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신 연합(3)
아서는 공간 속성을 지닌 클론이었다.
하지만 그는 2대째였다.
그의 이전에도 다른 이가 있었지만, 본래 있었던 1대째의 클론은 죽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대 클론이 치솟는 분기를 참지 못하고서 홀로 소장을 죽이러 나선 것이다.
그에 대한 결과는 죽음이었다.
소장은 죽어버린 전대 클론을 대신해 새로운 복제품을 만들어냈다.
지금의 아서가 바로 그 대상이다.
블레이드는 차분한 눈으로 아서를 응시하며 생각했다.
‘이전의 녀석도 그렇고, 이번의 복제품인 아서도 그런 편인가. 둘 모두 쉽게 흥분하는 체질이야.’
공간 속성을 가지고 있던 역대 두 명의 클론들이 모두 공통적인 성향과 체질을 가지고 있었다.
둘 모두가 쉽게 흥분하는 체질이었다.
어쩌면 각각의 능력에 따라 저마다의 성질이 어느 정도 정해지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그러한 이유로, 아서의 곁에는 언제나 블레이드가 자리했다.
그가 아니고선 아서를 통제할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형제들의 말조차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아서라도, 블레이드의 말만큼은 어느 정도 존중하는 편이었다.
블레이드는 형제들 모두를 이끄는 자리에 선 이였다.
그의 눈길이 푸른 안광을 빛냈다.
드물게 블레이드가 입에 욕설을 올렸다.
“참아라, 아서. 그 대신 빌어먹을 자식에 대한 처우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네게 넘겨주겠다. 그러니 기회가 올 때까지 조금만 더 참아.”
오로지 아서만이 소장을 혐오하는 게 아니다.
열 명의 클론들 전원이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장을 죽일 수 없는 것은 ‘혈청’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들은 혈청이 없고선 고작 수 일을 버텨낼 수 없는 시한부적인 육체를 지녔다.
한도 시간까지 다다르면 서서히 육체가 금이 가듯 붕괴하는 광경을, 그들은 며칠마다 직면한다.
그것은 끔찍한 공포다.
주기적으로 약을 건네어받지 못하면 반드시 죽고 말 거라는 그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 공포심을 이제껏 그들이 이겨내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소장에 대한 타는 듯한 분노, 그 하나 때문이었다.
“놈을 죽이고 싶은 것은 모두가 똑같아. 다만 현실적인 여건이 그것을 허락지 못할 뿐이지.”
새파란 안광을 빛내는 블레이드의 시선에는 살기가 머물러 있었다.
혈청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소장, 그 인간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주먹을 움켜쥐고 있던 아서가 이내 기세를 천천히 잠재웠다.
“그래. 알았어. 알겠다고.”
그들 클론은 24시간 내내 감시의 눈초리 속에 생활했다.
하지만 늘상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전장에선 다르다.
치열한 전투가 매번 벌어지는 전장에서는 그러한 눈이 계속해서 구실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나름대로 연합 측에서는 세밀한 관찰을 하는 편이었지만, 전투가 수시로 벌어지는 이곳 주둔기지에서부터는 잠시나마 자유가 주어진다.
여기선 감시의 시선이 한결 가벼워진 편이었다.
성질을 꾹 내리누른 아서가 블레이드의 옆자리에 다시금 주저앉았다.
블레이드의 통제는 여전한 효력으로서 작용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블레이드.”
“말해.”
“그 혈청이라는 걸 소장이 아닌 다른 인간도 만들어낼 수 있긴 한 거야?”
그 말에 블레이드의 시선이 잠시간 그를 향했다.
하지만 이내.
그 뜻 모를 무언의 시선은 금세 사라지고 그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분명해. 난 혈청의 기운을 느꼈다. 전함 메타트론이라는 구 연합측의 세력 쪽에 우리쪽의 것과 동일한 에너지가 감지되었어.”
혈청은 그들의 붕괴를 막는 일종의 자력 에너지 생성 포션이다.
마력을 어느 정도 지닌 물건이지만 마나 포션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들의 육체에는 마치 드라칸의 그것과 비슷한 ‘핵’ 이 존재했다.
그것은 제한 시간이 존재하기에.
제때에 적정한 기운을 주입해주지 않으면 붕괴의 단계에 돌입하는 식이었다.
“뭐야.”
아서가 그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고작 그 정도로 이런 반역을 저지르겠다고? 애당초 제대로 된 확신도 뭣도 없잖아? 단지 느낌일 뿐이라면 사실상 근거조차 없는 것 같은데.”
“근거라면 있다. 확신을 넘어서서 분명한 사실이 뒷받침된 이야기이지. 그러니까 너희들은 오로지 소장을 죽일 순간만을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그러니까 그게 뭔데? 섣불리 소장을 죽였다간 오히려 우리 목만 조이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약이 있다는 증거를 최소한 말이라도 제대로 해줘야 알 거 아냐.”
아서는 쉽게 물러설 모양새가 아니었다.
하긴 충분히 이해가 가는 판단이다.
현실적인 근거는 필요한 법이었다.
그들에게는 충분히 소장을 죽일 만한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소장을 죽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랬다간 지금보다도 더 큰 문제가 생기는 수가 있었다.
게다가 만약에라도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이라고 치자. 설령 혈청이 있어도 문제였다.
그 상대가 소장보다 나은 상대라는 가정이 없었다.
재수가 없으면 오히려 이전보다도 더 촘촘한 개 목줄에 붙잡히게 되는 수가 있는 법이었다.
이미 충분히 엿 같은 상황의 종착 지점에 도착해 있다고 생각하는 아서였지만, 이보다도 더 최악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세상에는 언제나 최악이라 생각한 것보다도 더욱 아래의 지점이란 게 있는 법이다.
아서, 그는 폭급한 성격을 지녔을 뿐이지 바보가 아니었다.
행동에는 그만한 근거가 되는 이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블레이드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아서.”
그는 무심한 듯한 시선으로 가만히 아서를 응시하더니 물어왔다.
“설사 그 상대가 누구이든 간에, 그 인간이 지금 저 소장보다 최악일 거라 생각하는 거냐? 최소한 고문까지 저지르진 않겠지.”
“그건…!”
아서가 뭐라 입을 열려던 순간.
블레이드는 대번에 그의 말을 잘라내고서 이어 말했다.
“그리고 확실하다.”
“그러니까 대체 뭐가? 그걸 말해줘야 알 거 아냐!”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몇 번쯤 전투를 치렀던 파일럿인 라피스라는 이름의 여자 말이다. 그녀에게서부터 느껴진 기운을 흡수했으니, 혈청의 존재는 분명히 있다.”
“설마, 너.”
아서가 그제야 이유를 알아차렸다는 듯 더듬거렸다.
그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네가 제한 시간이었던 사흘을 넘기고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게-.”
“너의 생각이 맞다, 아서. 나는 처음부터 특별했기에 사흘이라는 제한 시간을 넘어선 게 아니야. 그저 그 여자에게 머금어져 있던 혈청의 기운을 흡수했을 뿐이지. 턱없이 모자랐지만, 하루 정도의 수명을 늘리는 건 가능할 정도의 분량이었다.”
하지만 아서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런 사실을 이제껏 말하지 않았던 거야? 그냥 털어놨으면 됐잖아?”
“어떤 식으로든 알고 있는 이가 적을 필요가 있었다. 아는 사람의 수가 많으면, 그만큼 위험해지는 법이지.”
핑계는 그러했다.
어떤 식으로든 소장에게 정보가 새어나갈 만한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실상은 그와는 달랐다.
블레이드의 눈에는 오로지 한 가지의 열망만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이전에는 없던 강렬한 감정이었다.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녀’ 를 따른다.’
이미 어느 순간에서부터.
블레이드의 이성은 진작 잠식되어 있었다.
그가 전함 메타트론에 잠들어 있던 그녀의 존재를 감지한 그 순간에서부터.
이미 그의 온 정신은 그곳에만 꽂혀 있었다.
마치 홀리기라도 한 듯했다.
블레이드는 육체의 혼백이 빠져나가 텅 비어버린 인형이 되기라도 한 듯한 자신을 느꼈다.
지금의 그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그러한 상태를 분명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더욱 그곳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그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실제로 혈청의 기운을 머금은 덕분에 그가 기한을 넘기고서도 버텨낼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오히려 그러했다간, 모두가 블레이드의 이성이 정상이 아니란 것을 알아차리고서 반감까지 가질지도 모른다.
그것은 블레이드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형제자매들이 함께 계획에 찬동하여 그녀의 앞에 목도하는 상황을 바라고 있었다.
프로젝트 블레이드.
그들 형제가 속한 이 계획은 사실 유성이라는 인간과 드라칸의 사체를 의도적으로 합성하여 탄생시킨.
인간의 형상을 한 인공 드라칸을 뜻했다.
그때였다.
위이잉-!
돌연, 천장의 적색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블레이드, 아서. 지금 바로 통제실로! 적습이다! 블레이드와 아서는 지금 바로 통제실로 향하라!]
쿠구궁.
적습. 그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돌연 지면이 진동하며 떨려왔다.
* * *
퍼버버벙!
돌연, 신 연합 소속 주둔 기지의 어마어마한 화력이 하늘을 향해서 쏘아졌다.
다색 에너지의 섬광이 무언가를 노렸다.
하지만 하늘에서부터 추락하듯 떨어져 내리는 그것은 너무도 예민했다.
빛줄기를 늘어트리듯 탄환처럼 쏘아지면서.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게 그 모든 공세를 회피하더니 주둔 기지의 한 가운데에 쾅, 떨어져 내렸다.
[…….]
고오오오-.
푸른 안광을 빛내고 있는 그것.
그것은 다름 아닌 기가스 EF-07이었다. 그것도 구 연합 소속의.
그 모습에, 모니터 화면을 지켜보던 지휘부의 인원들이 술렁거렸다.
“뭐야. 고작 단 한 기뿐인데?”
“저게 전부야? 지원은 없는 건가?”
[해당 기가스는 구 연합 소속의 기체 EF-07입니다. 비교적 최근인 수 개월 전에 생산된 양산형 모델로 확인됩니다.]
구 연합과 신 연합은 서로 대립하는 상황이다.
물론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가능하다면 서로가 대치는 하되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치달으려 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언제나 그러할 수만은 없는 법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이미 몇 차례나 서로 무력적인 의미에서의 충돌을 했던 전적이 있었다.
이미 그들은 적이나 마찬가지의 상태였다.
단지 드라칸이라고 하는.
공공의 적이 있기에 서로가 서로를 무조건적으로 적대하는 상황을 피하려 할 뿐이었다.
주둔 기지의 지휘관은.
구 연합 소속의 기가스를 향해 통신을 전달했다.
[파일럿, 지금 자네는 우리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즉각 해당 구역에서 이탈하라.]
곧, 반대편의 통신 채널이 켜졌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유난히 무심한 눈이 인상적인 젊은 파일럿이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
[…내라.]
[뭐?]
[지금 이곳에 프로젝트 블레이드의 클론들이 있다는 걸 알고서 찾아왔다. 그놈들을 불러내라.]
기가스에 탑승하고 있는 상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유성이었다.
그가 자신을 겨누고 있는 포탑들을 둘러다 보더니 입을 열었다.
[가능하다면 빨리 불러내는 게 좋을 거다. 그러지 않는다면-.]
스릉!
뽑혀 나온 대검의 날에서부터, 예리한 기세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직접 나오도록 만들어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