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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275화 (275/328)

[275화] 너의 활약을 기대하마 (2)

― 겨울 : 오늘 점심 식사 같이합시다.

― 이재성 : ……?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물음표였다.

비록 이재성 대리와는 대한 그룹 입사동기였지만, H&J 컨설팅에 소속되어 있는 지금은 상당히 애매한 사이로 변해 있었다.

게다가 여동생인 가을과 사귀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어려울 것이다.

겨울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

― 겨울 : 가을이 오빠 자격입니다.

― 이재성 : 넵. 알겠습니다.

― 겨울 : 가을이와 상의해서 점심 식사 장소를 알려 주세요.

― 이재성 : 넵, 부사장님.

회사근처 파스타 전문점.

가을은 힐끗힐끗 출입문을 곁눈질하며 이재성 대리를 향해 속삭였다.

“오빠가 우리를 왜 보자고 했을까?”

“오빠 자격으로 만나자고 했으니까… 우리 결혼 문제 때문이 아닐까?”

가을은 지난 주말에 고향에 내려가서 부모님께 결혼 문제에 대해서 살짝 운을 떼 보았다.

아버지는 몰라도 엄마는 찬성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두 분 모두 스물네 살짜리가 무슨 결혼이냐며 펄쩍 뛰었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러보아 부모님이 자신과 한 얘기를 겨울에게 한 것이 틀림없었다.

“재성 오빠, 내가 지난주에…….”

하지만 아주 공교로운 시간에 겨울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에 그녀의 얘기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이재성 대리와 가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겨울을 맞이했다.

“부사장님, 어서 오십시오.”

“이 대리,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요. 우리 앉아서 얘기합시다.”

자리에 앉은 겨울은 잔뜩 긴장해 있는 이재성 대리에게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직장상사가 아닌 가을이의 오빠 자격으로 이 대리를 만나는 거니까,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오늘 점심은 내가 살 테니까,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껏 주문하시고요.”

두 사람은 이때다 싶었는지 가격이 제법 나가는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주문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점심 식사가 끝나갈 무렵에 겨울이 의미심장하게 얘기를 먼저 꺼냈다.

“한가을,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니?”

“엄마하고 통화했어?”

“지난 일요일에 얘기 들었다.”

“오빠는 우리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네가 나이에 비해서 철도 일찍 들었고, 이 대리도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반대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내가 결혼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

“오빠는 여자친구도 없잖아.”

가을이 볼멘소리를 했다.

겨울은 잔뜩 삐져 있는 가을과의 대화를 중단하고, 이재성 대리에게 말을 건넸다.

“이 대리, 내가 여자친구가 없을 것 같아요?”

있다는 소리.

이재성 대리는 겨울 주변에 있는 여자들을 떠올려 보며 짧은 추측에 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와 겨울이 동시에 알고 있는 여자는 송지유와 조강희밖에 없었다.

느낌상 두 명 중에 하나인 것 같은데, 송지유일 것 같은 진한 예감이 들었다.

조강희와는 허물없는 오누이처럼 보였으니까.

“부사장님, 혹시 송지유 씨를 말하는 겁니까?”

“오빠, 그게 진짜야?!”

송지유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듯 가을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아직은 아니야.”

“송지유 씨가 맞다는 소리네? 그럼 고백했다가 차인 건가?”

“한가을, 내가 꼭 그런 꼴을 당했으면 좋겠니?”

“아니면 됐지. 그런 것 가지고 정색하고 그래?”

겨울의 표정에 맺힌 차가움을 본 가을은 얼른 꼬리를 내렸다.

입을 닫은 가을을 대신해서 이재성 대리가 질문을 던졌다.

“부사장님, 송지유 씨와 어떤 사이입니까?”

겨울은 송지유도 자기를 좋아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다만, 적극적으로 대쉬하는 호영을 의식해서 내색하지 않고 있을 뿐.

“서로 마음이 없는 사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곧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는 뜻인가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고춧가루를 뿌리는 인간이 있어서요.”

“혹시… 정호영 이사를 말하는 겁니까?”

“뭐?! 호영이 오빠도?”

이번에도 가을이 놀란 표정으로 물어 왔다.

“어, 맞아. 이제부터 두 사람이 결혼에 골인할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해 줄 테니까, 귀담아 듣도록 해.”

“알았으니까, 빨리 얘기해 봐.”

겨울은 동생이 낯설게 느껴졌으나, 그녀의 눈에도 자기가 낯설게 비춰질 거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내가 먼저 결혼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대단한 얘기가 흘러나올 것이라 예상했으나, 겨울의 입에서는 별것 아닌 얘기가 나왔다.

가을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강희도 호영에게 약간이나마 마음이 있는 것 같아 보였으니까.

“오빠, 내가 책임지고 호영 오빠와 강희 언니를 연결시켜 주도록 할게.”

“이 대리도 적극 동참해 주실 거죠?”

“그야 당연한 말씀입니다.”

“내 문제는 이쯤에서 마무리 짓고, 이제 장 부사장의 연애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 봅시다.”

“장 부사장님도 연애하고 있습니까?”

“연애라기보다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고백하기 전에 강력한 경쟁자가 생긴 상황입니다.”

가을은 이제야 모든 정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장대산 부사장과 이수진의 오묘한 사이에 조규원 대리가 눈치 없이 끼어든 것이리라.

아무리 그가 노력한다고 해도 장대산 부사장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표면적으로만 보아도 조규원 대리보다 장대산 부사장의 스펙이 훨씬 뛰어났으니까.

가을이 짧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겨울이 불쑥 질문을 던져 왔다.

“가을이 너도 장 부사장이 누구를 좋아하고 있는지 대충 눈치챘지?”

“우리 팀의 이수진 언니를 좋아하고 있잖아.”

“잘 알고 있네. 네가 수진 씨한테…….”

겨울은 두 사람에게 구상해 놓은 계획을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두 사람은 내가 책임지고 커버할 테니까, 오빠는 걱정 붙들어 매.”

“알았어. 너만 믿고 있을게.”

* * *

“사무실로 오라고 한 이유가 도대체 뭐야?”

호영이 비어 있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가을이가 아직 식당의 위치를 알려 주지 않아서 오라고 한 거야.”

“애꿎은 가을이가 열일 하는구먼.”

“어쩌겠냐? 이수진 씨와 친한 사람은 가을이밖에 없는데.”

“강희도 있잖아.”

“뭐, 그렇긴 하지.”

그때, 장대산 부사장과 이재성 대리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편한 자세로 비스듬히 앉아 있던 호영은 재빨리 소파에서 일어섰다.

“이 대리님, 오랜만입니다.”

“이사로 승진했다는 얘기는 가을에게 들었습니다. 정말 축하합니다.”

“이 대리님도 몇 년 안에 H&J 컨설팅의 임원으로 승진하실 거잖아요.”

“……?”

“한 부사장의 매제가 될 텐데, 정 사장님이 가만히 내버려 두겠어요? 아마도 H&J 컨설팅에서 중요한 보직을 하나 맡길 겁니다.”

“하하하,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이곳은 어쩐 일이십니까?”

이재성 대리는 호영에게 이런 질문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그에 걸맞은 대답거리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입사동기인 장 부사장님이 SOS를 치는 바람에 한팔 거들어 주러 왔습니다.”

“아, 저는 두 분이 입사동기였는지 몰랐습니다.”

“자자, 그런 얘기는 일단 앉아서 얘기하시죠?”

모두들 자리에 앉자, 겨울과 이재성 대리가 번갈아 가며 점심때 수립해 놓은 계획을 풀어놓았다.

“…장 부사장님을 너무 노골적으로 띄워 주면, 이수진 씨가 색안경을 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띄워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수진 씨하고 잘되면, 근사한 양복을 한 벌씩 선물해 드릴게요.”

“하하, 알았어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장대산 부사장은 평상시의 소극적인 태도와는 달리 매우 적극적으로 나왔다.

어지간히 이수진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다.

윙―

그때, 이재성 대리의 핸드폰에 문자가 하나 찍혔다.

가을이 보낸 문자였다.

“우리 회사 근처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답니다.”

“이제 결전의 장소로 슬슬 출동해 볼까요?”

* * *

자리에 앉은 이수진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투자분석 검증팀에 근무하고 있는 가을과 강희와는 친하게 지내고는 있었지만, 사사로이 저녁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소 뜬금없는 두 사람의 제안에 흔쾌히 응하긴 했지만, 뭔가 어색한 느낌을 내려놓지 못했다.

게다가 이곳은 음식 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맛집.

어찌된 영문인지 웨이터는 4인용 테이블이 아니라 널찍한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자기가 모르고 있는 무언가 있다고 판단한 그녀는 강희에게 질문을 던졌다.

“조 대리님,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제 얘기해 주세요.”

“가을 씨가 대신 대답해 줄 거예요.”

가을은 겨울과 이재성 대리에게 코치 받은 내용을 떠올린 후,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언니, 제 남자친구가 누구인지 알고 계시죠?”

“인사팀의 이재성 대리잖아.”

“제 남친이 강희 언니와 수진 언니에게 저녁을 한 끼 사 준다고 해서 오늘 자리를 만든 거예요.”

“우리한테 저녁을 사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럼요. 두 언니들한테 무조건 잘 보여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부사장님이 두 사람 사이를 반대하고 있는 건가?”

드디어 이수진이 호기심을 보여 왔다.

가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반대한다기보다는… 심술부리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거예요.”

이수진은 겨울이 심술부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얼추 감 잡았다.

본인은 산더미처럼 쌓인 과중한 업무로 인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는데, 여동생은 이재성 대리와 알콩달콩 연애를 하고 있으니.

아마도 이들의 연애에 배가 아픈 것이리라.

“부사장님한테도 여자를 소개시켜 주면 되잖아? 여기 조 대리님도 있고.”

“조 대리님은 임자가 따로 있어서 안돼요.”

“내가 임자가 있다고?”

정색하며 대답하는 가을을 향해 강희가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며 물었다.

“있잖아요. 언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잘 생각해 보세요.”

“혹시… 호영 오빠를 말하는 거야?”

“언니는 호영 오빠가 싫어요?”

“얘는… 싫다기보다는… 그냥 너무 뜬금없잖아.”

그때, 한 무리의 남자들이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은 본 강희와 이수진은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호영 오빠가 여기에 왜 왔어?”

“장 부사장님이 어떻게……?”

호영 또한 두 사람의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화들짝 놀란 얼굴로 겨울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강희가 여기에 왜 있냐?”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겨울이었지만, 절대로 언급할 수 없었다.

호영이 알게 되는 순간, 공든 탑이 우르르 무너질 수도 있었으니까.

“나도 잘 모르겠다. 가을이한테 물어보자.”

널찍한 자리에 앉자마자, 영문도 모르고 이곳에 나온 호영, 강희, 이수진의 본격적인 추궁이 시작됐다.

“한가을, 강희가 여기 왜있냐?”

“재성 오빠가 강희 언니한테도 도움을 요청한 게 있거든.”

“이 대리님, 강희가 이곳에 있다고 얘기하지 않은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호영이 이재성 대리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렸다.

“굳이 이유가 필요할까요? 강희는 제 입사 동기인데요. 그런데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 보니까 혹시…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있는 것 아닙니까?”

“강희하고는 고향 오빠 동생 사이일 뿐이니까, 괜히 넘겨짚지 마세요.”

“그렇다면 문제가 될 게 없겠네요.”

이재성은 특유의 넉살로 자연스럽게 공격을 받아넘겼다.

잠시 잠잠하다 싶더니, 이번에는 강희가 공격수로 나섰다.

“재성 오빠, 호영 오빠가 이곳에 온 이유가 뭐야?”

호영을 이곳에 부른 이유는 모두 두 가지.

장대산 부사장과 이수진 사이를 매끄럽게 기름칠을 하는 역할과 어떻게든 강희와 연결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 모두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어서 겨울과 수립해 놓은 시나리오를 언급했다.

“업무 때문에 우리 회사에 오셨는데, 한 부사장님이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해서 모시고 온 거야.”

“그래?”

겨우 강희의 의심을 잠재우니 이번에는 이수진의 질문이 나왔다.

“이 대리님, 장 부사장님은요?”

“장 부사장님은 이곳으로 오다가 로비에서 우연히 만났지 뭡니까. 저녁 식사를 같이할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거의 반강제로 모시고 왔습니다.”

“아, 그렇군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이수진의 얼굴에서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재성 대리는 이수진이 또 다른 의문을 품지 못하도록 재빨리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이렇게 모이기도 힘든데, 우리 불타는 금요일 밤을 화끈하게 즐겨 봅시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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