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같은 날에 쫓겨난 부자 (1)
며칠 후.
최성진 부회장은 아프리카 출장에서 돌아온 조병석 실장을 집무실로 불러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조 실장, 회장님의 아프리카 출장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앙골라 정부 측에서 회장님을 초청하는 바람에 늦어진 겁니다.”
“그들이 회장님을 초청한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앙골라 앞바다의 가스전 개발 사업을 같이 추진해 보자고 초청했습니다.”
“이번 아프리카 출장에서 얻은 성과가 제법 있었겠네요?”
사실 조병석 실장은 최성진 부회장이 자기를 부른 이유를 너무나도 알고 있었다.
철도 건설 공사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 획득.
그런데 그는 별로 영양가 없는 질문을 던지며 자기를 떠보고 있는 중이었다.
자칫하다가는 추성민 법인장과 수립해 놓은 계획이 어긋날 수 있는 상황.
어쩔 수없이 특단의 수단을 강구하기로 결정했다.
“부회장님, 선수들끼리 간 보는 것도 아니고 쓸모없는 질문은 건너뛰었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하, 저도 원하던 바였습니다.”
“박철헌 전 사장과 설영석 이사한테 보고받으셨겠지만, 저한테 정보를 획득하고 싶으시면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 주셔야 합니다.”
“귀중한 정보라면 얼마든지 지급해 줄 용의가 있습니다.”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를 연결하는 철도 건설 공사 프로젝트와 관련한 정보면 되겠습니까?”
“제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 준다면, 대가를 지급할 수 없습니다.”
“저도 부회장님께 시시한 정보는 알려 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순간, 최성진 부회장은 짧은 딜레마에 빠졌다.
조병석 실장이 원하는 대가가 얼마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억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조 실장, 100억 어떻습니까?”
“네?! 그렇게 많이요!”
아뿔싸!
최성진 부회장은 경솔하게 놀린 자신의 입을 꿰매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주워 담기에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천 부회장한테 받아 내면 되겠지 뭐.’
그렇게 속으로 한마디 하고 조병석 실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 대신에 확실한 정보여야 합니다.”
“부회장님이 시시한 정보라고 판단하시면, 100억을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조 실장을 믿어 보도록 하죠. 계좌번호를 알려 주면, 지금 즉시 송금해 드리겠습니다.”
조병석 실장이 메모지에 은행 계좌번호를 적어 주자, 최성진 부회장은 노트북을 이용해 그 자리에서 100억 원을 송금했다.
모든 절차를 끝마치고 소파로 돌아온 그는 조병석 실장한테 말을 건넸다.
“조 실장, 100억이 입금됐나 확인해 보세요.”
조병석 실장은 핸드폰으로 확인한 후, 최성진 부회장의 물음에 대답했다.
“네. 입금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눠 볼까요?”
“궁금하신 게 있으면 물어보십시오.”
“H&J 컨설팅 측은 철도 건설 공사 프로젝트의 타당성 검토를 어디서 진행하고 있습니까?”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 어쩐지…….”
이제야 알았다는 듯 최성진 부회장이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하필이면 베이스캠프를 프랑스 파리에 차린 이유가 뭡니까?”
“비밀 유지와 아프리카 3개국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
“타당성 검토 진행 상황에 대해서 간략하게 얘기해 줄 수 있습니까?”
“이미 알고 계신 것은 제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일 중요한 공사 실행 가격은 500억 달러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네? 400억 달러 아니고요?”
“400억 달러는 5년 전에 검토할 당시의 금액이었습니다. 그동안에 물가 상승을 감안해서 100억 달러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철도 건설 공사 프로젝트를 실행할 자금은 확보했습니까?”
“H&J 컨설팅의 자회사인 H&J Investment가 전액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철도 건설 공사 프로젝트를 수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병석 실장은 아주 중요한 순간이라고 판단했다.
자기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작전의 성패가 달려 있었으니까.
앙골라에서 겨울 등과 수립한 작전을 다시 한번 떠올린 후, 최성진 부회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H&J 컨설팅은 입찰 참여 조건을 강화해서 어중이떠중이들을 배제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입찰 참여 조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입찰에 참여하는 건설사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건설공사를 수행한 실적증명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1위를 차지한 건설사에 우선협상 대상 자격을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순간, 최성진 부회장은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H&J 컨설팅이 제시한 입찰 참여 조건은 편법을 동원하면 얼마든지 1위를 차지할 수 있었으니까.
“조 실장, 그러면 이번 입찰은 누가 더 컨소시엄에 많은 건설사를 참여시키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겠네요?”
“부회장님이 잘못 알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컨소시엄은 최대 다섯 개 건설사까지 구성할 수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부회장님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건설공사를 많이 수행한 건설사들의 순위를 알고 계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스페인의 ACS, 프랑스의 VINCH, 대한건설, 중국의 CTG, CSCEC, 완커건설 순입니다. 참고 적으로 대한건설은 VINCH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상태입니다.”
최성진 부회장은 YCM 건설 컨소시엄이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는 방법을 머릿속에 빠르게 그려 보았다.
‘CTG와 CSCEC는 이미 우리 편이나 마찬가지이고, ACS를 끌어들이는 쪽이 1위를 차지한다는 소리네.’
빠르게 결론에 도달하자,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조 실장, 대한건설이 ACS를 파트너로 끌어들일 가능성이 있습니까?”
“송 회장은 몇 년 전에 ACS의 테베즈 회장에게 뒤통수를 크게 맞은 적이 있다며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VINCH도 ACS와 세계 건설 시장 MS 1위를 다투고 있다며 껄끄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고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비즈니스 세계에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습니다.”
즉, 대한건설 컨소시엄이 결국 ACS를 파트너로 끌어들일 거라는 말이었다.
“만약에 대한건설 컨소시엄이 ACS를 파트너로 끌어들이고, YCM 건설 컨소시엄이 CTG와 CSCEC를 파트너로 끌어들이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저희가 시뮬레이션 해 봤는데, 대한건설 컨소시엄이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결국 ACS가 캐스팅보트라는 얘기네요?”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YCM 건설 컨소시엄이 철도 건설 공사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ACS를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방법밖에 없을 겁니다.”
“나한테 좋은 정보를 알려 줘서 고마워요.”
“이 정도 정보면 100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부회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 실장이 언급한 그대로 입찰공고가 나면, 그때 믿어 주겠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100억은 건드리지 않고 있겠습니다.”
링링링.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최성진 부회장의 핸드폰이 음악소리를 토해 냈다.
그는 핸드폰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하고, 조병석 실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추 법인장, 오랜만이네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회장님.]
“내가 지금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인데, 급한 용건입니까?”
[최준하 씨와 관련된 내용입니다만, 나중에 전화 드릴까요?]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추성민 법인장이 하찮은 일로 전화하지 않았을 테니까.
“아닙니다. 얘기해 보세요.”
[저희 아프리카 법인은 최준하 씨를 내일 날짜로 해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해고 사유는 무단결근 및 지시불이행입니다.]
최성진 부회장은 모든 희망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아들을 회사에 붙잡아 둔 이유는 미래에 있을 송훈석 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들놈이 회사에서 쫓겨나면, 대한 그룹 경영권을 차지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아, 아들이 하나만 더 있었어도.’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추성민 법인장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추 법인장, 나를 봐서라도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되겠습니까?”
[저도 그러고 싶지만, 회장님의 지시사항이라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요.”
마음이 착잡해진 최성진 부회장은 한참 만에 대답했다.
[부회장님께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나중에 통화하십시다.”
뚝.
거칠게 전화를 끊은 최성진 부회장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가 조병석 실장에게 말을 걸었다.
“조 실장, 아프리카 출장 당시에 내 아들놈을 만나 봤습니까?”
“불행히도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놈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습니까?”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우간다에 출장 갔을 당시에는 아프다는 핑계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뒤에는 저희와 마주치기 껄끄러웠는지 무단으로 이집트로 도망갔습니다.”
“아이고.”
“송 회장님이 이 사실을 알고 얼마나 대노했는지,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도 자식을 키우고 있는 입장이지만, 최준하 씨는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하아, 조 실장의 충고를 달게 받도록 하죠.”
“부회장님의 기분이 별로인 것 같으니까,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조병석 실장이 떠나가자 최성진 부회장은 소파에 온몸을 묻고 장고에 돌입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송 회장을 찾아가기 전에 이놈한테 전화나 한번 해 봐야겠다.”
하지만 전원이 꺼져 있다는 기계음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내가 이놈의 새끼를…….”
* * *
그 시각.
송훈석 회장을 찾아간 조병석 실장은 최성진 부회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가감 없이 보고했다.
“…저희가 수립한 계획대로 모든 정보를 제공했고, 대가로 100억 원을 받았습니다.”
“조 실장, 불로소득이 생겼으니까 한턱 쏘라고.”
“최 부회장이 입찰 공고가 날 때까지 사용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때 거하게 한턱 쏘겠습니다.”
“그렇게 해. 그런데 최 부회장과 최준하에 대한 얘기를 나눠 봤나?”
“때마침 추 법인장이 전화를 걸어오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얘기를 꺼낼 수 있었습니다.”
조병석 실장은 최성진 부회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간략하게 보고했다.
“수고했어.”
“최 부회장이 찾아올 가능성이 있으니까,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조병석 실장이 떠나가자, 창가로 이동한 송훈석 회장은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물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입을 열었다.
“서 실장,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오늘 최 부회장과 끝장을 봐야겠어. 어떻게 생각해?”
“저도 회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근거 자료는 확보해 놓고 있지?”
“네, 물론입니다.”
잠시 후, 조병석 실장의 말대로 최성진 부회장이 송훈석 회장을 찾아왔다.
그는 예열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회장님, 제 아들놈을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안 됩니까?”
“최 부회장님, 준하 군이 결근하면서 회사에 진단서를 제출했는데, 모두 가짜였다는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
“…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켕기는 구석이 있다는 듯 최성진 부회장이 살짝 뜸을 들였다가 대답했다.
“준하 군에게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 준 의사가 경찰에 구속됐는데, 진술서를 저희가 확보했습니다. 진술서에 어떤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지 얘기해 주지 않아도 되겠죠?”
최성진 부회장은 온몸에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의사를 최준하에게 소개시켜 준 사람이 다름 아닌 자기였으니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회장님, 제가 아들놈이 줄기차게 부탁해 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저는 준하 군이 저렇게 망가진 이유가 최 부회장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준하 군이 저지른 일들을 최 부회장님이 알아서 처리해 주니까, 저 모양 저 꼴이 된 거잖아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준하 군의 해고 건과 관련한 대화는 이쯤에서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왕 저를 찾아오셨으니까, 다른 얘기를 해 봅시다.”
“네, 말씀하십시오.”
“저는 7월 말에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해서 최 부회장님을 등기이사에서 해임시킬 예정입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