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여왕체, 리브(5)
유성, 그의 생각대로였다.
완전체.
역시 놈은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그 흉악한 외형을 한 괴물 녀석이 그대로 순순히 돌아가 줄 리가 없겠지. 가뜩이나 군함이 있는 대로 포격을 흩뿌렸으니 성질도 잔뜩 뻗쳐 있었을 터. 상위체 놈들을 처리하자마자 곧장 이쪽으로 달려온 건가.’
놈이 이곳에 당도하기까지의 시간차의 간극을 잠시 떠올리자, 놈이 그들을 곧장 뒤쫓았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녀석이 그들을 놔줄 생각이 없다는 것.
그렇다면 정답은 정해졌다.
철그럭.
유성은 제 몸을 옥죄이고 있는 수갑을 내려다보면서 생각했다.
‘이제 문제는 내가 언제 풀려나느냐인데.’
완전체의 드라칸.
인류의 재앙인 놈을 상대할 파일럿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것은 전생에서도 그러했으며, 이번 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완전체를 상대하려면 그 최소한의 기준을 각성자로 놓고 보아야만 하는데, 문제는 각성자라는 게 그렇게 많을 턱이 없다는 점이었다.
당장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군부에서도, 그 존재를 아는 이들이 지극히 적었다.
알려지지조차 않았다는 의미다.
전생과 현생의 전 인류를 기준으로 놓고 봐도 그만큼 적을진대.
고작 콜로니 하나인 이곳 베자리우스 E.X 콜로니에는 아예 없을 확률이 컸다.
‘즉, 놈을 막을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날 제외한다면.’
그러므로-.
유성은 슬슬 때가 되었음을 인지했다.
지금이 그가 움직여야 할 때다.
다시 한번, 전투의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꿀꺽.
생각을 정한 순간.
유성은 망설이지 않고 마나 포션을 들이켰다.
목울대를 타고서 넘어간 마나 포션이 위장을 타고서, 그의 컨트롤에 따라 단숨에 그 기운이 뻗어 나갔다.
그 직후, 그의 안광에 시퍼런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력이었다.
한 점의 마나조차 존재하지 않던 그의 몸에 외부에서부터 유입된 ‘여분의 마력’이 생겨났다.
물론 그마저도 착용자의 모든 마력을 빨아들이는 수갑의 효과 탓에, 금세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유성은 그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찰나의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봉인을 해제하는 것이 충분할 만큼의 마나 능력자였다.
금세 사라지고 말 한 줌의 마력을, 그는 이용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흡.”
콰직.
숨을 들이켠 그가 양팔에 힘을 줌과 동시에.
수갑에 금이 쩍, 하고 갔다.
유성은 피식 웃었다.
“후. 쉽군.”
손목을 억죄며 마력을 봉하고 있던 수갑이 떨어져 나감과 동시에 그는 갑갑하게 막혀 있던 제 자신의 마나 능력이 해방됨을 느꼈다.
완전히 능력이 개방된 것이다.
‘팔목이 좀 쓸리는군.’
유성은 가볍게 팔목을 풀었다.
긴 시간 동안 손목을 억죄고 있던 탓에, 나름대로 갑갑했던 탓이다.
곧 숨을 가다듬은 그는 곧 자신을 가둔 감옥의 쇠창살로 다가섰다.
텁.
유성은 쇠창살을 붙잡았다.
그가 다시금 힘을 주자, 그 단단하던 창살이 쩍 벌어지며 휘었다.
마치 무른 소재로 이루어진 것처럼 말이다.
끼이익-!
유성이 울릴 정도로 요란하게 감옥의 창살을 벌리며 나온 직후.
“어, 어어……!”
유성은 자신을 마주 보며 안색이 굳은 두 명의 군인을 마주했다.
그들은 유성이 벌인 말도 안 되는 방식의 탈주에 놀라 뭐라 말조차 못하고 있었다.
“여어. 다들 반갑다.”
유성은 반가움을 표하기 위해 그들에게 손을 들었다.
그 나름의 친절함을 담은 인사였다.
하지만 군인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인지, 오히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다급하게 소리쳤다.
“움직이면 쏜다! 손들어!”
유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쏠 테면 한 번 쏴 보지?”
그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의 반응과 함께 걸음을 내디뎠다.
그 직후-.
타앙!! 팅-!
터져 나온 총성이, 강렬하게 복도 내에 울렸다.
하지만.
“어…….”
두 군인들은, 곧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의 황당함에 입을 천천히 벌렸다.
그들은 제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총구는 분명 전방의 유성을 향해 쏘아졌는데, 어째선지 총알은 허공에서 휘어나가기라도 한 듯이 약간 위로 틀어져서 박힌 것이다.
마치 총알이 그를 피해서 빗겨 나가기라도 한 듯.
“어, 어? 이게 무슨?”
몇 초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들은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곧이어 경악한 그들의 몸이 경련하듯 떨려왔다.
군인들은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전율했다.
“미, 친? 총알을…….”
“손으로 쳐낸다고? 이런 괴물 같은…….”
그들의 말처럼-.
유성의 손끝은 날카롭게 세워져 있었다.
그것은 흔히들 말하는 수도를 편 자세였다.
마나 사용자로서의 에너지의 정수인, 마력이.
그의 손에서 푸른빛을 머금은 채로 분명하게 발하고 있었다.
그는 곧 가늘게 눈을 뜨고는 군인들을 응시했다.
“너희들…….”
유성은 서늘한 눈빛과 함께 말했다.
“지금의 사격으로 내가 죽지 않은 것에나 감사해라. 만약 내가 너희들이 쏜 총에 맞아서 죽기라도 했다면 너희들도 마찬가지로 전원 싸그리 죽었을 테니까.”
“그, 게 대체 무슨……?”
군인들은 유성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더듬거리며 반사적으로 되물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아직까지 충격적인 당장의 현실이 이성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둔해 빠졌군.’
하지만 유성은 그들에게 구태여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없다면 완전체를 상대할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해 줄 이유가 없는 것은 물론.
애당초 그는 자잘한 설명을 해 줄 만큼이나 친절한 성격도 아니었다.
대신, 곧 저벅저벅 걸어온 유성은.
우직!
군인들의 총을 빼앗아 손아귀의 힘만으로 짓뭉갰다.
단순한 손의 악력만으로 그 단단한 총기를 한낱 고철로 으스러트린 그는.
이내 딱딱하게 굳어 버린 군인들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그의 기세에서는 친구를 대하는 듯한 친근함마저 느껴졌다.
“너무 긴장하지들 말라고.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피식 웃은 유성은 곧 굳어 버린 그들을 향해 한 번씩 눈길을 주고는.
“다들 잘 있어라.”
이내 멍하게 서 있기만 하는 군인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는 감옥을 나섰다.
* * *
같은 시각.
베자리우스 E.X 콜로니의 사령부.
위잉-! 위잉-!
군은 현재 혼란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사령관 솔라스 란은 휘하 군인들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즉시 가용 가능한 군함과 전투 인력 모두 내보내! 콜로니에 놈이 접근하게 두지 마라!”
“사령관님! 이전에 놈의 습격으로 대부분이 당한 탓에 가용 전력은 4척의 군함이 유일합니다!”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 콜로니가 통째로 터져 버릴 때까지 보고 있을 건가?!”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완전체의 드라칸.
놈은 베자리우스 E.X 콜로니의 마지막 남은 군함들마저 박살 낼 기세로 콜로니를 쏘다니고 있었다.
콜로니 내에 굉음과 진동이 울려 퍼질 때면, 어김없이 놈의 파괴 행각이 자행되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실시간으로 콜로니가 불타오르는 광경이 비쳤다.
[■■■■!]
놈은 군함과 콜로니로부터 쏟아지는 무수한 포격을 절묘하게 피해 내며 반대로 철저한 파괴 행위를 가했다.
믿을 수 없지만 녀석은 색적 반응에 탐지되지 않는다.
놈은 군의 탐지를 귀신같이 뚫고서 나타났다.
그 은밀한 기습에 어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사령관 솔라스 란의 표정은 형편없이 구겨졌다.
아득 쥔 주먹에서 새파란 기운이 새어 나왔다.
“이런 빌어먹을! 저 괴물 자식이! 아주 제대로 성질이 뻗쳤군!”
[■■-!!]
나타난 완전체는 평소 이상으로 지극히 위협적이었다.
이전에는 그래도 먼저 건드리지 않는 한 섣불리 군함을 건드리려는 기색은 없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평소의 관망하려던 신중한 기색은 어디로 간 것인지 등장한 이래 처음, 콜로니를 죄다 박살 낼 기세로 달려들었던 것이다.
녀석이 모습을 드러낸 이후로 베자리우스 E.X 콜로니가 몇 번이나 놈을 마주했음에도 아직 전력을 유지하고 있던 이유는 그래서였다.
녀석의 기세는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파괴 행각.
쏟아지는 포탑 공격을 죄다 피해 내고, 자신을 노리고 날아드는 거대한 미사일을 붙잡더니 오히려 군함과 기가스를 향해 내던지는 등.
놈의 공격이 행해질 때마다 베자리우스 E.X 콜로니의 전력은 하나씩 착실하게 날아가고 있었다.
“사령관님! 이전과는 다르게 물러설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습니다!”
으득.
사령관 솔라스 란은 이를 악물었다.
“저 기세는 흡사 열이라도 잔뜩 받은 것 같은데. 설마, 그 파일럿을 구하기 위해 있는 대로 포격을 날렸던 걸 기억하고 있는 건가……!”
이곳은 군사 시설인 만큼 과거의 기록 또한 찾아볼 수 있었다.
예전 지구 시설의 기록대로라면 드라칸은 분명 높은 지성을 가진 괴물이었다.
그 말은 한 번 당한 것을 고스란히 돌려줄 만한 지성마저 갖추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즉, 지금 녀석이 있는 대로 공격을 퍼붓고 있는 것은 놈이 머리끝까지 화가 뻗쳤다는 것을 뜻했다.
놈에게는 군함의 포격조차 사실상 시간을 끄는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그 밖에 포탑이나 탄 류의 공격은 조금도 먹히지 않았다.
사실상 무적이나 다름이 없는 존재다.
지금도 군함은 그저 무의미한 공격을 있는 대로 쏟아 붓고 있을 뿐이었다.
그 한심스러울 정도로 빈약한 저항에 지금 이 순간에도 군함과 기가스, 전투기들이 차례로 폭발과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저 군함들이 모두 전멸하고 나면 그다음 차례는 불 보듯 뻔했다.
인공행성, 콜로니의 차례일 터다.
보다 못한 솔라스 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령관님, 어디로 가시려고?”
“지금 바로 그 파일럿에게로 갈 거다. 해당 영상 띄워.”
“아,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군인은 즉각 예의 파일럿, 유성이 갇혀 있던 감옥의 영상을 띄웠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는 빈 감옥만이 있었다.
카메라의 어느 각도를 보아도, 유성이 보이지 않았다.
“뭐야?”
그는 홱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그 파일럿은 어디로 갔지?”
“그, 그게…….”
“뭔가! 대답해!”
“사, 사라졌다고…… 지금 확인해 본 결과 자력으로 감옥을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사령관이 안색을 처참하게 일그러뜨렸다.
파일럿이 사라졌다는 말은,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애초부터 솔라스 란은 지금의 상황을 감수하고서 유성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었으므로.
* * *
같은 시각.
잠시간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소녀는.
이내 전식을 한 입 크게 떠먹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소리쳤다.
“마시써!”
“……그래?”
“응!!”
라피스는 애써 웃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소녀는 금세 식사에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뭐가 그리도 좋은지, 소녀는 양다리를 흔들거리고 있었다.
“…….”
그녀는 조용히 눈앞의 소녀를 응시했다.
스푼으로 푹 떠서 앙 집어먹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인간의 아이였다.
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어린 소녀의 외형을 한, 분명한 인간.
수저로 식사를 한입 떠먹을 때마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라피스를 올려다보며 소녀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라피스 또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 주었다.
하지만 라피스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순한 소녀의 외형과는 다르게 그 내면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말이다.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어린 소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과는 아예 그 거리부터가 먼 간극을 가진 존재였다. 그와는 완전히 다른 종이다.
‘이 아이는…… 인간이 아냐. 아이? 틀려. 이건…… 이건, 드라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