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 * *
오랜만에 이뤄진 부모님과의 시간.
즐거운 시간이었다.
밥맛도 좋았다.
요리를 잘하시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셔서인지 독일에서 먹었던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었다.
더구나 부모님은 진 바그너의 입담에도 즐거워하셨다.
모든 게 완벽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모님은 곧 아쉬움을 드러내셨다.
신재욱이 국가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 움직여야 할 시간이라는 걸 아셨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들! 부담 가지지 말고 형들한테 배운다는 생각으로 즐기렴.”
“재욱아, 다 너보다 형들이니까 잘 따라다니면서 놀다 와. 그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그리고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두 분 모두 마지막까지 신재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셨다.
“안 다치게 잘 즐기고, 독일로 안전하게 돌아갈게요! 그럼 이제 가볼게요!”
신재욱은 부모님께 다급히 작별 인사를 하며 집을 나섰다.
더 오래 있기가 힘들었다.
다시 한번 눈이 따가워질 것만 같았으니까.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것 같네. 근데 또 몸은 만 16살인데…….’
잠시 후, 감정을 컨트롤한 신재욱은 진 바그너와 함께 택시에 올라탔다.
“전에도 느꼈지만, 신재욱 선수의 부모님은 정말 좋으신 분들 같아요.”
“좋죠. 감사한 분들이고요.”
“저한테도 그렇게까지 따뜻하게 대해주실 줄은 몰랐는데…… 솔직히 정말 많이 감동받았어요. 하마터면 신재욱 선수처럼 울 뻔했다니까요?”
“예? 누가 울었다고 그래요?”
“신재욱 선수요. 운 거 제가 다 봤어요.”
“오해를 많이 하시네. 순간적으로 눈이 따가웠던 거예요.”
“그렇다고 치죠.”
“아니, 치는 게 아니고요. 진짜 눈이 따가웠다니까요?”
“하하! 한국의 공기가 독일과 다르긴 하더라고요.”
“…….”
신재욱은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봤다.
옆에서 진 바그너가 계속해서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왔지만, 대충 흘려버렸다.
여기서 더 대화를 나눠봤자 놀림만 당할 게 뻔했으니까.
“조심히 들어가세요.”
택시 기사에게 인사를 하며, 신재욱은 차에서 내렸다.
현재 위치는 청소년 국가대표팀 훈련장 근처였다.
“신분증 좀 확인하겠습니다.”
신재욱은 입구에서 신분증을 내민 뒤, 훈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약속된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왔기 때문일까?
훈련장 안에는 선수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관계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다행히 신재욱 선수가 빨리 온 편인 것 같네요.”
“그러게요. 사람이 많이 없네요.”
신재욱은 진 바그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 처음 온 곳이었기에 예의상 그리고 비즈니스상 관계자들, 선수들과 인사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신입이 먼저 다가가는 게 낫지. 겉으로는 막내이기도 하고.’
삶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살았던 신재욱이지만, 한국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어버린 친어머니의 교육 덕이었다.
물론 한국의 시스템을 전부 따를 생각은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은 철저히 무시할 생각이었다.
‘만약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 오면 그냥 부숴버리면 되는 거고.’
관계자들은 신재욱을 반갑게 맞아줬다.
팀의 막내여서였을까?
그들은 신재욱을 귀엽다는 듯 바라봤다.
‘하…… 저런 눈빛들은 도통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신재욱이 머리를 긁적이며 이번엔 선수들을 향해 다가갔다.
훈련장에 있던 선수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청소년 국가대표에 뽑힐 정도면 이미 국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연스레 다른 엘리트 선수들과도 연령별 대표팀에서 계속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이미 여러 번 호흡을 맞춰봤겠지.’
반면 어릴 때부터 독일로 날아간 신재욱에겐 전부 생소한 얼굴들이었다.
당연히 어색했다. 혼자만 동떨어진 느낌. 이런 상황에선 대부분의 선수가 위축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신재욱은 어디서든 위축되는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U20 대표팀 선수들을 향해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U20 대표팀에 합류한 신재욱입니다.”
* * *
‘뭐야?’
신재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대에게 인사를 하면 보통은 인사가 돌아오기 마련인데, 돌아오질 않았다.
즉, 무시를 당한 것이다.
‘여기도야?’
텃세.
유럽에 오래 살면서 워낙 자주 당했었던 것이기에 당황스럽진 않았다.
다만 여전히 기분은 좋지 않았다.
‘같은 한국인들끼리 텃세를 부린다고? 내가 오늘 새로 들어와서 그런 건가? 아니면 자리를 뺏길까 경계하는 건가?’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들이 자신의 인사를 받지 않고 무시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여러 개의 이유가 떠올랐다.
그러나 납득되진 않았다.
전부 너무 찌질한 이유였으니까.
그래서.
신재욱은 다시 한번 선수들에게 다가가 자신을 소개했다.
목소리도 전보다 훨씬 더 높였다.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으로 대표팀에 합류한 신재욱입니다.”
하지만 반응은 여전히 같았다.
훈련장에 모인 선수들은 신재욱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투명인간이라도 된 것 같네.”
신재욱은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무시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더 다가갈 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앞으로 저들에겐 예의를 지켜줄 생각도 없었다.
예의를 지키는 건 방금 한 2번의 인사로 충분했으니까.
“훈련이나 하고 있을까?”
관계자에게 공을 받은 뒤, 신재욱은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아직 선수들이 전부 도착하려면 시간이 제법 남아있었기에 가벼운 훈련을 하기엔 충분했다.
“놀면 뭐 해. 시간만 아깝지.”
처음 시작은 스트레칭이었다.
매번 해왔던 패턴이지만, 신재욱은 이 부분에서만큼은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훈련 전 스트레칭은 필수였다.
“어우! 비행기를 오래 타서 그런가? 찌뿌둥하네.”
신재욱은 굳은 근육들을 차례로 풀어주며 몸을 달궜다.
잠시 후, 몸을 다 풀자마자 공을 가지고 트래핑을 하기 시작했다.
툭! 툭! 툭!
제자리에서 공을 떨어뜨리지 않는 트래핑을 한참이나 이어가던 그는 이번에는 움직이며 트래핑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좋은 트래핑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훈련으로 신재욱이 즐겨 하는 훈련이었다.
다음으론 기술 훈련에 들어갔다.
휘익! 투웅!
신재욱은 평소에 자주 구사하던 드리블 기술들을 번갈아 가며 펼쳤다.
‘지금처럼 훈련 때 미리 연습을 해둬야 실전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거든.’
어느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하지만 신재욱의 집중력은 흔들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공과 함께 움직이며 훈련을 이어갔다.
“후…… 여기까지만 할까?”
신재욱이 하던 것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남는 시간에 가볍게 하려던 훈련이었는데 집중하다 보니 생각보다 강도가 높아졌다.
이젠 그만해야 했다.
정식 훈련을 대비해야 했으니까.
더구나 저 멀리서 걸어들어오는 감독의 모습이 보였으니까.
‘안기혁 감독.’
신재욱은 U20 국가대표팀 감독인 안기혁을 바라봤다.
이미 조사를 하고 왔기에 그에 대한 정보는 머릿속에 있었다.
‘한국 국가대표 출신이고 현역 때 꽤 실력이 좋은 미드필더였다지? 하지만 청소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는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지 못해서 입지가 불안하다고 했어. 그렇다는 건…… 이번 U―20 월드컵에 사활을 걸 가능성이 높겠지.’
언제 경질될지 모르는 불안한 위치의 감독.
현재 안기혁 감독이 처한 상황이었다.
그래서일까?
50대의 나이를 지닌 그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탄탄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는데, 반대로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나 보네. 하긴…… 성적 못 내는 감독님들 중에서 안색이 좋았던 분이 없긴 했지.’
환생 전, 안색이 좋지 못했던 감독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부 팀 성적을 내지 못하며 입지가 불안한 감독들이었다.
“다들 반갑다. 익숙한 얼굴들도 보이고, 이번에 처음 보는 얼굴도 보이네?”
그렇게 말하며, 안기혁 감독의 시선은 신재욱에게로 향했다.
안색은 좋지 못했지만, 눈빛만큼은 카리스마가 담겨 있었다.
웬만한 선수들은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 정도로 강렬한 눈빛.
그러나.
신재욱은 안기혁 감독의 시선을 덤덤하게 받아넘겼다.
역시나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동시에.
씨익!
특유의 여유가 넘치는 미소와 함께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감독님. 이번에 청소년 대표팀에 처음 합류한 신재욱입니다.”
* * *
「축구천재 신재욱, 겨우 만 16살의 나이로 만 20세 이하 대표팀에 합류! 무려 4살 형들과 경쟁!」
「바이에른 뮌헨 U19 소속 신재욱, 청소년 대표팀에 합류하며 U―20 월드컵 출전 가능성 열려.」
신재욱이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퍼져나갔다.
그러자 한국 축구팬들은 여느 때보다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와!!!!!!ㅋㅋㅋㅋㅋㅋ 16살에 20세 이하 대표팀에 들어갔다고? 미친 거 아니야?ㅋㅋㅋㅋㅋ신재욱 얘 대체 얼마나 잘하는 거냐고ㅋㅋㅋㅋ
└진짜 역대급 천재다ㄷㄷㄷㄷ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몇 년을 월장하더니 결국 청대까지 뽑히네;;;ㄷㄷㄷ
└만 16살이 만 20세 선수들이랑 경쟁할 수가 있는 거였구나……? 한국에서도 이런 선수가 나올 수가 있는 거였어……?
└천재는 천재네. 근데 독일에 잘 성장하고 있는 애 불러놓고 출전 안 시키는 거 아니겠지?
└ㅋㅋㅋ출전 못 할 수도 있음. 안기혁 감독 스타일이 지한테 익숙한 선수들 위주로 계속 쓰는 경향이 있어서…….
└근데 꼭 출전하지는 않아도 사실 신재욱 나이 땐 대표팀에 가서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배울 게 많을걸?
└그래도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계속 월장하는 천재를 안 뛰게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같은데? 조금이라도 기회를 주지 않을까?
└아직 모르지. 훈련 때 안기혁 감독의 마음에 들면 나올 수도 있겠고, 아니면 못 나오는 거고.
└근데 이택현은 왜 안 뽑았지? 얘도 신재욱이랑 같이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팀에서 엄청 잘하고 있지 않나?
└이택현도 잘하고 있지. 얘도 신재욱이랑 스타일이 달라서 그렇지, 말도 안 되는 천재야. 오히려 화려한 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얘가 더 잘한다고 생각할걸? 그리고 이택현도 최근 바이에른 뮌헨 U19로 월장했잖아.
└이택현이 이번에 안 뽑힌 건 피지컬 그런 듯.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나이가 어린 이택현이 피지컬적으로 완성되진 않았을 거 아니야. 안기혁 감독의 생각엔 스트라이커나 윙어 포지션은 K리그에서 활약하는 프로들이 더 낫다고 판단한 듯. 반면에 신재욱은 피지컬로 축구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워낙 기술이랑 축구 지능이 높아서 뽑아본 듯. 마침 청소년 대표팀에 엄청 잘하는 미드필더가 없기도 하니까.
└솔직히 청소년 대표팀 경기력엔 기대도 안 되는데, 신재욱 뛰는 건 좀 보고 싶다.
이처럼 한국 축구팬들은 처음으로 청소년 대표팀에 뽑힌 신재욱을 향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처음 뽑힌 것이고 워낙 나이가 어리지만, 바이에른 뮌헨에서 인정받고 있는 천재이기 때문에 기회를 얻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었다.
그리고 지금.
청소년 대표팀에 합류한 신재욱은 동료들과의 첫 훈련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