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 (2)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낸 부투야 실장은 다음 일정 소화를 위해 급하게 떠나갔고, SH무역 측 사람들과 은센기 사장도 눈치껏 자리를 비켜 주었다.
이제 송훈석 회장의 숙소에는 정명훈 사장을 비롯한 H&J 컨설팅 측 사람들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송훈석 회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문을 틔웠다.
“다리 건설 공사 건에 대해서 부투야 실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겨울은 단순히 부투야 실장이 기분이 상해서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라 판단했다.
다리 건설 공사 건으로 자신들에게 잔뜩 생색 낼 생각이었는데, 정명훈 사장이 먼저 언급해 버렸으니까.
그런 생각은 자기만 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는지 하도진 실장이 먼저 발언권을 요청했다.
“회장님, 부투야 실장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Give & Take가 확실한 사람입니다. 그는 저희한테 받은 도움을 다리 건설 공사 건으로 갚으며 생색내려고 했는데, 사장님이 먼저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당황한 것 같습니다.”
“정 사장은 하 실장의 의견에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내용이니까,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합시다.”
“저도 바라던 바입니다.”
“다리 건설 공사 계약은 늦어도 8월까지 마무리 지었으면 하는데, 정 사장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명훈 사장은 송훈석 회장이 8월을 계약 시점으로 언급한 이유를 단숨에 캐치했다.
10월에 예정된 철도 건설 공사 프로젝트 입찰에 다리 건설 공사를 활용할 생각인 것이리라.
“회장님, 대한건설에 일감이 많이 쌓여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VINCH와 컨소시엄을 맺어서 대응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아, 그렇군요.”
사실 송훈석 회장이 다리 건설 공사 얘기를 먼저 꺼낸 이유는 철도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 위함이었다.
서동호 실장 등과 수립한 시나리오를 다시 한번 떠올린 후, 말을 이어 나갔다.
“정 사장, ACS를 대한건설 컨소시엄에 파트너로 합류시켜서 철도 건설 공사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저는 대한건설과 VINCH의 능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상한 대로 정명훈 사장이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사실은 우리가 ACS를 파트너로 합류시키려는 목적은…….”
겨울은 송훈석 회장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판단했다.
그의 오류를 짚어 주고 싶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직 VINCH의 페키르 회장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겨울이 짧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송훈석 회장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완커건설이 중국 건설사들과 ACS를 끌어들이면, 자칫하다가 입찰에서 우리가 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았습니다만, VINCH 측의 의견을 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정 사장님이 찬성하면, VINCH 측에 우리의 생각을 통보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VINCH 측을 이 자리에 불러서 의견을 물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합시다.”
호출을 받고 급하게 달려온 VINCH의 페키르 회장과 샹바르 사장에게 송훈석 회장은 ACS를 파트너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런 상황이니, 페키르 회장님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송 회장님, 꼭 그래야 하겠습니까?”
역시나 페키르 회장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는 마찬가지.
그도 그럴 것이, ACS와 VINCH는 세계 건설 시장에서 MS 1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라이벌이었으니까.
“저도 페키르 회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만, 저희가 확실하게 입찰을 따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송훈석 회장의 대답을 들은 페키르 회장은 시선을 정명훈 사장한테 옮기며 말을 걸었다.
“정 사장님, 입찰 조건을 바꾸면 되지 않을까요?”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습니까?”
“예가 입찰 방식은 어떻습니까?”
사실 정명훈 사장도 예가 입찰 방식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예가 입찰 방식은 운이 적용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낙찰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편법이 필요하다.
만약에 자신들이 사용한 편법이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불어오는 후폭풍 또한 만만치 않을 터.
그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ACS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고려한 것이다.
짧게 생각을 끝내고 페키르 회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400억 달러짜리 초대형 건설 공사를 단순히 운에 의해서 낙찰자를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할 수 없군요. 그렇다면 ACS를 파트너로 끌어들이도록 합시다.”
겨울은 지금이야말로 대화에 끼어들을 순간이라 판단내리고 재빨리 발언권을 요청했다.
“문 사장님, YCM 건설 컨소시엄이 ACS를 파트너로 끌어들이면, 대한건설 컨소시엄을 무조건 이긴다고 보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저희가 최근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수주한 건설공사 건수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ACS 하나만으로는 절대로 저희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느 건설사를 파트너로 끌어들일까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한 건설 공사를 제일 많이 실행한 국영 건설사인 CTG와 CSCEC를 끌어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건설사를 제외하고 아프리카에서 건설공사를 많이 실행한 회사가 있습니까?”
“여러 건설사들이 있지만, 모두들 도토리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ACS를 YCM 건설 컨소시엄에 넘겨줍시다.”
“네?!”
겨울의 결정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나타냈다.
“저는 여러분이 놀라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우리들이 놀라지 않을… 으하하하!”
이제야 겨울의 의도를 눈치챘다는 듯 송훈석 회장이 느닷없이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송 회장님, 혼자 웃지 마시고… 저희도 같이 웃으면 안 되겠습니까?”
“하하하! 페키르 회장님, 저보다는 한 부사장한테 설명을 듣는 게 좋을듯합니다.”
페키르 회장의 시선을 받은 겨울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할 때 중국 정부가 운영하고 있던 회사들도 동시에 퇴출됐습니다. 때문에 YCM 건설 컨소시엄은 죽었다 깨어나도 국영 건설사인 CTG와 CSCEC를 파트너로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아하! 무슨 말인지 감 잡았습니다.”
샹바르 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겨울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 부사장님, YCM 건설 컨소시엄이 CTG와 CSCEC가 세 나라에서 퇴출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아직도 모르고 있다면, 입찰이 정말 재미있게 진행될 것 같은데요?”
윙윙―
그때, 정명훈 사장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기다리고 있던 전화였는지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서 통화를 시작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통화 내용을 간략하게 언급했다.
“지금 앙골라의 산투스 부통령이 저희를 만나러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인데, 10분 정도 후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빨리 일어나 보세요.”
“그럼 내일 착공식장에서 뵙겠습니다.”
* * *
“이분은 H&J 컨설팅의 CEO인…….”
루퍼트 장관의 소개로 H&J 컨설팅과 앙골라 측의 주요 인사들이 간단하게 인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대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산투스 부통령님, 지금부터 저희가 나누는 대화 내용이 밖으로 유출되면 상황이 복잡하게 꼬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지난 5월 초에 몰디브에서 저하고 자오린 부총리가 은밀히 만나서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한 부채를 탕감시켜 주는 금액만큼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인센티브 지급 조건은 어떻습니까?”
“10% 탕감시켜 줄 때마다 2%씩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산투스 부통령은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중국에서 빌린 돈은 모두 150억 달러.
30억 달러만 있으면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할 수 있다는 뜻인데, 어찌 흥분되지 않겠는가.
“루퍼트 장관님,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겠죠?”
“제대로 들은 게 맞습니다.”
“그나저나 자 부총리가 우리나라의 부채를 탕감시켜 줄 능력이 될까요?”
“자 부총리가 챙기는 인센티브의 절반이 시쥔량 주석의 뒷주머니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아∼ 어쩐지.”
“그들 사정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바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십시다.”
“네, 알겠습니다.”
“인센티브는 앙골라 측에서 지급하는 게 원칙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우리나라가 무이자로 빌려줄 수 있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만, 인센티브는 저희가 알아서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자 부총리가 어떤 인물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는 욕심이 상당히 많은 사람으로…….”
루퍼트 장관은 자오린 부총리에 대한 정보를 산투스 부통령에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설명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명훈 사장 등이 친절하게 부연 설명해 주었음은 물론이다.
“…저희의 조언을 참고해서 자 부총리를 상대하면, 틀림없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제가 산투스 부통령님께 일대일로 프로젝트 탈퇴 협상 건에 대해서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부터는 정명훈 사장님과 자원 수출 건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 보십시오.”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 루퍼트 장관이 2선으로 물러났고, 그 자리를 정명훈 사장이 차지했다.
“산투스 부통령님, 자원 수출 건에 대해서 루퍼트 장관님께 전해 들은 얘기를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나라가 중국에 헐값으로 수출하고 있는 자원들에 대해서 H&J 컨설팅 측이 제값 받도록 만들어 줄 예정이라는 것밖에 들은 게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현재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한 나라는 모두 7개국입니다. 이 나라들은 다음 달부터 자원들을 국제가격 대비 5% 할인된 가격으로 인도에 수출할 예정입니다.”
“우리나라도 인도에 수출하도록 만들어 준다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만들어 드릴 수 있지만, 더 좋은 조건으로 수입하겠다는 나라가 있는 상황입니다.”
“어느 나라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중국입니다.”
“중국은 싫습니다.”
산투스 부통령이 강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정명훈 사장은 그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제 말씀을 끝까지 들어 본 후까지 반대하시면,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앙골라가 중국에 수출하고 있는 자원들의 금액이 300억 달러로 가정하겠습니다. 이 자원들을 인도에 수출하면, 국제가격 대비 약 24억 달러 정도 손해가 발생할 예정입니다.”
“15억 달러 아닙니까?”
“셀러와 바이어 맨데이트에게 커미션 3%를 앙골라가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24억 달러가 맞습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에 자원들을 중국에 수출하면, 1달러의 손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산투스 부통령은 정명훈 사장의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자원들을 국제가격에 연동해서 중국에 수출하더라도 커미션 3%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9억 달러 가까이 손해가 발생한다.
그런데 손해가 전혀 발생하지 않을 거라니.
어떻게 가능한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바이어가 커미션을 지급하면 됩니다.”
“아하! 그 방법이 있었군요.”
“참고적으로 중국은 커미션으로 12%를 지급할 예정입니다.”
“네?! 그게 가능합니까?”
산투스 부통령이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바이어 맨데이트에 배정되는 커미션 6%중에 5%는 시쥔량 주석을 포함한 중국 사람들의 몫입니다.”
“아, 그렇다면 가능하겠군요.”
“앙골라 측이 자원들을 중국에 비싸게 수출하는 건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도 동의한 상태입니다.”
“정 사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루퍼트 장관이 이를 확인시켜 주었다.
“좋습니다. 그런 조건이라면 앙골라는 중국에 자원을 수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산투스 부통령님, 탁월하신 결정입니다.”
정명훈 사장의 만족한 목소리가 회의실에 가득 들어찼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