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빨로 축구천재-69화 (69/224)

069

* * *

“마음에 안 들어.”

신재욱은 인상을 찌푸리며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한국축구협회에서 진 바그너에게 한 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수를 휘어잡으려는 것과 감독도 아니면서 선수 소집을 결정하는 것도 다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나.

“그래도 가야지.”

신재욱은 국가대표 소집에 응하기로 했다.

한국 U―20 국가대표가 되고 싶거나, 청소년 월드컵에 출전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소집에 응한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분명 능력치가 잘 오를 거야.”

바이에른 뮌헨 U19에서 뛰는 것보다 능력치가 더 빨리 오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다.

“그나저나 쟨 언제까지 저럴 생각인 거지?”

신재욱은 고개를 돌렸다.

모든 선수가 숙소에서 쉬고 있는 시간이었건만, 이택현은 훈련장에 남아서 슈팅 훈련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도 괴성을 질러대면서.

“으아아아아! 다음엔 나도 무조건 국가대표에 뽑힐 거야! 으어어어어!”

신재욱은 저런 이택현의 행동을 이해했다.

‘실망이 크겠지. 분하기도 할 거고.’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다는 것 자체는 괜찮았을 테지만.

늘 뛰어넘고 싶었던 신재욱만 청소년 국가대표가 됐다는 사실은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택현아.”

신재욱은 광기에 휩싸인 듯 슈팅 훈련을 이어가고 있는 이택현에게 다가갔다.

“뭐? 왜! 나 말리지 마! 개빡세게 훈련해서 너한테 안 뒤처질 거니까!”

“뭔 소리야? 슈팅 훈련은 거기까지만 하고 다른 훈련 들어가자고 말하려 했는데?”

“뭐…? 다른 훈련은 왜?”

“나한테 안 뒤처질 거라며. 그럼 효율적으로 훈련해야지.”

“……말리려던 거 아니야?”

“내가 널 말리긴 왜 말려? 훈련 빡세게 하면 좋지. 아주 바람직한 자세야. 이참에 전체적인 훈련 강도를 올려보자.”

“……지금보다 더 올리다고?”

“올리자. 빡세게 할 거라며.”

“아니, 그래도 갑자기 올리면…….”

“됐고, 오늘부터 바로 강도 높여서 훈련하자. 준비해. 드리블 훈련부터 시작할 거야.”

“아니……재욱아? 야! 사람이 말하면 좀 들어봐봐!”

이택현이 당황하며 간절함을 담은 시선을 보내왔지만.

신재욱은 그 시선을 무시하며 훈련에 돌입했다.

이후에도 이택현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집중력을 끌어올린 신재욱의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마침내 모든 훈련을 끝낸 뒤.

신재욱은 이택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했어.”

“어으……! 신재욱 넌 진짜 잔인한 놈이야! 어떻게 친구가 국가대표 못 돼서 슬퍼하고 있는데, 위로는 못 해줄망정 평소보다 훨씬 더 빡세게 굴리냐?”

“네가 빡세게 훈련하겠다며? 그리고 네가 언제부터 청소년 국가대표를 생각했다 그래? 그냥 넌 안 되고, 나만 국가대표팀에 들어가게 돼서 짜증 난 거 아니야?”

“……그렇게까지 팩트로 말할 필요는 없잖아.”

“거짓말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어휴! 말을 말자! 오늘 너랑 말싸움할 기분 아니야.”

신재욱은 축 처진 이택현의 어깨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쉽게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잠깐 재밌게 느껴졌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택현의 기죽은 모습을 보는 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안 어울리는 행동 그만하고, 나 한국 가 있을 동안 열심히 훈련하고 있어. 갔다 왔는데 지금보다 실력 안 늘어있으면 훈련 강도 2배로 늘릴 거야.”

“뭐? 2배? 그게 가능한 거야? 아니지, 상관없지! 어차피 신재욱 네가 한국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나는 지금보다 최소 2배는 더 잘해져 있을 거니까!”

“그런 자신감 좋아. 이게 이택현이지.”

“오케이! 이 이택현 님이 얼마나 발전하는지 두고 봐. 진짜 깜짝 놀라게 해줄게!”

“기대할게. 진심으로.”

* * *

한국으로 떠나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청소년 월드컵이 펼쳐질 기간 내내 동행하기로 한 진 바그너 덕분이었다.

“신재욱 선수는 이번에 한국에 가면 어떤 것부터 하실 거예요?”

“일단 집에 가서 부모님부터 봬야죠.”

“오~! 신재욱 선수가 청소년 국가대표가 됐다는 사실에 되게 기뻐하셨을 것 같아요.”

“그것보다도 그냥 제가 오랜만에 찾아뵙는다는 거에 좋아하시더라고요. 물론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들어가게 된 것에도 기뻐하고 계시고요.”

“그럼 부모님을 뵌 다음에는 어떤 걸 하실 생각이에요? 예를 들면 드시고 싶은 음식이나, 그런 거 있으세요? 있으면 절대 참지 마시고 말해주세요. 바로 가면 되니까요.”

“여유가 별로 없지 않아요? 시간상 부모님만 뵙고 바로 훈련장으로 가야 할 것 같던데요?”

“에이~! 그래도 밥 한 끼 정도 원하는 메뉴로 드시러 갈 정도는 충분히 되죠! 그리고 한국에 계신 동안 제가 100% 다 사드릴 거니까 비싼 메뉴도 얼마든지 고르셔도 돼요.”

“음…… 그럼, 한우로 사주세요.”

“한, 한우…… 예? 이렇게 바로요? 거절은 안 하시는 건가요?”

“거절을 왜 해요? 전 진이 이렇게까지 사주겠다고 말하는데, 예의 없게 거절하고 싶진 않아요.”

“그게 왜 예의가 없는 걸까…… 요?”

“한국에선 그렇더라고요.”

“저도 아버지는 독일 사람이지만, 어머니가 한국인이신데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하여튼 한우 잘 먹을게요.”

“……뭔가 당한 기분이네요.”

진 바그너와의 동행은 즐거웠다.

말이 너무 많기는 했지만, 확실히 사람 자체가 유쾌하고 재밌어서 시간이 금방 갔다.

그래서일까?

“신재욱 선수, 내리셔야 해요.”

“벌써요?”

신재욱은 비행기가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도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한국이네.’

비행기에서 내려 긴 통로를 지나 공항에 발을 디뎠을 때.

드디어 한국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신재욱 선수, 오랜만에 한국에 온 기분이 어떠세요?”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조금 어색하네요.”

“하하! 그럴 수 있겠네요. 저는 한국에 올 때마다 다른 것보다도 공항이 너무 좋아서 매번 놀라요.”

“좋긴 하죠.”

신재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 바그너의 말처럼 한국의 공항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한 번쯤은 놀랄 정도로.

“신재욱 선수, 혹시 배고프세요?”

“아뇨. 저는 괜찮은데, 진은요?”

“저도 아직 괜찮아요. 그럼 바로 택시 타러 가시죠.”

“그러죠.”

택시를 잡는 건 금방이었다.

공항에 워낙 많이 몰려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신재욱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축구천재 FC에 출연할 때는 많이들 알아봤었지만, 벌써 몇 년이 지난 상태에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게 당연했다.

그때였다.

진 바그너가 독일어로 질문을 해왔다.

“서운하지는 않으세요?”

“뭐가요?”

“몇 년 전과는 다르게 알아보는 사람들이 없어졌잖아요. 이런 거에 서운해하는 선수들이 은근히 많더라고요. 신재욱 선수는 어떠세요?”

“하하, 전혀요. 전 이런 상황이 즐거워요. 어차피 나중엔 이렇게 편하게 움직일 수 없게 될 거거든요.”

“오우! 그 말은 즉, 나중엔 너무 유명해져서 불편하게만 움직이게 될 거라는 말인가요?”

신재욱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확히 이해하셨네요.”

실제로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나온 대답이었다.

그러자 진 바그너가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핫! 역시 신재욱 선수다운 자신감이네요! 더 재밌는 건 신재욱 선수는 정말 그렇게 될 것 같다는 거예요!”

“그럼요. 약속할 수도 있어요.”

“으흐흐! 그럼 저는 유명한 선수의 에이전트가 되는 건가요?”

“예. 그냥 유명한 게 아니고, 아주 유명한 선수의 에이전트가 되는 거죠.”

“으하하핫!”

이후, 신재욱은 진 바그너와 함께 택시 기사에게 사과를 했다.

너무 떠들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더불어 택시에서 내릴 땐 돈을 더 얹어서 기사에게 내밀었다.

그때였다.

한사코 돈을 더 받길 거부하던 택시 기사가 운전대를 잡은 채로 말했다.

“신재욱 선수, 맞죠?”

갑작스레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신재욱의 눈이 커졌다.

“예? 절 아세요?”

“그럼요, 어떻게 모르겠어요. 축구천재 FC 애청자였는걸요? 아무리 시간이 지났어도 신재욱 선수 얼굴은 알아볼 수 있죠.”

“아…… 알아 봐 주셔서 감사해요. 전혀 몰랐어요.”

“일부러 아는 척 안 했죠. 택시 기사로서 손님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거든요. 하여튼 돈을 더 주실 필요는 없고, 그냥 청소년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 보여줘요. 라이브로 보면서 응원할게요.”

“……출전하게 된다면 꼭 좋은 활약 보여드릴게요.”

* * *

택시에서 내린 신재욱은 눈앞에 있는 아파트를 바라봤다.

독일에 가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이었다.

즉, 저곳에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가능하다면 날아서라도 가고 싶었다. 그 정도로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신재욱은 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진 바그너와의 실랑이 때문이었다.

“에헤이! 신재욱 선수! 저는 정말 괜찮다니까요? 전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쉬다 오세요. 아시다시피 저 바쁜 사람입니다?”

“한국에선 갈 곳도 없는 거 다 알아요. 고집 그만 부리시고 같이 가요.”

“갈 곳이 왜 없어요? 다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진 바그너는 말했다.

주변에서 볼일을 볼 테니, 부모님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라고.

그러나 신재욱은 알고 있었다.

그가 갈 곳이 없다는 걸.

‘기껏해야 PC방에 가거나 혼자 밥 먹으면서 기다리겠지.’

진 바그너가 워낙 배려심이 깊고 민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신재욱은 더 고집을 부렸다.

이젠 아예 진 바그너의 팔을 붙잡고 집으로 이끌었다.

“아…… 정말 이러면 민폐인데…….”

“우리가 남도 아니고, 제 일을 봐주시는 에이전트신데 민폐는 무슨 민폐에요? 절대 아니니까 그만 거절하세요.”

“……은근히 따뜻하시다니까?”

“은근히요? 그동안 저한테 오해가 있으셨나 보네. 전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신재욱 선수는 여러모로 대단하신 분이네요.”

“칭찬 감사해요.”

결국, 진 바그너와 함께 집 앞까지 온 신재욱은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웬만해선 떨지 않는 신재욱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평소와는 다른 감정이 생겼다.

다만 민망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침착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신재욱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아들! 너무 보고 싶었어…어유, 마른 것 좀 봐……! 거기서 밥은 잘 먹고 있는 거니?”

“재욱아…… 키가 정말 많이 컸네…! 조금 있으면 아빠보다 더 커지겠는데? 정말 멋있다…… 우리 아들!”

눈물을 흘리며 반겨주시는 어머니와 아버지 때문이었다.

결국, 신재욱이 할 수 있는 건 부모님을 안아드리며 핑계를 대는 것뿐이었다.

“아…… 눈이 왜 이렇게 따갑지? 독일이랑 공기가 달라서 그런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