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87화 (87/235)

87화

“으윽.”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공중에서 트럭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강력한 마나를 느꼈을 때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천구다’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정확하게 트럭이 달리는 방향을 향해 직격해 들어오는 녀석의 움직임에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유성이 떨어지듯’이라는 말이었다. 그대로 손 놓고 있으면 현재 달리는 트럭은 떨어지는 천구와 충돌해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사정을 정확하게 알릴 시간이 없었다. 진우는 달리던 차 위에서 ‘천구입니다’ 한 마디만을 김상곤에게 남긴 채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발을 멈추지 않고 차를 따라 잠시 달리면서 속도를 붙이고는 있는 힘을 다해 땅을 박차고 도약해서 떨어져 내리는 천구를 향해 온몸으로 마주쳐 갔다.

진우가 박찬 부근의 땅이 움푹 들어갈 정도로 강력한 도약이었다. 그런 도약을 공중에 떠 있는 무중력 자동차에서 했다가는 차체가 아래로 밀려 힘을 얻기가 곤란했을 것이다.

진우의 어깨와 등 어림이 떨어지던 천구와 충돌했다. 금색 마나크리스털의 교감 능력까지 최대한 동원해서 몸 주위에 겹겹이 마나막을 만들어 부딪혔지만, 엄청난 충격이 온 몸을 부숴버릴 듯이 파고드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정면으로 부딪히지도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정면으로 부딪힐 생각도 없었다.

단지 방향만을 틀기 위해 살짝 비껴 부딪혔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에 두른 마나막들이 물 먹은 종잇장처럼 힘없이 찢겨나가 버렸다.

다행히 마지막 마나막이 끝까지 버텨주었다. 그러나 진우의 몸은 충돌의 반동으로 고무공이 튀듯이 튕겨져 나가면서 포물선을 그리다 그대로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3, 4초 정도가 지났을까.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우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몸이 떨어진 곳에 큰 바위 같은 것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랬다면 바위와의 이차 충돌로 그렇잖아도 충격을 받은 몸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진우는 무릎 깊이까지 파묻혔던 몸을 끄집어내면서 몸속에 마나를 돌려 상태를 파악했다. 다행히 뼈가 부러진 곳은 없어 보였지만 왼쪽 어깨뼈가 빠진 듯 했다. 내장이 크게 흔들려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골도 띵한 것이 정신이 분명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일단 진우는 왼쪽 어깨를 땅에다 대고 강하게 힘을 주어 빠진 어깨를 맞췄다.

“으윽”

날카로운 고통이 찌르르하게 울려 퍼졌지만 팔을 돌려보니 다행히 제대로 움직였다. 마나로 속을 달래고 머리를 두어 번 흔들자 조금씩 정신이 들어왔다.

“후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며 몸을 가다듬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챙’하며 날카로운 충격음이 돌렸다. 진우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김상곤과 천구가 공수를 한 번씩 주고받고 있었다.

*  * * * *

김상곤은 차에서 뛰어내리자마자 진우가 천구와 부딪히면서 튕겨져 나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진우야.”

그가 깜짝 놀라 소리치는 사이 굉음을 내며 땅에 떨어진 천구가 제법 큼지막한 크레이터를 만들면서 처박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를 이어 거의 동시에 진우 역시 제법 둔중한 소리를 내며 땅바닥 속으로 파묻혔다.

천구가 만든 크레이터 주위로 사나운 먼지바람이 일어나서 김상곤의 시야를 잠시 가렸다. 그가 손을 들어 눈에 붙였다 떼었을 때는 이미 천구가 떨어졌던 구덩이 속에서 검은 광택이 빛나는 몸을 이끌며 놈이 일어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2m 정도의 키에 개처럼 생긴 길쭉한 주둥이를 한 녀석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손에 해당하는 두 앞발에는 이미 예기가 흐르는 발톱이 돋아나와 있었다. 온 몸에 잘 발달된 근육이 뚜렷한 형체를 보이고 있었고, 1m 가량의 꼬리가 엉덩이에서 뻗어 나와 공중에 흔들렸다.

김상곤은 대검을 뽑아들어 두 손에 쥐었다. 눈으로 확인하면 늦는다. 놈의 공격은 전광석화처럼 빠르다. 조승운 스승은 감으로 느끼고 감으로 막아야 한다고 했다. 전신에 마나가 돌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김상곤을 사로잡았다.

“크르르르.”

아무리 천구가 상급 마수라지만 크레이터를 만들 정도로 깊은 구덩이를 만드는 일은 본인에게도 제법 충격을 주는 것 같았다. 구덩이를 빠져나온 놈이 고개를 흔들며 잠시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대검을 든 김상곤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김상곤이 목젖이 꿈틀거렸다.

그것은 빛살 같은 움직임이었다. 김상곤은 놈이 움직이는 모습을 미처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왼쪽 상단에서 몸을 찌르듯이 파고드는 살기가 느껴지자 반사적으로 그쪽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을 뿐이었다. 그러자 대검을 쥔 손에 찌르르한 반동이 느껴지면서 그제서야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놈의 발톱이 대검에 부딪혔다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후읍.”

숨을 머금고 다시 대검을 고쳐 잡았다. 발톱 공격이 막히자 잠시 뒤로 물러섰던 녀석이 고개를 한 번 갸웃하더니 다시금 정면으로 짓쳐들어왔다. 김상곤은 한 발을 앞으로 빼면서 그대로 정면을 향해 대검을 찔러 넣었다.

다시금 대검과 놈의 발톱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김상곤의 오른쪽 어깨 위에서 ‘퍽’하고 핏방울이 튀었다.

‘어느 새.’

분명히 놈이 오른발을 이용해서 자신의 대검을 막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미처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놈의 왼발이 자신의 어깨 위를 가르며 지나간 것이다.

김상곤은 일단 뒤로 한 발 더 물러났다. 감각으로 놈의 공격을 막아야 하는데, 공격 속도가 감각보다도 빨랐다.

‘힘들겠군.’

김상곤은 직감적으로 자신이 놈의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었다. 진우의 상태가 어떤지 아직 확인하지도 못했다.

조승운 스승은 최상급에 갓 들어갔을 때 비록 다른 동료들과 함께이기는 했지만, 천구와 싸워 물리쳤다고 했다. 김상곤이 보기에 진우는 자신보다 실력이 위였다.

지구에 있는 동안의 연습을 통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미 상급의 경지에 도달한 그는 진우의 실력이 그저 더블형 상급에 불과할 리가 없다는 점을 느끼고 있었다. 이 놈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진우가 나서야 했다. 그리고 그가 깨어날 때까지는 자신이 최대한 시간을 끌며 놈을 막아야 했다.

김상곤이 왼발을 한 발 앞으로 내딛으며 천구를 향해 크게 대검을 휘둘렀다. 나름 전력을 다해 빠르게 휘둘렀는데도 녀석은 왼발을 들어 가볍게 그의 대검을 막아냈다.

천구가 고개를 숙이고 다시금 정면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김상곤은 몸을 약간 비스듬하게 틀며 대검을 휘두르던 자세 그대로 놈을 향해 내려쳤다. 그러나 놈은 뛰어들던 자세 그대로 몸을 살짝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김상곤의 대검을 등으로 흘려버리고 말았다.

그의 대검이 아주 작은 흔적만을 남기고 천구의 등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순간,

부욱

놈의 발톱이 비켜서던 김상곤의 배를 길게 가르고 지나갔다.

“헉.”

그의 배에 세 가닥의 고랑이 깊게 파이면서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복막이 찢어진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급히 뒤로 물러서는데 놈의 앞발이 오른쪽 가슴을 향해 찔러왔다. 김상곤이 물러서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놈의 발톱 세 개가 김상곤의 가슴에 구멍 세 개를 만들었다. 김상곤은 숨이 턱 막히면서 하마터면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간신히 힘을 내어 놈의 발을 후려치자 천구가 발을 빼면서 잠시 뒤로 물러났다. 놈의 발톱이 빠진 자리에서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김상곤의 몸이 순식간에 흘러나온 피로 범벅이 되었다. 가슴과 배에서 흘러나온 피가 다리를 타고 땅으로 흘러내렸다. 통증보다는 현기증이 먼저 덮쳤다. 김상곤은 간신히 대검을 고쳐 잡고 중단에 세웠다. 머리가 어질했다.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 같군.’

마수를 상대하면서 위험했던 적이 이번은 처음은 아니었다. 그래도 김상곤은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싸워왔다. 그러나 마수 주제에 두 발로 서서 공격하면서도 이놈처럼 몸이 빠른 놈은 처음이었다. 힘든 상대였다.

김상곤은 입술을 깨물면서 흐려지려는 정신을 다잡았다. 버텨야 한다. 죽을 때는 죽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버텨야 한다.

챙, 챙, 챙

자신을 향해 휘두르는 놈의 앞발을 몇 번이나 검을 움직여 막았다. 보고 막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조승운의 말 그대로 감으로 느끼고 감으로 막았다. 하지만 한 번 막을 때마다 커다란 대검을 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팔이 거칠게 흔들리며 제 자리를 벗어났다. 김상곤이 흐려지는 정신을 가다듬고 이를 악무는 순간 관자놀이 부근에 거센 충격이 느껴졌다.

놈의 오른발이 김상곤의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귀 위에서 뺨까지 발톱자국이 길게 그려졌지만 다행히 순간적으로 고개를 뒤틀어 머리가 통째로 뜯겨져 나가는 것은 피했다. 그러나 충격 때문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끝인가?’

김상곤이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오른쪽에서 가운데가 약간 도톰한 검 한 자루가 그와 천구의 사이를 가르고 들어오면서 막 앞발을 내지르던 놈의 발톱을 막아냈다.

검과 발톱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충격음과 함께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이놈은 제가 맡을게요.”

진우였다. 김상곤은 흘깃 눈만 돌려 진우가 정신을 차리고 나선 것을 확인하고는 잠시 뒤로 물러났다. 순간적으로 안도의 한숨이 나오면서 긴장이 풀렸다. 그의 다리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화정이가 있으면 치료를 부탁할 텐데.’

지구에 두고 온 아내가 갑자기 생각났다. 헌터는 언제든지 변을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직업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죽는다면 다른 것보다도 아내에게 미안할 것 같았다. 그는 흐려지려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앞에서는 바야흐로 진우와 천구가 눈으로 확인하기도 어려운 속도로 서로 공수를 주고받고 있었다. 상급 헌터인 자신의 눈으로도 거의 잔상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검과 발톱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놈이군. 스승님이 자랑스러워 할 만하군.’

그 생각을 끝으로 김상곤은 정신을 잃으며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출혈이 너무 많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멀어져가는 그의 의식 저편에서 요란한 격돌음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들렸다.

*  * * * *

김상곤과 천구가 격돌을 시작할 때만 해도 진우는 아직 정신이 분명히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발톱과 대검이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는 했지만 잠시 사물이 명확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상대를 보기 위해 이마를 찌푸리며 정신을 집중하는 순간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마수와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붉고 푸른 마나의 덩어리였다.

“저건?”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우는 마나를 볼 줄 아는 자였다. 그러나 늘 주변의 마나를 보고 사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지구라면 몰라도 외계 행성에 나가 있을 때에는 오히려 일상생활을 하는데 적지 않은 곤란을 겪었을 거다. 마나는 그가 정신을 집중할 때만 눈에 보였다.

진우가 의식을 차리고 싸우는 소리를 내는 대상을 자세히 보려고 정신을 집중한 순간 그의 눈에는 사람과 마수가 아니라, 천구와 김상곤이 내뿜고 있는 마나가 먼저 보였다. 김상곤의 마나는 자신의 몸과 들고 있는 대검을 진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검에 주입된 마나의 색깔이 잠깐씩 짙어졌다 흐려지기를 반복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안정된 마나 운용이었다.

반면에 천구의 몸에서 발현되는 마나는 김상곤과는 전혀 달랐다. 진우는 그 마나의 움직임을 보면서 천구가 어째서 하늘 높이 치솟을 수 있고, 무서운 속도로 땅에 떨어지고도 무사할 수 있으며, 그렇게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이해했다.

놈의 주변에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하며 움직이는 마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농도는 김상곤보다 조금 진한 정도에 불과했지만 흐름의 속도와 방향 전환이 놀라울 정도로 민활했다.

거세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교하기도 한 마나 운용이었다.

‘동조는 아니지만 마나에 대한 친화력과 교감 능력이 엄청난 놈이다. 상급 마수라고 하더니, 원래 상급은 다 그런가?’

그럴 리가 없다. 진우는 윌러킹을 사냥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도 그는 놈의 마나를 눈으로 확인했다. 주변의 모래폭풍이 마나의 흐름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그때도 깨달았지만, 윌러킹 자신의 마나는 저처럼 몸 밖으로 나와 흐르면서 사납게 움직이지 않았다. 저놈이 특이한 것이었다.

천구의 움직임은 근육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놈이 전진하고 후퇴할 때마다 몸 주위로 마나가 소용돌이치면서 움직임을 돕고 있었다. 그것이 놈으로 하여금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이동을 가능케 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금색 크리스털을 뱃속에 넣고 다니는 놈 같네.’

진우가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천구의 발톱이 김상곤의 배를 가르며 지나갔다. 몽롱하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깜짝 놀란 진우가 허리에 찬 검을 막 뽑아들 무렵 다시금 녀석의 발톱이 김상곤의 가슴에 구멍을 뚫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개자식. 정말 개처럼 생긴 자식.”

진우가 짧게 고함을 지르면서 검에 마나를 주입시키고 그대로 앞으로 박차고 나가는 사이 천구의 앞발을 몇 번 막아내던 김상곤이 기어코 머리에 한 방을 얻어맞고 말았다. 그의 몸이 휘청하며 무릎이 풀리는 모습이 보였다. 다급했다.

“이놈은 제가 맡을게요.”

간신히 천구에게 도달한 진우는 그렇게 소리치며 막 김상곤을 향해 발톱을 내밀던 천구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천구의 발톱이 진우의 검에 의해 가로막혔다.

살기에 붉게 물든 천구의 시선이 진우에게로 향했다. 진우가 다시 검을 휘두르며 천구에게 달려들었다.

놈의 발톱이 잔상조차 남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진우를 향해 뻗어왔다. 진우와 천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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