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
* * *
“훈련 시작이다! 지금부터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도록!”
안기혁 감독의 말과 함께 훈련이 시작됐다.
‘어떤 식으로 훈련하려나?’
신재욱은 대표팀의 훈련 방식에 흥미가 있었다.
물론 기대가 큰 건 아니었다.
지금은 2011년이었고, 그가 환생하기 직전인 2028년에 비하면 훈련의 수준이 구식일 수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그가 훈련하던 곳은 세계 최고의 팀들이었으니까.
‘수준이 너무 낮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실망감이 크지 않기를 바랐다.
다행히 훈련 시스템에 큰 문제가 보이진 않았다.
자신이 있는 곳이 2011년의 한국 청소년 대표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꽤 괜찮은 수준이었다.
특별히 좋은 것도 없고, 크게 나쁘지도 않은 시스템.
물론 단점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신재욱의 눈엔 대표팀 훈련 시스템의 단점들이 꽤 많이 보였다.
그래도 놀랍진 않았다.
‘이 정도면 괜찮네.’
딱 생각했던 정도였으니까.
‘그나저나 되게 열심히 하시네.’
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신재욱은 감독을 바라보며 작게 감탄했다.
그가 뿜어내는 에너지 때문이었다.
“더 빠르게 주고 나와야지! 갇혀있으면 안 된다니까?”
안기혁 감독은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팀 훈련에서 코치에게 많은 걸 맡기는 감독들도 많은데, 안기혁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50대의 나이였음에도 직접 선수들과 뛰어가며 훈련을 이끌었다.
“태현아! 바로 주라니까? 왜 자꾸 패스 타이밍을 한 템포 늦추는 거야? 다시 해봐! 그리고 정훈이 너는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앞으로 움직여줘야지! 가만히 있으면 공간이 생겨?!”
더구나 목소리도 커서 그가 호통을 칠 때면 훈련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좋은데?”
선수들을 지도하는 안기혁 감독의 모습을 본 신재욱이 씨익 웃었다.
전술의 디테일은 몰라도 감독의 성격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선수들이 텃세 부리는 걸 방관하진 않겠네.”
실제로 훈련이 진행되는 내내, 선수들은 신재욱에게 텃세를 부리지 못했다. 선수들 모두 안기혁 감독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직 연습경기를 하진 않았지만, 분위기를 보면 다들 쉽게 까불지는 못하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신재욱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청소년 대표팀의 훈련 강도는 높은 편이었다.
단순히 훈련의 강도만 봤을 땐 소속팀인 바이에른 뮌헨 U19보다 더 높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신재욱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너무 좋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민첩이 좋아집니다!]
[패스가 좋아집니다!]
[체력이 좋아집니다!]
[몸싸움이 좋아집니다!]
[드리블이 좋아집니다!]
각종 능력치가 좋아졌다는 메시지들이 훈련이 진행되는 내내 꾸준히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내 예상이 맞았어. 확실히 소속팀에서 훈련할 때보다 더 성장이 빨라.’
바이에른 뮌헨 U19에서도 능력치 관련 메시지가 잘 뜨는 편이었지만, 이곳 청소년 대표팀만큼은 아니었다.
그만큼 청소년 대표팀에서의 성장 효율은 대단했다.
물론 능력치가 오르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모든 능력치가 70이 넘은 이후론 능력치를 올리는 게 훨씬 힘들어졌으니까.
그래서인지 더욱 욕심이 생겼다.
‘훈련에서도 이렇게 메시지가 잘 뜨면 실전에선 얼마나 잘 뜰까? 혹시 공격포인트 기록하면 바로 능력치 오르는 거 아니야? 하… 확인해보고 싶네.’
경기에 출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그때였다.
“다들 팀 짜야 하니까 모여!”
“음료수 안 마신 사람들은 여기 와서 수분 섭취 좀 해! 곧 경기 들어갈 거니까 화장실 다녀올 사람은 다녀오고!”
“빨리들 움직여! 잠깐 쉬었다가 바로 경기 들어갈 거야!”
한껏 땀을 흘린 선수들이 경기장 가운데로 몰려들었다.
연습경기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손발 좀 제대로 맞춰보려나.’
오늘 처음으로 청소년 대표팀에 합류한 신재욱이었기에, 될 수 있으면 동료들과 조금이라도 더 많이 호흡을 맞춰보길 원했다.
그래야 더 좋은 경기력을 펼칠 수 있고, 감독의 선택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세수 좀 하고 와야겠다.’
화장실을 다녀와도 된다는 안기혁 감독의 말에 신재욱은 곧바로 움직였다.
얼굴에 흐르는 땀을 시원한 물로 닦아내고 싶었으니까.
푸우!
물은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차가웠다.
땀에 절었던 느낌도 사라지며 상쾌해졌다. 자연스레 기분도 좋아지려고 했는데.
‘뭐야?’
세면대의 뒤에 선 5명의 선수가 보였다.
신재욱은 주변을 둘러봤다.
사용할 수 있는 세면대는 충분했다.
즉, 저들은 세면대를 쓰려고 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계속 몰려다니던 사람들이네.’
5명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새로운 팀에 올 때면 늘 최선을 다해서 조사하고 공부하는 신재욱이었으니까.
심지어 저들의 신체 스펙과 스타일까지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전부 K리그 소속이고, 청소년 대표팀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실세들이었지?’
한국 나이 21살로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들이었는데,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며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다.
훈련 역시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설렁설렁하는 편이었다.
물론 신재욱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열심히 안 하면 본인들 손해지 뭐. 그런데…….’
다만 지금처럼 자신을 찾아온 건 신경이 쓰였다.
특히나 전투적인 눈빛을 뿜어내고 있는 걸 보니 더더욱.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신재욱은 얼굴에 있는 물기를 닦아내며 거울에 비친 5명을 향해 질문했다.
“절 기다리는 건가요?”
* * *
화장실의 분위기가 험악하게 변했다.
신재욱의 뒤에 선 5명 때문이었다.
“뭐?”
“허……! 얘 봐라?”
“너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하냐?”
“어이가 없네.”
“표정 좀 봐봐. 벌써 싸가지 없는 게 느껴지는데?”
자신을 기다리는 거냐고 질문하자마자 들은 말들이었다.
갑작스러운 시비였지만, 신재욱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덤덤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절 기다린 거냐고 물었잖아요?”
그 즉시 5명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거친 말을 뱉어냈다.
“야 이 새끼야, 바이에른 뮌헨에서 뛴다고 네가 뭐라도 되는 것 같아? 어차피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팀에서 뛰는 거잖아? 그리고 내가 알기론 거기서 뛰는 애들 대부분 바이에른 뮌헨 1군에는 들어가지도 못한다더구만.”
“언론에서 하도 천재 소리 들으니까 네가 대단한 인물이라도 된 것 같지? 이 븅신아, 착각하지 마. 여기 있는 사람들도 어릴 때 다 천재 소리 들었어.”
“얘 눈빛 좀 보게? 뒤지고 싶냐? 눈 안 깔아? 우리가 여기서 너 조진다고 감독님이나 코치님들이 뭐라고 할 것 같아? 전혀! 우린 그냥 싸가지 없는 후배한테 교육 좀 해줬다고 하면 그만이야. 그러니까 눈 깔라고!”
“싸가지 더럽게 없네. 인사 안 할 때부터 알아봤다.”
“넌 앞으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될 거다. 여기 온 걸 후회하게 만들어 줄게.”
5명은 말을 마친 이후에도 계속해서 욕설과 협박을 쏟아냈다.
아무 말 없이 5명을 바라보던 신재욱은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에게 펼쳐진 상황이 믿기질 않았다.
‘이게 국가대표들인지 양아치들인지 모르겠네.’
비록 성인 국가대표가 아니고 청소년 국가대표였지만.
그래도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지 않은가.
게다가 앞에 있는 5명은 한국 나이로 21살의 성인들이었다.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막내로 들어온 선수를 협박하고 다짜고짜 시비를 건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영국에 살 때도 이 정도로 막무가내인 애들은 없었는데…… 우선 이유나 들어보자.’
처음엔 이들과 말씨름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랜 시간 종합격투기를 수련했기에, 주먹을 쓰는 일엔 자신이 있었고.
예전에 양아치 시절의 이택현을 혼내줬을 때처럼 눈앞의 5명 모두 두들겨 패줄까 생각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다.
그러나 문득 궁금해졌다.
자신에게 이렇게 시비를 거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 선배님들,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그래서 질문했다.
“저한테 이러시는 이유가 뭐죠?”
대체 왜 이러느냐고.
답변은 욕설과 함께 쏟아졌다.
많은 말이 흘러나왔지만, 결국 핵심은 두 가지였다.
1. 만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청소년 대표팀에 들어온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2. 제일 어린 막내가 오자마자 낮은 자세로 나오지 않고 너무 당당하게 행동하는 게 거슬린다.
모두 같잖은 이유였다.
“휴…….”
신재욱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앞에 있는 5명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직접 손을 쓰기도 아까웠다.
그냥 저들에게 시간을 쓰는 것 자체가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그래도 같은 팀이니까 서로 불편한 일까진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대충 마무리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러나.
신재욱은 원하는 걸 이뤄내지 못했다.
“이 미친 또라이 새끼가 선배 말이 안 끝났는데 가긴 어딜 가?”
* * *
‘하…… 귀찮게 하네.’
신재욱의 얼굴이 굳었다.
욕설과 함께 화장실의 입구를 막는 선배들 때문이었다.
그중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건 청소년 대표팀의 중앙수비수 김준기였다.
중앙수비수답게 185cm에 85kg의 덩치를 지닌 그는 눈을 위협적으로 부라리며 신재욱의 앞을 가로막았다.
‘얘가 리더인가 보네.’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눈앞에 선 김준기가 무리의 리더라는 걸 알게 된 지금.
신재욱의 몸이 움직였다.
휘익!
직선으로 빠르게 뻗어진 주먹.
김준기는 피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무언가 날아온다는 걸 인지했을 땐, 이미 그의 턱은 돌아가 있었다.
뻐어억!
“악!”
짧은 비명.
그걸로 끝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김준기는 일어나지 못했다.
기절해버린 것이다.
“뭐, 뭐야?!”
“너…! 미쳤어…?!”
“이게 무슨……!”
“미친……!”
분위기가 변했다.
몸에 잔뜩 힘을 주며 위협을 가하던 나머지 4명의 행동도 달라졌다.
당황해서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고, 당당하던 몸은 긴장으로 인해서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신재욱이 움직임을 이어갔다.
“꼭 약해빠진 놈들이 센 척은 필사적으로 하더라.”
말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주먹을 휘둘렀다.
목표는 쓰러진 김준기와 가장 가까이에 서 있던 구재윤이었다.
“흐익!”
구재윤이 다급하게 팔을 들어 얼굴을 막았다.
원래라면 반응하지 못했겠지만, 앞서 김준기가 맞고 기절하는 걸 보며 긴장한 상태였기에 반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퍼억!
신재욱이 구재윤의 얼굴이 아닌, 무방비한 그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는 것이었다.
“흐억……!”
정확히는 오른쪽 갈비뼈 부분에 꽂힌 펀치였다.
안쪽에 ‘간’이 있기에, 맞자마자 숨이 쉬어지지 않고 끔찍한 고통을 느끼게 되는 부위.
구재윤은 배를 부여잡고 바다에 쓰러졌다.
서 있지도 못할 고통 때문이었다.
그리고.
“3명 남았네? 이제 너희 차례야.”
신재욱은 싱긋 웃으며 남은 3명을 향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