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화] 원대한 꿈 (2)
“저기, 오빠들. 지금 장난치는 거지?”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강희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허허, 이걸 장난으로 들었다니, 좀 섭섭한데?”
“지, 진짜로 20억 달러가 있다는 소리야?”
“뭐, 지금은 없지만. 아마 연말쯤이면 최소 50억 달러는 만들 수 있을 걸?”
강희는 호영이 거짓말하는 중이라고 판단했다.
50억 달러는 한화로 6조 가까이 되는,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이었으니까.
두 사람이 인도와 러시아 출장 기간 동안에 모종의 역할을 수행해서 커미션을 받는 것이 틀림없었지만, 그래도 50억 달러는 많아도 너무 많았다.
“호영 오빠, 50억 달러가 누구네 집 강아지 이름이야?”
강희의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겨울에게 동의를 받는 것이 필수였고.
“겨울아, 아스날을 인수할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을 설명해 줘도 되냐?”
“그러든지.”
겨울의 동의를 받은 호영은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살펴본 후,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너희 둘만 알고 있어.”
“그렇게 할 테니까, 얼른 얘기해 봐.”
“너희도 알고 있겠지만, 석유와 천연가스 등은 각 나라들의 산업을 지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자원이 부족한 나라들은 총력을 다해서 자원을 확보하려고 시도하고 있어. 특히 GDP 세계 2위인 중국과 5위인 인도는 자원들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야. 그래서 대부분의 자원들을 외국에서 수입하기 위해…….”
호영은 강희와 가을에게 인도와 러시아 출장 기간 동안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단, 두 사람이 알고 있어 봐야 도움 되지 않는 무기류에 대한 거래 건은 언급하지 않았다.
“…겨울이가 신경 써 준 덕분에 나는 연간 9억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의 커미션을 받게 됐어. 겨울은 연간 80억 달러 이상 커미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파, 팔십억 달러……?”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는 듯 강희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어. 80억 달러.”
“와… 오빠들, 정말 대단하다…….”
“어때? 이래도 우리가 아스날을 인수하겠다는 말이 거짓말 같아?”
“아니. 그래도 그쪽으로 문외한인 오빠들이 축구 클럽을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이 될까 걱정은 되네.”
“나하고 겨울은 아스날을 소유하는 것에 만족해야지. 구단 운영은 축구에 정통한 전문 경영인에게 맡길 생각이고.”
순간, 강희는 살짝 욕심이 생겨났다.
“호영 오빠, 아스날을 언제쯤 인수할 수 있을까?”
“음… 지금부터 서두르면… 한 1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은데.”
“만약에 오빠들이 아스날을 인수하면, 우리 오빠를 영입해 줄 수 있어?”
“강석이가 지금처럼 실력을 유지하고 있으면, 영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우리 오빠한테 이 얘기를 해 줘도 돼?”
“해 줘도 상관없기는 한데… 걔가 네 말을 믿을까 모르겠다.”
“오빠가 통화 한 번만 해 주라.”
“나보다는 겨울이가 통화하는 게 낫지 않을까?”
“겨울 오빠∼”
강희의 부탁을 받은 겨울은 정말 난감했다.
축구를 그만둔 이후에 자격지심 때문에 자기가 먼저 강석과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강석은 꾸준히 전화를 걸어왔지만, 인연을 끊기로 결정한 이상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도 자신의 의도를 읽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
강석이와 연락을 끊은 지 무려 7년.
원인을 제공한 자기가 무슨 염치로 전화를 먼저 건단 말인가.
“강희야, 아스날을 인수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인수가 확정되면 통화하는 것으로 하자.”
“…알겠어.”
결국 보다 못한 호영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에이, 매정한 놈. 강희야, 내가 통화할 테니까 빨리 전화해 봐라.”
“알았어, 호영 오빠!”
이 말과 함께 강희는 강석에게 전화해서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후, 핸드폰을 호영에게 건네주었다.
“강석아, 오랜만이다.”
[그러게. 그런데 무슨 일이야, 이렇게 갑자기?]
“강희와 함께 밥 먹다가 네가 생각나서 전화해 봤지 뭐.”
[설마… 나 이 결혼 반대다.]
“아니, 뭐래! 그런 거 전혀 아니거든!”
[지금 둘이 데이트 하는 거 아니야?]
“내 옆에 겨울이도 있고, 건너편에 가을이도 앉아 있어. 이제 오해가 풀렸냐?”
[흠, 뭐 그렇다면야. 그나저나 겨울이는 잘 살고 있냐?]
“그동안 겨울이랑 연락 안 했어?”
[하아, 그 녀석의 목소리를 들어 본 지가 벌써 몇 년 지난 것 같다.]
그 순간, 호영은 겨울이 강석과 통화하기 싫어한 이유를 간파했다.
축구선수로 잘나가고 있는 강석을 시기해서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것이리라.
‘에이, 쯧. 좁쌀보다 속이 좁은 놈.’
겨울의 얼굴을 힐끗 쳐다본 호영은 강석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그동안 강희한테 나하고 겨울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어?”
[겨울이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고, 네 얘기는 진짜 겁나게 많이 들었다.]
“강희가 나에 대해 뭐라고 했는데?”
[강희가 힘들어할 때 네가 많이 도와줬다고 하더라. 그 점에 대해서는 내가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알아주니 고맙고.”
[이제 겨울이 놈이 뭐하고 지내는지 얘기해 봐.]
“놀라지 마. 겨울이가 엄청난 거물이 되었어.”
[고작 컨설팅 회사의 부사장이 거물이면, 나는 상상하지 못할 거물이겠네?]
호영은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울의 위상을 어필하면서 자기도 은근슬쩍 묻어 갈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상한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 초강수를 두기로 결정했다.
“잘 들어. 너는 인도 총리, 아니, 러시아 대통령 같은 거물급들하고 술자리를 가져 봤어?”
[무슨 소리야? 당연히 안 가져 봤… 아니, 설마…겨울이가 그렇다는 건 아니겠지?]
“왜 아니겠어. 나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는데.”
[에휴, 강희가 너 같은 거짓말쟁이랑 친하게 지내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 이걸 안 믿네. 잠깐만 기다려.”
뚝.
전화를 끊은 호영은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을 강희의 핸드폰에 전송한 뒤, 곧바로 강석에게 전송했다.
윙윙―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강희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호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그래서 우리 상상하지도 못할 거물님. 이제 믿을 수 있으시겠어요?”
[…어.]
꼬리를 내렸다는 듯 강석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잦아들었다.
“뭐, 그래도 여전히 실감은 안 나겠지만, 겨울이랑 나는 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나가고 있다 이거야.”
[하여간 잘됐네.]
“내가 너한테 전화한 이유는 강희의 부탁을 받아서야.”
[강희가 어떤 부탁을 했는데?]
“사실은 나하고 겨울이가 아스날을 인수할 예정이거든.”
호영은 강석에게 원대한 꿈을 설명해 주었다.
“강희가 너를 영입해 달라고 하더라.”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너한테 농담할 이유가 뭐가 있는데?”
[그럼 너희를 믿고 우리 팀에 1년 더 잔류해도 되냐?]
“내가 방금 전에 얘기했듯이 경기력을 지금만큼 유지시켜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 붙들어 매라.]
“알았다. 독일에서 선수 생활 잘하고 있어라. 아스날 인수가 결정되면 연락해 줄게.”
[그래. 부탁한다, 매제.]
“죽는다.”
뚝.
이번에는 강석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흠, 강석이가 매제라고 했나 보군.”
“아니거든!”
겨울의 웃는 얼굴을 향해 호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오호, 성질내는 걸 보니까 진짜인가 보네?”
“강희 언니, 호영 오빠와 결혼하기를 진심으로 바랄게.”
가을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자, 호영이 화를 버럭 내며 언쟁을 시작했다.
이에 당사자인 강희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 * *
월요일 오전.
정명훈 사장의 사무실에서는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의 경영진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신 팀장, 우리 회사와 인도 국방부 사이의 무기류 거래는 언제쯤 마무리될 것 같은가?”
“워낙 다뤄야 할 내용이 많기 때문에 다음 달까지는 진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회사가 인력을 지원해 주지 않아도 되나?”
“SH무역 측에서는 괜찮다는 입장입니다만, 계약의 주체가 저희 회사이기 때문에 인력을 지원해 주는 게 맞을 듯합니다.”
그때, 김윤중 전무가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제가 팀원들과 함께 SH무역 측에 합류하겠습니다.”
“전무님은 저희와 함께 아프리카 출장에 동행해야하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습니다. 강진권 팀장과 팀원들을 SH무역에 합류시키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전무님은 자원 및 무기를 중개해 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스카우트 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 골칫덩어리인 성과급에 대해서 얘기해 봅시다. 신 실장, 직원들한테는 얼마씩 배분해 줘야 하나?”
“일시불로는 1억 8,000만 원씩 지급해야 하고, 6개월 단위로 12억 5,000만 원씩 지급해 줘야 합니다.”
정명훈 사장은 근심걱정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일시불로 주는 성과급은 그렇다하더라도 6개월 단위로 지급해야 하는 성과급이 많아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직원들한테 한 약속을 깨 버릴 수도 없는 노릇.
“이제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 보겠습니다. 이승훈 상무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이번 기회에 성과급 지급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질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디어가 있습니까?”
“제일 먼저 성과급 지급 비율을 0.1%가 아닌 0.01%로 대폭 줄이는 것입니다.”
“직원들이 반발하지 않을까요?”
“막말로 얘기해서 성과급은 회사의 경영 상황에 따라서 지급 여부를 결정해도 됩니다. 성과급 지급 비율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직원들은 매년 3억이 넘는 성과급을 받아 갈 예정입니다. 본인들의 연봉보다 네다섯 배가 넘는데, 반발할 직원들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 다른 사람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남우영 인사팀장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청했다.
“저는 6개월 단위로 지급하는 성과급은 폐지하고, 그 대신에 성과급을 적립했다가 퇴직금으로 지급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목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주면 될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남 팀장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일시불로 지급하는 성과급은 이번에 한해서는 기존대로 지급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하 실장의 의견에 적극 찬성합니다.”
모두들 하도진 실장의 의견에 찬성표를 던졌다.
단, 겨울을 제외하고.
그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정명훈 사장이 질문을 던졌다.
“한 부사장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나?”
“저도 하 실장의 의견에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직원들의 의견을 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남 팀장, 우리들이 결정한 내용을 직원들한테 설문조사해 보라고.”
“네, 알겠습니다.”
“토론해야 할 안건이 남아 있습니까?”
“사장님, 신입사원들한테 특강을 해 줬으면 하는데, 가능하십니까?”
“내가 특강을 해 봐야 꼰대 소리밖에 더 듣겠어? 나 대신에 한 부사장이 특강하는 것으로 하라고.”
“네?! 제가요?”
예상외의 말이 흘러나오자, 겨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입사원들이 나보다는 우리 회사의 최대주주인 한 부사장을 더 만나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저도 사장님의 의견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하도진 실장이 재빨리 찬성의 입장을 보였다.
“한 부사장, 시간 끌지 말고 오늘 중에 끝내는 게 어때?”
“네? 아무런 준비도 없이요?”
“내 경험상 신입사원들한테 거창한 얘기를 해 줘 봐야 귀에 들어가지 않아. 한 부사장이 지금까지 경험한 일들을 진솔하게 얘기해 주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거야.”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야기는 이걸로 끝내고. 자, 이번 주도 활기차게 시작해 봅시다.”
사무실로 돌아온 겨울은 하도진 실장에게 원망의 화살을 쏘아 보냈다.
“하 실장님, 저를 사지로 밀어 넣어도 되는 겁니까?”
“하하, 죄송합니다.”
“전혀 죄송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뭘까요?”
“제가 연수원 근처에 있는 맛집에서 점심 살 테니까, 화 푸세요.”
“…맛집에 가 보고 싶어서 저를 데리고 가는 건 아니고요?”
“어이쿠.”
그러자 하도진 실장은 큼큼 어색한 듯한 헛기침을 하며 사무실 밖으로 도망쳐 나갔다.
“얼마나 맛있는 맛집이기에 그러는 거야?”
괜히 입맛을 다시는 겨울이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