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화] 다급한 사정
다음 날 오전, 잉가 3댐과 도로 확포장 공사의 공동 착공식은 성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저녁때 대통령궁에서 바통고 대통령의 생일 축하연 또한 화려한 분위기 속 성황리에 마쳤다.
일요일 오전.
송훈석 회장 등은 부투야 실장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다음 목적지인 앙골라를 향해 출발했다.
앙골라의 수도인 루안다는 킨샤사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겨울은 호영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 부사장, 어젯밤에 바통고 대통령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든?”
“왜 이렇게 빨리 돌아가냐며 섭섭해하시더라.”
호영은 바통고 대통령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자신들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다음 주 화요일까지 머물며 이런저런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앙골라로 떠난다고 하니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바통고 대통령님께 우리들이 처한 상황을 말씀드렸지?”
“어.”
“하여튼 수고했어. 그나저나 은센기 사장이 우리와 함께 앙골라에 가는 이유가 뭘까?”
“나도 잘 모르겠다.”
“은센기 사장을 불러서 물어볼까?”
“여기는 좀 그렇고, 회의실에서 물어보자.”
회의실.
은센기 사장은 어젯밤 바통고 대통령의 생일 축하연에서 산투스 부통령과 나눈 대화 내용을 떠올리며 호영의 질문에 대답했다.
“산투스 부통령님이 급하게 기념품을 발주할 일이 있다면서 앙골라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정 이사님은 알고 있는 게 있습니까?”
호영은 앙골라가 어떤 용도로 기념품을 발주할 예정인지 대충 감이 잡혔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의 탈퇴를 기념하는 의미로 기념품 제작을 의뢰한 것이리라.
하지만 앙골라는 아직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
언제나 그렇듯 세상사는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은센기 사장한테는 이 사실을 숨기기로 결정했다.
“저도 알고 있는 게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앙골라 측에 어떤 기념품을 제안할 생각입니까?”
“산투스 부통령님은 200달러 가격대의 기념품을 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홍삼 선물 세트 또는 우황청심원을 생각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 품목 모두 상관없지만, 우황청심원은 납기를 넉넉하게 주셔야 합니다.”
“홍삼 선물 세트를 제안하라는 말씀이죠?”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은센기 사장이었다.
“사실 홍삼 선물 세트의 마진이 조금 더 좋은 편이긴 합니다.”
“그렇다면 산투스 부통령님이 반드시 홍삼 선물 세트를 선택하도록 만들어야겠네요?”
“역시 은센기 사장님과 저는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네요.”
“쯧쯧쯧, 어쩌면 둘이 이리 똑같을까?”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겨울이 혀를 끌끌 차며 한마디 내뱉었다.
“이익이 많은 제품을 판매하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니냐?”
“마진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3달러.”
“그래 봐야 1.5%밖에 안 되네.”
“개구리가 올챙이일 적 생각 못 한다는 말이 있다더니, 그 말이 꼭 들어맞네.”
“지금 시비 거냐?”
“시비가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이거든.”
갑자기 회의실에 찬바람이 불어닥쳤다.
어느새 눈치 백단이 되어 버린 은센기 사장이 즉시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하, 하하… 한 부사장님, 이번에 최준하가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를 알려 드릴까요?”
콩고 지점은 킨샤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 그룹 직원인 최준하는 당연히 행사장에 나타나서 진행을 도왔어야 한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의 모습은 끝까지 보이지 않았다.
겨울은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이리라.
짧게 추리를 끝낸 겨울은 은센기 사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마 꾀병을 부리고 있었겠죠.”
“아닙니다. 그놈은 지금 이집트에 있습니다.”
“네?! 왜요?”
겨울보다 호영이 먼저 반응했다.
“저희 회사 직원이 금요일 오후에 이집트에 출장 갔는데, 그때 같은 비행기를 탄 최준하를 보았답니다.”
“김 지점장님이 그놈을 해고시키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지난달 말에 무단결근을 이유로 들어 그놈을 해고시키려고 했는데, 최성진 부회장이 압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래서 그놈을 이대로 내버려 둔답니까?”
“김 지점장님이 H&J 컨설팅으로 이직하기 전에 해고시킨다고 했으니까, 늦어도 다음 주에는 회사에서 쫓겨날 겁니다.”
“하아,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렇게 집안이 빵빵한 놈이 퇴사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그놈이 1년 안에 퇴사하면 유산 상속을 받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아…….”
이제야 알겠다는 듯 은센기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끝말을 흐렸다.
“어차피 그놈과 다시 만날 일이 없으니까, 우리는 이제부터 신경 끕시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부사장님, 한 부사장님과 정 이사님이 주축이 돼서 아스날을 인수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주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은센기 사장의 축구에 대한 열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겨울은 이를 만류할 생각이 없었다.
“자금은 얼마나 보유하고 있습니까?”
“지금 2,000만 달러를 가지고 있고, 연말까지 최소 5,000만 달러까지 모을 수 있습니다.”
“힘들게 번 돈인데, 아깝지 않습니까?”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벌면 되죠.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2% 정도만 아스날 지분을 보유하는 것으로 하세요.”
“하하,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저희가 아스날을 인수한다는 얘기는 누구한테 들었습니까?”
무언가 켕기는 구석이 있었는지 기세 좋게 말하던 은센기 사장이 갑자기 말문을 닫았다.
순간, 겨울은 범인이 누구인지 간파했다.
“저놈이죠?”
“여기는 왜 이렇게 더운 거야?”
이 말과 함께 호영이 회의실을 급히 빠져나갔다.
“내가 저놈의 자식을…….”
* * *
대한 그룹 전용기는 점심 무렵에 앙골라의 관문인 루안다 콰트루 드 페베레이루 공항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산투스 부통령의 환영을 받은 겨울 일행은 대서양 해변에 위치한 특급호텔을 향해 출발했다.
“이야, 내가 대서양을 아프리카에서 보는 날이 오다니, 감개가 무량하네.”
그런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둘 겨울이 아니었다.
“조용히 하지?”
“에이, 낭만이 뭔지 쥐뿔도 모르는 놈.”
“낭만은 개뿔.”
두 사람의 유치한 언쟁을 지켜보고 있던 정명훈 사장이 드디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 이사, 한 부사장이 화난 이유가 뭐야?”
“저에 대한 질투심밖에 더 있겠습니까?”
윙윙―
그때, 정명훈 사장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이 진동하는 바람에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
“자 부총리님, 벌써 앙골라에 도착하셨습니까?”
[네. 어제 오후에 도착했습니다. 정 사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언제쯤 시간이 괜찮을까요?]
정명훈 사장은 자오린 부총리가 자기를 만나려고 하는 이유를 당연히 알고 있었다.
커미션과 관련해서 합의할 사항이 있는 것이다.
“저희는 조금 전에 이곳에 도착했기 때문에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여유를 주십시오.”
[숙소가 확정되면 연락 주십시오.]
딸깍.
정명훈 사장이 전화를 끊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하도진 사장이 한마디 했다.
“똥줄이 엄청나게 타나 보네요.”
정명훈 사장 숙소.
숙소에 도착해서 연락을 넣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오린 부총리가 도착했다.
여유로움을 가장하려는 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조급함이 담겨 있었다.
“이분은 중국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자오린 부총리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한민국에서 SH무역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정상호 사장입니다.”
상견례가 끝나기 무섭게 자오린 부총리는 여유로운 표정을 집어던지고 정상호 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 사장님, 정명훈 사장님과는 일가친척 되십니까?”
정상호 사장은 자오린 부총리가 어떤 의도로 물어왔는지 단숨에 캐치했다.
“아닙니다. 성의 한자도 다릅니다.”
“제가 사장님과 정명훈 사장님의 관계를 여쭤본 이유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괜히 의심 살 일을 벌이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만.”
“네. 정확하게 맞습니다. 시쥔량 주석님은 제가 셀러 측과 모종의 합의를 통해서 커미션을 착복하는 것이라 오해하고 계십니다.”
“시 주석님이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저희가 어떻게 해 드리면 됩니까?”
자오린 부총리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신에게 배정된 커미션을 대폭 줄이고, 시쥔량 주석의 몫을 늘리는 것밖에는.
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죽기보다 싫다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 정명훈 사장을 급하게 만나러 온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까?”
반면, 겨울은 자오린 부총리가 별것 아닌 일로 걱정하고 있는 중이라 판단했다.
조용히 발언권을 요청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 부총리님, 제 생각을 말씀드려 볼 테니까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질문해 주십시오.”
“빨리 얘기해 보세요.”
“바이어 맨데이트에 배분될 6% 중에서 시 주석님께는 2%, 자 부총리님은 1%, 쑹전밍 장관은 0.3%, 나머지 2.7%는 SH무역에 배분하면 됩니다.”
“SH무역은 1%를 배분 받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네, 맞습니다. SH무역에 배분될 2.7% 중에서 1.7%와 저희가 자 부총리님께 지급하기로 약속한 1%를 더한 2.7%는 H&J 컨설팅에서 자 부총리님께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단, 커미션을 수령할 사람은 자 부총리님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제 정명훈 사장님과 대화 나누십시오.”
겨울이 명확하게 결론을 내고 물러나자, 정명훈 사장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자 부총리님, 저희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산투스 부통령님을 만나서 장시간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때 논의된 내용을 말씀드릴 테니까, 참고하십시오.”
“네. 말씀해 보십시오.”
“앙골라 정부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탈퇴 협상부터 끝낸 후, 자원 수출 건에 대해 논의하자는 입장입니다.”
“그것은 문제없습니다.”
“앙골라 정부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한 부채를 전액 탕감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는 제가 결정할 수 없으니까, 주석님과 상의해서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자오린 부총리는 응접실 구석으로 이동해서 시쥔량 주석과 통화를 시작했다.
그 틈을 이용해서 호영이 겨울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한 부사장, 우리 회사에 배정된 2.7% 중에서 1.7%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너희 회사와 우리 회사가 별도로 계약을 체결하면 돼.”
“아하… 그렇구나.”
“상당히 아쉬워하는 표정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냐?”
“우리는 1%만 해도 감지덕지 한 상황이니까, 넘겨짚지 마라.”
“그렇다면 다행이고.”
“크흠, 우리 회사가 요즘 겁나게 어려운데… 자비를 베풀어 줄 생각은 없는 거지?”
“어.”
“에이! 인정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놈.”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시쥔량 주석과 통화를 끝낸 자오린 부총리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정 사장님, 상황이 조금 좋지 않습니다.”
“시 주석님께서 반대하고 계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제가 산투스 부통령님께 뭐라고 말씀드릴까요?”
“부채를 탕감받기 위해서는 반대급부를 제시해 달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정명훈 사장은 시쥔량 주석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즉각 알아챘다.
그는 지금 인센티브를 요구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 부총리님, 제가 산투스 부통령임을 만나는 자리에 루퍼트 장관도 같이 있었습니다.”
“그럼 반대급부가 준비되어 있다고 주석님께 보고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다음 날.
약속한 시간보다 먼저 협상장에 도착한 정명훈 사장은 자오린 부총리와 합의한 내용을 산투스 부통령에게 자세하게 밝혔다.
“저희가 신경전을 심하게 벌일 예정이니까, 절대로 흥분하지 마시고 침착하게 대응하십시오.”
“자 부총리가 그렇게 행동하려는 이유가 뭡니까?”
“실무자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들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았습니다.”
잠시 후, 자오린 부총리를 필두로 중국 측 사람들이 협상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이 정해진 자리에 앉자, 기다리고 있던 사회자가 큰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지금부터 앙골라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탈퇴 협상을 시작하겠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