 하나의 기가스가 가로지르고 있다.
푸른 빛줄기가 기체의 뒤에서부터 새어 나오며 기다란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마력을 원동력으로 삼아 쏘아지고 있던 기가스 EF-07.
조종석에 타고 있던 파일럿 유성은 전방을 주시한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모든 게 이상하다.’
유성은 과거의 시대로부터 현재의 세계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고, 마침내 전함 메타트론의 사람들과도 조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그들은 유성을 마치 적을 대하는 듯 대처하였으며 누구 하나 경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눈을 뜨고서 마주한 처음의 상대가 심문관이라니.
처음부터 그는 이미 적의 포로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생각할수록 차오르는 것은 지대한 의문과 의심뿐이었다.
‘정황상 내가 죽었다고 확신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만한 폭발로부터 살아 돌아왔다면 오히려 그편이 이상하니까. 하지만 그게 날 적대할만한 이유가 될 수는 없어.’
유성은 결백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가지고서 증명할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그게 문제다. 제아무리 내가 깨끗하다고 한들 사람들은 날 신뢰하지 않아.’
지난 3년 동안의 공백은 치명적이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를 의심할 만한 요소가 생겨났다. 오로지 유성 그 자신만이 그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함 메타트론의 모두가 유성을 의심할 만한 상황이라고 한다면.
떠오르는 것은 그들의 대화 도중 이어졌던 클론이 유일한 정보였다.
하지만 가정은 충분했다.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만약 그 클론이라는 게 다른 누구도 아닌 날 대상으로 해서 양성된 존재라면. 그리고 나와 같은 특성을 가졌다고 한다면 저들의 경계심도 분명 타당하다.’
마나 사용자를 인공적으로 배양하는 기술력이 생겨났다면, 그 전후에는 그 기술력을 토대로 복제할 주체가 필요한 법이다.
만약 그 대상이 다름 아닌 유성이라고 한다면? 그 가능성은 있었다.
‘사람들이 내게 보인 적대감에 대한 설명으로서 이유는 충분해.’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였다.
적어도 유성 그가 아는 한.
마나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클론은 현실적으로 적용이 불가능한 기술이었다.
하물며 지금의 시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황족의 시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황족의 가면을 쓰고 있었던 알파가 온 우주의 전권을 휘어잡던 세상이었다.
‘잠깐.’
문득, 맹점을 발견한 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알파라고?’
하지만 만약.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알파가 지금의 시대상과 환경을 조성하며 뒤로는 다른 기술력을 발전시켰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 가능성에 대한 답은 충분히 가능하다, 가 되겠군.”
유성이 아는 알파는, 적어도 400년 이상을 살아온 존재였으니까.
그만한 여분의 시간이 존재한다면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든 간에 분명 충분한 실현이 가능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그 답을 확신하기 위해선….”
먼저.
신 연합이라는 군의 시설을 찾아낼 필요가 있었다.
* * *
지금 행성 테라는 연일 일어나는 치열한 접전에 신음하고 있었다.
드라칸의 세력은 날이 갈수록 무시무시하게 불어나고 있었다.
이미 몇몇은 초기 군체 무리의 규격을 벗어나 중간 등급, 많으면 도시 전체를 뒤덮어버릴 정도의 군단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그것이 오로지 테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어디에서나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었다.
태양계 전체가 마찬가지였다.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온 인류의 영역이 마찬가지로 드라칸에 의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대부분의 마나 사용자들은 가까운 근방의 격전지로 차출되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다급한 지역은 불과 수십 일 간의 짧은 훈련 끝에 정식 파일럿으로 분류되어 전장에 실전 투입되는 상황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크게 바라본다면 그러할 터였다.
하지만 동시에.
인류의 내부 속사정을 들여다본다면. 상황은 그 이상으로 좋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지금 그들의 세력은 둘로 나뉘어 대립 중이었다.
3년 전.
수도의 붕괴와 함께 황족은 모조리 멸절했다.
그들의 피는 완전히 끊겼다.
애초부터 일인 전승 되어오던 적은 수의 황족이었다.
완전체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함께, 수도의 일부가 날아가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지며 그 가운데 황족들 또한 휩쓸렸다.
그 결과 지금에 와 사실상 연합은 둘로 나뉘어 서로가 서로의 정당성을 내세우며 대립 중인 상황이었다.
400년 동안, 황족은 단순한 수도의 왕으로서 군림한 게 아니다.
그들은 태양계 전체에 퍼져 나간 수많은 갈래들의 중심에 자리하며, 그들의 분열과 대립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현재.
그것은 더 이상 지속되는 현재의 일이 아니었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였다.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은 황족의 소유가 아니라는 거지.’
카쉬파 그레고리 반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3년 전 벌어졌던 예기치 못한 전투의 여파로,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는 크나큰 변혁이 내몰아쳤다.
무려 황족의 피가 끊긴 대사건이었다.
사람인 이상 그 변화에서 자유로운 이는 없었다.
그것은 카쉬파 또한 마찬가지였다.
“…크으.”
그녀는 돌연 신음을 흘렸다.
팔이 부르르 떨려 왔다.
‘제기랄, 벌써 시간이 다 되어가는 건가?’
카쉬파는 이를 악문 채로 버텨냈다.
육체가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동공이 푸르스름한 빛을 띄며 눈에 띌 정도로 마력을 흘렸다. 제 자신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손목에 착용하고 있던 통신 단말이 울리더니 짤막한 메시지가 도달했다.
[카쉬파, 관리실로 와라. 슬슬 시간이다.]
그 말에 카쉬파는 굳은 얼굴을 한 채로 왔던 길을 돌아갔다.
* * *
치익-.
기기에서부터 주입된 푸르스름한 혈청과 함께, 카쉬파의 눈에서부터 새어 나오던 마력의 기운이 빠르게 잠재워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석 관리소장이 돌연 입을 열었다.
“지금 느낌은 어떻지, 카쉬파?”
“…조, 조금씩 나아가는 게 느껴집니다.”
카쉬파는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녀의 음성은 당장에라도 끊길 듯 가늘었다.
실제로도 착각이 아니었다.
혈청이 주입되기까지 수 분.
그동안 카쉬파의 의식은 시험대에 누운 채로 몇 번이고 끊기고 재차 이어지길 반복했다.
드문드문 끊긴 의식의 틈새 사이로 이어지는 위태로움의 간격을 그녀는 느꼈다.
그녀는 생각했다.
‘역시 위험해.’
만약 혈청의 주입이 늦어졌다면 그 시간은 더더욱 길어졌을 터다.
어쩌면 신체에 치명적인 손상이 가해졌을 수도 있었다.
카쉬파에게 있어서 혈청은 생을 이어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소재였다.
그녀의 육체는 그것의 주입이 없다면 붕괴한다.
프로젝트, 블레이드 시리즈(Series).
카쉬파는 그것의 산물이었다.
지금은 구 연합이라 부르는, 멸절한 황족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찍어내듯 만들어진 이들 중의 하나가 바로 그녀였다.
“흠.”
소장은 옆의 모니터 화면의 일정한 수치를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슬슬 파동이 일정해졌군. 회복기에 이르렀나. 좋아, 일어나도 좋다.”
그 말에 카쉬파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소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복종해야 하는 처지였다.
프로젝트 블레이드 시리즈에 의해 만들어진 카쉬파는 혈청이 없으면 불과 수 일도 생존하지 못한다.
혈청이 없으면 죽는다. 그것이 그녀의 목숨줄이었다.
카쉬파는 어지러운 정신을 억지로 다잡은 채로 소장의 앞에 섰다.
‘황족이 존재했을 때에는 그들을 따랐지만…. 그들이 죽은 지금에 와서는 이들을 따라야만 해.’
이견 따위는 필요 없다.
그들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모든 움직임을 제한당해야만 했다.
치가 떨리는 소리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저들은 그들을 한낱 소모품 대하듯 하고 있었다.
유성의 피와 살에서부터 태어난 그들은 뛰어난 효율을 지녔다.
단 셋만 모여도 치명적인 위험도를 가진 완전체를 상대하는 그들이다.
바로 그것이 세력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신 연합이 각성자들을 위시한 구 연합을 위협하는 이유였다.
소장은 돌연 허공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정말로 그 인간이 어떤지가 알고 싶군. 도대체 어떤 능력을 가졌길래 이러한 건지, 참.”
그의 말을 들은 카쉬파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가… 말입니까?”
“음?”
그 말에 그의 고개가 카쉬파에게로 돌아갔다.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서늘한 시선이었다.
움찔.
그녀는 순간, 긴장하여 마른침까지 삼켰다.
소장은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그녀에게 크나큰 고통을 줄 수 있는 존재다. 실제로 이제껏 몇 번이고 그러한 전적이 있었다.
그러한 소장이 한 차례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물었다.
“알고 싶나?”
“…예.”
“좋아, 알려주지.”
본래라면 소장의 입장에서는 구태여 친절한 설명까지 해줄 필요는 없을 터였다.
그에게 있어 이들은 한낱 혈청이라는 이름의 사료를 꾸역꾸역 받아먹는 가축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소장은 뭐가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오늘은 유독 친절했다.
어쩌면 단순히 입을 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는 약간의 변덕과 함께, 그들 프로젝트 블레이드의 소재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유성이라는 남자의 피와 살에서부터 태어났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그의 복제품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니까 말이야.”
“예, 일단은.”
유성은 그들의 원종(原種)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그들 프로젝트 블레이드의 모든 클론들은 유성의 유전자를 배양하여 태어났다.
“그의 힘과 능력, 그리고 적성을 물려받았다는 것 또한 모를 리가 없을 테고. 이미 구 연합에게까지 널리 퍼졌을 정도로 파다한 이야기니까.”
카쉬파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는 그의 모습에 바짝 긴장했다.
소장은 저 웃는 얼굴만으로 얕잡아 보아선 안 된다. 저 미소와 함께 잔혹한 고문도 서슴없이 일삼는 남자였다.
변덕을 부린다면, 분명 그만한 변덕을 다시금 부린다고 해도 이상치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 그 유성이라는 남자가 아니고선 도저히 마력 능력을 사용하는 클론을 배양해낼 수 없는가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있나?”
“그건….”
잠시간 말을 흐리던 카쉬파는, 눈앞의 상대를 의식해 재빨리 대답했다.
소장은 말꼬리를 늘어트리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예, 아니로오 짧게 답해야 했다.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건가. 뭐, 좋아. 그래야 나도 알려줄 맛이 나니까.”
“예?”
처음으로 카쉬파의 표정 위로 제대로 된 의문이 드러났다.
“이제야 궁금해진 건가?”
오히려 솔직해진 카쉬퍼의 모습이 마음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소장이 입가가 찢어질 정도로 히죽 웃어 보이더니 말을 이었다.
“본래라면 제아무리 뛰어난 마력 적성 소질을 타고난다고 한들 그 능력이 클론에까지 이어지지는 않지.”
마력 적성은 의도적인 목적으로 배양해낸 가공의 인간에게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인간에 한해서는 유일하게 그러한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유성이라는 인간이다.
황녀 아리사는 진작부터 유성에게 많은 관심을 쏟았다.
그가 태어난 직후에서부터 무슨 이유에선지 기다렸다는 듯 곧장 클론을 배양해내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 책임자로 배치된 것이 바로 눈앞의 소장이었다.
처음에는 그도 이유를 몰랐다. 애당초 불가능한 연구를 시작하라는 황녀의 말이 도통 알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연구를 시작하고서 알았다.
어째서 황녀가 유난히 그 유성이라는 인간에게 집착했는지를 말이다.
“그 유성이라는 인간은-.”
황녀가 대체 무슨 수로 알아낸 건지는 몰라도, 유성에게는 정말이지 말도 되지 않는 능력이 존재했다.
“이 태양계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 중에서, 유일하게 세상의 모든 마력 에너지를 무효화 할 수 있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