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86화 (86/235)

86화

“두억시니로 짐작되는 중급 마수 한 마리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기지 전체에 다른 마수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기지의 주차장을 500m 가량 남겨 놓았을 때 진우는 마나를 이용해서 기지를 중심으로 그 인근을 탐지했다. 마수들이 서로 잡아먹고 있는 상황이라서 그런지, 중급의 두억시니와 상급의 천구가 자리를 잡은 것으로 짐작되는 기지에는 다른 마수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지를 탈출한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분명 처음에는 많은 마수들이 기지에 달려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새 마수들 사이에 질서가 재편된 모양이었다.

진우가 탐지 결과를 일행에게 이야기하자 최진석이 입을 열었다.

“비행 드론으로 살펴봤을 때는 두 시간 전까지 두억시니 두 마리와 천구가 있었습니다. 나머지 녀석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사냥을 나간 것일까요?”

김상곤이 생각에 잠겼다. 조용한 가운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가 고개를 들어 진우를 봤다.

“진우는 나하고 둘이서 주차장으로 접근한다. 나머지는 현재의 위치에서 대기하도록.”

김상곤의 말이 떨어지자 최진석이 다급하게 그를 말렸다.

“조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진우의 실력이야 믿을 만하지만 아직 경험이 적습니다. 차라리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김상곤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 중에서 천구는커녕 두억시니조차 상대해 본 사람은 없다. 헌팅에 경험이 중요한 건 분명하다.

허나 이번에는 꼭 그렇지도 않아. 자네와 함께 간다면 나도 든든하겠지만 이번에는 진우와 함께 가는 걸로 하지. 내가 인솔해서 다녀올 테니 나머지는 언제든지 후퇴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기하도록.”

김상곤의 단호한 말에 최진석이 할 수 없이 물러났다. 자세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일행 가운데 마수를 상대할 수 있는 실력으로만 따진다면 다른 누구보다도 진우를 믿는다는 뜻이었다.

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진우와 김상곤을 바라보았다. 자존심이 상한다든가 하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진우가 아직 어리다는 생각 외에도 머리 속으로 지구에 남아 있는 박화정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일이 잘못되면 형수님 낯을 뵐 면목이 없는데...’

진우는 배낭과 총을 일행에게 맡기고 등에 활과 활통을 메었다. 상대가 중급 이상의 마수라면 총보다는 활이 조금 더 유용했다. 무찰시에 회전과 관통을 사용하게 되면 킬러 제이보다 파괴력이 더 높았다. 그가 옆구리의 장검을 점검하는 동안 김상곤 역시 배낭을 내려놓고 자신의 대검을 등 뒤에 걸어 멨다.

김상곤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그동안 줄곧 진우가 선두에 섰는데,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김상곤이 진우의 앞에 섰다. 진우도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다만 마나 감지만큼은 최대한 마나를 실어 전방에 집중했다. 다른 대원들이 얼굴을 굳힌 채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해? 대장님하고 진우 배낭과 무기 각자 나눠 들고 주변 경계하면서 대기해.”

최진석이 대원들을 향해 낮지만 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긴장감이 모든 사람들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  * * * *

김상곤과 진우가 주차장에 도달할 때까지 기지 내에 있던 두억시니로부터는 별다른 움직임의 느낌이 전해지지 않았다. 지붕 한 쪽이 내려 앉은 주차장 안으로 소리 없이 들어선 두 사람의 눈에 이십 여대의 차량이 보였다.

절반 이상은 농작물을 재배하고 관리하기 위해 사용되는 콤바인 등의 농업용 기계들이었다. 무중력 차량으로 짐작되는 차량은 여섯 대에 불과했는데, 대부분 차체에 긁힌 자국이 심했고, 유리창이 거의 파손되어 있었다.

진우가 망을 보는 동안 김상곤이 재빨리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 차량의 열쇠를 걸어 놓는 보관 박스를 뜯어내서 열쇠를 모두 꺼냈다. 모두 무선으로 차문을 열고 잠글 수 있는 전자 장치가 달린 열쇠들이었다.

그가 열쇠를 들고 하나씩 버튼을 눌러대자 어느 순간 적재함이 달린 트럭 하나에서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들어왔다. 김상곤이 소리가 난 트럭의 운전석을 열고 안을 확인했다.

운행이 가능할 것 같았다.

“타라.”

김상곤이 운전석에 올라타며 진우를 불렀다. 진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두억시니가 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 녀석이 이리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시동 걸고 차를 띄울 시간이 없습니다.”

진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차장 한쪽 지붕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뜯겨나갔다. 뜯겨져 나간 지붕 너머로 키가 6m에 달하는 두억시니의 흉측한 모습이 나타났다.

“쳇.”

진우가 짧게 투덜거리면서 땅을 박차고 그대로 두억시니를 향해 공중으로 도약했다. 달려드는 진우를 발견한 두억시니가 사나운 고함을 지르며 진우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우어어엉.”

놈이 괴성을 지르며 휘두르는 팔을 진우는 도약하던 자세 그대로 검을 뽑아들고 마나를 주입시키면서 막아갔다.

스컥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마나를 최대로 주입시키지는 못했지만 두억시니의 팔에 엷은 자상이 생겼다. 하지만 진우 역시 놈의 팔을 완전히 베어낸 게 아니기 때문에 팔과 검이 부딪히는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두억시니와 부딪힌 진우가 거칠게 주자창 한쪽 구석의 농업기계를 들이받으며 처박혔다.

“으윽.”

등 전체에 육중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누워있을 시간이 없었다. 진우가 얼른 자세를 바로 하며 일어서는데 진우에 앞서 두억시니를 향해 달려드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 사이에 차에서 내려 자신의 대검을 꺼내든 김상곤이 두억시니의 다리를 향해 두 팔로 대검을 휘두르며 공격을 하고 있었다.

다리와 쇠로 만든 대검이 부딪혔는데 두꺼운 돌기둥을 내려친 것과 같은 소리가 났다. 김상곤이 튕겨져 나오는 대검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보였다.

두억시니의 다리에 대검이 가죽을 자르며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녀석도 충격이 없지는 않았는지 고개를 숙여 김상곤을 내려다보았다.

그 사이 진우가 다시 두억시니를 향해 달려들며 검을 내찔렀다.

진우의 검이 두억시니의 허벅지를 깊게 찌르고 들어갔다. 이번에는 제대로 마나가 실린 찌르기였다.

“크엉”

두억시니가 고통에 찬 울부짖음을 토했다. 진우는 자신의 검을 박아 넣은 채로 그대로 위쪽으로 베어 올리며 땅을 박차고 몸을 녀석의 허리 위로 튕겨 올렸다.

두억시니는 허벅지에서 재차 전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튀어 오르는 진우를 향해 마치 손뼉을 치듯 두 손바닥을 마주쳤다. 진우는 급히 한 발을 놈의 허리에 대고 몸을 수평으로 뉘었다.

허공에서 몸을 누인 그의 눈 위로 두억시니의 두 손바닥이 팡 하는 소리를 내며 합쳐졌다.

‘빠르네.’

덩치로 봐서는 그리 빠를 것 같지 않은데도, 역시 회의실에서 들었던 대로 녀석의 반응은 대수림의 케로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빨랐다.

진우는 다시 떨어지는 몸을 세우며 검을 휘둘러 두억시니의 옆구리를 베었다. 녀석의 허리 어름이 쩍 갈라지며 핏물이 퍽하고 튀었다. 떨어지는 진우의 머리 위로 그 핏물이 쏟아져 내렸다.

“우엉~”

화가 잔뜩난 두억시니가 막 땅에 착지하는 진우를 향해 오른손 주먹을 크게 휘둘러 내리꽂았다. 진우가 살짝 옆으로 피하자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주먹이 주차장 바닥의 콘크리트를 부수며 파고들었다. 단 한 방에 콘크리트 바닥이 움푹 파였다. 역시 힘이 좋은 녀석이었다.

“이야아압~.”

김상곤이 힘찬 기합을 지르며 두억시니의 등 뒤를 향해 도약하면서 대검을 세로로 휘둘렀다. 그 역시 전력을 다해 마나를 실은 일격이었다.

“크억”

두억시니의 등판이 쩍 하고 갈라졌다. 아주 깊지는 않지만 제법 큰 고통을 주었을 게 틀림없었다. 두억시니가 재빨리 김상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녀석의 눈에 붉은 기운이 서리면서 온 몸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물러나세요.”

진우가 자신을 두고 돌아선 놈의 등 뒤로 높게 도약하면서 김상곤을 향해 소리쳤다.

놈의 몸 전체에서 뜨거운 기운이 일기 시작했다. 전초 기지장이 살짝 대기만 해도 화상을 입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던 그 열기였다. 솟아오르는 얼굴 위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여기서 끝내야 한다. 시간을 끌면 좋을 게 없어.’

이미 놈과 싸움을 벌이느라 주변에 적지 않은 소음이 퍼져나갔다. 싸움을 계속 끌다가는 자칫 다른 두억시니나 천구를 불러들일 수 있었다. 어쩌면 벌써 놈들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김상곤이 놈의 열기를 피해 조금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며 진우는 검 끝에 가지고 있는 마나를 최대한 불어넣었다. 검 속을 채운 금색 마나크리털이 교감을 하면서 검신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하압”

진우가 힘찬 소리를 내지르며 도약한 자신의 눈앞을 막아선 두억시니의 뒤통수를 향해 힘껏 검을 찔러넣었다.

푸욱

검이 뼈를 자르고 살 속에 박히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검 끝을 통해 전해지는 뜨거운 열기가 확하고 손을 덮쳤다.

진우는 음의 마나를 손바닥과 검에 둘러 그것을 이겨냈다. 진우의 검에 뒤통수를 관통당한 두억시니가 순간적으로 고개를 살짝 치켜들더니 입을 쩍 하고 벌렸다. 하지만 녀석의 목구멍에서는 가래가 끓는 듯한 낮고 가는 소리만이 울려나왔다.

“그르르르...”

잠시 비명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흘려내던 녀석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진우가 놈의 뒤통수에 박았던 칼을 뽑아내고 땅 위에 내려서자 두억시니의 몸뚱이도 앞을 향해 넘어졌다.

두억시니의 커다란 몸이 쓰러지면서 주변에 먼지를 휘날렸다. 쓰러진 놈의 반대편에 김상곤이 대검을 두 손에 쥐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진우와 김상곤의 눈이 부딪혔다. 김상곤의 눈에 약간은 놀란 듯한, 그리고 약간은 대견한 듯한 웃음이 살짝 걸렸다가 사라졌다.

“차에 올라타라. 시간이 없어.”

김상곤이 곧 얼굴을 굳히며 트럭을 향해 뛰면서 진우에게 소리쳤다. 진우도 그의 뒤를 따라 트럭에 올라탔다.

웅~~

약한 진동음과 함께 김상곤이 시동을 건 무중력 차량이 살짝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는 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와 클랜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른 마수들의 기척은 없나?”

김상곤이 운전을 하며 진우에게 물었다. 진우는 사방을 향해 마나 탐지를 펼쳤다.

“없습니다. 아마 두억시니의 소리 때문에 약한 마수들은 오히려 주변에서 더 멀어진 것 같습니다. 다른 두억시니나 천구도 느껴지지 않고요.”

김상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다행이구나.”

김상곤이 클랜원들에게 차를 세우자 타고 있던 두 사람은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 대신 부클랜장 최진석이 운전대를 잡고 그 옆의 보조석에는 손주원과 원혜수가 올라탔다.

궁수인 임지근과 진우, 그리고 김상곤은 트럭 뒤의 적재함에 배낭을 싣고 올라탔다. 주변에 달려들지도 모르는 마수들을 향해 활과 총을 쏘면서 방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근접한 마수들은 김상곤의 몫이었다.

일행이 모두 차에 올라타자 최진석은 진우가 말했던 북서쪽의 호수를 향해 빠르게 차를 몰았다.

“기지 내부는 확인을 좀 하셨습니까?”

임지근이 김상곤을 향해서 물었다. 김상곤이 고개를 저었다.

“두억시니를 한 마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소리가 좀 심하게 났어. 다른 마수들이 몰려올까 봐 일단은 차만 꺼내 후퇴했다. 기지 내부는 나중에 다시 진입을 시도해야 할 것 같다.”

두억시니를 잡았다는 말에 임지근의 눈이 커졌다. 두 사람이라면 중급 마수를 잡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적게 걸린 것이다. 그는 김상곤과 진우를 번갈아 보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점점 멀어지는 기지를 바라보았다.

‘대장님이 진우를 데리고 가기로 한 건 역시 잘한 결정이셨던 것 같군.’

평소에는 무뚝뚝해서 별 말이 없지만 상황 판단이 정확하고 사람을 보는 눈이 탁월한 김상곤이었다. 그의 안목 덕분인지 지금까지 클랜원 중에 말썽을 피우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부터 그럴 소지가 없는 사람들만을 오랜 시간을 들여 영입한 것이다. 그런 김상곤이 굳이 진우를 데리고 가겠다고 하기에 조금 걱정을 했지만, 역시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 같았다.

기지 북서쪽에 있는 밀밭의 이삭 위를 살짝 떠서 움직이고 있는 무중력 차량을 향해 근처의 몇몇 마수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동티나 가사리 정도로는 빠르게 움직이는 차량을 따라잡거나 막을 수 없었다. 가까이 오는 놈들이 있을 때마다 임지근과 진우가 먼저 활과 총을 쏘아 쓰러뜨렸다.

그렇게 무중력 자동차가 순조롭게 호수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문득 진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기랄.’

진우의 얼굴이 트럭 뒤편에서 멀어지고 있는 기지가 아니라 하늘을 향했다. 거기서 무서운 속도로 선명한 상급 마수의 기운을 지닌 녀석이 트럭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트럭의 진행 방향을 고려한 정밀 폭격같은 움직임이었다.

“천구입니다.”

진우가 김상곤을 향해 짧게 말을 내뱉었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가 총을 등에 매단 채로 달리던 무중력 차량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김상곤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가 트럭의 운전석을 손으로 탕탕 치며 짧게 말했다.

“이대로 쭉 달려서 호수까지 가라. 거기서 우리가 올 때까지 대기해. 5일 동안 기다려도 우리가 오지 않으면 간이 포털을 열어 모두 지구로 귀환한다.”

김상곤의 말에 깜짝 놀란 최진석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것도 잊은 듯 고개를 홱 돌려 김상곤을 쳐다보았다.

“대장님, 그건.”

그러나 김상곤이 재빨리 그의 말을 막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달려라. 이건 명령이다.”

그 말을 끝으로 김상곤도 자신의 배낭을 한쪽 어깨에 둘러메고 진우의 뒤를 이어 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가 뛰어내리는 순간, 후방의 허공에서 무언가 엄청난 격돌이 일어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치 허공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 같았다. 이어서 지면에 무언가 거세게 처박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쿵, 쿵

땅 위에 크고 작은 두 개의 물체가 지면을 파고들며 떨어졌다. 특히 조금 더 큰 물체가 떨어진 자리는 주변에 작은 크레이터를 만들 정도로 지면이 움푹 파여 들어간 모습이었다. 사방으로 충격파가 퍼지면서 땅 위에 떠서 달리던 무중력 차량까지 거세게 흔들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순간적으로 트럭을 휩쓸고 지나갔다.

“안 돼요, 대장님.”

보조석에 앉아 있던 원혜수가 다급하게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며 김상곤을 불렀다. 그러나 이미 김상곤과의 거리는 그녀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차를 돌려요. 어서요, 부대장님. 차를 돌리라고요.”

원혜수가 운전대를 손으로 움켜잡으며 최진석을 향해 소리쳤다. 최진석이 그녀를 손을 탁 쳐서 운전대에서 떨어뜨렸다. 입술을 꼭 깨물고 있는 그의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우리는 이대로 간다. 대장님의 명령이다. 대장님은 꼭 돌아오실 거다.”

“지금 저 소리 못 들었어요? 저건 천구가 틀림없다고요. 우리가 도와줘야 해요. 조승운 영감님이 천구를 만나면 반드시 협공하라고 했잖아요. 어서 차를 돌려요. 빨리요.”

그러나 최진석은 운전대를 꼭 쥐고 계속 차를 몰았다. 원망스런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던 원혜수가 흠칫하며 물러났다. 최진석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도 지금 당장이라도 차를 돌리고 싶다. 하지만 대장님과 진우로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 봤자 시체 몇 구를 더 늘릴 뿐이다. 다 죽으면 누가 정찰 결과를 지구에 알릴 거냐? 지금은 대장님과 진우를 믿는 수밖에 없어.”

최진석이 신음을 하듯 이를 갈면서 말을 내뱉었다.

“우리는 이대로 간다. 우리는 대장님의 명령을 따른다. 대장님은 반드시 돌아오실 거다. 우리는 5일 동안 호수에서 기다린다.”

신음 같기도 하고 주문 같기도 한 소리였다. 그의 사내답던 목소리에 물기가 잔뜩 어려 있었다. 원혜수는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최진석은 똑바로 앞만 바라보며 계속해서 차를 몰았다. 트럭 전체에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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