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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4화 (4/200)

4화. 각성하다(1)

[야.]

[■■■?]

뒤편에서 느껴지는 음성.

놀란 드라칸이 뒤를 돌아본 직후.

놈의 머리에 검이 처박혔다.

검? 아니, 그것은 좀 더 정확히 말해서 검이 아닌 ‘드릴’이었다.

위이잉-!

그것도 고속으로 회전하고 있는 드릴.

라피스는 그것의 생김새가 어째서인지 익숙하다고 느꼈다.

“이, 이게 무슨…….”

모두가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눈만 껌뻑였다.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공격당한 것은, 그들이 아닌 드라칸이었다.

아무도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드릴에 의해 관통당한 드라칸의 고개가 서서히 수그러들었다.

쿵!

놈의 커다란 머리가, 대피소의 천장에 쓰러졌다.

‘대체 누가? 어떻게?’

온갖 생각들이 동시에 머리에 자리 잡았지만, 그것은 금세 깨어져 나갔다.

그리고 곧, 놈을 죽인 기가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라피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두 눈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는 강철의 존재.

라피스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스크래퍼?”

드라칸의 뒤편을 강습한 것은, 기가스였다.

그것도 오늘까지만 하더라도 그녀 자신이 탑승했었던 산업용 기가스, 스크래퍼였다.

살았다는 안도감보다도 저기에 누가 타고 있는지.

그에 대한 의문이 먼저 솟구치려는 순간.

[젠장. 더럽게 단단하네.]

더없이 익숙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가 입을 벌렸다.

“……설마.”

라피스는 스크래퍼를 올려다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진짜 유성? 유성이야?”

[그래.]

대답과 함께, 유성은 대피소의 문을 붙잡아 비틀었다.

끼기긱, 하는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함께 단단하게 버티던 문짝이 이내 부서졌다.

유성은 안에 있을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나오세요!]

그 말에 사람들은 머뭇거리다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유성의 친구, 라피스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들은 유성이 아닌 그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잔뜩 놀라 뒤편을 가리켰다.

“어, 어어……!”

“유성! 뒤, 뒤쪽을 봐!”

[뭐?]

유성이 기가스의 고개를 움직여 시야를 돌린 순간.

저편에서 트럭만큼이나 커다란 덩치의 드라칸이 스멀거리며 움직이는 게 보였다.

수많은 다리를 꿈틀거리며 등에 작은 날개를 단 놈은.

흡사 호랑나비의 유생이라는 애벌레의 형상과도 비슷하게 생겼다.

유성은 놈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저건?’

드라칸이라는 건 수없이 많은 종류와 단계를 가지고서 진화하는 생명체였다.

양산체는 그중에서도 가장 아래 단계에 위치한 등급이었다.

행성의 자원을 채취하며, 드라칸의 무리에 기여하는 제대로 된 곤충의 형상을 갖추지 않은.

즉, 쉽게 말해 드라칸 무리의 일꾼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놈은 인간 정도의 사이즈는 한순간에 삼켜 버릴 정도로 거대한 데다 그 자체의 능력도 우스운 수준이 아니었다.

유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들 여기서 피하세요!]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람들은 서둘러 도망치기 시작했다.

유성은 드라칸을 맞상대하기 위해 달려가려는데,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라피스가 여전히 그대로 있는 게 보였다.

이대로 있다간 그대로 유성 그와 드라칸 간의 싸움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

유성은 어찌해야 할지 주저했다.

[큭, 젠장!]

하는 수 없이 유성은 스크래퍼의 몸체를 숙여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허락을 맡을 새도 없이 라피스의 몸을 붙잡았다.

라피스가 질끈 감았던 눈을 다시금 떴을 때, 그녀는 스크래퍼의 손 위에 있었다.

기잉-.

해치를 연 유성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라피스!”

“어…….”

하지만 라피스는 그저 두 눈을 멍하니 깜빡였다.

“진짜 유성?”

분명 유성, 그가 맞았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몸이 받아들이는 게 느렸다.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옆에 타, 빨리!”

거듭되는 재촉에, 라피스는 조종석에 올라탔다.

조종석은 둘이 타기에는 비좁았다.

애초에 일인용이 전제였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라피스는 그런 자잘한 생각들보다도, 어떻게 유성이 스크래퍼를 조종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먼저 들었다.

왜냐하면, 유성은 마나 사용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스크래퍼가 거칠게 움직였다.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드라칸을 향해 내달렸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도망치는 사람들을 덮칠 기세라, 스크래퍼를 움직여 놈을 막아냈다.

쿠웅!

“꺄악!”

거친 충돌에 조종석에 있던 유성과 라피스의 몸이 순간 크게 들썩였다.

유성은 이미 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라피스가 놀라 소리쳤다.

드라칸은 스크래퍼보다 반절 정도 작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습게 볼 수준은 아니었다.

[■■■!]

놈이 주둥아리를 쫙 벌려 스크래퍼를 물어뜯으려 하자, 유성은 놈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놈의 머리를 향해 드릴을 내려찍었다.

콰득!

놈의 머리가 그대로 관통당하며, 순간적으로 시퍼런 체액이 확 튀었다.

살점이 찢겨 나가며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하지만 놈은 그 상태에서도 살아남았다.

유성은 보다 많은 양의 마력을 주입해 드릴을 회전시켰다.

위이잉-!

드릴이 고속으로 회전함과 동시에, 놈의 머리통이 인정사정없이 갈렸다. 산산조각으로 살점이 흩어졌다.

살점이 갈려 나가는 저항감이 느껴졌다.

“진짜 더럽게도 육질이 단단하네.”

드릴에 의해 갈려 나간 놈의 체액과 살점 일부가 스크래퍼에 달라붙었다.

유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놈을 죽이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는 스크래퍼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것을 눈치챘다.

도망치려는 사람들의 뒤를 지키기 위해 공격을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맞부딪혔다.

그 결과 기가스의 관절 일부가 뒤틀린 게 느껴졌다.

기체의 손상이 제법 심각했다.

‘정말 엿 같군, 빌어먹을.’

그는 속으로 욕설을 지껄였다.

‘어떻게 만들어 낸 기가스인데.’

공들여 제작한 스크래퍼가 자기 자신의 손에 의해 망가졌다.

유성의 입장으로서는 기분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스크래퍼는 그다지 튼튼하지 않았다.

진짜 전문가가 아닌, 한낱 생도인 그가 제작한 기가스였으니까.

나름대로 손을 봤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전투용 기가스도 아니었다.

“하아. 죽겠…….”

하지만 그가 채 인상을 펼 새조차도 없이.

다음 상대가 나타났다.

“유성, 저기!”

라피스가 놀라 소리쳤다.

유성은 놈의 모습에 인상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놈.

드라칸은 ‘확연한 곤충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방금 전 유성이 갈아 버린 애벌레 형태 따위가 아니라.

날렵한 말벌의 형체를 하고 있었다.

“하아.”

그 모습에 유성은 한숨 섞인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돌겠군. 이번에는 전투체인가.”

전투체 등급.

양산체 다음 가는 등급의 드라칸을 뜻했다.

드라칸으로서의 특성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단계.

놈들은 전투체라는 그 이름처럼 전투를 목적으로 생산해 내는 전투용 등급의 생명체였다.

또한, 단계가 올라갈수록 강해지는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온몸에 갑각이 돋아나기 시작하는데, 그 갑각의 방어력은.

그저 자원이나 채취한다는 양산체 등급들도 총알 따위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판에, 그보다 한 단계 위의 전투체들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비교도 못 할 만큼 강하다.

놈들에게 먹히는 공격은, 오로지 마나가 서린 것뿐이었다.

전투체라는 건, 이전 양산체로서의 애매한 외견을 완전히 버리고.

곤충과 같은 겉모습과 함께 분명한 전투용으로의 성장 방향성을 가지고 태어난 드라칸이었다.

태어난 목적부터가 다르니, 강함 또한 아예 수준이 달랐다.

‘망할 괴물 자식들.’

전투체부터는 진정한 무서움을 드러내기 시작한 공포의 괴물이었다.

맨몸으로 놈들과 맞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라면 가능하다.’

지금 그는 기가스에 탑승한 상태였다.

그것이 비록 진짜 전투용 기가스가 아닌 그저 움직임만을 흉내 내어 산업용을 목적으로 한 기가스일지라도.

결국 그것이 기가스인 이상에야 충분히 유성에게는 가능했다.

방금 전, 양산체를 상대했던 경험을 토대로 그는 확신했다.

‘충분히 가능해. 지금의 나라도 저 정도의 놈들을 상대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위이잉-!

유성은 스크래퍼에 보다 많은 양의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기가스의 오른팔에 달린 드릴이 예리한 소음을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남아 있는 마력을 모조리 사용할 기세로 쏟아부었다.

하지만 유성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 드릴 외에, 그에게 무기라고 할 만한 어떠한 것도 없었으니까.

기회는 오로지 한 번이다.

기가스 스크래퍼는 결국 조잡한 강철을 덧대어 만들어진 조잡한 기가스일 뿐이었다.

양산체도 아닌 전투체의 공격을 제대로 받아 냈다간, 충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그대로 박살 날 게 분명했다.

[■■■■-!]

놈이 달려드는 순간.

유성 또한 놈을 향해 내달렸다.

놈이 공격을 하려는 것을 감지해, 간발의 차로 회피하며.

유성은 고속으로 회전하는 드릴을 놈의 정수리에 박아 넣었다.

촤아아악, 놈의 몸이 달려오던 그대로 머리부터 끝까지 갈려 나갔다.

드릴에 완전히 내부가 갈려 나간 드라칸의 사체가 바닥에 쿵 떨어졌다.

“하아, 하아.”

유성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는, 놈을 상대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채 기뻐할 틈조차 없었다.

두 눈에서 흘러나오던 마나가 서서히 흐트러지며, 기가스 스크래퍼와의 연결 또한 끊어졌다.

연결이 끊긴 스크래퍼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마나 능력을 각성하자마자, 무리한 전투를 이었던 탓이었다.

이번 생 처음으로 마나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스크래퍼를 지금까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시야가 순식간에 뿌옇게 변했다.

스르륵.

유성은 자신의 양팔을 지탱할 힘조차도 잃어, 힘없이 떨궜다.

그런 그의 이상을 알아차렸는지, 귓가가 시끄러웠다.

“어…… 유성? ……유성?!”

“…….”

라피스가 자신을 흔들며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쏟아지는 어지러움을 이겨내지 못한 유성은.

그대로 눈을 감고야 말았다.

정신을 잃어가던 유성은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이전처럼 저세상만 아니었으면 좋겠군.’

* * *

“…….”

눈꺼풀이 무거웠다.

하지만 유성은,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떴다.

시야가 흐릿하다.

‘뭐지? 누가?’

그가 다시금 눈을 떴을 때, 스크래퍼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쿠웅-. 쿠웅-.

조종석이 미약한 진동과 함께 흔들렸다.

분명 누군가가 그를 대신해 기가스를 움직이고 있었다.

흐릿한 시야를 움직여 확인하니, 그 정체는 다름 아닌 라피스였다.

유성은 바짝 마른 메마른 입을 열어 그녀를 불렀다.

“라…… 피스.”

“일어났어?”

라피스는 유성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유성의 몸이 뒤편으로 옮겨져 있었는데, 라피스가 그런 모양이었다.

“마셔.”

라피스는 옆에 놓여 있던 물을 건넸다.

“……고, 마워.”

입이 바짝 마른 탓에, 대답조차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방금 전까지 유성은, 온몸의 마력을 쥐어짜내 가면서 싸웠으니까.

순식간에 물을 모두 마셔 버리고서, 그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아. 죽겠군.”

온몸이 바싹 마른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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