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여왕체, 리브(6)
‘이 아이는…… 인간이 아냐. 이건…… 이건, 드라칸이다.’
이질적이다. 의아하다. 의심마저 치밀어 든다.
온갖 생각이 치밀어 들었다
어떻게 드라칸이 인간의 형상을 취할 수 있는 거지? 과연 이것이 가능은 한 일인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어쩌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어쩌면 사실 눈앞의 소녀가 드라칸이 아니라 인간일지도.’
드라칸은 괴물이다. 인간과는 아예 종 자체가 틀렸다.
생김새는 말할 것도 없고, 분위기부터가 다른 종임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존재였다.
라피스는 드라칸을 코앞에서 마주한 적이 몇 번이나 있어왔기에 결코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소녀는 그렇지 않았다.
어째서 드라칸이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것인가.
그녀는 눈앞의 이 상황 자체를 의심했다.
지극히 작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드라칸이 인간의 형상을 취할 가능성보다, 그녀 자신이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쪽의 가능성이 더 높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분명히 눈을 뜨고 있었고, 이것은 현실임이 틀림이 없었다.
꿈이라거나, 착각일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닐 거야. 불가능해. 차라리 내가 지금 마주하는 건 드라칸이 아니라 길을 잃은 소녀라던가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눈앞의 아이에게서부터 느껴지는 마력량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비대했다.
그것은 일개 인간이 가지기에는 너무도 커다란 것이었다.
적어도 라피스의 두 배는 되어 보일 정도로 막대한 양이었다.
이미 생도라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기갑 파일럿 못지않은 마력량을 보유한 그녀다.
그런 그녀보다도 압도적인 에너지를 지녔다는 말은, 적어도 그 존재가 보통의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다.
가뜩이나 마력을 감지하는 데에는 숙련되지 못한 그녀다.
때문에 코앞에서 직접 마주하고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던 사실이다.
라피스가 웬만한 기갑 파일럿에 준할 만큼이나 많은 수준의 마력을 가졌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이 소녀가 얼마나 대단한 수준의 마력을 가진 것인지에 대해서 예상할 수 있었다.
‘이게…… 이게, 가능한 일인 건가?’
쿠구구궁-.
그때였다. 다시금 콜로니가 뒤흔들렸다.
아직도 바깥에서는 여전히 연속된 진동과 폭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상황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이곳에 온 뒤로, 줄곧 조용했던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함선 메티스의 지휘부는 탑승한 사람들을 비롯하여 라피스에게도 어떠한 공지도 하지 않았다.
급히 통제실로 달려간 라피스가 아스트라 부함장에게 물어봐도 답변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대답 없이 고개만을 저을 뿐이었다.
그저 어디 가지 말고 숙소에서만 조용히 지내고 있으라는 통지만이 내려왔다.
하지만 아스트라 부함장은 분명 무언가를 말해 주기는 했었다.
라피스는 그가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고는 있다고 했지. 그래서 나오지 말라고 했고.’
하지만 아스트라 부함장은 이번만큼은 단언했다.
라피스 그녀가 나설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일단 베자리우스 E.X 콜로니에 들어온 이상, 일개 생도에 불과한 라피스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가 않았다.
실제로도 그녀는 이곳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지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이제껏 전투 인원으로 활동했다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상황이 그러했을 뿐이다.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설령 드라칸이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콜로니의 기갑 파일럿과 군함이 있는 이곳에서 일개 생도에 불과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그녀는 자신에 대해서 잘 알았다.
대가문의 후계자이든 무엇이든, 결국 지금의 그녀는 일개 생도의 신분이었다.
진짜 군인도, 진짜 파일럿도 아니었다.
그저 필요에 의해서 아주 잠시간 함선 메티스에서 파일럿의 대용으로 활동했을 뿐인 것이다.
설령 함선 메티스에서 필요에 의해 파일럿으로 활동했다고는 하더라도, 그 수준은 엄밀히 말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조용히 있는 것이 전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 하나만이 그녀가 현재 가지는 복잡한 요소가 아니다.
스푼으로 앙 떠먹고 있는 소녀.
겉으로 보기에는 놀랄 만큼이나 귀여운 외형을 가졌으나.
정작, 그러한 아이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란.
결코 정상적이지 못했다.
라피스는 소녀의 주변에 흐르는 마력이 한 점을 이루어 모여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주변의 마력이…… 이끌리듯 끌려가고 있다? 아니. 잡아먹히는 거야. 이건.’
마치 마력을 흡수하기라도 하듯이.
소녀를 중심으로 마력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마력 생명체 드라칸.
그 단어 그대로의 현상이 아이의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라피스는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외견과 그 행동이야 어찌 되었든 이 아이는 드라칸임이 분명했다.
저 소녀가 당장 괴물의 형체를 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일었다.
“…….”
“웅?”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소녀를 심각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던 라피스는 순간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반사적으로 손에 미약한 마력을 끌어올렸다.
라피스는 순간 저도 모르게 다른 상상을 했다.
눈앞의 여자아이에게서, 날카로운 발톱이 솟구쳐 그녀에게 날아드는 광경을.
그리고 흉포한 이빨을 치켜들어, 그녀의 목덜미를 무는 상상을.
드라칸의 위험성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던 그녀였다.
그렇기에 눈앞의 아이로부터 자꾸 그러한 연상이 되는 것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
라피스를 마주 응시하던 소녀는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수저를 입에 문 소녀는 곧이어 의아함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라피스에게 물었다.
“왜 그래, 엄마?”
“아. 아니야, 아무것도.”
하지만 대답하면서도, 목소리가 떨리는 것만은 감출 수 없었다.
라피스는 애써 바짝 굳은 몸의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다.
소녀가 지그시 그녀를 응시했다.
그 말이 없는 무언의 시선이, 왠지 모르게 서늘하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내면을 꿰뚫는 것만 같다.
라피스는 문득 그러한 시선이 왠지 모르게 유성과도 비슷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으, 응?”
반사적으로 대답한 라피스였지만.
곧이어, 그녀는 의아한 듯 묻는 소녀의 음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날 왜 두려워해?”
라피스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드라칸은 괴물이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인간의 형상을 한 이것은.
과연 괴물인가?
아니면…… 인간의 살가죽을 뒤집어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인간인 것인가.
그녀는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그러한 긴장감으로 인해 라피스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눈앞의 드라칸 여왕체.
아이가, 그녀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근데 엄마.”
“……으, 응?”
아이는 비칠 만큼이나 투명한 바닷빛 눈동자를 빛내더니.
이내, 작은 손을 들어 천장을 가리켰다.
그러자 라피스의 시선 또한 반사적으로 천장 쪽을 향했다.
당연하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천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직후에 소녀의 입에서부터 튀어나온 내용은 전혀 뜬금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바깥에서 우리를 노리는 존재가 있는데.”
“……뭐?”
그 말뜻을 듣자마자 라피스의 안색이 굳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인가.
라피스는 뜬금없는 내용을 담은 소녀의 말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야 했다.
쿠구궁-.
하지만 곧, 의문 섞인 생각이 해결되기까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이것의 정체를 순간적으로 직감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콜로니를 통째로 뒤흔들 만한 게 생각난다면.
그것은 오로지 단 하나뿐이었다.
“설마…… 드라칸? 완전체를 말하는 거야?”
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되묻는다.
“뭐야. 완전체인 걸 어떻게 아는 거야?”
라피스는 입을 벌렸다.
아무래도, 이 소녀는 그것의 정체조차도 이미 알고 있던 모양이다.
* * *
저벅. 저벅.
베자리우스 E.X 콜로니의 군사 격납고.
다수의 총기를 든 군인들이 대기하고 있는 이 장소에.
대기하고 있던 기가스를 향해 흑색의 코트와 가면을 쓴 인물이 다가서고 있었다.
기가스 엔지니어들은 자연스럽게 다가서는 한 인물의 등장에 시선이 향했다.
“어, 어? 저건……?”
“파, 파일럿…… 같지?”
“그런데 복장이 왜 저래?”
그들은 낯선 인물의 등장에 의아해하면서도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았다.
그만큼 남자의 걸음새가 자연스러운 데다가 군사 콜로니인 이곳에 외부인이 나타날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뒤늦게야 격납고에 군인들이 나타나 소리쳤다.
“저거 막아! 비등록자다! 파일럿이 아냐!”
“이미 늦었다.”
정체불명의 비등록자. 유성은 차게 조소하며, 탑승했다.
뒤늦게야, 그를 막기 위해 군인들이 다가와 그가 올라탄 기가스를 향해 총알을 갈겼다.
그 우스울 정도의 늦장 대응에.
이미 기가스의 조종석에 앉아 준비를 끝마친 유성은 조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아주 기강이 게을러터졌군. 대놓고 걸어와서 기가스에 탑승하는데도 멀뚱멀뚱 보고 있다니.’
멍청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평화에 찌들어 있다고 해야 할까.
경계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 아둔하기까지 한 군의 반응에 그저 헛웃음만 나올 지경이다.
하긴 우주의 한가운데에서 침입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기는 했지만.
제아무리 그렇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것인지 유성 그로서는 그저 의문만 들 뿐이다.
해도 해도 정도라는 게 있을 텐데 참 대단하기도 했다.
유성은 돌연 차갑게 인상을 가라앉혔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너절한 것들이라도 제대로 싸워 줄 거라 믿은 내가 어리석었다.’
너절하다. 그 말대로였다.
기강도 잡혀 있지 않다. 경계심도 잡혀 있지 않다.
하물며, 적에 대한 접근마저 미리 알아차리고도 방비하지 못하다니. 개판 중의 개판이다.
유성은 혐오스러울 정도로 무능력한 현 시대의 군인들을 차게 욕했다.
“멍청한 놈들. 아주 최악을 달리는구나. 뭐, 그 덕분에 내가 편해지기는 했지만.”
그는 사납게 읊조리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전투형의 기가스, EF-06이 새파란 안광을 뿜어내며 기동하기 시작했다.
유성은 떠오르는 인터페이스 화면을 보며, 빠르게 정보를 습득했다.
그의 눈동자가 화면을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훑어 나갔다.
‘군의 최신 세대 기체인 EF-06인가.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신형이기는 한데.’
나름대로 군 전용의 신형인 것인지, 이것은 이전에 유성이 탑승해 싸웠던 기가스 EF-05보다 한 단계 발전한 것이었다.
하지만 금세 유성의 표정은 구겨졌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봐야…… 원래 타고 있던 쪽이 훨씬 낫겠군. 여긴 드라칸의 핵이 달려 있지 않으니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